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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94)화 (194/200)

194화

해가 바뀌어 2037년.

<판타지 러브 댄스>의 촬영이 시작됐다.

미국 할리우드가 아닌, 한국 충무로에서 제작되는 영화였다.

대한민국 기업인 우후 엔터테인먼트의 오랜 성장으로 충무로는 세계적인 영화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수년 전 달러의 몰락으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로,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주요 자본이 한국에 몰려들게 됐다.

이는 영화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즉 충무로가 있는 서울은 할리우드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영화 도시가 되고 있었다.

우후 엔터테인먼트는 과거 정우현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미국에서 모두 철수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할리우드의 톱스타 및 최고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대거 우후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

오늘날 우후 엔터테인먼트는 세계적 경제 흐름에 힘입어, 더 많은 스타 배우와 감독들을 갖추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유명 영화인들이 우후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굳이 커다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전처럼 할리우드로 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할리우드를 뛰어넘는 모든 것들이 서울 충무로에 있었다.

“하하하, 시작해 봅시다!”

감독인 정우현은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촬영 스태프들을 둘러봤다.

“오랜만입니다, 시작해요, 해!”

“……우현 님.”

예쁜 노란 드레스를 입고 감독인 정우현에게 말을 붙이는 여자가 있었다. 주연 배우, 엘라 로렌츠였다.

“떨려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 엘라!”

정우현은 입을 벌려 크게 웃었다.

“엘라는 잘할 겁니다, 무조건 잘할 겁니다, 저랑 피나는 연습을 했잖아요!”

엘라는 영화 촬영 준비 내내, 정우현과 단둘이 특별 훈련을 했다.

발성 등 연기의 기본을 시작으로 뮤지컬 영화인 만큼 춤과 노래도 연습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고 거의 항상 함께하며 훈련만 했는데, 그렇다고 딱히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데이트였기 때문이다.

엘라는 정우현과 함께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내며 영화를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정우현은 영화의 모든 걸 빈틈없이 가르쳤다. 물론 훈련 내내 엘라를 배려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엘라가 잘했다. 무언가 집중하면 전력하는 그녀의 성미 또한 이번 훈련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정우현의 영화에 출연해 그의 상대 역이 된다고 생각하니, 있는 힘껏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엘라는 과거 사카시 나카모토가 되어 홀로 비트코인을 만들 때 이상으로, 훈련에 집중하게 됐다.

“언니는 잘할 거예요.”

누군가가 촬영장에 찾아와 엘라의 용기를 북돋아 줬다.

“어, 아가씨?”

엘라는 그녀를 보며 놀란 눈을 하면서도 환히 웃었다.

정다현이었다.

동생은 오빠 정우현이 모처럼 새 영화를 찍고, 엘라 언니 또한 출연한다기에 손수 도시락을 싸서 촬영장을 찾아왔다.

“바쁜데 어떻게 왔어요?”

“어이쿠, 사장님, 오셨어요?”

정우현 또한 동생이 반가워 큰 소리로 농담했다.

동생은 최근 우후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오빠랑 언니가 촬영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하고 동생은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 보였다.

“하하하, 좋다!”

정우현이 그런 그녀와 도시락을 번갈아 보며 미소 지었다.

동생 정다현의 나이도 어느덧 마흔세 살.

역시 중년의 여성으로서 권유라처럼 결혼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비혼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 같은 자신의 가치관을 밝힐 때 부모는 물론 정우현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다 같이 대체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내밀었다. 오히려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빠도 안 했잖아요.”

그러자 아버지가 조금은 당황하며 정우현을 슬쩍 바라봤다.

“……오빠는 엘라가 있잖니.”

“어쨌든 결혼은 안 했잖아요.”

“아니, 그래서 다현이 넌 대체 왜 안 하겠다는 건데?”

아버지의 물음에 동생은 괜히 부끄러워했다. 나이가 들어도 배시시 얼굴을 곧잘 붉히는 습관은 소녀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전 그냥, 지금이 좋아요.”

