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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의선의 과거 (7/210)


7화 : 의선의 과거
2021.07.17.


‘중간광고?’

그 뜻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광고란 뭔가를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

진천우가 이해하지 못한 건, 왜 뜬금없이 제 눈앞에 광고가 나타났느냐였다.

‘내가 꼭 봐야 한다는 건가?’

아쉽게도 현판은 그의 의문을 답해주지 않았다.

[‘중간광고’를 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대신 눈앞에서 처음 등장할 때보다 훨씬 밝게 반짝였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진천우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맨 처음 타이쿤이 등장했을 때.

그때도 푸른 현판은 어떤 예고도 없이 무작정 선택을 강요했다.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는 이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처음의 선택도!

픽!

진천우가 손끝으로 ‘예’를 건드리자, 눈앞에서 빛이 사라졌다.

* * *

눈을 떴다.

어느새 누워있었다.

‘내가 또 기절한 건가?’

그러나 진천우는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그는 굳이 발작이 아니어도, 천형에 짓눌려 몇 번이나 혼절하곤 했다.

그때마다 눈을 뜨면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이번에도 그와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천장이 낯설지?’

처음 보는 천장.

여기는 진씨세가가 아니다!

-무경아!

‘무슨!?’

느닷없이 머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처음 보는 중년 여인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녀가 자신을 껴안았다.

아니, 조금 달랐다.

여인이 끌어안은 대상은 진천우가 아니었다.

-무경아! 무경아!

‘음?’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부르는 이름.

‘어디서 들어봤는데, 어디서 들었지?’

-어머니!

그 순간, 입이 절로 움직였다.

아니, 내 입이 움직였지만 내가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진천우가 아닌, 진무경이 자신의 어미를 불렀다.

그러니까 지금 진천우는 진무경이었다.

더 정확히는 진무경의 몸에 진천우가 들어왔다.

자신은 그저 진무경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무경아! 다행히 정신 차렸구나. 네가 만일 그대로 눈 뜨지 않았다면, 이 어미는…… 이 어미는…….

-어머니, 전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다행이다. 무경이, 네가 다시 눈을 떠서 정말 다행이야.

두 모자가 서로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 광경을 본 진천우는, 분명 자기 일이 아님에도 깊은 기시감을 느꼈다.

‘아!’

드디어 진무경이란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깨달았다.

‘분명 의선의 본명이 진무경이었다!’

과거 지독한 역병이 천하에 창궐했다.

역병이 얼마나 독했던지, 독의 명가로 불리는 사천당가조차 포기할 정도였다.

바로 그때 의선이 등장했다.

그는 놀랍게도 혼자서 역병을 진압했다.

그 뒤로도 의선은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수많은 불치병을 정복했다.

의선(醫仙) 진무경.

그가 세운 놀라운 업적에 사람들은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의선이 역병을 진압하기 이전, 그의 과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몸의 주인이 정말 의선일까?’

곧바로 타이쿤이 의문을 풀어주었다.

[첫 번째, 중간광고로 의선 진무경의 과거가 재생됩니다.]

‘맞구나!’

왜 그의 과거가 보이는 걸까?

역시 의선비록을 획득했기 때문에?

진천우가 의문을 품는 중에도 모자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쿨럭!

-괜찮느냐? ……이건 피? 의원! 의원을 불러오마!!

중년 부인이 화급히 의원을 데려왔다.

장 의원과 비슷한 외모지만 실력은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의원이 진무경을 살폈다.

-쯧!

늙은 의원이 혀를 찼다.

그는 곧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절맥(絶脈)이군.

‘……!’

또다시 기시감이 밀려왔다.

설마 의선도 자신처럼 절맥을 지녔을 줄이야!

-우리 무경이가 절맥이라고요? 의원님, 그건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다른 방도가 없소. 절맥은…….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진천우가 갑자기 목 놓아 소리쳤다.

제 몸이 아니기에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처절했다.

이미 한 번 찢긴 상처를 다시 헤집는 고통.

-그런! 그런!

잠시 뒤, 의선의 어미도 울부짖었다.

그녀의 울음에 의원은 황급히 자리를 떴고, 어린 의선은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시간이 흘렀다.

-…….

-…….

의선과 그의 어미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진천우도 이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누구보다 이들을 이해했다.

자신이 그랬으니까.

-살려주세요!

당시 의원에게 병이 낫지 않을 거란 소리를 들은 어린 진천우는 어미에게 목 놓아 애원했다.

그래서는 아니 됐는데…….

그 뒤에도 그는 몇 날이고 몇 달이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몸은 점점 나빠졌고, 끝에는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아마 그때 부모님과 현석, 그리고 진씨세가의 다른 가솔들이 전력으로 품어주지 않았다면, 지독한 절망에 빠져 차마 해서는 안 될 선택을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음…….’

그랬던 과거가 있기에, 진천우는 어린 의선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보다 훨씬 상황이 나빴다.

‘아무리 봐도 평범하군.’

의선의 집은 정말 평범하고 허름했다.

주위에 하인과 시녀도 보이지 않았다.

낫지 않는 병은 깨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았다.

진씨세가는 대단한 명문은 아니지만, 나름 부족하지 않은 가문.

그런데도 진천우의 병환 때문에 결국 가세가 휘청였다.

‘과연 의선의 부모님은 아들의 병을 제대로 간병할 수…….’

-후우!

진천우가 의선의 어두운 미래에 안타까워하던 중, 당사자가 깊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경아?

-어머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다니? 그 몸으로 어딜 간단 말이냐?

