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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 신의의 가르침 (1) (69/210)


69화 : 신의의 가르침 (1)
2021.12.08.


‘이 찰나에 이벤트라?’

뭐, 어차피 처음부터 뒤쫓을 생각이었다.

진천우가 내공으로 안력을 돋웠다.

그러자 깜깜한 시야가 한껏 밝아졌다.

슥!

점소이 의원이 홀로 어둠을 뚫고 나아가고 있었다.

그 뒤를 숨죽이며 뒤따랐다.

하지만 미행이란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휙!

‘이크!’

앞서 걷던 점소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모퉁이를 돌고 있던 참이라, 바로 숨을 수 있었다.

“흠?”

점소이 의원이 즉시 미간을 좁혔다.

그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흐으음!”

‘……!’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

“내 착각인가?”

천만다행으로 그는 딱 한 걸음을 남겨두고 몸을 돌렸다.

‘후우!’

진천우가 가슴을 쓸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미행을 우습게 봤다.

‘점소이 의원은 내공이 없어, 미행하는 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진천우에게는 소림의 비전인 대나이신법과 그 이상의 신법인 여덟 걸음이 있었다.

허나 이 둘은 무엇보다 자유롭고 빠른 신법이지, 은밀함을 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둘 다 최상승의 신법.

만약 그가 마음먹고 이 중 하나를 펼치면, 충분히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쫓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타이쿤의 의도는 그게 아니겠지?’

착각하면 안 되는 게, 이번 일은 전처럼 멋대로 벌어진 이벤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오늘 낮에 해결한 환자 웨이브의 보상.

그는 이를 다시 숙지하며 천천히 모퉁이를 돌았다.

‘역시 아까보다 경계하고 있군.’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점소이 의원은 아까보다 훨씬 숨을 깊게 들이켰고, 언제든 몸을 돌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갑자기.

[스킬 ‘의안(醫眼)’을 습득했습니다.]

새 스킬을 획득했다.

‘의안?’

의원의 눈.

스킬이 발동하자, 놀랍게도 점소이의 몸에 격자가 씌워졌다.

마치 의술의 신이 발동했을 때처럼.

‘이게 의안 스킬의 효과?’

그렇지만 단순히 노려본 것만으로 새 스킬을 얻다니, 지금껏 얻은 다른 스킬에 비해 획득 난이도가 너무 쉬웠다.

잠시 후, 그 이유가 밝혀졌다.

[이벤트 ‘미행’ 중에는 특정 스킬의 획득이 아주 쉬워집니다.]

‘이게 환자 웨이브를 막은 진짜 보상이구나!’

궁금증을 풀었으니, 남은 일은 하나였다.

진천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점소이의 등을 노려보았다.

그가 얼마나 집중하나에 따라 격자무늬는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다.

또 의술의 신에서 그랬던 것처럼 격자 속의 혈도들이 빛을 발했다.

[스킬 ‘의안’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슥!

그 순간 점소이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진천우는 그가 마지막 걸음을 내디딜 때, 이미 가까이 있는 나무 뒤로 몸을 날렸다.

의안 스킬은 상대의 혈도뿐 아니라 근육과 장기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꿰뚫어 보았다.

점소이 의원은 진천우가 완전히 나무 뒤에 숨은 다음에야 고개를 돌렸다.

“흐음……?”

당연히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은 기색.

어쩌면 자신이 지나치게 과민한 걸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떠나기 전에 그런 말을 들은 이상!

“왔느냐?”

그때 정면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점소이가 상대를 확인하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아니다. 나도 방금 도착했다.”

산적 의원.

다섯 의원 중 가장 오래 학수선의를 따랐던 이.

“물건은?”

“여깄습니다.”

점소이가 곧바로 품에서 얕은 책자를 꺼냈다.

산적이 책자를 넘겨받으며, 가볍게 상대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네. 이후부터는 내가 맡지.”

“알겠습니다.”

점소이 의원이 깊게 허리를 숙인 뒤, 몸을 돌렸다.

산적 의원은 그가 완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해주었다.

진천우가 이 모든 걸 멀리서 지켜보았다.

솔직히 조금 난감했다.

‘그는 내공을 다룰 줄 안다.’

그 말인즉, 무공을 모르는 범인보다 눈과 귀가 훨씬 밝다는 소리였다.

미행의 난이도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허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타이쿤을 잘 안다.

-확실한 성과에는 명확한 보상을.

이것만은 절대 변하지 않는 타이쿤의 진리였다.

더군다나 진천우는 상대가 설령 산적 의원이라 할지라도 순순히 들켜줄 생각이 없었다.

‘무인에게도 의안 스킬이 제대로 작동한다.’

그의 눈에 비치는 산적 의원의 모습에 격자무늬가 씌워졌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슥!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제 가슴께에도 격자가 보였다.

‘의술의 신은 원래 내 몸에 가장 먼저 격자를 만들었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타인의 몸보다 제 몸을 자세히 보는 게 몇 배는 쉬웠다.

그는 제 몸의 근육과 장기를 유심히 살폈다.

또 수만 개의 혈도가 어떻게 빛나는지도 까먹지 않고 확인했다.

‘어디.’

모든 확인이 끝나자,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스읍!

진천우는 바로 호흡부터 조절했다.

폐와 기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눈에 보이니, 숨을 줄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

앞서 걷는 산적 의원도 특별히 누가 자신을 쫓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스흐읍!

진천우가 거기서 숨을 더 줄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분명 자신은 숨을 내쉬지만, 입과 코에서는 어떤 기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킬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습득했습니다.]

