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 독괴의 기억 (2)
(36/210)
36화 : 독괴의 기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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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 독괴의 기억 (2)
2021.09.22.
독괴는 독으로 경지를 이룬 달인.
“음?!”
그렇기에 단번에 상대의 실력을 간파했다.
-이놈……. 보통이 아니다.
스윽!
놀랍게도 복면인이 뿌린 독은, 독이되 독이 아니고, 독이면서 살아있었다.
-이건 나균(癩菌)?!
피부를 썩게 하는 나병(癩病)은 예부터 불치의 병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 병은 전염성도 아주 강해, 한 명의 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일가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런 고약한!”
독괴가 기겁하며 양팔을 휘둘렀다.
이때 방생한 풍압이 주위 나균을 몰아냈다.
휙!
“아니?!”
그런데 복면인이 거센 바람을 뚫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설마 자신이 뿌린 나균을 뒤집어쓰면서 공격해올 줄이야!
거기에 손끝에 선명하게 일렁이는 하얀 기운.
놀랍게도 복면인 또한 벽을 넘었다.
“놈!”
쾅!
그 직후 큰 굉음이 터졌고, 둘은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독괴가 검록색 기운을 머금은 제 손을 바라보았다.
부르르!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하마터면 양손이 박살 날 뻔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쓴 성과가 있었다.
“쿨럭!”
복면인이 갑자기 피를 토했다.
충돌 직전, 독괴는 공격을 바로 막지 않고 독부터 뿌렸다.
“큭, 제길!”
그는 서둘러 독을 해독했다.
이를 본 독괴가 굳게 확신했다.
-저놈은 독인도 다루기 꺼리는 균을 다룰 줄 알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독공의 숙련도는 나보다 낮다.
“큭!”
당장 복면인의 해독법은 너무 느렸다.
휙!
독괴가 두 번째 독을 날렸다.
“이까짓 것!”
복면인이 서둘러 양팔을 휘둘렀다.
독괴가 했던 것처럼 풍압으로 독을 날리는 게 아니었다.
되레 독을 뿌려, 부딪친 독끼리 사멸하게 만드는 방식.
확실히 이런 수법을 펼치는 걸 보면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쿨럭! 어, 어떻게 또? 쿨럭쿨럭!!”
분명 두 번째 독을 막았음에도 복면인은 또 독에 중독되었다.
그가 두 번째 독을 처리할 때, 독괴는 이미 세 번째 독을 날렸다.
독괴의 독뇌는 어떤 독도 빠르고 은밀하게 날릴 수 있었다.
“네가 졌다.”
독괴가 승리를 확신했다.
“웃기지 마라!”
그러나 상대는 이를 부정하며, 이번에는 자신이 독을 날렸다.
그가 사용한 건 검은 균으로, 한 줌이라도 잘못 들이키면 폐를 썩히는 무서운 독이었다.
“쯧!”
하지만 독괴는 대수롭지 않게 팔을 휘둘러 흑균(黑菌)을 물렸다.
그 뒤 복면인이 붉은 균을 뿌렸지만 역시나 결과는 같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컥!”
어느새 독괴의 네 번째 독이 그를 중독시켰다.
복면인이 서둘러 독을 해독했다.
그의 해독법은 독을 뿌리째 소멸시켰다.
그만큼 확실하지만, 이를 본 독괴는 혀를 찼다.
저 방법은 너무 느리다.
그리고 느리기 때문에 쓸모가 없었다.
“쿨럭!”
독괴는 바로 다섯 번째 독을 사용했다.
아직 복면인은 첫 번째 독도 다 해독하지 못했다.
이게 바로 그의 패인이었다.
“이쯤에서 항복하면 목숨은 보전해주겠다.”
독괴가 다시 경고했다.
이건 그에게 있어 매우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본디 독인은 심성이 단호해, 한번 중독시킨 이를 살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놈은 붉은 천에 대해 뭔가 아는 모양이니.
목숨을 빌미로, 천의 정보를 알아내기로 했다.
어쩌면 천을 가지고 있던 화후의 정보도 알게 될지도 몰랐다.
