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197화 (197/200)

197화

막바지 촬영에 이른 <판타지 러브 댄스>

정우현과 브래드 퍼트가 서로 대치하며 서 있다. 바람이 불고, 정우현의 흑발과 브래드의 금발이 휘날린다.

음악이 흐르고, 둘이 본격적으로 리듬을 타며 댄스 배틀을 시작한다.

두루두탓탓두루두탓.

먼저 브래드가 가볍게 탭 댄스를 춘다.

나이가 든 몸에도 화려한 발놀림을 보여 주는 브래드.

확실히 글로벌 톱스타다운 여유로움이 돋보인다.

자신의 춤을 마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정우현을 바라보는 브래드.

이제 정우현의 차례였다.

타라다탓탓 탓탓!

두루두루두루두루탓!

엄청난 속도로 탭 댄스를 추는 정우현. 흡사 땅 위에 번개가 치는 것 같다.

브래드도 멋졌지만, 정우현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으음.”

브래드가 인상을 찌푸리고 다른 춤을 춘다.

이번엔 브레이크 댄스였다.

관절을 꺾으며 절도 있는 동작을 보여 주는 브래드.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다.

또다시 정우현의 차례가 되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엄청난 팝핀이었다.

정우현의 모든 관절 마디마디와 근육이 터질 듯한 역동감 넘치는 팝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으음!”

역시 미간에 힘이 들어간 브래드.

이번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힘을 짜내 자유롭게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스트릿 댄스였다.

두둥.

두루둥.

음악에 맞춰 최대한 자유분방하고 흥겹게 표현하는 몸동작. 물구나무를 선 채 빙빙 돌다가 한순간 일어서서 팔다리를 흔들고 상체를 꺾는다. 손가락마저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마구 움직인다.

브래드의 춤에 LA 시내 한복판이 뜨거워진다.

쿠궁!

브래드의 춤이 끝나고 그가 멋진 모습으로 마무리 동작을 취한다.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하늘을 향해 다리를 직각으로 편다. 실로 나이를 뛰어넘어 극도로 자기 관리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자세다.

그 상태 그대로, 이 이상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 정우현을 노려보는 엘라의 삼촌 브래드. 조카를 절대 넘겨줄 수 없다는 그의 의지가 눈빛에 담겨 있다.

하지만 진짜 춤은 이제 시작이다.

정우현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춤을 춘다.

분명히 스트릿 댄스였다. 그러면서도 현대 무용의 심오함과 우아함까지 가미되어 있는, 종합적으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춤사위.

팔다리의 관절을 미칠 듯이 꺾다가도 한순간 부드럽게 펴며 흡사 발레를 하듯 공중으로 뛰어 오른다.

공중에서는 엄청난 체공 시간으로 여덟 바퀴 반을 휘리릭 돌고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해 다시 흥겹게 리듬을 맞춘다.

속도와 힘 그리고 창의력과 예술성까지 모든 것을 갖춘 춤이었다.

훗날 우현 댄스라고 이름 붙여지는 새로운 춤의 장르를, 정우현이 지금 추고 있었다.

“…….”

말을 잃은 브래드 퍼트와 구경꾼들.

급기야 정우현의 춤이 다 끝나고, 주위가 조용해진다.

댄스 배틀이 이뤄진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숙연함마저 감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는 브래드.

“……내 조카를.”

슬픈 듯 체념한 눈빛으로 땅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다.

“데려가라아아아.”

타다다닷!

여기저기 순간 폭죽이 터지며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솟는다.

3층 건물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엘라가 드디어 환히 웃으며 정우현을 바라보고 춤을 춘다.

마치 성에 갇혀 있던 공주인 듯 드디어 자유와 사랑의 기쁨을 누리며 아름답게 리듬을 타는 엘라. 볼록한 가슴에서부터 얇은 허리 마지막으로 미끈하게 빠지는 엉덩이까지 부드러운 곡선이 물결처럼 움직인다.

정우현 또한 지상에서 엘라를 올려다보며 춤을 추는데, 한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솟는다.

그러고는 3층에 다다라 드디어 엘라를 눈앞에 두게 된 정우현.

