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대인(大人)과 소인(小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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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대인(大人)과 소인(小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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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대인(大人)과 소인(小人)
2021.07.31.
‘경쟁전?’
슥.
진천우가 현판의 글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여긴 진씨세가다.
자신의 가문.
뭘 찾으라는 건지는 몰라도, 무조건 승리를 확신했다.
“진씨세가의 소가주, 진천우.”
그때 백청강이 낮은 목소리로 진천우를 불렀다.
쿵!
다시금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그러나 더는 안 통한다.
[스킬 ‘상태 이상 저항(최하급)’이 발동합니다.]
진천우가 꼿꼿이 고개를 들었다.
상태 이상 저항이 발동했음에도 여전히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차후 더 큰 압박이 행해질 거란 건 자명했다.
“역시.”
그런데 상대는 진천우가 제 기세를 견디자, 의아해하긴커녕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뜻밖의 반응.
그 직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왔다.
“맹의 정보에 따르면, 진가의 소가주는 지난 십수 년간 병환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소가주는 어떻게 내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도 멀쩡할 수 있지?”
‘음……!’
속으로 크게 놀랬다.
그 대단한 맹에서 이런 변방 소가문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니.
그러나 어째서 지금, 그 같은 질문을 한 거지?
‘……아아!’
진천우가 뒤늦게 상대의 의도를 깨닫고 뭐라 말하려 하자, 백청강이 낚아채듯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자네가 장가 놈을 숨긴 장본인이겠지. 그러면 모든 상황의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 순간, 아까부터 뒤에서 가슴 졸이던 진가의 가모가 끼어들었다.
뭐가 맞아떨어진단 말인가!
“도대체 장 의원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그리고 제 아들이 왜 그것과 관련되었다는 겁니까? 전부 터무니없는 오해입니다!”
“아아, 진가의 가모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백청강의 입가에 불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그대로 진천우를 슬쩍 보더니, 그녀에게 장 의원의 죄를 알려주었다.
“장가 놈은 천하에 명망 높은 학수선의를 사칭한 사기꾼이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라, 감히 학수선의의 의서와 귀중품을 훔쳐 달아난 용서 받지 못할 도적이다.”
백청강은 장 의원이 그 뒤에도 천하 곳곳에서 일으킨 사기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했다.
여러 피해자가 거론되었다.
그들 전부가 사기 의술에 속아 건강을 잃었다.
나아가서는 가문의 재산까지.
거기까지 말한 백청강이 다시 진천우를 노려보았다.
마치 덫에 걸린 짐승을 마주한 사냥꾼의 눈으로.
“다시 말하지만 장가 놈은 사기꾼이자 도적에 불과할 뿐, 절대 의원이 아니다. 운 좋게 학수선의의 의서를 빼돌려 의원인 척했지만 결국 사기 의술로 환자를 망치는 쓰레기다.”
“아아!”
놀란 어미가 몸을 날렸다.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손을 떨며, 아들을 더듬었다.
“안 된다……. 안 된다……. 이 무슨……!”
“어머니, 전 괜찮습니다.”
진천우가 가볍게 포옹하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한편, 백청강은 그 말을 듣고 더욱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렇다. 지금 소가주의 몸은 멀쩡하지. 심지어 내 기세를 정면으로 맞고도 견딜 정도. 이 사실들을 미뤄, 우리 백풍대는 자네가 장가 놈과 결탁했다고 의심하는바!”
드디어 맹이 왜 저리 강경하게 나왔는지 이해되었다.
백풍대는 진씨세가를 피해자가 아닌, 장 의원과 손잡은 조력자로 보았다.
“오해라고 말해봤자 소용없겠군요.”
진천우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미를 조심스럽게 진검대주에게 맡기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 모든 게 오해라는 증거는?”
다행히 백풍대주는 다짜고짜 진천우를 포박하고 꿇리지 않았다.
일단 상대는 한 가문의 소가주.
한 번쯤 변명할 기회를 줘야 했다.
그것이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맹의 방식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진천우가 무슨 짓을 해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슥.
그런데 대뜸 진천우가 손을 내밀었다.
기습?
아까 말했듯, 그 혼자로는 백풍대를 당하지 못한다.
‘설마 따로 준비한 거짓 증거가 있는 건가?’
그건 좀 곤란했다.
맹은 명분을 따지기에, 상대가 증거를 내밀면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하자는 거지?”
백청강이 안도와 짜증을 동시에 냈다.
그런 그의 심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조사해보시죠.”
“뭐?”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혹시나,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설마 나보고 자네의 완맥을 쥐고, 살펴보라는 건가?”
아무리 진씨세가가 무가가 아닌 문사 가문이라 해도, 그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상식 중의 상식.
