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현석아!!
(10/210)
10화 : 현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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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현석아!!
2021.07.24.
쾅!
현석은 일격에 장 의원을 날려버렸다.
누구보다 충직한 하인은 제 주인의 멱살을 잡은 도적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
‘죽었나?’
“으으으……!”
무너진 책장 너머로 낮은 신음이 들렸다.
‘살아있군.’
아래를 내려다보는 진천우의 두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현석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순박한 눈을 한 청년이, 조금 전 악귀나찰의 얼굴로 장 의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니.
사실 현석은 살면서 남과 싸워본 적이 손에 꼽았다.
원체 피를 보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남과 싸우기보다 남을 지탱하고 끌어주는 게 훨씬 적성에 맞았다.
그러니 지난 십 년간 가족조차 하기 힘든 환자 수발을 군소리 하나 없이 수행한 건지도 몰랐다.
이런 현석의 성격을 알기에, 진천우는 그에게 따로 부르기 전까지 책장 뒤에 숨어 장 의원과의 대화를 엿들으라고 시켰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녀석도 마음 편히 장 의원과 싸울 수 있을 테니까.’
가급적이면 마음 여린 하인에게 싸움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진씨세가는 변방의 약소가문.
심지어 무가조차 아닌 문사 가문이었다.
이 때문에 가문을 지키는 무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철두철미한 장 의원이 그 정도도 감시하지 않을 리 없었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면, 그중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정.
그렇기에 더욱더 확실히 해야 했다.
‘나 역시 장 의원만큼 철두철미해지지 않으면 당할 테니까. 그의 성격상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보옥을 포기하고 달아날 게 분명하다.’
그래서 현석을 불렀다.
진천우가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이를 향해 말했다.
“내가 가져오라 한 건?”
“네, 시키신 대로 창고에서 가장 질긴 동아줄을 가져왔습니다.”
“묶어라.”
“넷!”
현석이 제 허리에 묶어 둔 동아줄을 풀며 책 무더기 쪽으로 다가갔다.
“절대로 달아나지 못하게 단단히 묶어라.”
그를 포박해 사람들 앞으로 데려가면 난리가 날 터.
그중, 사정도 모르고 줄부터 풀려는 자가 있을지 몰랐다.
배신자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장 의원은 진씨세가에서 평판이 너무 좋았다.
‘그게 전부 나 때문이지만.’
자기 병을 고치느라 좋아진 평판이, 이제 와 자신의 발목을 잡다니.
이 우스운 상황에 진천우가 얕게 조소를 지었다.
게다가 그는 맨 먼저 장 의원에게 달려올 사람이 누굴지 이미 확신했다.
‘아마도 어머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몸을 날릴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만큼 장 의원은 두 모자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지난 십여 년간 진천우는 수많은 의원을 거쳤지만, 그에게 유의미한 성과를 낸 건 장 의원이 유일했다.
놈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고, 감히 진가의 소가주의 멱살을 잡고 겁박한 것?
‘어머니라면,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고 넘어가실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금 그녀가 아들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이는 장 의원뿐이었다.
비록 그게 썩은 동아줄인 걸 알아도, 당장 눈앞에 그것밖에 없으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원래라면 진천우도 그리 생각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타이쿤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장 의원은 애초부터 의원이 아닌 사기꾼이란 걸.
‘놈은 썩은 동아줄조차 아니다.’
그야말로 실체 없는 줄.
그 환상에 현혹돼 멋모르고 손을 뻗으면, 그대로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뿐이다.
다행히 이제 진천우는 다른 어떤 줄보다 억세고 질긴 금 동아줄 같은 타이쿤을 얻었다.
있지도 않은 줄 따위 당장 내던지고, 지금껏 가짜 줄에 속아 틀어진 가문을 바로 잡아야 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지.’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제 눈에만 보이는 푸른 현판이 있다는 건 말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면 어머님이 또 무슨 충격을 받을지 눈에 선했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쓰러지실지도 몰랐다.
‘절대 타이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면서 어머님과 다른 가솔들에게는 장 의원의 악행을 알리고, 또 내게 더는 의원이 필요 없다고 설득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정말 복잡하고 힘든 문제였다.
절로 머리가 지근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하인이 제 편이라는 사실이었다.
현석의 증언이 있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가문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휙!
커다란 무언가가 그 옆을 스치고 날아갔다.
쾅!
그 직후, 바로 뒤에 있던 책장이 무너졌다.
쾅쾅!
하나도 아니고, 둘, 셋.
이게 무슨 일인가?
‘왜 갑자기 화포라도 터진 것처럼, 가문 서고가 박살 나는……!’
진천우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곧바로 목이 터져라,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현석아!!”
조금 전에 날아갔던 건 바로 현석이었다.
왜 책더미에 파묻힌 장 의원을 포박하라고 보낸 하인이 되레 날아간 거지?
“소, 소가주님……!”
“무사하느냐!”
다행히 현석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누가 봐도 심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진천우가 기겁하며 현석에게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 했다.
털썩!
“?!”
그 자리에서 갑자기 넘어졌다.
발을 헛디뎠나?
바로 일어나려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무릎 아래부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쯧! 네가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구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장 의원이 제 옆에 서 있었다.
