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밀려드는 환자들 (1)
(64/210)
64화 : 밀려드는 환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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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 밀려드는 환자들 (1)
2021.11.27.
‘두 번째 의술의 신?’
진천우가 고개를 내렸다.
살짝 벌어진 앞섶 사이로 맨가슴이 보였다.
‘멀쩡한데?’
분명 처음 의술의 신이 나타났을 때는, 가슴에 붉은 격자무늬가 가득했다.
“의원님, 가슴이 너무 아파요.”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왔다.
“가슴?”
진천우가 바로 아이의 윗옷을 벗겼다.
일단은 진맥이 먼저.
두 번째 의술의 신에 관한 건 잠시 머릿속에서 치웠다.
그러려고 했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네, 가슴이 아파요.”
“정말 가슴이 아파?”
“……왜 그러시죠?”
진천우가 계속 묻자, 아이가 겁에 질린 듯 눈썹을 파리하게 떨었다.
가슴이 아파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데 왜 가슴이 아프냐고 하면, 자신은 뭐라 답해야 하나?
“아니, 아니다. 그러니까 오른쪽 가슴이 아프다고?”
진천우가 뒤늦게 환자의 불안을 감지하고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속에서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왜 아프다는 가슴이 아니라, 배에 붉은 격자가 보이는 거지?’
두 번째 의술의 신은 제 몸이 아니라, 자신이 진맥하는 환자에게서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상한 장소에 격자무늬가 나타났으니 의아할 수밖에.
“네, 거기요. 아침부터 오른쪽 가슴이 너무 아파요.”
“여기가 아프다고?”
진천우가 아이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대로 살짝, 정말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
“악!”
아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엄살 같진 않았다.
“엉! 엉엉! 아파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서럽게 울 수 없었다.
‘딱히 외상은 없는데?’
외상이 있으면 아픈 원인을 찾기 쉬웠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 몸을 둘러봐도 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격자무늬는 왜 배에 생겼을까?’
“혹시 아프기 전에 뭘 먹었지? 당장 떠오르는 대로 말해 보렴.”
진천우가 우는 아이를 달래며 질문했다.
달래는 게 쉽진 않았지만, 다시는 가슴을 누르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해서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어……. 어……. 어제 제가 먹은 건…….”
아이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어젯밤에 먹은 걸 차례로 말했다.
그리 대단한 건 없었다.
빈민가 아이들이 주로 먹는 멀건 죽과 녹색 채소볶음, 그 외 산에서 캔 풀뿌리 정도?
“그거다!”
퍽!
“악!”
“자네, 미쳤나!!”
느닷없는 아이의 비명과 함께, 처음부터 진천우를 지켜보던 점소이 의원이 일어섰다.
본래 저 아이는 자기가 맡아야 했던 환자다.
그걸 일부러 진천우 쪽으로 돌렸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픈 애의 배를 후려쳐!’
설사 신의가 데려온 청년이라도 이건 아니다.
아니, 방금 행동은 의원으로서는 물론이고, 사람으로서도 실격이다.
‘내 저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잠깐!”
그때 산적 의원이 점소이 의원의 앞을 막았다.
“말리지 마십시오!”
허나 그런다고 이 일을 참아줄 수는 없었다.
서둘러 저 아이를 구하고 놈을 처단해야 했다.
그게 바로 의원의 책무였다.
“자네야말로 의원이라면 정당한 진료를 방해하지 말게.”
“네?”
정당한 진료?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켁! 컥컥!”
그 순간,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어제 먹은 걸 토했다.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
그런데 자신도 의원이라고, 점소이 의원은 아이의 괴로워하는 모습보다 방금 아이가 토한 토사물의 내용에 더 눈이 갔다.
크게 별 건 없었다.
멀건 게 죽이고, 푸르팅팅한 건 아마 채소볶음.
그는 토사물을 한참이나 살피다, 뒤늦게 제정신을 차리고 산적 의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게 뭐가 정당한 진료입니까?”
“자네는 저 모습을 보고도 진료가 아니라고 할 건가?”
무슨 모습?
고개를 돌려 다시 아이 쪽을 보니, 진천우는 아이가 뱉은 토사물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아니, 그는 자신처럼 그저 토사물을 바라보는데 끝내지 않고.
슥!
그 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손을 넣었다.
“헉!”
이를 본 누군가는 놀라고, 누군가는 숨을 삼켰다.
점소이 의원도 조금 놀랐다.
사실 저 정도는 의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다.
그래, 의원이 당연히 할 일.
그러니 그 행동을 한 진천우를 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그의 손가락에 붉고 긴 식물 줄기가 올려졌다.
“어제 이걸 먹었다고?”
“네…….”
아이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진천우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한마디 했다.
“아직도 가슴이 아프더냐?”
“네? 어?! 그러고 보니 이제 괜찮아졌어요.”
“다행이구나.”
그제야 제 배를 때린 게 저 풀뿌리를 토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걸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하지만…….”
아이는 감사를 표하다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다행히 아픔은 가셨지만, 저 풀뿌리 때문에 가슴 통증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저걸 먹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적령초라는 잡초인데, 굳이 먹으려 하면 못 먹을 풀은 아니다.”
“그런데?”
“많이 먹으면, 풀 안에 있는 몇 가지 성분이 몸에 쌓여 가슴에 통증을 유발한다. 아마 너는 이걸 작년에 처음 먹어봤겠지. 그때는 뭘 몰라서 신중하게 먹느라고 아주 조금씩만 먹었을 거다. 그러다 이제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최근에는 눈에 띌 때마다 뜯어먹었겠지.”
“맞아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빈민가 아이들은 항상 배고팠고, 조금이라도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으면 벌레든 잡초든 눈에 띄는 대로 먹어 치웠다.
