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의술의 신 (1)2021.07.05.
‘튜토리얼? 퀘스트?’ 타이쿤과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단어. 하지만 그때처럼 현판을 읽자, 바로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다. ‘이 무슨?’ 그러나 이해와 믿음은 별개의 일. ‘장 의원이 사기꾼이라니!’ 진천우의 가슴에는 지난 반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을 보살핀 장 의원에 대한 믿음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에 반해, 천하제일 타이쿤은 아무리 신묘한 현상으로 자신을 놀라게 했지만, 시간상 눈앞에 나타난 건 채 일다경도 되지 않았다. “갑자기 안색이 나빠졌는데, 왜 그러느냐?” “아니, 아닙니다.” “그래?” 장 의원이 진천우를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깡마른 손으로 그의 이마를 짚었다. 언제나처럼 서늘한 손길이 머리를 차갑게 식혀주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혹시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려무나.” ‘아!’ 진천우의 눈이 살짝 떨렸다. 장 의원은 언제나 이랬다. 그는 다른 의원과 달리, 병의 치료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의원의 일은 단순히 병만 고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의원이라면 병은 물론이고,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해야 한다. 그 말처럼, 장 의원은 언제나 진천우와 깊은 교감을 나누려 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평소에 얼마나 부모님을 생각하는지, 또 이전 다른 의원들이 그에게 어떤 치료를 했는지까지 전부. 그때마다 진천우는 일체 거짓 없이 자신의 모든 걸 알려주었다. 그중 꽤 개인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신비하게도 털어놓을 때 거부감은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장 의원은 항상 진지하게 들어줬기 때문이었다. “천우야, 너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 병이다. 하지만 꼭 나을 수 있단다. 아니, 내가 반드시 낫게 할 거다. 그러니 약해지지 말고 날 믿어다오. 내가 꼭 너의 병을 낫게 할 테니!” 서늘함이 이마에서 양손으로 옮겨졌다. 분명 차가워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진천우는 장 의원의 손길이 닿자 절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덕분에 조금 전까지 굳었던 입이 다시 부드럽게 풀어졌다. “넷!” 그는 바로 천하제일 타이쿤에 관해 밝히려 했다. 아무래도 장 의원도 어미와 마찬가지로 눈앞의 현판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어미와 달리 무조건 걱정만 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이 정체 모를 광증을 어떻게 치료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줄 게 분명했다. “실은 말입니다.” 뚝! 진천우가 막 입을 열려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푸른 현판은 내가 미쳤다는 증거. 그저 덧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당연히 그 내용도 전혀 믿을 게 못 되었다. 그런데. [사기꾼의 개소리를 들었습니다.] [스킬 ‘언변(言辯)’을 습득했습니다.] ‘설마…….’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가 없다던가? 계속되는 타이쿤의 경고에 진천우도 눈을 찌푸렸다. 그는 곧, 장 의원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때 고개를 든 건 육체만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 검고 추악한 뭔가가 함께 모가지를 쳐들었다. ‘의원이 병을 고쳐야 의원이지, 무슨 얼어 죽을 마음의 병!’ “헉!” 이 무슨 불경한 생각인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이 다른 이도 아닌 장 의원에게 그 같은 생각을 하는 건 금수만도 못한 일이다. “왜 그러느냐?” 진천우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장 의원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통의 경우, 이처럼 연달아 소리 지르고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면 누구든 경계하기 마련. 그러나 진천우는 환자였다. “괜찮으냐?” 그리고 장 의원은 의원이었다. 슥! 그는 경계는커녕, 도리어 환자의 어깨에 손에 올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불안해하는구나. 정말 아무 일도 없느냐? 내게 따로 하고 싶은 말도 없고?” 장 의원이 재차 물었다. 절대 다그치는 투가 되지 않게, 은근하며 부드러운 투로. 이때 그는 누구보다 선한 미소를 지었다. 선풍도골의 노인이 그같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보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심지어 진천우는 환자. 부담을 넘어 죄스러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아는 걸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후!” 진천우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장 의원이 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소매에서 손바닥 크기의 작은 향로를 꺼내더니, 안에 흰 가루를 넣고 불을 피웠다. 잠시 뒤, 향로에서 흰 연기가 흘러나왔다. “흐음!” 진천우가 무척 익숙하게, 연기를 코와 입으로 마셨다. -향이 참 은은하네요. -이른 새벽, 깊은 계곡에서만 나는 약초로 만든 운령산(雲靈散)이란 향이란다. 심신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니, 되도록 자주 그리고 깊게 마시거라. 장 의원은 진료 전에는 항상 이 향을 피웠다. 그러다 한 달 전부터 갑자기 운령산을 꺼내지 않았다. 한 번은 진료와 상관없이 다시 향을 피워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제 더는 향을 피울 필요가 없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아쉬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만큼 운령산의 효과는 대단했다. “스읍!” 