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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95)화 (195/200)

195화

두두두탁탁.

퉁, 탁, 두루두두.

음악이 흘러나오는 <판타지 러브 댄스> 촬영장.

정우현은 물론 이번 영화를 위해 모든 음악을 작곡 및 편곡했다.

총 20곡, 영화의 시나리오를 따라 장대하면서도 소소한 음악을 모두 만들었다. 음악에 맞춰 피아노와 트롬본 그리고 바이올린 등 모든 악기도 직접 연주했다.

그렇게 만든 음악은 한 곡 한 곡이 모두 주옥같았다.

계속 이어지는 영화 촬영.

정우현이 주택이 밀집한 길에 등장한다.

그러고는 지붕이 붉은 이층집을 올려다보는 그.

그곳은 극 중 엘라의 집이다.

정우현은 그 아래에서 조금 고민하다 극 중 엘라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조금 더 크게 불러 본다.

끼이익.

창문이 천천히 조금 열리고, 얼굴을 살짝 밖으로 내미는 엘라.

순간 정우현과 시선이 마주치자 놀라며 다시 창문 안으로 모습을 숨긴다.

한편 아래에 있는 정우현은 엘라가 집에 있음을 확인하고 순간 신이 나서 눈빛이 반짝인다.

이윽고 흘러나오는 음악.

타타타다닷.

따라따닷.

몸을 흔드는 정우현.

이내 노래를 부른다.

“오오, 그대여, 왜 숨나요.”

다리 하나로만 몸을 지탱한 채, 빙그르르 돌며 우아하고 멋진 춤을 추는 정우현.

“내 마음이 이토록 그대를 보고 싶어 하는데.”

카메라가 바뀌면 엘라의 방.

엘라, 정우현의 노래를 모두 듣고 있으면서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

그러고는 그녀 역시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아아, 나는 모르겠어.”

하고 일어나서 방 안에 있는 전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주의 깊게 본다.

영화 속 엘라는 그저 평범하다. 딱히 꾸미지 않은 모습에, 결정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한 표정.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엘라가 한숨을 내쉬고는 노래한다.

“나도 나를 모르겠어.”

다시 엘라의 집 앞 골목.

정우현은 그침 없이 춤을 춘다.

처음엔 화창한 날이지만, 계절과 날씨가 바뀌어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엔 비를 맞으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엔 눈을 맞으며 춤을 춘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낮에도 밤에도 춤을 추는 정우현.

심지어 상황에 맞게 춤이 모두 다르다.

어느 날은 가볍고 흥겨운 탭댄스부터 어느 날은 우아하고 비장한 탱고, 어느 날은 고상한 현대 무용에 어느 날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스트리트 댄스까지.

그 모든 춤을, 정우현은 지치지 않고 하나하나 완벽하게 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엘라가 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노래하듯 말한다.

“저기요오오.”

이에 춤을 추던 정우현이 순한 환히 웃고는 곧장 역시 노래한다.

“예에, 부르셨나요오오오.”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매일 춤을 추시나요오오.”

“당신이 아름다워서 그렇습니다아아!”

“거짓말.”

엘라의 표정이 순간 경직된다.

“거짓말하지 마세요오오. 저는 평범한 여자랍니다아아!”

“아니요오오!”

하고서 정우현이 제자리에서 공중 돌기를 하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춤사위를 펼친다.

타닷타닷.

두두둥두두두둥.

두둠칫.

정우현은 한참을 홀로 춤을 추다가는 엘라가 있는 창가 바로 아래에 다가와 부드럽고, 씩씩하게 노래한다.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은, 제게 있어 제일 아름다운 여자랍니다아아아!”

팡팡!

뚜루두루뚜루두.

순간 크게 울리는 효과음.

마치 엘라를 옥죄고 있던 가슴 속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다.

촤아앗!

마침내 창문을 활짝 여는 엘라.

놀랍게도 그녀는 2층 창문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린다.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엘라를 받아 내는 정우현.

“하하하하하하하!”

