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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파이프 게임 (16/210)


16화 : 파이프 게임
2021.08.07.


‘이 불덩이는 뭐지?’

화륵!

진천우가 고개를 숙여, 불덩이를 노려보았다.

화르륵!

정체 모를 불덩이는 목구멍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대체 어디로?’

반짝!

그 순간 몸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뒤늦게 시선을 돌렸지만, 반짝임은 한 번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불덩이를 살피려는데.

반짝!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반짝임이 일어났다.

다만, 아까보다는 좀 더 희미했다.

‘이거?’

뭔가 알아챈 눈치.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당장 명확한 건, 어느새 불덩이가 목구멍을 지나 가슴까지 내려왔다는 것과.

‘처음과 두 번째 반짝임 모두 불덩이 근처에서 일어났다. 그 말은 불덩이가 근처를 지날 때 빛이 반짝인다는 소리인데, 만일 내 예상이 맞다면 다음에 반짝일 곳은…….’

서둘러 시야를 내렸다.

이번에도 불덩이를 확인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아래.

정확히는 배꼽에서 위로 육촌 거리, 바로 거궐(巨闕)의 혈도였다.

‘앞서 빛난 두 곳 모두 혈 자리였다. 단, 전자보다 후자의 빛이 더 희미했던 건, 그만큼 몸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은 혈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화륵!

이 와중에도 불덩이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거궐혈은 앞의 두 곳보다 훨씬 중요한 혈 자리.

진천우는 틀림없이 거궐에서 강한 빛이 반짝일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번쩍!

밝혀진 빛이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게다가 거궐만 빛난 게 아니었다.

배꼽 아래로 일 촌 반 위치인 기해혈을 중심으로, 눈대중으로도 백여 개가 넘는 혈도가 크고 작게 빛을 발했다.

“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온몸이 검게 물든 탓에, 그 광경이 밤하늘을 수놓은 거대한 은하수를 연상시켰다.

‘정말 대단하구나!’

지금까지 진천우가 알던 세상은 진씨세가의 울타리 안이 전부였다.

언제나 진가가 좁다고 투정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약한 몸을 원망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럴 줄 몰랐다.

굳이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아도, 처소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심지어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광활하기 그지없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니!

사람의 몸에서 펼쳐진 소우주의 향연.

“…….”

그는 그저 말없이, 스스로가 얼마나 크고 작으며, 대단하면서도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확인했다.

“후!”

시간이 지나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런 뒤, 진천우는 어느새 새로 나타난 타이쿤 문구를 확인했다.

[소림의 비보는 단순히 내공을 늘려주는 효과만 가지지 않습니다.]

이미 느꼈다.

손톱 크기의 환약 하나로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했다.

진천우는 가슴 깊숙이, 조금 전에 느낀 경외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화륵!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르륵!

그 잠깐 사이, 가슴의 불덩이가 여전히 느릿한 속도로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자신의 몸이 소우주라면, 불덩이는 한줄기 혜성(彗星)처럼 긴 꼬리를 붓처럼 휘둘러 짙은 흔적을 남겼다.

“음?”

그때, 뭔가를 발견했다.

꼬리 끝에 처음 보는 흰색 격자들이 달려있었다.

그 수는 정확히 셋.

꼬리의 격자에는 몸의 붉은 격자와 달리, 안에 희고 굵은 선이 그려져 있었다.

세 격자 모두 다른 그림이었다.

첫 번째 격자는 좌에서 우로 한 획만 그은 일(一)자가,

두 번째 격자는 중간에서 한 번 꺾인 ‘ㄱ’ 모양이,

마지막 세 번째 격자에는 십(十)자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대체?’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건드렸다.

격자가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마침 몸의 붉은 격자에 딱 맞는 크기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십자 격자를 가장 가까운 몸의 격자에 맞췄다.

그러자 십자 격자가 그대로 녹더니, 몸의 격자에 반투명한 십자 무늬를 새겼다.

남은 두 격자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일(一) 자와 ‘ㄱ’자 무늬를 새겼다.

그리고 세 격자를 모두 사용하자, 꼬리 끝에 다시 같은 격자가 생성되었다.

“흠…….”

이게 뭘까?

몸에 그림이라도 그리라는 걸까?

‘아니, 여태껏 봐온 타이쿤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지.’

진천우가 다시 격자를 살폈다.

이번에는 격자를 돌릴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一’을 돌리자 ‘丨’이 되었다.

‘ㄱ’ 격자도 돌려서 ‘ㄴ’으로 만들어졌다.

시험 삼아 각 격자를 이어보았다.

무늬가 이어졌다.

거기에 하나 더.

‘같은 무늬의 격자지만, 전부 미묘하게 뒤틀리거나 기울어졌다. 그 대신 모든 무늬가 반드시 혈도를 지나치게 그려진다? 설마?!’