자칫 완맥을 쥔 자가 불손한 마음을 먹으면,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해도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렇기에 혈육이 아니고서야, 타인에게 순순히 완맥을 내놓는 건 금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진천우는 단호했다.
“당신은 내게 스스로 백풍대주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백풍대는 정확히 백 개의 대대로 이뤄져 있고, 이름 그대로 날랜 바람처럼 천하 곳곳에 퍼져, 사마외도의 준동을 막는 협객이라 들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백풍대는 같은 맹의 무력단체인 백룡(白龍)과 백검(白劍)에 비해 몇 수나 떨어지는 실력과 배로 많은 숫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맹 내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나 백청강은 백(百) 중 구십구(九十九) 대주.
백풍대 중에서도 거의 맨 아래에 속했다.
진천우는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 교묘하게 백풍대의 유례를 밝혀 그들의 자존심을 곧추세웠다.
게다가 협객(俠客)이란 말까지.
정파의 무인이면, 이 말에 가슴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그렇지않은 자는 정파(正派)가 아니었다.
[‘헛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아주 소폭 상승합니다.]
[‘뻘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아주 소폭 상승합니다.]
처음으로 장 의원 외의 인물에게 언변을 사용했다.
비록 숙련도 상승이 미미했지만, 상관없었다.
‘그 말인즉, 상대보다 내 언변 능력이 월등히 높아, 효과가 커진다는 뜻이니까.’
“으음……!”
완고한 백청강이 갑자기 고개를 흔들었다.
“소가주가 정 그리 말한다면…….”
그는 어느새 진천우를 진씨세가의 소가주로 높여 불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단단히 약속했다.
“설사 소가주가 장가 놈과 결탁했다 해도, 나는 절대 이걸로 소가주를 핍박하지 않겠네.”
첫술을 제대로 떴다.
이후, 그는 진천우의 완맥을 잡았다.
스윽!
붙잡힌 완맥에 뜨거운 기운이 흘러왔다.
“큭!”
상대가 나름 조절했음에도 고통이 밀려왔다.
“…….”
하지만 백청강은 굳은 얼굴로 다시 내공을 집어넣었다.
기왕 하는 것이라면 철저히 한다.
그래야 진천우의 결백이 명명백백해질 수 있었다.
슥!
“……?”
슥!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몇 번 더 내공을 불어넣었다.
“?!”
그 직후,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러나 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슥.
백청강의 내공이 진천우의 몸에 들어가자마자 막혔다.
처음에는 그가 저항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완맥이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에서의 저항은 죽음 이상의 고통을 준다.
‘절맥이라니!’
몸속 기맥이 완전히 막힌 상태.
게다가 얼마나 지독하게 막혔는지, 의원이 아닌 백청강도 그 심각성을 눈치챘다.
‘장가 놈 따위는 백 번 죽었다 깨도 이걸 어쩌지 못한다. 이 정도 증세는 어쩌면 학수선의조차도…….’
그 순간, 또 하나의 사실이 떠올랐다.
‘잠깐! 소가주는 이런 몸으로 내 기세를 견딘 건가?’
당시 그가 내뿜은 기운은 평범한 사람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걸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환자의 몸으로 견뎠다고? 얼마나 대단한 정신력이면!!’
물론 사실은 달랐다.
진천우는 타이쿤에게 받은 상태 이상 저항과 운신이 자유로운 몸이 있었다.
그러나 백청강은 이를 알지 못했다.
모두 진천우의 예상대로.
[외부에서 당신을 탐지하려는 시도를 발견했습니다.]
[스킬 ‘은폐’가 이 시도를 무효화합니다.]
은폐(隱蔽) 스킬.
추가 보상은 단순히 시체 따위나 처리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과연 타이쿤은 무엇 하나 허투루 주지 않는구나!’
진천우가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자신 있게 백풍대주에게 완맥을 건넸을 땐, 모두 계획이 있었다.
슥.
백풍대주가 완맥을 풀었다.
처음 완맥을 붙잡을 때와 달리, 극히 조심스러운 태도.
“아직도 증거가 부족합니까?”
“아…… 아닐세. 충분하네.”
그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진천우의 물음에 말까지 더듬었다.
백청강은 백풍대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인(武人).
상대의 초인(超人)적인 정신력에 절로 존경심이 샘솟았다.
물론 진천우는 초인은커녕 단순히 언변이 뛰어난 환자에 불과했지만,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저의 결백이 증명되었군요.”
“그렇네. 만일 소가주가 허락한다면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겠네.”
백풍대주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맹은 결코 시정잡배가 아니었다.
이미 명분을 잃었으니, 더는 진씨세가에서 행패를 부릴 수 없었다.
‘안 되지.’