그러고는 살며시 가족의 시선을 피하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오빠를 따라 이런저런 일을 자유롭게 하며, 지금처럼 사는 게 좋아요. 딱히 구속받지도 않고, 재미있고 의미도 있잖아요. 그래서 평생 이렇게 살기로 했어요.”

“어허!”

아버지는 호통을 쳤다. 하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

결국, 동생 정다현은 완전한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자, 자, 그럼 다시 하자고!”

정우현은 동생이 싸다 준 도시락을 먹고서는 카메라 앞에 섰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몹시도 날카로웠다.

“레디, 액션!”

* * *

서울의 한 고급 카페.

극 중 정우현이 노트북을 켠 채 일을 하고 있다.

한 여종업원이 쟁반에 커피를 들고 정우현에게 다가오다 그만 커피를 실수로 쏟아 버린다.

심지어 커피는 노트북 위를 흘러 정우현의 흰 셔츠를 온통 까맣게 적신다.

“아니!”

정우현이 놀라는 것을 넘어 분노한 표정으로 종업원을 바라본다.

“……아, 아, 죄송합니다!”

여종업원이 머리를 꾸벅 숙여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사과한다.

“…….”

정우현이 그런 그녀를 보고 가만히 있다.

그녀는 바로 영화의 히로인 엘라였다.

“아니이이이이!”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페의 사장이 빠르게 정우현 앞에 왔다.

한데 사장이 낯익은 모습이다.

바로 배우 김도진이었다. 우후 엔터테인먼트 간판 배우가 카페 사장으로 출연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고, 최근에 뽑은 종업원인데 어리바리하더니 결국 오늘 이렇게 큰 사고를 치네요!”

하고서 김도진이 커피로 엉망진창이 된 정우현의 노트북과 셔츠를 보고서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모두, 모두 완벽하게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죄의 의미로 한 달 동안 저희 카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그가 고개를 홱 돌려 성난 표정으로 엘라를 노려봤다.

“모두 당신 월급에서 차감할 줄 알아요!”

“아니요.”

순간 가만히 있던 정우현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예?”

“아닙니다.”

사장 김도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뭐가 아니신지?”

“변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요, 고객님? 저희 종업원이 잘못했으니 당연히 변상을…….”

하고 김도진이 말하는데 정우현이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자리에서 느닷없이 일어나더니,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노트북을 손으로 들었다.

그러고는 한순간 매우 강하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노트북은 당연히 완전히 부서졌다.

“제가 망가트린 거니까요!”

“어억!”

그러고는 몸을 돌려 엘라를 바라보는 정우현.

커피로 까맣게 젖은 흰 셔츠 또한 한순간 부우욱 찢어 버린다.

“옷도 제가 망가트렸습니다!”

정우현의 맨몸이 여과 없이 카메라 앞에 드러난다.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근육. 초콜릿 복근.

아주 그냥, 근육이 화가 나 있다.

쿵쿵쿵!

두두두두둥두둥!

때마침 흘러나오는 음악.

정우현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카페 난간에 휙 하고 올라 아슬아슬하게 스텝을 밟으며 노래를 부른다.

“오오우, 내 마음.”

두둥두둥 두루둥.

빠르고 강한 비트가 반복된다.

거기에 완벽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정우현.

“홀려 버렸어, 오우, 홀려 버렸어.”

다시 난간에서 폴짝하고 내려와 엘라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정우현.

두둥두둥.

“빠져 버렸어, 오우, 빠져 버렸어.”

급기야 가만히 있던 카페의 손님들이 한순간 한꺼번에 일어난다.

그러고는 쿵짝쿵짝 몸을 흔들며 정우현 뒤에서 춤을 춘다.

이윽고 함께 추는 춤.

“예기치 않게, 뺏겨 버렸어.”

계속 노래 부르는 정우현.

엘라에게 다가가며 노래를 잇는다.

“당신에게.”

엘라는 부끄럽고 또 워낙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계속 춤을 추는 정우현과 손님들.