드디어 무늬 격자의 용도를 깨달았다.

그 순간 불타는 혜성이 몸 중앙의 기해혈, 아니 단전에 닿았다.

화악!

“무슨!?”

불덩이가 단숨에 몸집을 불렸다.

점점 더, 점점 더 크게!

작은 혜성에 불과했던 그것은, 순식간에 단전과 그 외 다른 혈도를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 크기와 열기는 그야말로 태양(太陽) 그 자체!

“으윽!”

진천우가 어떻게 그 힘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화아악!!

곧바로 거대한 태양이 눈 부신 빛과 함께 그를 집어삼켰다.

“……?”

어떻게 된 걸까?

‘난 분명 태양에게 먹혔는데?’

그러나 그의 몸은 멀쩡했다.

그저 바라만 봐도 황홀했던 몸속 소우주도 사라지고, 처음의 검은 몸만 남았다.

이때,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어떤 심법도 익히지 않은 채로 최상급 영약을 삼켰습니다.]

[그 상태로 강제로 진행되는 암전(暗轉) 이벤트 동안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 혈도 전도를 외울 것,

- 새로운 격자를 찾을 것,

- 그 사용법을 깨달을 것.

[특수 이벤트 ‘파이프 게임’을 시작합니다.]

화륵!

현판의 글을 모두 읽자, 목구멍에 또다시 불덩이가 나타났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 *

‘파이프 게임?’

현판을 읽고, 뒤늦게 그 뜻을 이해했다.

파이프란, 물이나 공기 따위를 수송하는 데 쓰는 관(管).

즉, 여기서는 단전과 연결되는 기맥(氣脈)을 뜻했다.

그리고 게임은…….

‘놀이?’

아무리 봐도 평범한 놀거리로 보이지 않는데?

화르륵!

이때도 목구멍의 불덩이가 계속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진천우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미 피어오른 불덩이는 끌 수 없다.’

그렇다면,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그게 뭐지?’

간단했다.

‘파이프 게임이라고 했지. 일단 불덩이 끝의 격자를 사용해 단전에서부터 최대한 많은 혈도를 이어야 한다는 거겠지?’

즉시 손을 움직였다.

처음부터 ‘一’ 격자를 ‘丨’로 돌려, 단전 위에 붙였다.

다음은 ‘十’을 이었다.

남은 건 ‘ㄱ’ 격자.

잠시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무늬 끝이 배꼽 위, 육촌 거리에 닿았다.

이제 더는 몸에서 혈도가 빛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진천우는 정확히 혈 자리를 특정했다.

‘가문 서고에 있는 혈도 전도를 외운 보람이 있구나.’

확실히 혈도 전도를 외운 덕에 대략적인 혈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책 내용과 실제 혈 자리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달랐다.

진천우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다음 격자를 놓을 위치는…….’

그러나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다음 격자를 옮겼다.

마지막 ‘ㄱ’ 격자 때문에 오른쪽으로 튼 걸, 새로 생성된 ‘ㄱ’ 격자로 수정하고, 남은 격자를 이어 명치를 지나게 했다.

처음은 배꼽 위로 육촌 거리.

그다음은 명치.

세 번째는?

파이프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대로 갈비뼈에 닿을 데까지 기맥을 뻗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내 기문혈은 보통 위치보다 오른쪽으로 두 치나 치우쳐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아냐고?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했다.

불과 며칠 전, 이것의 위치를 틀리는 바람에 ‘의술의 신’의 효과로 지독한 고통을 겪었으니까.

배꼽 위 육촌 거리는 거궐(巨闕).

명치는 구미(鳩尾)

그다음은 기문혈(期門穴)이었다.

본래 처음은 기해혈(氣海穴)이지만, 기해혈은 단전과 맞닿기에 처음부터 연결돼 있었다.

그랬다.

진천우는 지금 요상절초 십팔수를 잇고 있었다.

‘어차피 난 따로 아는 심법이 없다. 하지만 요상절초 실팔수는 무려 의선의 사용한 비급. 당장 내가 믿을 건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정말 막연한 기대만으로 이러는 걸까?

사실 그는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정말 신선께 의술을 배웠냐고? 물론이지. 어릴 적 우연히 백학을 타고 내려온 신선을 뵈었는데, 그분께서 내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며, 화타의 청낭서(靑囊書)를 내려주셨단다.

-청낭서(靑囊書)는 단순한 의술서가 아니란다. 굳이 따지면 무림인의 무공 같은 내가수련법에 가깝지.

분명 장 의원은 그리 말했다.

비록 그는 가짜지만, 진짜 학수선의 역시 인세의 것이 아닌 신선에게 의술을 전수받았다고 알려졌다.

‘백풍대주가 말하길, 장 의원이 학수선의의 의서도 훔쳤댔지. 게다가 그는 틀림없는 무림인이었다. 어쩌면, 의선비록은 단순한 의술서가 아니라 내가수련법의 효과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승산 있는 도박.