둘은 함께 크게 웃는다. 그 자세 그대로 다정하게 수초 간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다.

한순간 정우현은 카메라를 보고 외친다.

“오케이, 컷!”

* * *

엘라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몇 장면을 촬영하며 자신의 연기는 물론 노래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 하면 좋았다. 물론 감독인 정우현이 항상 좋다고 엄청난 격려를 하기는 했지만, 엘라는 바보가 아니다.

정우현이 그런 말을 할 때, 빠르게 다른 스태프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한 가지 확신을 하게 됐다. 내가 지금 그렇게 나쁘지는 않구나 하고.

스태프들의 표정 모두 밝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면, 그저 눈을 감고 엘라의 노래를 감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이었다. 노래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이 점을 확인하고 엘라는 더욱더 자신감을 가지고 촬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엘라.”

어느 날 그녀에게 정우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붙였다.

“……예?”

엘라는 최근 좀처럼 정우현의 심각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긴장됐다.

“큰일입니다.”

“……왜요?”

“엘라가.”

“…….”

“너무 잘하고 있어요.”

“아아.”

“상상 이상입니다, 이 시점, 저는 한 가지 근원적인 의문을 제시할 수밖에 없군요.”

“……뭐요?”

정우현의 칭찬에 엘라가 기뻐하면서도 다시 긴장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엘라는, 어째서 컴퓨터 같은 걸 한 겁니까?”

“…….”

“컴퓨터 말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거나 노래를 불렀어야 합니다. 그럼 훨씬 편하게 살았을 거 아닙니까?”

“……우현 님.”

정우현의 말에 엘라가 또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장난치지 마세요.”

“아닙니다, 진심이에요, 진심뿐이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오랫동안 영화계에 종사했던 감독이자 배우로서 말합니다. 엘라가 일찌감치 연예계에 몸담았다면, 세계 영화와 음악은 엘라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을 것입니다.”

“어머!”

엘라가 깜짝 놀라고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 아. 그런데요, 우현 님.”

“예?”

아무 말을 해야, 이 곤란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번에 제가 2층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요.”

“예, 엘라.”

“……무겁지 않으셨나요? 연출 효과를 위해 우현 님의 지시를 따라 점프를 하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많이 됐어요, 창피하기도 하고요, 제가 무거워서 우현 님이 무리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아니요.”

순간 정우현은 굳은 표정으로 엘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전혀, 전혀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한순간 번쩍 엘라를 안아 들었다.

“보십시오, 엘라는 제게 깃털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아…….”

엘라는 애써 말을 돌리기 위해 지난 장면 얘기를 했다. 한데 얼떨결에 정우현의 품에 안겨 번쩍 들리게 됐다.

심지어 남들이 다 있는 촬영장 한복판이었다.

엘라는 행복하면서도 부끄러워 그대로 정우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얼른 내려 주세요, 우현 님…….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잖아요…….”

“하하하하하하하!”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은 크게 웃었다. 촬영장이 떠나갈 것만 같은 큰 웃음이었다.

“즐겁군요! 즐거워! 자, 이제, 또 촬영하러 갑시다!”

그러고는 인류사 가장 빠른 속도로 촬영장을 질주했다.

“얼른 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러 갑시다!”

* * *

이어지는 <판타지 러브 댄스> 촬영.

극 중 정우현과 엘라는 연인이 되었다.

그들은 어디서든 함께했다.

식당, 카페, 영화관, 그리고 산과 바다, 초원, 심지어 빙하와 화산이 폭발하는 곳까지.

어디서든 함께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웃고, 그리고 춤을 췄다.

두둠칫두둠칫.

두둥두둥!

타타다닷.

동시에 정우현이 작곡한 음악들이 웅장하면서도 우아하게, 때론 아름답게, 때론 신나게 계속 울려 퍼졌다.

배경 및 정우현과 엘라가 함께 추는 춤에 맞춰 그 모든 음악이 변주되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둘은 계속 춤을 췄다.

댄스, 댄스, 댄스!