엘라 또한 정우현을 보고 3층 난간에서 발을 떼 그의 손을 잡는다.

손을 맞잡은 채 빙빙 돌며, 함께 공중으로 솟는 정우현과 엘라.

한껏 웃으며 중력에 구애받지 않고 다채롭게 춤을 춘다.

카메라는 원경으로 멀어지며 정우현과 엘라를 점점 작아지게 비친다. 지상의 브래드 퍼트와 구경꾼들이 화면 한 편에 잡히며, 그들 역시 상공의 남녀를 축복하며 몸을 흔든다.

화면 곳곳에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진다. 흡사 놀이공원 속 축제 같은 컷이 탄생했다.

두두두둥.

두둥!

“오케이, 컷!”

이것으로 영화 <판타지 러브 댄스>의 촬영이 끝났다.

* * *

수개월이 지나 드디어 상영관에 걸린 정우현의 신작 <판타지 러브 댄스>.

난리가 났다.

단순히 전 세계 영화관의 표가 매진되는 것을 넘어, 한 번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또 영화관을 찾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약 같은 영화. 오늘로 13회차 감상 중.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환상이다!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한 사람입니다. 저, 이번 정우현 감독님의 신작 보고, 약을 끊게 됐습니다. 이 영화가 저한테 약이거든요. 신나는 음악과 함께 배우들의 춤과 노래를 듣고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저도 흥얼거리며 몸을 흔들게 됩니다. 다들 꼭 보세요. 아직 안 본 사람들은 최소 두 번 보세요.

-나 원래 영화관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함. 특히 영화관에서 벌서듯 가만히 앉아서 앞만 보는 거 되게 싫어함. 근데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즐기는 영화다.

이렇듯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우후 엔터테인먼트가 장악한 전 세계 영화관에 연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역시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OTT로 자리매김한 우후 스트리밍도 구독자 수가 날로 더 늘었다.

이 모습을 보며 한 여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믿기지 않아요.”

여주인공 엘라였다.

엘라가 우 재단 의장실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하하하, 뭐가 믿기지 않습니까.”

옆에 있던 정우현이 지그시 웃었다.

“사람들이 영화와 함께 제 이름을 환호하고 있어요.”

“당연하죠, 엘라는 주인공이니까요!”

정우현의 말에도 엘라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일찍이 해커와 프로그래머가 되어 사이버 세계에서 엄청난 일을 하고, 정우현과 함께한 뒤로는 더욱더 대단한 일을 했지만, 이렇게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나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리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애초 배우를 하고 싶다거나, 춤과 노래에 뜻이 있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엘라는 이와 같은 반응이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하, 엘라.”

여전히 조금은 경직된 표정의 엘라를 보며 정우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냥 즐기면 됩니다. 우리는 영화를 찍었고, 다행히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무척 기쁘고 좋은 일이죠.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이 일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 우현 님.”

정우현의 손길에 엘라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솔직히 우현 님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춤과 노래 연습을 하고, 또 우현 님이랑 같이 카메라 앞에 있었던 때가 훨씬 즐거워요.”

하고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우현 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 그건 제게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으음.”

“애초 우현 님이 아니면 카메라 앞에 서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것과 상관없이 이대로도 만족한답니다.”

그러고서 살며시 웃는 엘라를 보고 정우현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하고 그가 엘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뭐, 어쨌든 좋은 건 좋은 거니까요!”

* * *

정우현의 신작 <판타지 러브 댄스>를 향한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와 함께 시간이 조금 지나 연말 영화제 시상식이 열렸다.

백호 영화제였다.

정우현이 아주 어릴 적 데뷔작 <겨울 방학>으로 상을 받았던 백호 영화제.

한데 백호 영화제의 위상이 그때보다 훨씬 더 올랐다.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한국에서 만드는 영화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뛰어넘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제 또한 한국 최고의 영화제인 백호 영화제가 미국 영화제는 물론 유럽을 포함한 세계 어느 영화제보다도 위상이 높아졌다.

즉 백호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고의 영화와 배우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뜻했다.

“정우현 님, 안녕하십니까!”

백호 영화제 시상식이 열리는 홀 앞.

정우현과 엘라가 엄규환 및 경호팀들의 보호 아래 레드 카펫에 발을 디뎠다.

