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
(18/210)
18화 :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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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
2021.08.11.
역근경(易筋經)은 도가의 건강법인 도인술(導引術)을 근원에 두었다.
‘근육을 바꾼다’는 이름처럼, 수련을 통해 긴장과 이완을 극단적으로 반복해 근육을 강건하고 탄탄하게 바꾸는 공법이었다.
‘그런데 그 수련이란 게…….’
진천우가 다시 한번 현판의 글귀를 확인했다.
[역근경의 수련법은 먼저 단전을 틀어 기운을 상승시키고, 이어 사지를 틀어 그 기운을 충만케 한다.]
그러니까 사지를 튼다는 게…….
‘그냥 맞아라?’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을 수련하겠습니까? (예 / 아니오)]
타이쿤은 어떤 답도 없이 반짝였지만, 그 반응이야말로 긍정과 다를 바 없었다.
“훗!”
저도 모르게 실소하며, 한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건드렸다.
[예]
그 직후, 허공에 든 손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마치 백풍대를 향한 삿대질처럼.
본의 아니게 진천우를 때려 당황하던 무인이 대뜸 지목당하자, 인상을 찡그렸다.
“겨우 이 정도였습니까?”
“뭐?”
“맹의 삼대 무력단체 중 하나인 백풍대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물었습니다. 하긴 맹에서 세 손가락으로 꼽힌다는 건 애초에 허울뿐이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소가주, 말씀이 지나치시오!”
곧바로 상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그는 백풍대에 큰 미련이 없었지만, 지금 저 말이 백풍대를 빗대어 자신을 모욕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처맞을 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아주 소폭 상승합니다.]
이미 상당한 언변 스킬을 보유한 진천우에게, 이 같은 도발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자, 백풍대에 큰 미련이 없군.’
더구나 그는 상대의 심리를 단숨에 알아채고 보다 효율적으로 전략을 바꿨다.
“말이 지나치다고!”
사실 진천우는 굳이 여기서 백풍대와 입씨름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제 하인이 먼저 몸을 날렸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맞은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항의하면 백풍대주도 한 수 물러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
진천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현석이 ‘갑자기 무슨 사달을 내려는 겁니까!’ 하는 눈으로 제 주인을 바라보았다.
반대로 진천우는 빈사 상태에서 막 몸을 일으킨 하인의 피폐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만일 현석이 그 주먹에 맞았다면!
참았던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
“방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모릅니까! 아니면, 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겁니까?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 같으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알기에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데, 그쪽을 보니 왜 백풍대가 세인의 질타를 받는지 알겠군요.”
진천우가 도발 대상을 백풍대 전체가 아닌, 개인에게 맞췄다.
효과는 엄청났다.
“놈!!”
[‘개 맞을 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아주 소폭 상승합니다.]
도발이 완벽하게 먹혔다.
타이쿤은 아예 언변에서 따로 ‘도발’ 스킬을 떼어냈다.
[항목, 사교(社交)가 반응합니다.]
[사교와 관련된 스킬이 보다 쉽게 익혀집니다.]
[스킬 ‘도발(挑發)’을 습득했습니다.]
[이후, 상대의 감정을 돋우는 행위에 드물게 추가 효과가 발생합니다.]
‘추가 효과?’
아직 설명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먼저 반응했다.
“이 이상은 참지 않겠다!”
“선배, 잠깐! 대주께서 진가의 소가주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부웅!
후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놀라운 일이었다.
먼저 도발한 진천우도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 몰랐다.
처음부터 현석을 자극해 먼저 덤벼들게 만든 놈이었다.
웬만한 도발은 효과가 없을 거라 여겼는데, 어째서 갑자기?
‘그렇군. 이게 추가 효과인가?’
진천우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도발 당한 상대가 가벼운 ‘혼란(昏亂)’ 상태에 빠집니다.]
[‘혼란’ 중에는 자주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보입니다.]
‘이거다!’
그는 제 안면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보고 조소를 지었다.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코가 부서질 공격.
퍽!
“크윽!”
역시 지독히도 아팠다.
오른쪽 어깨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음?”
백풍대 무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노린 건 어깨가 아닌 안면이었다.
진천우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오른 어깨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면 더 큰 충격을 받을 텐데?’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해될 리 없었다.
‘역시나!’
자기 눈에만 보이는 아주 특별한 현판이 보이지 않는 이상!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이 실행되는 중입니다. (2 / 18)]
현판도 현판이지만, 진천우의 눈에만 보이는 게 또 하나 있었다.