그러나 이대로 그들이 물러나는 건 절대 진천우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바로 진씨세가의 문을 열겠습니다.”
“뭐?”
“장 의원이 사기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백풍대주께서는 제가 그자와 관계없다는 걸 증명해주셨지요. 저 또한 진가가 그자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진천우의 말 한마디에 백청강은 그의 혐의를 푼 은인이 되었다.
참으로 교묘한 말솜씨.
다행히 백풍대주는 그 말의 숨은 뜻도 모를 바보가 아니었다.
‘이자는…… 나와 백풍대, 거기다 맹의 허물을 덮어줄 뿐 아니라, 행여 이 일로 백풍대의 위신이 손상될 것까지 걱정해주는구나.’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힌 자에게 도리어 은혜를 베풀다니.
무림에서는 이 같은 자를 이리 부른다.
‘그는 참으로 대인(大人)이다!’
“소가주, 참으로 고맙소!”
백풍대주 백청강이 진심을 담아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한 손에 쥔 주먹을 다른 손으로 감싸는 포권례.
처음 진천우가 한 어설픈 포권례가 아닌, 절도 잡힌 진짜였다.
“별말씀을!”
진천우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상대를 따라 했다.
처음의 어색함이 사라진 건 물론이고, 한쪽 주먹을 쥔 정도, 그 주먹을 감싸는 손길, 마지막으로 양팔을 어느 각도까지 구부리는지도 염두에 둔 완벽한 포권례.
잠시 뒤 둘이 동시에 자세를 풀자, 눈앞에 현판이 나타났다.
[스킬 ‘예의범절’을 습득했습니다.]
[항목, 사교(社交)가 ‘해금’됩니다.]
[‘예의범절’과 ‘언변’이 사교(社交) 밑에 따로 묶입니다.]
[이후, 사교와 관련된 스킬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고, 보다 빠르게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 *
“천우야, 정말 네 몸은 괜찮은 거니?”
“예, 전 멀쩡합니다.”
어미는 가장 먼저 아들을 걱정하고, 다음으로 가문을 걱정했다.
“네 말대로 진가의 문을 열어준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분명 이대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어차피 오늘 물러가봤자, 한번 맹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그들은 다시 올 겁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철저히 준비해 오겠지.
진천우는 아무 생각 없이 진씨세가의 문을 열어준 게 아니었다.
대세를 거스르지 못한다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순응한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어미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들이 밝게 웃었다.
이럴 때일수록 웃어야 한다.
그가 당장 대세에 순응한 건 오로지 크게 웃기 위해서였다.
단, 혼자만 웃진 않을 거다.
“어머니, 지금은 저보다, 가문보다 가솔들을 먼저 생각해주십시오. 맹의 무인들이 몇 번이나 진가를 찾으면, 연약한 그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아!”
뒤늦게 어미가 아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그녀는 진씨세가의 가모다.
그런데도 자신은 가솔보다 가문을, 가문보다 혈육을 먼저 챙겼다.
‘부끄럽구나!’
가모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뭘 해야 할지 깨달았다.
“당장 겁먹은 가솔들부터 다독여야겠구나.”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널 처소로 돌려보내야겠다.”
“어머님?”
“착각하지 말거라. 내게는 너 또한 다독여야 할 진가의 일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처소에는 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정말 괜찮겠니?”
“물론입니다.”
“알았다.”
진가의 가모가 홀로 처소로 돌아가는 아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품에 안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나의 보물.
그랬던 아들이 오늘은 유독 달라 보였다.
‘어느새 저리 큰 걸까?’
이제는 양팔을 펼쳐도 끌어안지 못할 대인(大人)의 풍모에, 어미는 그저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쏟았다.
그 뒤 그녀는 빠르게 눈물을 거두고, 다시 진가의 가모로서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돌렸다.
* * *
“…….”
진천우는 처소로 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처소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씨세가의 가솔도, 맹의 백풍대도.
씨익!
그제야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보물을 찾으라고? 경쟁전이라고?’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왔다.
참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대세에 순응한 건 모두 이처럼 크게 웃기 위해서다.
군자상달(君子上達) 소인하달(小人下達).
대인(大人)은 덕을 추구하여 더욱더 훌륭하게 되고, 소인(小人)은 이익을 추구하므로 더욱더 타락한다.
자신은 대인이 아니다. 군자도 아니다.
그저 제 한 몸…… 좀 더 바라면 제 가족과 가문만 우선하는 소인일 뿐.
‘어디 백날 찾아봐라!’
“하하하!”
결국 진천우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비겁한 소인(小人)의 웃음.
‘하지만 소인은 절대 손해 보지 않지.’
그 직후, 천하의 맹조차 속인 소인이 진정한 보물찾기를 개시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미 보물이 어디 있을지 짐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