귀식대법은 호흡을 극도로 없애, 그야말로 시체나 다름없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의 모든 활동이 극도로 낮아져, 종국에는 기척마저 사라졌다.

[스킬 ‘은잠술(隱潛術)’을 습득했습니다.]

귀식대법에 이어 자신을 주위 환경에 동화시키는 은잠술까지 익히자, 가슴 깊은 곳에서 무한한 자신감이 솟았다.

‘진정해라.’

이미 말했듯,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난 지금 싸우려는 게 아니다.’

그저 산적의 뒤를 들키지 않고 쫓아야 한다.

이때 요동치는 심장은 방해만 될 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흥분이 진정되었다.

슥!

때마침 산적 의원도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 커다란 장원이 보였다.

‘여긴?’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은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굳이 여기로 다시?’

다시?

그랬다.

이곳은 오늘 낮에 자신과 다섯 의원 그리고 백풍대가 함께 박살 낸 의원 연합의 장원이었다.

장원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기존에 일하는 이들을 모두 백풍대가 내쫓았다.

끼이익!

산적이 의원 연합의 반파된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있었다.

“왔군.”

학수선의.

솔직히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 반신반의였다.

산적 의원을 움직일 수 있는 이는 그가 유일했지만, 이런 수상쩍은 일에 신의가 개입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건은?”

“여기 가져왔습니다.”

산적이 소매에서 처음 점소이에게 건네받은 책자를 꺼냈다.

이제 그걸 학수선의가 넘겨받았다.

“수고했네. 그럼 자네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일을 마무리하게.”

“알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산적 의원이 오른편으로 몸을 돌렸다.

‘흐음…….’

진천우가 잠시 고민했다.

지금 그가 향하는 방향은 의원 연합의 보물고.

이를 가만히 두고 봐야 하나?

하지만 그는 이들을 말릴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가만 놔둬도 맹에서 조사 명목으로 쓸어갈 재물이었다.

진천우가 의아해하는 건, 당대 제일의 의원이란 자가 재물에 저리 큰 탐욕을 보이냐는 점이었다.

본래라면 놓쳤을지 모르지만, 그는 학수선의가 나타나자마자 의안을 발휘했기에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산적 의원에게 정체불명의 책자를 건네받고, 그를 보물고로 보내면서 신의가 보인 짙은 미소를.

‘자, 그러면…….’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았다.

학수선의가 산적 의원을 보물고로 보낸 뒤에도 진천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그를 미행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미행을 멈춰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가능하면 새로 익힌 귀식대법과 은잠술이 신의에게도 통할지 시험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을 두 번에 걸쳐 건네받은 저 책자의 정체도 궁금하군. 또 학수선의의 진짜 목적도…….’

“자네, 뭐 하나?”

그런데 갑자기 학수선의가 허공에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잘못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말을 건 방향은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의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푸른 현판이 튀어나왔다.

[‘미행’이 들켰습니다.]

[‘귀식대법’이 간파당했습니다.]

[‘은잠술’이 간파당했습니다.]

[이벤트 ‘미행’이 종료됩니다.]

‘이런!’

설마 이리도 간단히 들킬 줄이야.

‘이제 어쩌지?’

뭐든 변명을 생각해야 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이대로 달아날까?’

만일 아직 정체까지 들키지 않았다면, 이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진씨세가의 소가주가 이 늦은 시간에 다 돌아다니는군.”

허나 정체마저 단숨에 들켰다.

모든 게 너무나 갑작스럽고, 뜻밖이었다.

“휴!”

결국 그는 순순히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학수선의가 진천우를 바라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용케 둘에게 들키지 않았군.”

“처음부터 제가 쫓아올 걸 아셨군요.”

“왜 그리 생각하지?”

사실 맨 처음 점소이 의원의 뒤를 쫓을 때, 그는 지나칠 만큼 주위를 경계했다.

딱히 나뭇가지 따위를 밟아 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아마 신의가 어떤 식으로든 그가 주의하게 만든 게 틀림없었다.

“맞네. 내가 이 근방에 처녀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해주었지. 녀석은 생긴 것보다 담이 약하거든.”

“그랬군요. 그럼 왜 제가 그들을 쫓도록 유도한 건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유도했다라?”

학수선의가 느긋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었다.

이를 진천우가 매섭게 노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신의는 그가 예상하기로, 벽을 넘은 고수.

이 정도 기세에 겁을 먹을 리 없었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헛소리도 유분주지. 네 멋대로 따라와 내게 들켜놓고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냐?”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리 못 생각할 건 또 무엇이냐?”

진천우의 인중에 얕게 내 천(川) 자가 그려졌다.

반대로 학수선의 입가에는 가벼운 호선을 지어졌다.

대변약눌(大辯若訥).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은 때로는 말더듬이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진정한 언변이란 그저 화려한 언어를 청산유수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자기 말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을 뜻했다.

신의는 거침없는 언행을 구사해 단숨에 진천우의 질문을 부정했다.

그 태도나 너무나 당당해,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장가 그놈의 유창한 언변도 신의에게 배운 걸 수도 있겠군.’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십중팔구 그럴 게 분명했다.

“아무튼, 지금 와서 그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닌 듯하군.”

“그럼 신의께서는 뭐가 중하십니까?”

“따라오게.”

학수선의가 자신을 앞에 두고 태연히 등을 돌렸다.

진천우는 혹시나 함정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신의가 굳이 내가 함정을 팔 이유는 없지.’

그것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지금 학수선의가 향하는 장소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지금 그가 향하는 방향은 의원 연합의 보물고와 정반대였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방향은…….’

틀림없이 방향만 아니라, 보물고의 성격과도 정반대인 장소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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