지금처럼 한 모금 마시면. “후우우……!” 곧바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솔직히 다소 과하게 힘이 빠진 느낌이 들지만. ‘확실히 통증이 멈추고, 몸이 가벼워졌어.’ 이 향을 맡아야만, 제 몸을 짓누르던 무게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최하급 독 ‘미혼산(迷魂散)’을 들이켰습니다.] [스스로 독을 견디면, 스킬 ‘독 저항(최하급)’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 또다시 푸른 현판이 나와 진천우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래, 이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느냐?”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장 의원이 그를 불렀다. “네……. 전…….” 미혼산은 정신을 혼란케 하는 마약의 일종. “전…….” 시간이 지날수록 눈빛이 탁해졌다. 장 의원이 이를 보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진천우가 자신에게 갑자기 이상해진 이유를 말할 거라 확신했다. 이미 충분히 약효를 발휘해, 더는 쓸 필요 없는 미혼산까지 다시 썼으니, 아무렴! “전…… 전…… 의원님, 정말 제 병은 나을 수 있을까요?” “음?” 하지만 돌아온 건 엉뚱한 질문. 진천우는 여전히 탁한 눈이지만, 그 속 깊은 곳에는 미혼산에 저항하는 처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재밌는 질문이구나.” 그러나 장 의원도 녹록지 않았다. 그는 속내를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인자한 얼굴로 물음에 답했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모두 배제하고, 짧은 한마디로. “낫는다.” 그다음, 더욱 강한 어조로. “너는 내가 반드시 낫게 한다.” 그대로 장 의원은 진천우를 끌어안았다. 부르르! 제 품에 안긴 환자가 가볍게 몸을 떠는 걸 확인하고, 그는 다시 선한 미소로 진천우와 눈을 맞췄다. 이제 마지막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장 의원은 정말 조심스럽게, 오직 너만 알고 있으라는 투로 말했다. “나 또한 과거에 너와 비슷한 질병을 겪었단다.” “정말입니까?” “놀라기는. 그게 아니면, 내가 어떻게 그동안 너의 마음을 그렇게 상세히 이해했겠느냐? 나 역시 어릴 적에 너와 같은 병에 걸렸단다. 그러나 보다시피 난 병을 이겨냈지. 그러니 너 또한 병을 이겨낼 거다. 내가 도와주마. 암! 내가 반드시 너의 병을 치료할 거다.” 자신도 같은 병을 겪었다는 말은, 환자와 동질감을 쌓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었다. 그 증거로 조금 전까지 그렇게 불안해하던 진천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다. “허허, 녀석!” 장 의원이 활짝 웃으며,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쓸었다. 그 덕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 진천우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고. ‘거짓말!’ 누구보다, 어쩌면 부모보다 더 장 의원을 믿고 따랐다. 사람이 누군가를 믿을 때는, 단순히 자기 속내를 내보이는 거로는 불가능했다. -내가 정말 신선께 의술을 배웠냐고? 물론이지. 어릴 적 우연히 백학을 타고 내려온 신선을 뵈었는데, 그분께서 내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며, 화타의 청낭서(靑囊書)를 주셨단다. -청낭서는 단순한 의술서가 아니란다. 굳이 따지면 무림인의 무공 같은 내가수련법에 가깝지. -어릴 때부터 이를 익힌 덕에, 난 지금껏 잔병치레 한번 한 적이 없단다. 일방적이지 않은, 서로 주고받는 소통. 이것이 이뤄져야만, 사람은 진정으로 상대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자신이 십(十)을 내줄 때 장 의원은 하나(一) 내지 둘(二)만 돌려줬지만, 그는 환자와 의원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빌려 믿음을 극대화했다. 철저히 계산된 신뢰. 그렇게 반년간 쌓은 믿음이 작은 실수 하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만약 며칠 전이라면 이런 실수를 할 리 없었다. 사흘 전, 장 의원은 진씨세가에 벌인 작업을 거의 끝마쳤다. 남은 건 마무리뿐. 그 때문에 방심한 것이다. [스킬 ‘독 저항(최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이때, 진천우가 드디어 미혼산을 견뎌냈고. 그 성과로 얻은 독 저항 스킬이 몸에 남은 미혼산을 모조리 해독했다. 쿵! 동시에 지독한 무게감이 찾아왔다. 분명 미혼산은 마약의 일종이지만, 사용법에 따라 훌륭한 정신 안정제가 된다. ‘어쩌면…… 정말 장 의원은 약으로 미혼산을 쓴 게 아닐까?’ 몸을 짓누르는 무게가 점점 더 늘었다. 지난 반년간 장 의원이 쌓은 믿음은 여전히 굳건했다. 앞서 한 실수는 기껏해야 그 믿음에 작은 실금을 낸 정도. ‘그래, 의원이니까. 환자인 날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한 거겠지. 미혼산을 영험한 향료라 속인 것도, 이번에 한 거짓도 그럴 가능성이 커.’ 게다가 그 실금도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진천우 스스로 그리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직접 물어보자.’ 어쨌든 거짓은 거짓. 가장 중요한 걸 잊을 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을 굳게 다지자마자, 눈앞에 또 현판이 나타났다. [사기꾼의 개소리를 간파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진천우는 현판에 적힌 글귀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자, 대충 마음을 다잡았으면 슬슬 침을 맞도록 하자꾸나.” 이때, 장 의원이 아까 꺼낸 침통에서 가장 짧은 단침을 꺼냈다. 그는 곧바로 진천우에게 윗옷을 벗게 했다. 아직 천하제일 타이쿤과 장 의원에 대한 신뢰 중 더욱 단단한 건 후자였다. 진천우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일단은 순순히 맨가슴을 꺼냈다. 그 순간, 현판에 새로운 글귀가 떠올랐다. 놀랍게도 변화는 현판에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이건 또 뭐야?!’ 진천우가 기겁한 눈으로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목 아래부터 배꼽까지, 정확히 한 치 간격으로 무수한 붉은 선들이 그의 몸에 격자무늬를 그렸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의술의 신’이 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