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89)화 (189/200)

189화

유엔 안전 보장 회의의 상임 이사국이 된 대한민국의 대통령 정우현.

그가 총회의장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

오랜만에 유엔 총회의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과거 수없이 이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결정으로 세계는 더욱더 번영할 것입니다.”

하고서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13년 전, 제가 이곳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했을 당시, 했던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

실내가 엄숙해졌다.

사람들이 정우현의 말을 경청하는 가운데, 정말로 어떤 이들은 정우현의 말대로 그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저는 그때 말했습니다.”

정우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유와 평화. 제가 이끄는 국제 사회는 자유와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요.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다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그때보다 세상은 한층 더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졌습니까?”

“……예!”

정우현의 질문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정우현이 다시 말했다.

“이 모두 여러분을 포함한 우리가 모두 지난 13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제가 이 자리에서 소리 높여 말씀드립니다. 그 중심에 우리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였던 우리 대한민국이! 큰 역할을 해냈음을 자부하는 바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그 누구도 정우현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에 맞춰 우리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모든 소망에 힘입어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지위를 승인받았음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척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서 그가 허리를 숙여 213개국 대표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짝짝짝짝짝!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조금 조용해진 시점, 정우현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서 새롭게 약속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속한 유엔 안전 보장 회의는, 말 그대로 세계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구가 될 것입니다. 안보리는 솔직히 그간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 오기도 했습니다. 강대국이라는 이유로, 상임 이사국의 자리를 차지해 강대국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는 얘기였죠.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정우현의 말에 대다수의 회원국 대표들이 빛나는 눈으로 그를 뜨겁게 바라봤다.

“대한민국이 속한 새로운 안보리와 유엔은, 더욱더 공평하게 약소국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모두가 함께 조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나아가 지금껏 탄탄히 다진 자유와 평화라는 초석을 토대로, 이제는 전 세계의 번영이라는, 동서고금 그 어떤 세력도 실현하지 못한 모두가 부유한 세계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흥분했다. 총회의장이 마치 용광로처럼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지위를 영구히 얻게 됐다.

* * *

해가 바뀌어 2035년.

정우현은 드디어 8년 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게 됐다.

퇴임식은 조촐하게 이뤄졌다. 이제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마당에, 최대한 조용하게 소임을 다하고 싶었다.

물론 국내는 물론 해외 그리고 유엔에서까지 정우현 대통령의 퇴임식을 크게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사람들과 선물을 보내왔지만, 정우현은 그저 고마움을 표하고선 모두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인력과 자원을 세계 곳곳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덧붙일 뿐이었다.

사실 이렇게 퇴임하기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한목소리가 드셌다.

지금이라도 예외 규정을 두어, 헌법을 바꿔서라도 정우현을 통일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영구 집권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우현이 모든 면에서 한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드는 등 국격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우현의 임기는 끝이 났다.

대통령이었던 그는, 그 모든 영구 집권에 관한 권유와 요청을 단칼에 물리쳤다.

현재로서 정우현은, 무엇보다 피곤했다.

유엔 사무총장 이후 13년, 13년을 공직에 전념했다.

처음엔 세계를 위해 그리고 나중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에 따라 변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며 뜻깊은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피곤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좀 쉬고 싶었다.

애초 놀라운 능력을 바탕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시작된 두 번째 삶이다.

물론 지난 13년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제 다시, 예전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정우현의 나이 어느덧 43세. 불혹이 된 지 무려 3년이나 지났다.

마흔 살이 됐을 때는 통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었다. 당시 나이에 관해 의미 있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직에 전념했다.

그런데 이제 공직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니, 자신이 적지 않은 나이가 됐음을 실감했다.

더군다나 전생의 나이까지 합산하면 70년이나 넘게 살았다.

즉 심적으로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이제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저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엘라와 함께 여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아들.”

퇴임식을 마치고 청담동 집으로 돌아온 정우현.

대통령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관저가 따로 있었으나, 퇴임과 함께 바로 나왔다.

정우현을 모시던 직원들은 쓰던 물건들은 가져가도 된다고 했지만, 정우현이 국가의 물건을 어떻게 사적으로 가져갈 수 있겠냐며, 말 그대로 몸만 나왔다.

“고생했어.”

이마에 주름살이 잡힌 어머니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불혹이 넘은 정우현의 부모는 또한 환갑이 넘은 지 꽤 됐다.

다만 정우현 덕으로 일찌감치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되어 실제 그 나이처럼 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언뜻 보면 그저 50살 정도로 느껴질 만큼 젊은 모습이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정우현이 말했다.

“푹 쉬자, 아들.”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주름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었다.

“이제는 또 뭐 하려고 할 필요 없어. 그냥 푹 쉬자.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그리고 우리 엘라랑 즐겁게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재미있게 살자.”

“하하하, 알겠어요!”

정우현이 크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정우현은 2035년, 안식년을 가졌다.

물론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어딜 가든 사람들이 반기며 환호했지만, 정우현은 그저 지그시 웃어 보일 뿐 별다른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 및 엘라와 오랫동안 가 보고 싶었지만 못 갔던 곳을 가며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때론 해외여행을 가며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 가면 또 사람들이 정우현을 알아보며 열광했지만, 이내 국내에서든 어디에서든 한결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됐다.

