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 신의의 제안 (2)
(63/210)
63화 : 신의의 제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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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 신의의 제안 (2)
2021.11.24.
“여기군.”
학수선의가 폐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확실히 여긴 그가 찾을 만한 장소였다.
“장가 놈이 여기 머물렀다고?”
“장 의원, 아니, 그놈을 아십니까?”
진천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히 떠올랐다.
마치 인세로 유랑 나온 신선처럼 허허로이 웃으며, 자신과 제 가족 그리고 가문의 모든 사람을 속인 사기꾼의 뻔뻔한 낯짝이.
분명 놈이 학수선의를 사칭했지만, 사칭 당한 당사자가 그 사실을 어찌 알까 싶었다.
그런데 학수선의가 충격적인 사실을 고했다.
“당연히 알지. 내 밑에 있던 놈인데.”
“네?”
그 사기꾼이 학수선의 아래에 있었다고?
그러니까 진짜 의술을 배웠다고?
“아니, 내 밑에 있다고 다 의원이겠느냐? 그냥 따로 심부름이나 하던 놈이다. 녀석은 그게 불만이었는지, 얼마 안 있어 내가 연구하던 것과 의서를 훔쳐 달아났지.”
‘아!’
진천우가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행히 이번에는 미처 소리 지르기 전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소환단과 백호기, 그리고 요상절초 십팔수.’
그것들 전부 자신이 먹었다.
소환단은 대환단으로 진화해 제 뱃속에, 백호기는 제 소매에, 마지막으로 요상절초 십팔수는 자신의 머리에.
‘어쩌지?’
이미 먹어버린 소환단은 내줄 방법이 없었다.
백호기 또한 소환단과 연결되어 내줄 수 없었다.
사실 이 둘은 처음부터 자신이 감내하겠다고 결심을 끝냈다.
하지만 요상절초 십팔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뭐, 사실 그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네?”
그때 학수선의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놈은 달아나면서, 내게 뭘 훔쳤는지 숨길 생각으로 처소를 엉망으로 만들고 달아났지. 그런데 그걸 정리하면서 새로운 의서와 연구거리가 떠올랐지!”
그답지 않게 흥분한 어조.
계속 얘기를 들어보니, 학수선의는 오래전의 연구 따위 머릿속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
심지어.
“더군다나, 장가 놈을 내 밑에 붙인 건 맹의 결정이었지. 녀석은 원래 맹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던 하인이었거든.”
“그 사기꾼이 원래는 맹 소속이었다고요?”
“덕분에 맹에서 도둑맞은 것의 배 이상 뜯어냈지.”
학수선의가 얕은 조소를 지으며, 폐허가 된 사기꾼의 전 처소를 천천히 몇 바퀴 돌았다.
그 뒤, 그는 또 걸음을 돌렸다.
서둘러 그 뒤를 뒤따랐다.
“마지막은 여긴가?”
‘마지막? 아니, 그보다 여긴?’
주위를 둘러보던 진천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식당이었다.
처음은 자신의 처소, 다음은 사기꾼의 처소, 마지막은 식당.
이 세 장소의 연결이 낯설지 않았다.
설마?
학수선의가 식당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입을 열었다.
“끝났군.”
“장가 놈이 푼 독을 해독한 겁니까?”
은장독(隱臟毒).
사기꾼이 죽은 뒤에도 진씨세가에 숨긴 독으로, 이 독에 중독되면 수년 뒤 다섯 말의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건 분명 나와 독고가 전부 해독했을 텐데?’
제 가족과 식솔들의 목숨이 달린 일.
당시 진천우는 몇 번이나 타이쿤을 확인하며, 가문에 퍼진 모든 독을 처리했다.
“건방 떨고 있군.”
학수선의가 진천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그저 노려본다고 생각했는데.
“윽!”
알고 보니 그 이상이었다.
“언제 하독을?!”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그러나 타이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
“쯧!”
그 뒤 학수선의가 손을 한번 휘두르자,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보아하니 어설프게 독공도 배운 모양이군.”
놀란 진천우는 얼마간 숨을 추스른 다음에야 입을 뗐다.
“신의께서 독공도 익히셨습니까?”