그게 결국 탈이 되었다.
“앞으로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건 먹지 말거라. 안 그럼 다시 가슴이 아플 거다.”
“네, 다시는 안 먹을게요!”
아이는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점소이 의원이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제 납득했나?”
산적 의원이 입을 열었다.
“네에…….”
점소이 의원이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한편, 화난 동료를 진정시킨 산적 의원은 감탄한 눈으로 진천우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처음부터 진천우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의 진료 과정을 세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제법이야.’
솔직히 감탄했다.
진천우는 까다로운 환자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고, 짧은 시간에 해결법을 찾았다.
보통의 신참 의원은 절대 할 수 없는 일.
그 대처는 가히 노련한 의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우연이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래야 했다.
아무리 학수선의가 데려온 청년이지만, 그는 경험 없는 신참이다.
빈민가 진료는 의원이 환자와 직접 부닥치는 장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신입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것들을 해결하면서 성장해야 했다.
‘과연 다음에도 혼자 해결할 수 있을까?’
산적 의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그건 불가능했다.
자신과 여기 있는 다른 의원들 모두 지금은 명의의 반열에 들었다.
이들 모두 첫 실전에는 실수투성이였다.
대신 그때마다 주위의 다른 의원들이 도와주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자기가 도울 차례.
‘어디 자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지.’
산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언제라도 진천우를 도울 수 있도록 한쪽 손을 비워두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장사꾼 의원도, 마부 의원도, 거지 의원도, 그리고 처음 화를 냈던 점소이 의원도 마찬가지.
그들은 자기 앞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언제든 진천우를 도울 준비를 끝내놓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수년간 지병이던 요통이 감쪽같이 나았습니다!”
응?
“세상에! 정말 그걸로 제 병이 낫는 겁니까?”
왜……?
“아이고, 감사합니다. 의원님.”
“히야, 용하십니다. 의원님.”
왜 이놈은 실수하지 않지?
다섯이 지켜보다가 맥이 풀릴 만큼, 진천우의 진료는 훌륭했다.
아니, 단순히 훌륭하단 말로 부족했다.
“눈 밑이 검고 얼굴이 노랗군요. 뭘 잘못 먹은 모양입니다. 며칠 내에 날것이나 상한 걸 드셨습니까?”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의 진료는 빠르고 정확했다.
“거기! 이미 제 머릿속에 환자들이 줄 선 순서를 다 기억해뒀으니, 새치기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장 뒤로 물러나세요.”
“안 아픈 거 다 아니, 엄살 부려도 소용없습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니 어서 돌아가세요.”
거기에 고약하고 예의 없는 환자를 다루는 처치술도 능숙했다.
진천우는 환자가 꾀병을 부리거나 소란을 일으키면 조금의 지체 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몇몇 이들은 진료 실력보다 그걸 더 대단하게 여겼다.
그들 정도 경지에 이르면, 단순히 진료하는 것보다 환자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단 걸 모를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산적 의원이 입을 쩍 벌렸다.
양 눈에도 불신의 감정이 진하게 서렸다.
혹시 나이에 맞지 않는 노련한 의원이 아닐까?
그러나 이따금 보이는 몇몇 서투른 행동은 그가 틀림없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신참 의원임을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저 많은 환자를 실수 없이 돌보다니!
‘마치 노련한 의원이 옆에 바짝 붙어 하나하나 지적해주는 것 같구나.’
그는 몰랐지만, 그 생각은 아주 정확했다.
[아홉 번째 환자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열세 번째 환자는 아직 술이 다 깨지 않았습니다.]
[열다섯 번째 환자는…….]
[스무 번째 환자는…….]
진천우의 옆에는 ‘의술의 신 2’란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그를 지원했다.
진료를 계속할수록 그가 익힌 스킬들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스킬 ‘침술’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약학’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마지막에 이상한 게 함께 상승했지만,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진천우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 무슨?!’
‘어떻게!?’
지켜보던 다섯 의원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눈앞의 청년은, 조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신참이었을지 모르나, 어느새 자신들 못지않은 진짜 의원이 되고 있었다.
이를 가장 먼저 인정한 건 산적 의원이었다.
‘내 평생 저렇게 빨리 실력이 느는 의원은 처음 보는군.’
질투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수준일 때나 나는 법이다.
진천우의 성장 속도는 그의 이해를 가뿐히 초월했고, 다행히 산적 의원은 남의 빠른 성장을 비난하고 방해하는 속 좁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점소이 의원이 끝까지 진천우를 인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긴 하군.’
떡 하니 눈앞에서 실력을 선보이는데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쉽게 진천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의원은 생명을 돌보는 업.
다른 어느 업보다 매섭게 지켜봐야 한다.
그게 저 청년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
헌데.
툭! 툭툭!
“자네, 그건?!”
그의 단호한 표정도, 진천우가 막 환자의 등에 손가락을 찌르는 걸 보고,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점혈?!”
“네? 네, 점혈이 맞는데, 무슨 문제라도?”
“자네가 점혈도 할 줄 안다고?”
“네.”
“하아!”
점소이 의원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저건 자신도 못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내공이 없기 때문이었다.
저 실력에, 저 성장 속도에, 거기다 점혈까지 할 줄 알다니.
“…….”
더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점소이 의원은 뭔가 해탈한 얼굴로 힘겹게 입술을 뗐다.
“……그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그렇게 마지막 남은 의원까지 모두 진천우를 인정하자, 그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다섯 명의에게 모두 인정받았습니다. (5 / 5)]
[특수 이벤트 ‘환자 디펜스’가 발생합니다.]
[일각 뒤 대량의 환자가 몰려옵니다.]
[다섯 의원과 함께 이들 모두를 치료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