반짝!
지금 그의 몸은, 어느 한 부위만 밝게 반짝였다.
조금 전까지 오른 어깨를 밝히던 빛이 이제 왼 주먹으로 옮겨졌다.
진천우는 그 이유를 단번에 깨달았다.
타이쿤의 역근경을 수련하려면 아무 데나 맞는 게 아닌, 반짝이는 부위를 맞아야 했다.
‘그럼 빨리 셈을 치러야지.’
아직 열여섯 번이나 맞아야 했다.
딱히 시간제한은 없지만…….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른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미루거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타이쿤은 시간제한이 없다고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선배도, 소가주도 당장 물러나십시오.”
그 순간, 둘 사이로 후배 무인이 끼어들었다.
그는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소가주가 크게 오해한 것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
퍽!
누군지 몰라도 아주 잘 끼어들었다.
덕분에, 진천우는 손쉽게 자신의 왼 주먹을 상대의 콧대로 ‘맞아줄’ 수 있었다.
[(3 / 18)]
“놈!”
“아닛, 선배!”
후배의 등장에 일순 풀리기 시작한 혼란이, 비공에서 흐른 비릿한 피 맛에 다시 심해졌다.
그는 아예 더는 방해받지 않기 위해, 후배를 점혈했다.
털썩!
“……!”
후배가 힘을 잃고 쓰러지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빡!
진천우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또 상대의 콧대에 이번에는 오른팔을 맞아주었다.
[(4 / 18)]
안타깝게도 그다음부터 상황이 역전되었다.
“으아아!”
퍽! 퍽퍽퍽!
“큭!”
눈 깜짝할 사이, 사방에서 주먹이 날아왔다.
피하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그러니까 ‘맞아주었다.’
[(5 / 18)]
[(6 / 18)]
[(7 / 18)]
[(8 / 18)]
놀랍게도 진천우는 백풍대 무인의 연타를 전부 노리고 맞았다.
원래라면 상상도 못 할 일.
그게 가능한 이유는, 현재 ‘맞으면서 강해지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맞을수록 고통이 가시잖아?’
그만큼 근육이 늘고, 뼈도 단단해졌다.
어디 그뿐일까?
감각도 예민해졌다.
그에 반해, 상대는 그리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 이 자식! 내게 무슨 짓을!!”
시간이 갈수록 혼란이 심해졌다.
처음에는 그도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내공 사용을 자제했지만, 지금은 아예 내공이 움직이지 않았다.
[혼란 상태에서는 내공 수발이 극히 불안정해집니다.]
혼란 상태의 또 다른 효과가 드러났다.
그렇다 해도 그는 여전히 맹의 정예 무인이었다.
휙!
시야가 뒤집혔다.
쿵!
정신을 차리자, 높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커다란 발이 가슴을 밟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밝게 반짝였던 가슴을.
[(9 / 18)]
‘이제 절반 남았군.’
그래서일까?
갑자기 힘이 넘쳤다.
진천우가 그 상태로 발을 날렸다.
형편없는 발차기지만, 기세만은 상당했다.
그러나 상대는 손쉽게 발차기를 막고, 되레 남은 발로 진천우의 오른 다리를 밟았다.
“칫!”
진천우는 즉시 다른 다리를 들었다.
이번에도 발차기가 막히고, 대신 왼 다리가 밟혔다.
백풍대 무인이 그를 보며,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떠올렸다.
날뛰는 생선은 몸통을 강하게 누른 채 썰어야 했다.
그는 한 다리로 진천우의 두 다리를 찍어눌렀다.
그런 다음, 남은 다리를 들었다.
“하하하하!!”
퍽! 퍽퍽퍽!
그대로 사정없이 생선을 난도질했다.
진천우는 복날에 개 처맞듯 인정사정없이 밟혔다.
……모두 그의 의도대로였다.
[(10 / 18)]
[(11 / 18)]
……
[(14 / 18)]
[(15 / 18)]
바닥에 누운 채 한 다리로 짓밟힌다는 건, 그만큼 맞는 방법이 단순해진다는 뜻.
때리는 수단이 한정되자, 어디를 맞을지 쉽게 예상되었다.
왼 어깨, 오른 옆구리, 왼 허벅지…….
진천우는 마치 뱀처럼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원하는 부위를 맞았다.
퍽!
[(16 / 18)]
이제 두 대 남았다.
퍽!