“아니.”
아니라고? 그럼 방금 그건?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게 사실이면, 조금 전 타이쿤이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었다.
“장가 놈도 너랑 똑같았지. 어쭙잖게 주워 먹은 기예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사방에 쓸데없는 걸 흘리고 다녔어. 은장독? 그건 네가 어떻게 해독한 것 같지만, 그 외 녀석이 흘린 다른 잡다한 건 아예 눈치도 채지 못했군.”
쯧!
학수선의가 야멸차게 혀를 한 번 차고는 다시 입을 뗐다.
그가 한 말을 간략하게 줄이면, 사기꾼이 그간 잡다하게 모은 약과 독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서로 은밀히 조합돼, 사람에게 미묘한 작용을 하는 기운을 흘리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 녀석은 내 것 외에도 맹에서 뭔가를 훔쳤을 게 분명해.”
맹이 지난 몇 년간 장 의원을 추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천우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그 미묘한 기운에 이미 노출된 사람은 어찌 되는 겁니까?”
진작에 죽은 사기꾼 따위보다 내 가족, 내 식솔들이 훨씬 중요했다.
다행히 학수선의는 그 미묘한 기운이 아직 진가에 완전히 퍼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거기다 내가 방금 그 원천을 모조리 쳐냈으니, 설사 조금 영향을 받은 이가 있다 해도 잠시 건강이 나빠졌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갈 거다.”
“…….”
그의 말을 끝난 뒤에도 진천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어서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기꾼에 대한 분노와, 이때까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 등 온갖 감정이 그의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허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결국 남은 감정은.
“휴!”
어쨌든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됐다는 깊은 안도감이었다.
진천우에게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편, 그의 감정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학수선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거로 안도하다니, 안 될 말이지.”
“…….”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걸까?
진천우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려는데, 학수선의가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장가 놈만 봐도 알겠지만,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건 너같이 어설픈 녀석들이지. 그러니 네놈도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해야 할 거다. 그래야 간신히 어설픈 티를 벗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학수선의가 몸을 돌렸다.
그는 진천우에게 어떤 위로도, 가르침도 주지 않았다.
그저 제 등을 보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
진천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그의 등을 따라갔다.
* * *
학수선의가 진씨세가를 나서고 향한 곳은 빈민가였다.
“오셨습니까?”
그가 등장하자 곧바로 몇 사람이 다가왔다.
장사꾼, 점소이, 마부, 심지어 거지도 있었다.
‘이들은?’
진천우가 눈을 치켜떴다.
무인은 일정 경지를 넘기면 태양혈이 도드라져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의원 역시 마찬가지.
태양혈처럼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손에 잡히는 굳은살의 위치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약향 등이 이를 대신했다.
심지어 눈앞의 이들은 전부 명의라 불려도 손색없는 수준.
‘어디서 이만한 의원들이?’
“전부 내 밑에서 일하고 있지.”
학수선의가 그들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확실히 신의의 밑에 이만한 명의가 뭉쳐 다니는 것도 있을 법했다.
그런데 그들과 학수선의가 왜 이곳 빈민가에?
그때, 그들 중 산적 같은 인상의 중년인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신의님, 이자는?”
“쓸 만해 보여서 데려왔지.”
“그렇습니까?”
“남는 거적 있으면 하나 내줘.”
거적?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중년인이 손가락으로 구석의 모퉁이를 가리켰다.
진천우가 학수선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잔말 말고 그 뒤를 따라가라고 손부채질했다.
“여긴?”
끄응! 끙!
모퉁이 하나 돌았을 뿐인데, 사방에 환자가 들끓었다.
“으으으……!”
“아파요!”
“의원님!”
작게는 고뿔부터,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자, 안색이 창백한 자, 열이 펄펄 끓는 자 등 온갖 환자가 즐비했다.
“당장 침을 놓지.”
“흰 천! 부목! 누가 빨리 가져와!”
“잠시……. 이 증상에는…….”
그 수십 명의 환자를 아까 본 다섯이서 전부 진맥하기 시작했다.
“여기, 자네 거적이네.”
털썩!
눈앞에 닿고 해진 거적이 펼쳐졌다.
