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 귀신같은 여자 (3)
(42/210)
42화 : 귀신같은 여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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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 귀신같은 여자 (3)
2021.10.06.
“아니다. 어쩌면 안 죽을지도?”
“네?”
“그래, 단순히 손만 담그는 거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무슨 말씀이신지?”
“뭐, 계속 할 거 하라고.”
“…….”
영문 모를 소리에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흑의 여인은 이쪽을 뻔히 쳐다보았다.
마치 한번 샘에 손을 넣어 보라는 듯.
그는 강요 아닌 강요에 못 이겨 다시 샘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일단 손을 넣어도 괜찮다고 했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손끝만 아주 살짝 담갔다.
슥!
“엇!?”
그런데 갑자기 물이 손을 끌어당겼다.
깜짝 놀라서 급히 손을 빼려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손끝만 담그려 한 게 어느새 손목까지 들어가더니, 결국 팔꿈치까지 빨려 들어갔다.
“내가 잘못 알았군. 손만 담가도 죽을 뻔했어.”
그때, 새하얀 손이 등 뒤에서 튀어나와 진천우의 목덜미를 잡았다.
휙!
어찌 이리도 부드러운 손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흑의 여인이 정말 가볍게, 물에 빠진 진천우를 구해주었다.
“…….”
“괜찮냐?”
“헉!”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 차리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방금 그건 뭡니까?”
“뭔 것 같냐?”
“물이 갑자기 제 팔을 당겼는데…….”
“그때, 넌 왜 손을 안 뺐지?”
“당연히 바로 손을 빼려 했습니다. 그런데 물이 너무 무거워서!”
“바로 그거야.”
“네?”
“스스로 다 알아내 놓고, 왜 나한테 물어?”
‘물이 무거워?’
들은 적 있다.
가문 서고에 보관된 수많은 잡서 중, 이런 신기한 현상에 관해 적은 게 있었다.
무거운 물, 중수(重水).
보통 물보다 열 배 가까이 무거운 중수는 쉽사리 볼 수 없는 기물이다.
실수로라도 중수에 완전히 몸을 담그면 수공을 익힌 무인조차 익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중수는 무서운 존재지만,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천금의 가치를 지녔다.
‘아니, 일단 중수 한 방울만 구할 수 있으면, 같은 무게의 금보다 귀하다고 하니…….’
천금이 아니라 만금의 가치!
우선 중수가 무거운 이유는 그 안에 엄청난 양의 기운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진천우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이곳을 선을 넘긴 장소임에도, 근처에서 강한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중수 속으로 녹아든 게 분명했다.
즉, 이곳은 선 밖과 함께 금지에서 몇 안 되는 안전지대인 셈.
“더불어, 몇 안 되는 식량창고이기도 하지.”
휙!
순간, 흑의 여인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샘 표면이 잠시 일렁이더니, 곧바로 물고기 몇 마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집으며 말했다.
“이것들은 청린어(靑鱗魚)라고 한다.”
“청린어?”
“뭐, 진짜 이름은 알지 못하니, 이랑과 내가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지. 하지만 구워 먹어보니 독은 없고 영양도 많더구나. 우린 매일 이걸 구워 먹고 있지.”
꿀꺽!
머릿속에 물고기구이가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나 흑의 여인에게 식량을 나눠달라고 할 염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청을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천우는 그녀를 향해 깊게 고개 숙였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갚겠습니다.”
“핫!”
흑의 여인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예 온몸을 흔들 정도로 자지러졌는데, 신기하게도 천박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방금 한 말이 그렇게 웃긴가?
“그래, 어디 갚을 수 있으면 갚아봐라.”
턱!
그리 말하며 그녀는 진천우의 가슴에 주먹을 가져대 댔다.
“이건?”
“이번 한 번뿐이다. 다음은 없다.”
눈앞에 잘 구운 청린어 구이가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도 꼭 갚겠습니다.”
하하하하!