“네놈에게 해줄 말은 없다!”
그 순간, 복면인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암기?
독괴가 급히 자세를 잡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푸른 천?
놈은 소매에서 쪽빛 천을 꺼내 사방에 펼쳤다.
도대체 이 상황에 뭔 짓이지?
“웃긴 놈!”
독괴는 황당해하면서도, 혹시 천 뒤에서 암기를 던질지 모른단 생각에 철저하게 독을 뿌렸다.
그가 가진 독 중 특히 입자가 고운 것만 골랐으니, 저 정도 천은 단숨에 뚫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생각과 달랐다.
“아니?!”
독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갑자기 돌풍이 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독이 천에 닿자, 어떤 이유도 없이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이 같은 일은 그도 처음.
이때, 믿기지 않는 일이 하나 더 벌어졌다.
“놈!”
독이 모두 흩어지자 복면인이 천을 옆으로 치우며 튀어나왔다.
단순히 몸만 날린 게 아니었다.
눈으로 밭 끝을 쫓기 힘들 만큼 극상의 경공을 펼쳤다.
어떻게!?
그는 이미 다수의 독에 중첩 중독된 상태.
설사 내상을 각오하더라도, 저 같은 속도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제 쪽으로 달려오는 복면인의 모습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독괴가 급히 몸을 틀었다.
그 또한 벽을 넘은 고수.
다소 무리를 하면 어떻게 한 번은……!
“큭!”
하필 화후의 불을 뚫을 때 입은 내상이 발목을 잡았다.
푹!
복부에 날카로운 수도가 박혔다.
단순히 그것뿐이면 바로 극복할 수 있었다.
스륵!
복부가 상처 부위부터 빠르게 녹색으로 바뀌었다.
나균, 흑균, 적균에 이어 녹균(綠菌)이 독괴의 몸에 침투했다.
“…….”
독괴는 고통으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녹균은 정말 지독했다.
그가 아는 모든 독 중 두 번째로 빨리 퍼지고, 두 번째로 지독하며,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 해독이 힘들었다.
독괴의 몸이 완전히 녹색으로 변하자 복면인이 손을 뺐다.
휙!
그리고 그는 곧바로 붉은 천을 빼앗았다.
독괴는 이를 뻔히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빼앗긴 붉은 천을 찾는 게 아니었다!
“놈!!”
극한의 상황에서, 독괴는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독뇌를 펼쳤다.
이때 그가 사용할 독은 정해져 있었다.
자신이 아는 가장 빨리 퍼지고, 가장 지독하며, 가장 해독하기 힘든 독.
팟!
순식간에 그 주위로 검은 운무가 퍼졌다.
“헛된 발악을!”
놀랍게도 복면인은 최후의 독을 해독하려 했다.
이걸로 밝혀졌다.
-이놈은 분명 나보다 독공은 미흡하지만, 해독 능력은 날 상회한다.
참으로 기이했다.
보통 독인은 독공을 익히고, 그 독을 해독하며 해독법을 배운다.
그러면 당연히 독공이 해독 능력보다 앞서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복면인은 마치 독보다 약을 먼저 배운 듯…….
“그렇군!”
그 순간, 독괴는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었다.
그 소리를 들은 복면인이 붉은 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기껏 뺏은 걸 다시 뺏길 순 없었다.
그런데 독괴의 목표는 붉은 천이 아니었다.
휙!
“앗!”
푸른 천이 그의 소매 속으로 빨려갔다.
“하하하, 이건 내가 요긴하게 사용하마!”
“서라!”
“싫다!!”
펑!
독괴는 그 즉시 또 한 차례 검은 운무를 터트리며 몸을 뺐다.
여전히 녹균을 다 해독하지 못했기에, 단순히 달아나면 바로 붙잡힌다.
그래서 그는 맞은편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조금 전 화후가 뛰어내린 그곳.
독괴는 화후의 흔적을 찾다 절벽 아래에서 찾은 걸 떠올렸다.
-실패하면 안 된다. 기회는 한 번뿐!
그는 떨어지는 와중, 절벽을 향해 독을 날렸다.
쾅!!