……어쩌라는?
“새 의원님이십니까?”
“의원님, 제 아들을 봐주십시오!”
“의원님, 제 등에 종기가!!”
그 직후, 눈앞에 순식간에 환자가 몰렸다.
“어……. 어……?”
당황스러웠다.
설마 나보고 이들을 진맥하라고?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학수선의는 보이지 않았다.
“뭐하나?”
그때, 바로 옆의 거적에 앉은 산적이 자신을 노려보았다.
“눈앞의 환자에 집중하게!”
“그게…….”
아무리 산적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지만, 그는 의원이었다.
진천우는 그간 여러 무인을 만났고, 심지어 그중 몇 명과는 대적까지 했다.
무인이 내뿜는 거친 기세에 비하면, 산적 의원의 외침은 코웃음이 나올 정도다.
“어서!”
……분명 그래야 하는데.
흠칫!
진천우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고, 몸을 뒤로 물렸다.
분명 상대의 기세는 작고, 얕고, 가늘기까지 했지만.
“집중!!”
그 예리함만은 지금껏 보지 못한 경지였다.
‘이건 무인의 기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작은 상처를 째고 가르는 데 특화된 의원의 기세.
“넷!”
진천우가 급히 허리를 고쳐 세우고 눈앞의 환자에 집중했다.
“의원님!”
“의원님!”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이와 다친 아이를 안은 어미, 심지어 주정뱅이까지 거적 앞으로 쏟아졌다.
모든 게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스읍!
그가 잠시 숨을 들이켰다.
빈민가 특유의 무겁고 탁한 공기가 도리어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의원님!”
“몸이 너무 아픕니다.”
“제 아이를!”
여전히 시끄러운 환자들.
“조용!!”
뚝!
한 차례의 짧은 외침이 모든 소란을 진정시켰다.
그다음, 진천우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맨 먼저 자신의 거적 앞으로 달려왔지만, 뒤따라 달려든 어른에게 치여 구석으로 몰린 어린아이에게.
“일단 너부터 보자꾸나. 그다음, 두 번째로 온 아주머니 아드님을 보겠습니다. 술에 취한 환자는 세 번째……. 나머지는 빨리 진맥 받고 싶으면 당장 줄부터 서세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환자들을 줄 세우는 그는 제법 의원 같았다.
* * *
‘제법?’
산적 의원이 가만히 진천우를 노려보았다.
“의원님!”
“의원님!”
그의 앞에도 많은 환자가 줄 서 있었다.
그러나 산적 의원은 이들을 능숙히 진맥하고 조치를 취하면서도 눈은 진천우에게서 돌리지 않았다.
‘확실히 제법이지만, 어디까지나 신참치고다.’
아직 진천우는 진짜 의원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어찌할까요?
바로 옆, 거지 의원이 눈짓을 보냈다.
-언제든 준비돼 있습니다.
그 옆의 점소이 의원도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들은 남몰래 환자를 조절 중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신입 앞에는 지금보다 배 이상 고약하고 많은 환자가 쏟아질 터.
‘과연 이 녀석이 그 수준의 환자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산적 의원이 기대에 찬 눈빛을 지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의원들 전부, 학수선의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져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진천우는 신의가 직접 데려온 청년.
솔직히 처음 본 순간 추한 질투심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들은, 학수선의가 이 청년을 택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 그들은 진천우를 믿기에.
-지금!
-알겠습니다!
-넷!
이 순간부터, 그를 신참이 아닌 진짜 의원으로 대했다.
일부러 강제했던 환자들이 사방에 흩어졌다.
그중 상당수가 줄이 길지 않은 진천우에게 몰렸다.
‘아직은 느끼지 못하겠지.’
하지만 당장 눈앞의 환자를 끝내면, 그다음부터 온갖 독한 환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질 터.
“?!”
한참 환자를 돌보던 진천우가 갑자기 두 눈을 치켜떴다.
‘벌써 이상을 눈치챈 건가?’
그렇다면 그는 제법…….
그러나 산적 의원의 생각은 틀렸다.
진천우는 단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푸른 현판을 보고 놀랐을 뿐.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의술의 신 2’가 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