어차피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이상, 호랑이가 죽든, 내가 죽든 둘밖에 없었다.

‘당연히 죽는 건 내가 아니다!’

진천우는 내친김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혈도를 이었다.

화륵!

그 순간 갑자기 가슴 어름의 불덩이가 크기를 불렸다.

이런 건 처음에는 없었던 일.

[극히 낮은 확률로 대환단의 약성이 미리 부풀어 오릅니다.]

[호재(好材)입니다!]

[그만큼 삼킨 대환단이 강한 약성을 지녔다는 증거입니다.]

[이후, 대환단의 약성이 보다 빨리 단전으로 떨어집니다.]

‘뭐가 좋은 일이란 거야!’

화르륵!

정말 불덩이가 더 빨리 내려왔다.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일곱, 여덟 번째 혈도를 이었다.

그대로 아홉, 열, 열하나!

화악!

열두 번째 혈도를 막 잇는데, 불덩이가 단전과 닿았다.

대환단의 약성이 폭발했다.

그 크기와 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단, 이번에는 대환단의 기운이 단전과 이어진 격자무늬로 타고 올라왔다.

스르륵! 스륵!

약성이 기맥을 타고 올라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가만있으면 안 된다!

열둘, 열셋, 열넷!

스르륵!

열다섯까지 잇는 사이, 약성이 단숨에 여덟 번째까지 올라왔다.

빠르다!

하지만 진천우는 그걸 보고 얕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도 내가 더 빠르다!’

허세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요상절초 십팔수를 염두에 두고 격자를 배치했다.

열다섯, 열여섯을 이었다.

이때도 대환단의 약성은 열넷을 막 지났다.

시간은 넉넉했다.

‘마지막 혈도는 전중혈(膻中穴).’

진천우가 양 젖꼭지를 이은 선 한가운데로 빠르게 파이프를 이었다.

아니, 이으려 했는데…….

멈칫!

갑자기 손이 멈췄다.

방향을 잘못 잡았나?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바로 방향을 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진천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정말 찰나에 불과했지만.

스륵!

이 순간에도 아래에서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는 대환단의 약성을 생각하면, 그 찰나조차 아쉬웠다.

도대체 뭣 때문에!

“…….”

그는 계속 말이 없었다.

대신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사고를 거쳤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상황…….’

어딘가 익숙했다.

처음 천하제일 타이쿤을 얻고, 장 의원에게 요상절초 십팔수를 시전받던 바로 그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때도 마지막 전중혈이 문제였지.’

장 의원이 두 뼘 길이의 장침을 단숨에 꽂으려는데, 타이쿤이 갑자기 심장에서 오색 빛을 밝혔다.

미치도록 고민한 결과, 진천우는 급히 몸을 비틀어 심장에 장침을 박았다.

결과는 ‘초월 달성’이었다.

‘하지만 그 뒤, 식의를 완전히 깨닫고 다시 요상절초 십팔수를 시전받을 때는 심장에 오색 빛이 나타나지 않았지.’

지금도 심장에 빛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경 쓰였다.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신경 쓰였다.

슥.

짧은 곁눈질.

때마침 직전에 모든 격자를 소모해, 격자가 전부 새로 찼다.

‘‘ㄱ’으로 방향을 틀고, 일(一)자와 십(十)자로 연결하면, 딱 심장까지 연결할 수 있다.’

원래라면 격자를 다 쓰면, 아주 조금이지만 잠시 기다려야 했다.

그리되면 무조건 늦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무늬 격자가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있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스륵!

약성이 열여섯 번째를 지났다.

고민할 틈은 없었다.

아니, 방금 고민이 끝났다.

진천우가 빠르게 남은 격자를 움직였다.

하나만 위로 곧게 이으면 바로 전중혈과 연결된다.

슥슥슥!

그러나 움직인 격자는 모두 세 개.

어찌나 빠르게 옮겼는지, 마치 세 격자가 동시에 움직인 것 같았다.

스르륵!!

그때, 대환단의 약성도 마지막을 향했다.

약성이 ‘심장’에 닿았다.

쿵!

“큭!”

엄청난 충격!

마치 망치로 직접 심장을 가격한 듯.

게다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쿵! 쿵쿵!

연이어 충격이 이어졌다.

급히 심장을 움켜쥐었지만, 내부 충격을 막을 순 없었다.

결국.

쾅!!

심장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터졌다.

그대로 약성이 봇물 터지듯 심장에서 분출되었다.

“…….”

진천우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에 파이프를 튼 것에 대한 후회?

그런 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도박이 성공했기에!

[초월 달성!]

눈앞에서 찬란한 금빛을 뿌리는 현판.

이를 보며 진천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리는 도중.

으득!

갑자기 그의 가슴뼈가 함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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