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한국과 미국의 2000억 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가 곧장 실행됐다.
미국은 협정이 체결되자마자 달러를 최대한도, 즉 약 200조 원의 한화로 바꿨다.
그러고서 빚을 갚았다.
처음엔, 대외 신용도가 하락한 달러가 아닌 탄탄하기 그지없는 한화가 대규모로 풀리면서 미국 경제가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 같은 흐름은 일시적이었다.
미국의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통화는 어쨌든 달러다. 원화가 아니다. 자국의 통화 자체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 흔들리는 달러로 거대한 경제 시스템을 지탱하기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에 미국인들은 사상 처음으로, 달러를 가지려 하기보다는 원화를 가지려 했다.
하지만 원화는 워낙 공급이 부족해, 그들이 결국 대안으로 찾은 화폐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미국인들은 달러보다 비트코인을 선호했다. 비트코인은, 현재로서 가치가 연일 추락하는 달러보다 확실히 더 나은 화폐 기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달러는 더 흔들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미국은 완전한 경제 위기에 빠졌다.
결국, 대량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미국은 100년 전의 대공황보다 더한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
단 수개월 만에 미국 전체 GDP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너무 급작스럽네요.”
한국 서울. 대통령 집무실.
미국의 경제 붕괴를 알리는 티브이 뉴스를 보며 엘라가 말했다.
“우리는 괜찮겠죠?”
그러고선 정우현 대통령을 바라봤다.
“그럼요. 한국 내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장 중이고, 통일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문명이 들어선 이래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 그 또한 티브이를 계속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미국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현시대, 세계 경제는 전부 연결되어 있고, 더군다나 이번 미국의 몰락이 우리 우후 그룹의 대규모 한국 송환과 연관이 없지 않으니까요.”
정우현의 말은 옳았다. 실상 미국 몰락의 시작점은, 한국 대통령인 정우현의 행정 명령이었다.
정우현이 우후 전기차를 설립하고 진출한 이래, 미국 본토에서 우후 법인은 각종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한데 워낙 급격하게 성장하는 데다 심지어 사업 대부분이 미래 먹거리 사업의 중추였기에, 우후는 시간이 흘러 어느새 미국 경제의 핵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미국에 있던 우후 그룹 전체가 모조리 철수하고 통일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면서, 미국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대로 경제 시스템을 잘 마련해 놓고 심지어 옛 북한 땅은 물론 자유 중국과 러시아까지 민영뿐만 아니라 국책 사업을 확장할 땅이 넘치고 넘쳤으니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 계속해서 성장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 등 자본주의 1세대 국가들이 이번 경제 위기로 대부분 역성장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거침없이 성장을, 그것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예, 우현 님. 그리고.”
정우현의 말에 어느새 안심하게 된 엘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물론 여전히 영토 대부분을 복구 중이긴 하지만, 그 복구 사업만으로도 우리나라 기업이 주축이 되어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고요. 나아가 결정적으로 일본 국민과 정부의 태도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며, 끊임없이 과거사에 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은 물론, 그 어떤 국가적 과실도 우리나라와 나누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우현 님.”
하고는 엘라가 자신의 서류를 살피며 말했다.
“이번 우후 그룹의 신생 자원 회사가 국책 사업차 관민 합동으로 자유 중국 15개국의 승인을 받아 함경도를 포함해 옛 중국 땅의 각종 희토류를 독점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거기에 러시아를 대상으로는 새로운 자원 가공 기술을 전수해 주는 조건으로 대량의 천연가스를 앞으로 30년간 지금보다 반값에 할인된 가격으로 무제한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오, 좋습니다! 엘라. 일론과 함께 일을 열심히 했군요.”
대한민국 정부와 우후의 국가적 합작 사업.
이 모두 엘라와 일론의 작품이었다.
물론 정우현은 과거 우후 그룹의 회장이었던 시절 그랬듯, 중간중간 중요한 판단을 하거나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굵직한 방향을 설정해 주기도 했다.
“예, 우현 님. 그리고 우후 엔터테인먼트가 이번에 일본 최대의 애니메이션 회사인 지부리와 역시 미국 최대 애니메이션 회사인 디주니를 흡수 합병하기로 했습니다. 두 회사 각각 쓰나미와 달러의 몰락으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은 끝에 인수될 회사의 새 주인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우후와 연락이 닿아 좋은 조건에 합병할 수 있었습니다.”
“아하, 잘 됐군요. 그럼 제가 저번에 지시한 일도 잘 풀리겠군요?”
정우현의 물음에 엘라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예, 맞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의 웹 소설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됐는데요. 지난해 우현 님의 지시대로, 웹툰 및 영상화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세계 양대산맥인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모두 우후 엔터테인먼트의 소유가 되면서 웹 소설의 각종 영상화가 가능해졌습니다.”
“하하하, 훌륭합니다, 훌륭해!”
정우현이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이 모든 면에서 최강국이 되고 있어요. 경제는 물론 문화에서도요!”
정우현은 한국 대통령이다.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의 이익이기에, 현재로서 한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하는 것 말고는 더한 목표가 없었다.