흑의 여인이 또 한 번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샘을 떠났다.
혼자 남게 된 진천우가 물고기구이를 한입 뜯었다.
사각!
신기하게도, 구운 물고기가 무슨 과일처럼 아삭였다.
육즙도 보통이 아니었다.
헌데…….
사각!
그는 다시 한번 고기를 물었다.
“…….”
처음과 달리 무척 신중한 한입.
꿀꺽!
진천우가 먹다 말고, 소리쳤다.
“이거다!”
무슨?
* * *
찰랑!
“흡!”
한 손을 샘에 넣었다.
이때 진천우는 땅에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샘에 빠지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으직! 으지직!
갑작스러운 중수의 무게에 팔의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두면 팔이 산산조각난다.
진천우는 바로 역근경을 운용했다.
역근경은 일반적인 심법과 달리, 어떤 자세로도 운용할 수 있었다.
내공이 단전을 나와 온몸을 돌았다.
‘먼저 단전을 틀어 기운을 상승시키고, 이어 사지를 틀어 그 기운을 충만케 한다.’
역근경의 요체.
이중 ‘사지를 튼다’는 외부로부터의 지속적인 충격으로 해석 가능했다.
이는 과거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으로 증명된 일.
으드득! 으득!
우연일까?
지금 샘에 팔을 담근 상태도 딱 그짝이다.
우우웅!
내공이 빠르게 오른팔로 향했다.
그러자 팔의 근육이 조각조각 찢어졌다.
그리고 다시 이어졌다.
역근경의 공능 중 하나인 초회복이었다.
진천우의 몸에는 아직 미처 다 흡수하지 못한 대환단의 기운이 곳곳에 퍼져있었다.
그 기운이 중수의 압박과 역근경의 조화로, 빠르게 몸에 녹아들었다.
기의 바다가 화후기식법 수련에 최적이었다면, 중수로 이뤄진 샘은 역근경 수련에 최적이었다.
으지직! 으직!
“!!”
이 이상은 견디지 못하겠다 싶은 순간, 진천우는 샘에서 팔을 뺐다.
오른팔이 시퍼렇게 변했다.
거기다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초회복으로 발생한 열기에 중수가 증발하며 나타나는 현상.
잠시 뒤 팔이 마를 때쯤, 멍도 전부 사라지고 팔도 완전히 회복되었다.
당연히 오른팔 안의 근육은 전의 배로 늘었다.
‘대환단의 남은 기운이 이 정도일 줄이야!’
진천우가 제 팔을 살피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첨벙!
이번에는 왼팔을 샘에 넣었다.
왼팔 다음에는 오른 다리, 그다음은 왼 다리.
마지막으로 몸통이 남았다.
“…….”
털썩!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묵묵히 샘을 노려보았다.
‘아직 샘에 몸을 담그는 건 무리다.’
겁먹은 거냐고 묻는다면.
맞다.
겁이 났다.
이대로 샘에 몸을 담그면 자신은 죽는다.
‘손가락 하나를 담글 때와 손목을 담글 때의 무게가 달랐다.’
대충 배가 넘는 무게가 느껴졌다.
손목을 담글 때와 한 팔을 담글 때도 이와 같았다.
팔과 다리를 담글 때도 무게가 늘어났다.
‘그러니 샘에 몸을 담그면…….’
한 다리를 담글 때의 열 배가 넘는 무게가 늘어날 게 분명했다.
진천우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가정했지만, 현재 익힌 역근경의 수준으로 그 무게를 견디는 건 무리였다.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말은 그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샘에서 몇 번이나 역근경을 반복해, 아직 다 흡수하지 못한 대환단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하고, 샘 밖에서는 화후기식법으로 기운을 끌어모아 오감과 기감을 넓히는 걸 반복하면…….’
틀림없이 상상도 못 할 속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첨벙!
진천우가 갑자기 샘 쪽으로 손을 뻗었다.