어미가 기겁하며 아들을 말렸다.

그러나 의선은 제 어미와 똑바로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꼭 가야 합니다.

-그런…….

-죄송합니다.

아이는 어미의 팔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고 밖을 나섰다.

순간 아들의 굳은 의지를 엿본 어미는 그를 말릴 수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대체 어디로?’

오직 진천우만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의선을 기이하게 여기며 그 뒤를 따랐다.

의선은 달렸다.

병약한 몸임에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잠시!

그러길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누군가의 앞을 막았다.

-넌?

진천우도 아는 얼굴이었다.

-어째서 네가?

-부탁드립니다.

의선이 조금 전 제 몸을 진맥한 의원 앞에 무릎 꿇었다.

이를 본 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의원이 환자의 마음을 모를까.

그러나 이를 안다 해도, 절맥을 치료하는 건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미안하지만 네가 아무리 빌어도…….

야멸차지만, 어설픈 희망을 품게 할 바에는 냉정히 현실을 알려줘야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의원의 의무였다.

그런데 눈앞의 아이는 의원도 전혀 생각 못 한 부탁을 청했다.

-절 거둬주십시오.

-……무슨?

의원은 한참, 정말 한참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어린 시절의 의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도 제 절맥을 낫게 할 수 없다면, 제가 직접 이 병을 고치겠습니다.

뭐라 말해야 할까?

아니, 자신은 말할 수 없었다.

늙은 의원은 살짝만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은 병약한 아이에게서 마치 단단한 바위 같은 굳은 의지를 느꼈다.

이 같은 의지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알겠다.

결국 의원은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

그 모습을 진천우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는 의선의 몸에서 떨어졌다.

우웅!

귀에서 이명(耳鳴)이 울렸다.

진천우는 이것이 신호란 걸 깨달았다.

이제 곧, 그는 의선의 기억에서 깨어날 것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의 등을 보며, 진천우의 가슴에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것이 나와 의선의 차이점인가?’

분명 우리 둘은 똑같은 절맥인데…….

마지막 순간까지 무기력했던 자신과 달리, 의선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진천우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서운 눈으로 앞을 올려다보았다.

‘난 반드시 끝까지 봐야 한다.’

지금까지 타이쿤의 지시는 모두 그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 하나 의미 없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의선의 기억 또한 내게 꼭 필요하던 거겠지.’

그러니 두 눈 똑똑히 뜨고, 의선의 기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봐야 했다.

우우웅!

이때 다시 이명이 울렸다.

‘안 돼!’

그러나 진천우는 이에 반항했다.

조금이라도 더 의선의 기억을 엿봐야 했다.

이때부터 기억의 흐름이 빨라졌다.

-이것이 혈도구나.

-이것이 침술?

의선은 의원에게 배움을 청한 뒤부터 빠르게 의술을 익혀갔다.

-잠깐. 기해혈 다음 거궐, 그리고 구미혈에 침을 놓으니, 환자의 몸에 빠른 변화가?

-침과 뜸 외에 병을 낫게 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예를 들어 매일 먹는 끼니를 약처럼 바꾼다면…….

놀랍게도 그는 그 당시부터 요상절초 십팔수와 식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이때는 극히 희미한 가능성에 불과했지만, 훗날 그게 완벽히 이뤄진다는 걸 진천우는 알았다.

우우우웅!!

점차 이명이 심해졌다.

게다가 이제는 몸이 붕 뜬 것 같은 부유감마저 들었다.

시야가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 와중에도 눈앞의 의선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마침내 어엿한 의원이 된 그는.

-드디어 절맥을 치료할 방법을 찾았다!

‘뭐?!’

그 한마디에, 진천우가 벼락을 맞은 듯 눈을 치켜떴다.

저 말이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우우우우웅!!

하지만 더욱 심해진 이명에 잠깐 치켜뜬 눈도 다시 감기기 시작했다.

‘안 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단 몇 마디만.

몇 마디만 들으면 되는데…….

눈앞의 의선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걸 들어야 했다.

들어야 하는데!

-절맥을 치료할 방법은…….

우우우우우웅!!!! 쾅!!!!

타이쿤은 끝내 가장 중요한 순간, 광고를 끊었다.

[의선의 첫 번째 과거를 시청하였습니다.]

[다음 과거를 시청하려면, 두 번째 의선비록이 필요합니다.]

* * *

“…….”

눈을 뜨자, 바로 위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여긴 진씨세가다.

그리고 내 처소.

다시 고개를 내리니, 음식상이 사라졌다.

아마 현석이 치운 게 분명했다.

창밖을 보니,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

진천우는 그대로 얼마간 말이 없었다.

중간광고가 도중에 끊겼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후!”

한참 뒤, 그는 긴 한숨을 토했다.

아쉬움? 분노?

아니,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의선이 절맥이었다고?’

처음 듣는 소리.

분명 그의 과거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천하에 모습을 드러낸 뒤부터, 의선은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도 의선이 절맥을 가졌다는 말은 퍼지지 않았다는 건?’

가능성은 하나뿐!

의선은 절맥을 극복한 뒤, 세상에 나왔다.

기억 속 젊은 의선의 말처럼 천형의 치유법이 있다는 뜻.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 진천우의 가슴은 크게 벅차올랐다.

‘그러고 보니, 중간광고를 보면 새로운 형태의 보상을 준다고 했지?’

그랬다.

타이쿤의 보상은 바로 희망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중간광고를 본 추가 보상이 ‘지금’ 주어집니다.]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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