아주 오랜만에 브래드 퍼트의 모자를 눌러 썼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작별이 슬퍼 울고 있던 자신에게 브래드가 씌워 준 그의 모자.

그것을 여태 보관하던 그가 다시 모자를 썼다.

그러자 어릴 적 기분이 살아나는 듯 무언가 즐겁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하.”

“좋아 보여요, 우현 님.”

엘라가 밝게 미소 지었다.

정우현은 최근 엘라와 거의 매일 산책을 했다.

해가 지면 집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함께 걸어 다니며 많은 얘기를 했고, 가끔은 단둘이 여행도 떠났다.

“맞습니다, 엘라. 전 요즘 엄청 행복합니다.”

“하하하.”

엘라의 입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 또 대한민국 대통령일 때는 좀처럼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요.”

“아아, 그때는.”

정우현은 입술을 우스꽝스럽게 내밀며 사뭇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최근 몇 년간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바빴죠. 바빴는데, 그것도 항상 저로서는 당장 어떻게 해야만 하는 크나큰 문제들이 곳곳에 버젓이 있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엘라. 엘라가 한 건물의 관리인이라고 해 봅시다. 근데 그 건물에 매일매일 문제가 생겨요. 때론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싸우고, 때론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새고, 때론 지진이 일어나서 건물이 흔들리고, 심지어 때론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아서 건물이 낡아만 가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요?”

“즉시 관리해서 해결해야죠. 그 건물의 문제를.”

“맞습니다. 제가 13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는 겁니다. 항상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죠. 물론 하나하나 모두 의미 있었지만, 뭐랄까, 마음속에 여유가 없었달까요.”

“맞아요, 우현 님. 그때 우현 님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항상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었죠.”

“예, 예, 엘라도 잘 알 겁니다.”

엘라야말로 정우현이 어딜 가든 그를 따라다니며 함께했기에 누구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엘라가 그런 정우현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계속 이렇게 쉬실 건가요?”

“예,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고 싶습니다. 뭐, 언젠가 또 심심해지면 무슨 일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하는데 뒤편에서 누가 그를 불렀다.

“오빠!”

“……응?”

“언니랑 있었구나.”

동생 정다현이었다. 8년 전 정우현이 대통령이 되고 엘라가 비서실장이 된 이래, 의장으로서 우 재단을 책임지고 있던 동생이 퇴근 후 집으로 오다가 산책하고 있는 정우현과 엘라를 발견했다.

정우현은 물론 브래드 퍼트의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동생은 그런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 고생했다, 다현아.”

“고생은 무슨.”

하더니 동생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정우현을 바라봤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정다현?”

정우현은 그 점을 즉시 눈치챘다.

“아, 오빠. 실은 내가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 있는데.”

“응.”

“오빠한테 꼭 말해야겠어.”

“뭐?”

“일단 듣기 전에, 나 혼자 생각한 게 아니란 것만 알아 둬.”

하고서 그녀가 엘라에게 고개를 돌리고서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여기 있는 엘라 언니랑, 그리고 일론 아저씨랑 논의하고 내린 결정이니까.”

“……일론까지?”

일론은 과거 대통령이었던 정우현의 우후 그룹 한국 송환 행정 명령 이후, 아예 한국에 집을 얻어 상주하고 있었다. 그것도 집이 세 채나 됐다. 바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연변에 있었다.

그날 이후 우후 그룹 소속 수많은 사업의 모든 본사가 한국 곳곳에 있었기에, 한반도 여기저기를 다니며 기업 활동을 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응.”

하고서 동생이 정우현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 오빠랑 언니가 이제 돌아왔으니 우 재단 의장직에서 물러날 거야.”

“뭐?”

“그리고 다시 우후 제약 회사로 돌아갈 거야. 엘라 언니랑 일론 아저씨랑 다 얘기됐어.”

“으음.”

정우현은 생각지 못했다. 동생이 이럴 거라고는.

“그럼 우 재단은?”

정우현이 곧장 물었다.

동생은 환히 미소 지었다.

“여기 엘라 언니 있잖아. 원래 우 재단을 이끌던 분.”

엘라는 말없이 또한 웃어 보일 뿐이었다.

“으음.”

정우현이 대답이 없자 동생이 마치 확실히 오빠에게 승인을 받겠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오빠. 솔직히 나는 오랜 시간, 제약회사에서 계속 신약을 연구하고 싶었다고. 근데 오빠랑 언니가 재단의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도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는 오빠가 이해해 줘.”

“예, 우현 님.”

엘라도 동생의 말을 거들었다.

“그간 아가씨가 책임감 있게 재단에서 힘을 써 줬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하면 돼요.”

엘라 또한 정우현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 말을 이었다.

“또한, 재단에 설립자이신 우현 님의 자리도 마련해 놓을 겁니다.”

“뭐라고요?”

정우현이 깜짝 놀란 눈으로 엘라를 바라봤다.

“하하, 놀라지 마세요. 딱히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명예직이에요. 명예 의장. 우현 님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재단에 큰 힘이 될 거예요. 그리고 우현 님.”

하고서 엘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저는 우현 님의 의사를 완전히 존중하지만, 아직 세상은 우현 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세상은 물론 우주는 여전히 탐구할 것들투성이고요. 그만큼 우현 님이 나아가야 할 미지의 영역도 거의 무한히 남아 있죠. 그러니까 슬슬 기지개를 켜고, 다시 앞을 바라보는 게 또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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