분명 방금 자신이 생각한 방법도 대단하지만,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빨리 강해지는 법을 떠올렸다.
파닥파닥!
샘에서 손을 꺼내자 청린어 한 마리가 붙잡혔다.
녀석들은 워낙 좁은 샘에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그간 주위에 천적이 없어 전혀 경계하지 않은 탓에, 간단히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다.
그걸 흑의 여인이 몸소 보여주었다.
그녀는 진천우에게 단순히 구운 물고기만 준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때마침 이 은혜를 갚을 방법과 가장 빨리 강해질 방법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럼 가볼까?”
진천우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
“방금 뭐라고?”
진천우가 다시 물가로 돌아온 건 날이 밝은 뒤였다.
그는 곧바로 물가 옆의 움집으로 향하다, 막 아침을 준비하러 나온 백의 여인과 마주쳤다.
안 그래도 그녀는 진천우가 지난밤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손에 청린어를 들고 나타나자 아예 경악했다.
‘이놈이 어느새 중수에 손을 담글 정도가 되었다고?’
아니, 그럴 리 없었다.
‘뭔가 도구를 썼겠지.’
딱히 진천우의 몸에 그게 가능한 도구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가 무조건 도구를 썼을 거라 확신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제 앞에 서더니, 하는 말이 영 가관이다.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은혜? 무슨 은혜?”
“지금 움집 안에 계신 분. 그러니까 당신이 소주라 부르는 그분께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
“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짐승도 은혜는 잊지 않는다고, 살짝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놈이 뭐 가진 게 있어 제 주인께 은혜를 갚는단 말인가.
자신의 주인은 원래는 이런 자와는 말도 섞지 못할 만큼 하늘 위의 존재였다.
“하하하!”
그때, 움집 안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재밌군. 들어와라.”
“소주!”
백의 여인이 대경실색하며 진천우를 안으로 들이는 걸 막았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진천우가 움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백의 여인이 마치 씹어 먹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그래, 은혜를 갚겠다고?”
벌써?
‘확실히 하룻밤 사이, 몰라보게 변했군.’
두부처럼 흐느적거리던 게 어느새 차돌처럼 단단해졌다.
‘중수를 사용한 수련법을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걸 감안해도 너무 빠르군.’
이는 자신의 수련법과 비교해도 배에 가까이 빨랐다.
물론 당시 그녀는 지금의 진천우와 하늘과 땅 차이의 고수임을 고려해야 했다.
‘그렇다 해도 역시 너무 빠르군.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걸까?’
흑의 여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려는데, 진천우가 뜻밖의 행동으로 상념을 깨었다.
이를 본 그녀는 곧바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진천우가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진천우는 아주 공손하게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당신께 입은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그 은혜를 갚을 방법으로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이 순간부터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려 합니다.”
흑의 여인의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지금껏 자신을 모시겠다는 이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는 절대 그녀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만일 진심으로 자신이 주종관계를 원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자신에게 아주 큰 모멸감을 준 격.
흑의 여인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딴 건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데, 진천우가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단, 저와 당신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만 모시겠습니다.”
“음? 그걸로 어떻게 은혜를 갚겠다는 거지?”
자신이 여길 며칠, 몇 달이나 있을 줄 알고?
분명 중수 샘에서 두 번이나 구은지명을 받았다며 감격하던 것에 비해 너무 하찮은 조건이 아닌가?
그때, 진천우가 소매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흑의 여인은 방금까지의 실망 일색이던 표정을 지우고, 다시 기대에 찬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음?”
그런데 진천우가 뭔가를 꺼내다 말고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간을 보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제법이다.
흑의 여인의 입꼬리가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기대와 기대와 기대.
그리고 약간의 짜증.
그녀는 용케 닦달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한편, 진천우가 행동을 멈춘 건 절대 그녀가 생각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지금은 네가 나타날 때가 아닌데?’
왜 나타난 거지?
심지어 현판에 적힌 내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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