기자들이 그런 그들을 벌 떼처럼 둘러싸며 온갖 질문을 했다.

“아주 오랜만의 신작을 성공적으로 촬영한 기분이 어떠신가요?”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심지어 출연까지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앞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영화는 물론 영화 이외에 다른 활동도 하실 건가요?”

엘라와 팔짱을 낀 정우현이 기자들을 둘러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마이크에 입을 댔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습니다.”

그러고는 앞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하고서 그가 엘라와 함께 몸을 돌려 포토 존에서 포즈를 취했다.

찰칵찰칵!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그칠 줄을 몰랐다.

반짝거리는 카메라 불빛 앞의 정우현과 엘라는 한 쌍의 완벽한 커플이자, 완벽한 감독과 여배우였다.

* * *

백호 영화제 시상식장.

오랜만에 참석한 영화제는 확실히 이전과 사뭇 달랐다.

과거 영화제에는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한국은 물론 세계의 내로라 하는 유명 배우들과 감독들이 즐비했다. 할리우드는 물론 유럽 출신의 유명 배우와 예술 감독들 심지어 자유 중국 출신의 신세대 감독과 배우들도 있었다.

특히 중화권은 과거 당국의 압제와 검열로부터 해방되어, 20세기 전성기를 누렸던 홍콩 영화의 부흥을 최근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세계적 감독과 배우들도, 오늘 밤 정우현 앞에서는 다 같이 평등했다.

정우현이 모든 상을 독식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정우현의 영화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

감독상과 최우수 작품상 그리고 주연상 및 조연상은 물론 음악, 편집, 미술 등 모든 부문의 상을 받았다.

이에 정우현이 여러 차례 나가 소감을 밝혔으나, 그는 자신의 소감보다는 다른 사람의 소감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엘라가 여우 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애초 상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엘라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처음에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번 주말 정우현과 함께 캠핑을 가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그에게 어떤 음식을 해 줄까 고민하고 있었다. 정우현의 어머니에게 배운 황희진 표 된장찌개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 부드러우면서도 진국인 해물 순두부 된장찌개를 해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레시피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옆에 있던 정우현이 또렷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수상 소식을 여러 차례 알리자, 그녀가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기에, 무대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정우현이 그녀에게 앞으로 가서 상을 받으라고 또다시 말했고, 이에 그녀가 그의 말을 따라 천천히 일어나 무대로 나아갔다.

이렇듯 엉겁결에 받은 상에 엘라는, 차마 카메라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짧게 말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아서요…….”

그러고서 그녀가 짧은 순간 빠르게 시선을 돌려 객석에서 정우현을 찾아내고는, 환히 웃고 있는 그와 시선을 맞췄다.

“……하고 싶은 말은 딱히 없습니다. 그냥, 우현 님을 사랑할 뿐입니다. 너무나도 많이, 진심으로 사랑할 뿐입니다.”

하고 그녀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엘라다운 소감이었고, 사람들이 뒤늦게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와아아아아!”

* * *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현은 엘라와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됐다.

미국 아카데믹 시상식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우 주연상이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활동했지만, 아직 받지 못했던 남우 주연상.

오래전 정우현이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영화는 두 편이다.

어릴 적 출연한 <인크레더블 킹 보이>에선 신인상을, 그가 연출한 <바이 더 베테랑>에선 거의 카메오로 첫 장면에만 잠깐 출연해 감독상은 물론 거의 모든 상을 받았다. 오직 하나, 남우 주연상만 제외하고.

하지만 이번엔 당당히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렇게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수상 소식을 기다리는 그의 귀에 콧수염을 기른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우 주연상은 <판타지 러브 댄스>의 정우현!”

“우와아아아아!”

정우현의 이름이 불리자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어서 손뼉을 쳤다.

정우현의 양옆에 있던 엘라와 브래드 또한 무척 기뻐했다. 상을 받는 정우현은 의외로 담담해 보여서, 엘라와 브래드가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브래드는 정우현을 와락 끌어안고, 엘라는 자기도 모르게 정우현의 볼에 입을 맞췄다.

미국 영화제 남우 주연상 수상.

정우현의 오랜 염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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