[(17 / 18)]
마지막 한 대!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덜덜덜!
‘어?’
갑자기 몸 상태가 이상했다.
‘너무 많이 맞았나?’
온몸이 사정없이 떨렸고,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날 밟은 발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는데?’
설마 내공 공격?
진천우가 급히 현판의 맨 아래를 확인했다.
[혼란 상태에서는 내공 수발이 극히 ‘불안정’해집니다.]
불안정하다는 말은. 완전히 사용 못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하필 마지막에!
‘한 대…… 딱 한 대만 남았는데…….’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제 몸을 살폈다.
팔? 다리? 가슴?
어디도 빛나지 않았다.
혹시나 등일까 싶어 고개를 돌렸다.
뒤도 멀쩡했다.
그럼 마지막은 어딜 맞아야 하는 거지?
퍽!
“큭!”
자신이 아직도 맞는 중이란 걸 잠시 잊었다.
한번 상태가 안 좋아진 뒤부터는 충격이 남달랐다.
‘이대로는 얼마 못 견딘다.’
진천우가 다시 제 몸을 살폈지만, 여전히 빛나는 부위를 찾지 못했다.
부웅!
또다시 발길질이 날아왔다.
겁을 먹은 걸까?
자신에게 날아오는 커다란 발이 마치 철퇴처럼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눈가가 떨렸다.
‘내가 저걸 견딜 수…….’
……있을까?
마음이 너무 크게 꺾였다.
그 사이, 철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때!
“소가주님!!”
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진천우가 자기 대신 맞자 잠시 정신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주인이 처참히 짓밟히는 광경을 목도했다.
커다란 몸집, 우직한 성격.
현석은 그야말로 소를 닮은 하인이었다.
그리고 소는 한번 눈이 뒤집히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쿵!
예상치 못한 몸통 박치기에, 백풍대 무인은 무려 다섯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새겨졌다.
아까부터 주종이 쌍으로!
혼란이 더욱 심해졌다.
“비켜라!”
날카로운 일갈과 매서운 발길질.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누가 다시 짓밟힐지 눈에 선했다.
현석은 물러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곧바로 진천우를 품에 안고 몸을 움츠렸다.
마치 어미 짐승이 제 새끼를 보호하듯.
퍽!
두 마리 짐승이 뒤엉켜 땅을 굴렀다.
“괘…… 괜찮으십니까?”
현석은 자기가 맞고도, 되레 진천우를 걱정했다.
부르르!
하얗게 질린 하인의 얼굴에, 주인이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은 절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지독한 분노.
어찌나 화가 났는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제 몸도, 맞으며 강해지는 역근경도, 심지어 자신이 조금 전까지 마음이 꺾이기 직전이란 것도 잊었다.
“소가주님? 소가주님? 갑자기 왜 몸을? 설마 또 발작입니까?!”
이를 알 리 없는 현석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례를 무릅쓰고 진천우의 얼굴을 틀어, 억지로 눈을 맞췄다.
그 순간 둘은 동시에 뭔가를 깨달았다.
‘다행이다. 지금 소가주님의 눈빛은 발작 때와 달리 살아계신다.’
한쪽은 다른 한쪽의 무사를.
‘이건?!’
반대로 다른 한쪽은, 복수의 기회가 지금뿐인걸!
팟!
그 직후, 진천우는 현석의 품에서 몸을 날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공교롭게도 그가 몸을 날린 것과 동시에 백풍대주가 등장했다.
분노에 찬 그의 외침에, 수하는 혼란 상태임에도 몸이 굳었다.
비록 노린 건 아니지만 진천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으직!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진천우의 정수리가 백풍대 무인의 턱을 가격한 뒤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상대의 턱에 자신의 정수리가 ‘맞아버렸다’.
‘설마 마지막 부위가 정수리였다니.’
마지막 반짝임을 바로 찾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제 눈으로 제 정수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만일 현석의 눈동자에 비쳐 내 정수리가 빛나는 걸 보지 않았다면, 끝까지 알아채지 못했겠지.’
그야말로 천운(天運)!
우당탕!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쥐어짠 진천우는,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이건 확인해야 했다.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의 마지막 부위, 정수리의 백회(百會)를 자극했습니다. (18 / 18)]
[역근경 수련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대환단의 마지막 남은 약력이 사용자의 절맥 중 한 곳을 뚫기 시작합니다.]
‘?!’
좀 더 확인해야 하는데…….
결국, 그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