오로지 춤과 음악 그리고 노래와 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음악이 흘러나오고, 보는 사람들이 덩달아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거기에 남녀 사랑이라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감정에 충실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행복으로 충만하게 하는 영화.

이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사랑이 극단으로 부풀어 오르는 장면.

언제나처럼 사랑을 속삭이며 춤을 추던 정우현과 엘라가 순간 하늘 위로 솟아오른다.

놀라던 둘은, 이내 꿈만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중에서 춤을 춘다.

그러다가는 구름 위에서 춤을 추고, 구름을 뚫고 나가 지구의 대기권에서 춤을 추다가, 이내 우주 위로 부유(浮遊)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우주 한가운데서 춤을 추던 그들이 착지한 곳은 바로 달.

달 위에서 춤을 추게 됐다.

지구에서 본 달의 표면 위, 그들 정우현과 엘라의 실루엣이 비친다.

밝게 빛나는 달 위에서 한 쌍의 남녀가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다.

이것은 정우현이 연출하고 싶었던 영화적 상상이자 표현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 영롱한 달에서의 춤으로 나타난다.

둘의 춤은 어두운 밤 온 세상을 비추는 낭만의 상징이다.

둠칫둠칫, 두두둥.

* * *

영화 촬영이 중반을 지나 후반에 접어들었다.

사실 정우현은 처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 악역이나 갈등이 없는 이야기를 구상했었다.

오로지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음악 그리고 춤과 노래로 가득한 신나고 행복하기 그지없는 영화.

그렇게 만들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이야기다. 어떤 뮤직비디오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름의 이야기 구조를 갖춰, 관객들에게 극적이면서도 완결된 경험을 안겨 줘야 한다.

따라서 갈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악역을 창조했다.

그리고 후반, 이제 악역이 등장할 때였다.

<판타지 러브 댄스> 촬영지, 옛 북한의 원산시.

이곳은 아름다운 동해와 함께 근처 금강산이 있어 절경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남북 분단 이전에는 한국에서 동해를 보러 놀러 간다고 하면 강릉이나 속초가 아니라 이곳 원산을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원산 여행 가이드북이 발매될 정도였다.

그런 경치가 빼어난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하고 있는 정우현과 엘라.

엘라가 정우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행복한 표정으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우현은 그런 엘라가 사랑스러워 역시 말없이 그녀를 다정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한데 그런 그들 앞에 수평선 너머 누군가가 윈드서핑을 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작게 보이던 그는, 완벽한 솜씨로 파도를 타며 멋지고 빠르게, 결국엔 커다랗게 그들 앞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이내 해변에 도착해 큼직한 수영복 바지만 입은 채로 정우현과 엘라 앞으로 걸어오는 그.

금발의 백인 남성이었다. 한데 나이가 많이 들어 금발 드문드문 백발이 성성하기도 했다.

백인은 이제 정우현과 엘라의 바로 앞에 섰다. 그는 엘라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극 중 이름을 부르고 말을 이었다.

“마침내 찾았다.”

“……아아.”

엘라는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삼촌…….”

“보고도 모르겠니. 파도를 타고 왔다. 미국 서부 LA에서 파도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여기 한국에까지 왔다!”

“아아.”

겁에 질린 엘라.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삼촌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만큼 삼촌은 나이가 무색하게 무지막지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꼿꼿이 선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엘라 옆에 있는 정우현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

굵은 음성이, 역시 굵은 그의 목과 턱 안에서부터 울려 퍼진다.

“……그대가 우리 조카의 애인인가?”

“그렇습니다.”

가만히 정우현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

이내 입을 연다.

“인정할 수 없다.”

“…….”

“나는 우리 조카의 남자로, 그대를 인정할 수 없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정우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그를 역시 지지 않고 노려본다.

그는, 바로 브래드 퍼트였다.

정우현의 오랜 친구이자 노년에 접어든 글로벌 톱스타가 엘라의 삼촌이자 최후 악역으로 정우현의 영화 <판타지 러브 댄스>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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