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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경쟁전? (12/210)


12화 : 경쟁전?
2021.07.28.


“…….”

진천우가 말없이 무너진 책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끝난 걸까?

‘아직 모른다.’

상대는 무인(武人).

어쩌면 이걸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치이익!

그때 갑자기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 고개를 숙이자, 책장 아래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독!”

그제야 그 위험한 게 떠올랐다.

“현석아!”

“…….”

서둘러 현석을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이럴 녀석이 아닌데?

급히 다가가니, 현석은 선 채로 정신을 잃었다.

그는 혼절하는 순간까지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쓰러지지 않았다.

‘녀석!’

진천우가 이를 알아채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곧장 일어나, 기절한 현석을 부축했다.

치익! 칙!

책장 아래에서 계속 연기가 올라왔다.

서둘러 여기서 나가야 했다.

다행히 입구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헉! 헉!”

아무리 자신이 환자여도, 매캐한 연기가 앞을 가려도, 등에 짊어진 현석이 축 늘어져도, 진천우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벌컥!

간신히 그가 서고 입구를 열자.

“소가주님!”

저 멀리서 귀에 익숙한 가문 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뿐 아니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이제…… 진짜…….”

이를 보며, 진천우는 드디어 마음속 깊이 안도할 수 있었다.

“……끝났구나.”

진천우는 그제야 눈을 감았다.

* * *

“헉!”

눈을 뜨자,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여긴 자신의 처소.

“소가주님?”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웬 시녀가 서 있었다.

“일어나셨군요! 당장 마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잠깐.”

급히 시녀의 손목을 잡았다.

어렴풋이 그녀가 누군지 떠올랐다.

‘어머니를 따르는 아이로군.’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현석은?”

“네?”

“현석은 어디 가고 네가 내 옆에 있는지 물었다.”

진천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설마?

혹시!

다행히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그 하인은 지금 약당에 누워있습니다. 어젯밤, 소가주님과 함께 서고 앞에 쓰러진 걸 발견한 무사분이 바로 외부에서 의원을 불렀습니다. 의원께서 말하길, 원체 몸이 튼튼해서 피를 만들어 주는 음식을 잔뜩 먹이면 곧 다시 일어날 거라고 합니다.”

“휴우!”

현석이 무사하다는 말에 긴장이 풀렸다.

“저기…….”

“아, 미안하다. 그래, 이제 어머님을 모셔오너라.”

“알겠습니다.”

시녀는 곧장 진씨세가의 가모를 부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게 된, 진천우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위험했어.’

말 그대로 너무 위험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리고 하나 더.

‘타이쿤은 만능이 아니다.’

분명 타이쿤의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마냥 이 능력만 믿는 건 위험했다.

아마 자신이 타이쿤을 몰랐다면, 어젯밤 서고에서 맘 편히 장 의원을 기다리지 않았을 거다.

‘아니지. 애초에 타이쿤이 없었다면, 장 의원의 꿍꿍이도 모른 채 속절없이 당했겠지.’

그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과 타이쿤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좀 더 주의하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반성을 마치려는데, 느닷없이 눈앞에 현판이 튀어나왔다.

[사용자는 가문을 좀 먹는 사기꾼을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보상으로 ‘운신이 자유로운 몸’의 기한이 사흘 더 연장되고 단전(丹田)이 개방됩니다.]

‘단전 개방?’

잘못 본 줄 알았다.

얼른 눈을 비비고, 다시 현판을 확인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진짜 내가 아는 그 단전?’

단전은 생명을 저장하는 곳으로, 보통 무림인이 심법을 통해 내공을 쌓는 장소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단전 개방은 무공을 익히는 기초 중의 기초.

그러나 기초라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단전이 있냐 없냐는 무림인인지, 범인인지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었다.

명문(名門) 출신이거나, 운 좋게 뛰어난 심법을 얻거나, 정말 재능있는 이가 아닌 경우, 무림인이 될 수 있는 이는 정말 손에 꼽을 한 줌에 불과했다.

‘대단한 걸 보상으로 받았구나.’

진천우가 자기 몸을 확인하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단전이 개방됐다는 건, 즉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소리.

하지만 그가 기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무인들이 강건한 신체를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가 단전에 있다고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심법을 연공해 단전에 내공을 쌓는 행위 자체가 몸의 순환을 촉진하고, 대사 기능을 높였다.