분명 현석의 혼신의 일격을 맞고 정신을 잃은 줄 알았는데?
“혹시 몰라 기절한 척했지.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살펴도 여기에는 너희 둘만 있더구나. 그 점이 의아해서 고민을 좀 했지만, 이 정도 소란이 벌어져도 아무도 안 나오는 걸 보면 내 짐작이 맞았구나.”
놈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진천우가 즉시 사람을 부르기 위해 입을 벌렸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목에 단단한 돌을 박은 듯, 소리가 막혔다.
“사람을 부르게 내버려 둘 줄 알았느냐?”
퍽!
그 직후, 시야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에 얼굴을 부딪친 뒤였다.
진천우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장 의원이 한발 먼저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몸이!’
이제 무릎 아래가 아니라, 상체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처럼, 이번에는 등과 어깨에 단단한 돌이 박혔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장 의원이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왜? 이런 늙은이는 건장한 하인 하나로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그랬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다.
분했다.
‘방심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놈보다 더 철두철미해지겠다고 했으면서!’
방심했고, 철두철미하지 못했다.
‘설마 장 의원이 무공을 익혔을 줄이야.’
무공은 무림인들이 다루는 신비한 힘.
그 정도에 따라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장풍을 날리고, 더 나아가 하늘을 날기도 했다.
당연히 백발 장성한 노인이 근육질의 청년을 때려눕히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기꾼에게 점혈 당했습니다.]
[스킬 ‘점혈(點穴)’을 습득했습니다.]
점혈은 특정 혈도를 자극해 신체를 조정하는 기술.
타이쿤이 뜻밖에 대단한 스킬을 익혔음을 알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점혈 스킬은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낱 사기꾼이라고 우습게 봤구나.’
방심의 대가가 너무 컸다.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이를 본 장 의원이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
그 순간 지독한 격통이 밀려왔다.
너무 아픈데,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통 때문에 저도 모르게 움츠리려는데, 그조차 몸이 굳어 불가능했다.
대신 또 억지로 몸을 움직인 대가가 뒤따랐다.
“……!!”
질척한 침을 한 됫박이나 흘리고서야 몸이 진정되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
장 의원이 드디어 얌전해진 진천우를 보며 낮게 충고했다.
“그래, 그렇게 가만히 있어라. 너도 저 꼴 나긴 싫겠지?”
‘저 꼴?’
다시 눈동자를 굴려, 장 의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저긴 현석이 쓰러진 쪽인데…….
‘설마!’
“……!”
이번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불길한 피 냄새를 맡았다.
이건……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진천우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지독한 격통?
알 바냐!
현석이 죽어 가는데,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진천우가 바닥을 기었다.
말 그대로 벌레처럼 기었다.
부르르!
점혈 당한 채 억지로 움직이느라 고통이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기고 기고 또 기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면, 무조건 해야 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대견하다는 목소리가 울렸다.
“하인을 위하는 그 마음이 갸륵하구나.”
퍽!
또 한 번 시야가 뒤집혔다.
정신을 차리자 턱이 욱신거렸다.
장 의원이 걷어찬 게 분명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덕에 현석의 옆까지 날아올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눈알을 돌려 하인의 상태를 살폈다.
살아있다.
그러나 피에 젖은 옆구리.
시간이 지날수록 피 냄새가 짙어졌다.
책장을 부수며 날아갈 때,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그 녀석처럼 되기 싫으면 얌전히 있거라. 넌 운이 좋아. 만약 어제 발각됐다면 일말의 고민 없이 널 처리했겠지만, 난 오늘 진씨세가를 떠날 예정이거든. 보옥만 찾으면 그대로 사라져주마.”
‘개소리!’
그는 단숨에 장 의원의 개소리를 간파했다.
[사기꾼의 개소리를 간파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아주 소폭 상승합니다.]
‘확실히 오늘 떠나는 그가 날 죽일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살려줄 이유 또한 없을 터.’
장 의원은 지독히도 철저한 자.
당장 그가 진천우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후두둑!
서고 구석, 선반의 맨 윗줄의 목함이 전부 바닥에 쏟아졌다.
목함 내용물이 사방에 튀었다.
후두두둑!
장 의원은 곧바로 다음 줄, 목함을 바닥에 팽개쳤다.
그중 보옥을 넣은 붉은 주머니는 없었다.
‘저기 있는 목함을 전부 뒤지고도 보옥을 찾지 못할 때를 대비해, 잠시 날 살려둔 거군.’
후두둑!
이제 세 번째 줄 목함이 무더기로 박살 났다.
‘선반의 목함이 전부 부서지기 전까지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진천우는 어째서 목함이 전부 부서져도 장 의원이 보옥을 찾지 못하리라 생각한 걸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적천석은 처음부터 그의 소매 안에 있었다.
처음부터 장 의원에게 홍옥을 내줄 생각이 없었기에, 서고에 들어오자마자, 그것부터 챙겼다.
거기에 장 의원은 오늘 밤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절대 적천석을 찾지 못할 것이다.
진천우가 빠르게 눈을 굴려, 시야 구석의 푸른 현판을 확인했다.
[적천석(赤天石)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적천석은 타이쿤 전용 아이템으로 아주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