그 즉시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사방으로 파편이 날아갔고, 이와 함께 독괴의 몸속에 있는 진천우의 정신도 날아갔다.
* * *
“큭!”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바로 동굴 속.
‘중간광고가 끝난 건가?’
저번에 살짝 반항한 탓인지, 이번에는 어떤 징조도 없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일단 광고를 본 대가를 확인했다.
[창천석(蒼天石)]
첫 중간광고 보상과 다른, 푸른색 보석.
‘푸른색?’
보석을 보고 뭔가를 떠올린 진천우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독괴의 시신 옆에 놓인 낡은 천.
천은 너무 오래돼 전체적으로 색이 바랬지만, 군데군데 여전히 푸른빛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선명한 쪽빛인 그 색은 틀림없이 중간광고에서 본 푸른 천이었다.
‘독괴는 마지막에 빼앗긴 붉은 천 대신 이걸 얻었구나.’
독괴의 독조차 간단히 흩어버리는 천.
그 능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하나 더…….’
진천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동굴 끝을 향했다.
유난히 매끈한 벽면이 보였다.
기연을 발견한 줄 알고 동굴을 샅샅이 뒤진 삼살이견과, 오직 독괴의 시신에만 관심을 가진 진천우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던 그곳.
그러나 중간광고를 본 뒤 생각이 달라졌다.
‘저 너머로 독괴가 화후를 놓치고 복면인과 싸운 장소가 연결돼 있다.’
독괴는 복면인에게 패배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때 그는 절벽 밑에 작은 동굴이 있음을 알았다.
처음 화후를 놓치고 절벽 아래를 바라봤을 때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
그러나 한껏 감각을 돋워 안에 화후가 없는 걸 확인하고, 그저 우연히 거기 있는 동굴이라 넘겼다.
그걸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머릿속에서 떠올려 마지막에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독괴는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독으로 교묘하게 입구를 무너트리고, 또 안에서 다시 한번 독으로 중간을 막았다.’
그 정도까지 했으니 복면인도 쉽게 동굴을 찾지 못했다.
독괴는 혹시 몰라, 동굴 안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독을 퍼트렸다.
독고를 밖으로 몰아낸 충멸독도 그중 하나였다.
‘그 독들이 너무 지독한 탓에, 어느새 반대편 벽을 뚫고 내가 들어온 새로운 입구가 만들어진 거겠지.’
그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자 독괴가 퍼트린 독은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고, 결국 시신의 몸속에 녹은 괴혈독만 남았다.
‘하지만 어째서 독괴는 마지막에 독을 해독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을까?’
만일 그가 그러고자 했다면, 충분히 몸을 추스르고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중간광고가 도중에 끊긴 탓에 이 이상 알아내는 건 무리였다.
아무튼, 독괴는 동굴에서 외로이 죽어 시신이 됐지만, 그 대신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심득을 정리해 화후기식법(火猴氣息法)을 남겼다.
그리고 또 하나.
진천우가 다시 푸른 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색이 바랬지만, 중간광고에 보였던 독을 흩트리는 능력의 십분지일이라도 발휘한다면, 거기다 광고를 통해 급상승한 자신의 독공이면!
‘괴혈독을 완벽히 해독할 수 있다.’
그는 아주 긍정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슥.
그런데 진천우의 손이 푸른 천에 닿으려는 순간!
우우웅!
갑자기 소매에서 눈부신 빛이 새어 나왔다.
진천우가 깜짝 놀라며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이건?”
왜 이게 여기서 반응하는 거지?
[‘정체불명의 흰 천 - (레전드)’이 반응합니다.]
그건 장 의원을 처리하고 얻은 소환단을 감싼 정체불명의 천이었다.
그때 이후로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어떤 반응도 없기에 소매 속에 넣고 기억에서 잊은 물건인데.
[‘청룡기’가 이에 ‘호응’합니다.]
‘청룡기? 푸른 천의 이름? 그럼 이 흰 천은?’
곧바로 푸른 천과 다시 호응한 흰 천의 정체가 밝혔다.
[‘백호기’가 ‘청룡기’에 호응해 그 진정한 능력을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