우습게도 진천우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당장은 무공보다 제 천형을 극복하는 게 먼저였다.

“응?”

보상을 받았으니 현판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현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밝은 빛을 냈다.

[병자의 몸으로 무인을 처리하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했기에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기꾼을 처리했다고 했지?’

확실히 조금 전 시녀는 외부에서 의원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본래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연히 장 의원부터 불러야 했다.

그런데도 다른 의원을 데려왔다는 건, 현재 진가에 장 의원이 없다는 뜻.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진천우가 추가 보상을 확인했다.

그 뒤, 이해했다.

[추가 보상 : 은폐(隱蔽) 스킬.]

은폐란, 덮고 가리고 숨긴다는 뜻.

자신은 장 의원을 처리했다.

그런데 가문 식솔들은 이를 모른다.

“후우!”

갑자기 긴 한숨이 나왔다.

본래 진천우는 장 의원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를 처리한 건 결코 제 뜻이 아니었다.

그로 인한 죄책감?

아니,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쉬움에 가까웠다.

‘적어도 놈이 우리 가문에서 무슨 짓을 하려 한 건지는 밝힌 다음에 처리해야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법.

진천우는 후회보다 당장 해야 할 일을 우선했다.

그가 은폐 스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읽으려던 찰나.

탁탁탁!

밖에서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소가주님!”

조금 전, 나간 시녀가 돌아왔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맹의 무인들이 찾아왔습니다!”

“뭐? 맹의 무인들이 우리 가문에 왜?”

“그게, 느닷없이 장 의원님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일단 가모님이 진검대주님과 함께 나갔는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휙!

바로 침상에서 일어났다.

맹과 진가의 무인들이 부딪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게다가 그 이유가 장 의원 때문이라니. 그것보다 최악은 없다.’

진천우가 서둘러 밖으로 내달렸다.

* * *

“진씨세가는 당장 학수선의를 사칭한 장가 놈을 내놓아라!”

무서운 인상의 무인이 진가의 정문 앞에서 소리쳤다.

이를 들은 문지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장 호랑이 같은 무인의 기세에 눌린 탓도 있지만, 지난 반년간 소가주를 치료해 준 장 의원을 한낱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또한 장 의원의 배신을 모르는 이 중 하나였다.

“진가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문지기가 위세 좋게 답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현재 진씨세가는 갑자기 사라진 장 의원을 찾고 있었다.

어젯밤, 가문 서고에서 소가주와 그의 하인이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제일 먼저 장 의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처소는 물론이고 진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자신들도 이 상황이 여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을 다짜고짜 내놓으라니.

“진씨세가는 감히 맹의 명을 거역할 셈이냐!”

맹의 무인이 아까보다 더 크고 사납게 소리쳤다.

이번에는 내력을 담아 질렀기에, 무공을 모르는 문지기는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흥!”

이를 본 맹의 무인이 코웃음 치며 발을 내밀었다.

“잠깐!”

그때 문 뒤에서 일단의 무리가 나왔다.

진가의 유일한 무사대인 진검대였다.

그리고 그들 선두에 한 중년 여인이 서 있었다.

진씨세가의 가모이자 진천우의 어미.

그녀는 십여 명의 무인을 앞두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맹에서 어인 일로 진씨세가를 찾으셨습니까?”

“조금 전 우리가 소리친 걸 들었을 텐데? 진가는 당장 보호하고 있는 사기꾼을 내놓아라!”

“우리가 사기꾼을 보호하고 있다니, 아무리 천하에 명망 높은 맹이지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가모는 절대 감정을 보이지 않고, 조곤조곤 대꾸했다.

그녀는 명망 높은 맹이 어째서 이유 없이 약소 문파를 압박하냐고 에둘러 꼬집었다.

맹(盟)은 이름난 정파 명문이 모여 만들어진 연합으로,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맹이라도 이유 없이 약소가문을 핍박할 순 없었다.

천하에는 맹 외에도 사파의 련(聯)과 마도의 교(敎)가 있었다.

이들 셋은 끊임없이 견제하고 반목하는 관계.

그렇게 서로 눈치를 보는 탓에, 그들은 아무리 하찮은 일도 확실한 명분(名分) 없이는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 가문이 사기꾼을 보호하고 있다고 단정하는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진가의 가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세 거대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느라 진씨세가 같은 약소가문이 그나마 목소리를 낸다지만, 맹은 맹.