그렇게 2034년.
정우현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한국은 미국 전체 GDP를 초월해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되었다.
실상 미국의 달러가 붕괴한 시점과 함께 일찌감치 한국이 미국을 추월했지만, 세계적으로 공식적인 경제 지수는 실물 경제 이후 수개월이 지나야 발표되기에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써 정우현은 대통령 취임 이후 8년 만에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었다.
이에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사실 이럴 줄 알고 있었음. 정우현이 유엔 사무총장 때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다들 봤잖아? 그러니 한국이 최고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미국에서 전문직 활동을 하고 있는 중산층 계층의 사람입니다. 솔직히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어. 수년 전 남 부러울 것 없이 잘만 살았던 저희 가정이, 미래와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급여와 수당으로 통장에 들어오는 달러는, 받자마자 가치가 하락해서 한국 돈으로 환전하고 싶은데 은행마다 원화가 없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결국 몽땅 비트코인을 구매했죠……. 막막하네요, 위대했던 우리나라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이민하는 것을 생각 중입니다. 이미 제 동료 중 두 가정이나 각각 서울과 평양 등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며 매우 만족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제 가족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한국 짱! 짱짱짱! 정우현은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위인을 뛰어넘는 진짜 중 진짜다!
온갖 극찬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정우현이 퇴임을 앞두고 조국을 위해 마지막 일을 하기 위해 나섰다.
* * *
미국 뉴욕, 유엔 총회의장.
오랜만에 총회의장을 찾은 대한민국 대통령 정우현의 모습에 유엔 직원들은 물론 각국 대표들이 힘차게 손뼉을 쳤다.
“대통령 님! 어떻게 여기에 행차하신 겁니까?”
“국제 사회를 선도하게 된 대한민국이 꿈꾸는 세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죠?”
“아아, 대통령 님! 보고 싶었습니다!”
낯이 익은, 자신이 과거 이끌었던 유엔 직원들을 보며, 정우현은 다정하게 웃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선 앞으로 나가 연단 뒷좌석에 앉았다.
먼저 총회의장이 연단에서 회의의 개최를 알리고, 현직 사무총장이 나와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213개국 유엔 회원 가입국 대표 여러분.”
정우현의 사무총장 퇴임 이후 8년간, 유엔 회원국이 꽤 늘었다.
먼저 중국이 분열됐기 때문이다. 독재 체제였던 중국이 분열되고, 여러 신생 자유 국가가 탄생하면서 그들 모두 유엔에 가입했다.
또한, 정우현이 사무총장 시절 아프리카를 빛의 대륙으로 만들었다.
역시 독재에 시달리며 유엔에 가입조차 되지 않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이 정우현으로 인해 완전히 탈바꿈되면서 그들 국가도 유엔에 가입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중요한 안건이 있습니다.”
현직 사무총장이 대표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 가입 건입니다!”
“오오!”
사무총장의 말에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우선 먼저 이뤄진 안보리 상임 이사국 회의에선 단 한 나라도, 대한민국의 상임 이사국 가입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즉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 세 국가 모두 찬성을 했습니다!”
중국은 분열되고 러시아는 일찍이 스스로 상임 이사국 지위를 포기했기에, 안보리 상임 이사국은 세 나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 국가가 대한민국의 상임 이사국 가입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미국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또한 달러 붕괴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민국에 크나큰 의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총회의의 뜻만 남아 있습니다. 이에 관해 즉시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213개국 전자 투표가 즉시 진행됐다.
상임 이사국 중심의 안보리 회의는 통과한 만큼, 총회의 국가의 3분의 2만 통과하면 한국의 상임 이사국 가입이 확실시된다.
결과가 나왔고, 이내 총회의장 전광판에 전격 공개됐다.
찬성 213표, 반대 0표, 기권 0표.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대한민국의 상임 이사국 지위를 전원 찬성했다.
“오오!”
사무총장이 놀라면서 말했다.
“대단하군요! 전원 찬성이라니!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꼭 반대나 기권표가 몇 표씩 나왔었는데!”
213개국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손뼉을 쳤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 안보리 체제는 20세기 중반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반영한다.
즉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의 힘으로 결정된 체제였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면서 러시아가 상임 이사국에 남게 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질서는 사뭇 달라졌다.
중국은 분열되고 러시아는 완전히 민주화된 가운데, 미국도 아닌 한국이, 오직 한국이 세계 최고의 독보적인 강국이 되었다.
즉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됐다.
그런데도 안전 보장 회의에 대한민국이 없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한국이 매년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에 분담하는 엄청난 금액과 한국의 법인인 우후 재단 및 우후 그룹이 세계 곳곳을 개발하고 원조하는 활동까지 생각하면, 213개국 모두 더욱더 대한민국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아니,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다. 일찍이 세계 어떤 국가도, 심지어 미국도 이처럼 적극적이면서 규모가 큰 원조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것으로 결정됐군요!”
사무총장이 말했다.
“그럼 이 자리에 모셔 보겠습니다! 새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대한민국의 정우현 대통령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연단에 선 정우현의 모습에, 213개국 대표들이 모두 크게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