두두두두루둥.

따따다라라땅.

정우현이 화려하게 상체를 흔들다가는 이제 김도진을 보고 노래를 한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

김도진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

그래도 계속 노래하는 정우현.

“저 숙녀분은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제가 다 망가트렸다고요!”

이에 김도진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는 끝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러지 말고, 표정을 풀어 보세요. 그리고 몸을 흔들어 보세요!”

리드미컬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정우현.

여전히 난감하다는 듯 가만히 있는 김도진.

이에 정우현이 한순간 품에서 종이를 꺼내 김도진에게 건넨다.

종이를 확인하는 김도진의 얼굴이 순간 클로즈업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

수표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천만 원짜리 수표.

다시 춤추고 노래하는 정우현.

“그거 가지고, 마음 풀어요. 저 아름다운 숙녀분에게 뭐라 하지 마시고!”

두둥두둥 쿵짝쿵짝.

“그리고 함께 춤을 춰요, 좋은 날에는 춤을 추는 겁니다!”

김도진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수표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는 끝내 정우현을 따라 조금씩 몸을 흔든다.

두두두두둥. 탁탁!

이내 신난다는 듯 마구 춤을 추고 웃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김도진.

“하하하하!”

그 모습을 보고 정우현이 노래를 한다.

“나는 부자! 세계 최고의 부자!”

쿵짝쿵짝.

“어쩌다 온 카페에서 사랑을 만났네. 사랑을 만났어!”

이윽고 엘라를 제외한 카페의 모든 사람이 춤을 춘다.

정우현과 김도진을 포함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환히 웃으며 몸을 흔들고, 엘라를 중심으로 두고 대형을 맞췄다.

반 원형의 대형이 나선형으로 흩어지다가 반짝거리는 조명과 함께 별이 됐다.

때로는 절도 있게 때로는 화려하게 계속되는 춤.

“와아아아!”

춤을 추는 모든 사람이 한순간 소리를 지르며 음악이 멎는다. 정우현은 엘라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지막 소절을 부른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 이곳에서야 만났네.”

그러기를 잠시, 수 초가 지나고는 정우현이 고개를 돌려 조감독과 신호를 주고받고는 크게 외친다.

“컷, 오케이!”

이렇게 영화 <판타지 러브 댄스>의 첫 장면 촬영이 끝났다.

* * *

정우현의 새 영화 <판타지 러브 댄스>는 제목 그대로 환상이 가미된 로맨스 뮤지컬 영화다.

오직 정우현과 엘라, 남녀 한 쌍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나는 사랑 이야기. 거기에 코믹함을 넘어 B급 요소도 가미해 장르적 개성을 더했다.

정우현은 오랜 공직 생활로 답답함을 느꼈던 해방감을 이번 영화로 표출하기도 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게, 때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모든 걸 분출하는 이야기.

영화 내내 음악이 흐르고 배우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이와 함께 관객도 들썩들썩, 정우현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하하, 우현아!”

첫 장면이 끝나고 김도진이 크게 말했다.

“예, 삼촌!”

“신난다, 무지 신난다!”

“하하, 다행이네요!”

“난 비록 이렇게 첫 장면에만 나오지만 느낌이 온다. 영화가 대박 날 것 같은 느낌이!”

“당연하죠, 무조건 성공해야 합니다!”

정우현은 고개를 돌려 엘라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애정과 기대감, 그리고 따뜻함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렇죠, 엘라?”

“……예.”

이에 반해 엘라는 차분한 표정이었다.

첫 장면을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엘라는 아직 노래는 물론 춤도 추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긴장됐다. 오랫동안 준비한 것을 아직 사람들 앞에 보여 주지 않아서.

“하하하, 엘라도 잘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은 크게 웃으며 엘라를 칭찬했다.

엘라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우현 님 덕분이죠.”

그녀는 내심 앞으로 더욱더 잘해, 정우현의 기대에 꼭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엘라. 어떤 일이 있어도,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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