철저한 약자인 그들에게 맹은, 언제든 제 팔을 물어뜯고 몸을 갈기갈기 찢을 위험한 맹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끄럽다! 감히 맹의 행사에 아녀자 따위가 끼려 하다니! 이미 맹은 수년 전부터 장가 놈을 쫓았고, 최근 놈의 흔적이 진씨세가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당장 앞을 가로막은 문을 열지 못할까!”

성난 짐승이 무섭게 포효했다.

“아아……!”

특히나 그것은 무공을 모르는 여인에게 가혹하리만큼 지독한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턱.

이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자칫 뒤로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진검대주…….”

가모는 당연히 제 뒤에서 받쳐준 이가 자신과 함께 온 무사대의 수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인물.

“천우야?”

아들이, 당장 침상에 누워있어도 모자랄 아들이 어미를 지탱했다.

그것도 무척 매서운 눈으로.

“아아……. 안 된다.”

어미는 아들의 눈이 자신이 아니라 눈앞의 짐승에게 향함을 눈치채고 급히 손을 들었다.

그러나 한번 짐승의 기세에 정통으로 노출된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느낀 아들이 더욱 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바로 화를 터트리지는 않았다.

“본인은 진씨세가의 소가주인 진천우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당당히 양팔을 들어 한 손은 주먹을, 다른 한 손은 주먹을 감싸는 형태로 자세를 취했다.

무림인들의 인사법이라는 포권례(抱拳礼).

“풋!”

“훗!”

하지만 그의 인사는 낮은 비웃음으로 돌아왔다.

틀린 자세였기 때문.

진천우는 문사 가문 출신에 지금껏 사람과의 왕래도 변변치 않아, 포권례의 쥐는 주먹이 오른손인지 왼손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하면…….”

어찌 됐든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어미를 대신하는 진씨세가의 대표임을 밝혔다.

“누가 그쪽 대표입니까?”

나와라!

아까부터 크게 울부짖기만 하는 짐승은 뒤로 치우고, 진짜 사람만 내 앞에 나와라!

맹의 무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걸고, 다른 어디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그들이기에 이런 눈치는 당할 자가 없었다.

“…….”

“…….”

단번에 시위가 조용해졌다.

“누가 대표입니까?”

재차 물었음에도, 그들의 대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되레 진천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쿵!

그 순간,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압박이 그를 감쌌다.

이것이야말로 무인의 기세.

거칠고 사나운 기운이 주위를 에워 쌓았다.

마치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오면 온몸을 갈가리 찢겠다고 경고하는 듯.

‘빌어먹을!’

하지만 그들의 경고는 오히려 진천우를 자극했다.

‘그러니까 이딴 걸 내 어머님께 사용했단 거냐!’

성큼!

한 걸음.

성큼!

두 걸음.

그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분명 맹의 무인은 장 의원보다 한 단계 위의 무인.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장 의원의 진짜 살기에 비하면, 이 기세는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기운을 뚫고 더 나아가는 건 앞으로 한 걸음이 한계다.

성큼!

세 걸음.

그러나 그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진천우가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여기 책임자입니까?”

“……어떻게?”

상대가 입을 열었고, 그대로 주위를 둘러싼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상대의 ‘위압’을 견뎌냈습니다.]

[스킬 ‘상태 이상 저항(최하급)’을 습득했습니다.]

뜻밖의 보상을 받았지만, 굳이 티 내지 않았다.

더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었다.

“이 정도는 한눈에 알아봅니다.”

그는 짐승 바로 뒤에 선 장신의 중년인을 올려보았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길고 짧은 막대를 보았다.

정확히 ‘!’ 모양의 붉은 막대.

“재밌군. 그래, 내가 여기 백풍대 제구십구(九十九)대 대주, 백청강이네.”

솔직히 그의 계급과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천우에게 중요한 건, 백청강이 자신을 소개하자 그의 머리맡에 보이던 ‘!’가 사라지고 푸른 현판에 새 글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맹(盟)의 백풍대가 진씨세가를 찾았습니다.]

[백풍대는 사기꾼이 미처 진씨세가에서 챙겨가지 못한 보물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들보다 먼저 사기꾼의 보물을 획득하세요.]

[특수 이벤트 ‘경쟁전’이 발생합니다.]

[경쟁전에서 승리하면, 더욱 큰 보상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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