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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87)화 (187/200)

187화

한국의 대통령 집무실.

정우현과 엘라가 티브이를 통해, 전직 일왕이 정우현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그러다 엘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본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그건 일본 국민이, 이번 일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음.”

엘라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잘만 하면 우리 독일처럼 진심으로 끊임없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아시아 등 국제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정우현이 말했다.

“실상 그것만이, 일본이 모든 면에서 일류 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고 그가 계속 티브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기를 저 역시 바랍니다.”

* * *

이후 정우현은 약속대로, 일본이 재해를 극복할 수 있게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어쨌든 일본은 정우현이 제시한 조건을 모두 실행하는 등 약속을 지켰다.

그러면 한국은 한국대로 최선을 다해 일본을 위해 힘쓴다.

이것이 양국의 약조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정우현의 지시를 따라 우후를 중심으로 한 최첨단 기술이 일본의 복구에 큰 힘이 됐다.

또한, 정우현은 한국에 한시적으로 체류하게 된 일본 난민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특히 힘을 쓰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국에서는 자국민인 한국인이 우선이다. 다만 난민 자격으로 체류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차별하는 것은 선진 대한민국 국격에 걸맞지 않기에, 대통령으로서 적지 않은 배려를 하고 신경을 썼다.

그렇게 해가 바뀌어 2024년 초 일본이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됐다.

물론 거대 쓰나미에 국토는 황폐화되고 인구도 줄고 경제도 과거로 퇴보했지만, 어쨌든 이제는 마비됐던 국가 기능이 서서히 재가동됐다.

이와 함께 한국에 있던 일본인들도 자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이 옛 모습을 되찾는 가운데, 그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찬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들의 총리도, 전직 왕이었던 한 일본인도 아니었다.

바로 한국의 현직 대통령 정우현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정우현 대통령 만세! 일본인으로서 한국을 향해 만세를 외칠 줄 몰랐지만, 이제는 주저 없이 그럴 수 있게 됐다. 정우현 대통령 만세!

-……한국이 아니었다면 우리 일본이라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인 여러분. 사랑합니다, 정우현 대통령.

-수개월 한국에 체류했던 일본인입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며 한국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간 정말 따뜻한 관심과 친절 감사했습니다. 아아, 한국이 왜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었는지 사무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일본인으로서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일본 중학생 남자입니다! 이번 쓰나미로 부모님과 한국에 와 잠시 한국 학교에 다니며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었는데, 으으, 우리 일본이 과거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걸어왔는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깊이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듯 일본은 근대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향한 시각을 달리하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과거사를 돌아보고, 한국과 관계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모두 정우현이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그렇게 한국이 아시아의 완전한 리더로 거듭나는 가운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또 다른 재난이 발생했다.

일본처럼 쓰나미라거나 하다못해 허리케인, 홍수 혹은 화산 같은 자연재해는 아니었다.

경제적 재난이었다.

사실 미국은 모든 면에서 세계 1위의 국가임에도, 재정과 무역에서 모두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른바 쌍둥이 적자로 불리는 재정 및 경상 수지 적자의 규모는, 미국에서 매해 약 4조 달러 즉 한화로 하면 무려 4000조 원에 달했다.

이는 세계 대다수 국가의 GDP를 뛰어넘는 막대한 규모다.

그런데도 미국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의 돈인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그간 국가적으로 빚이 늘면, 말 그대로 얼마든지 달러를 찍어 내서 갚을 수 있었다.

다만 실질적 성장에 따른 잉여금으로 상환한 것이 아니기에, 달러를 찍어 내는 만큼 경제적 모순이 심화한다.

물론 그런데도 미국은 경제적으로 탄탄해 보였다. 세계 모든 나라가 달러를 믿고, 달러를 그들의 통화로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인 한, 미국이 달러를 얼마나 많이 발행하든, 그럼으로써 빚이 또 얼마나 늘어나 악순환이 이어지든 크게 중요치 않았다.

믿음은 빚보다 강하다.

달러를 향한 사람들의 신뢰, 오직 신뢰만 있으면 미국과 자본주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데 그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상 최초로 달러보다 선호하는 통화가 세계적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화였다.

통일 대한민국의 엄청난 경제 성장으로, 사람들이 달러보다 원화를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경제 위기는 시작됐다.

이와 함께 그간 억눌러 왔던 무한 달러 발행이라는 통화적 모순의 문제점이 드디어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부터 달러로 결제 대금 등 빚을 상환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곧 이와 같은 흐름은 확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대통령 집무실에 한 전화 통화가 걸려 왔다.

미국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인 정우현에게 긴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정우현이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정우현 대통령 님…….”

하면서 말을 끄는 미국 대통령은 지난번 중국의 분열 시 베이징에서 정우현과 단둘이 중국의 미래를 논의하며 통일 대한민국을 경계하기도 했던 그 대통령이었다.

“예.”

“우리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주시겠습니까?”

“으음.”

한국이 미국과 통화 스와프 즉 두 국가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일정 환율에 따라 교환하는 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게 전생을 기준으로 하면 두 번 있었다.

먼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때다. 당시 한미는 300억 달러 한도의 규모로 통화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초기 때다. 당시엔 600억 달러 한도로 협정을 체결했다.

모두 양 국가 간 환율의 변동성이 심화할 때 통화의 안정성을 위해 체결했었다.

한데 지금 미국이, 억눌러 왔던 쌍둥이 적자가 경제 위기로 터질 것 같은 가운데, 자국의 돈인 달러가 사상 최초로 기축 통화의 지위를 잃게 될 상황에 빠지자 한국에 통화 협정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것도 달러를 누르고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통화 즉 기축 통화가 될 원화를 발행하는 한국을 상대로 말이다.

이 얘기는, 한국으로서는 굳이 현재 미국과 스와프 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부디, 부디 체결해 주시오, 정우현 대통령 님. 그간 한국과 미국의 우애와 미국이 여러 차례 경제는 물론 모든 면에서 한국을 도와준 것을 생각하면…….”

“얼마.”

정우현이 미국 대통령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약 얼마 한도로 협정이 필요하십니까?”

“…….”

정우현의 물음에 미 대통령이 잠시 말이 없었다.

이에 그가 재촉하듯 다시 한번 물었다.

“예? 대통령 님.”

“……무제한.”

마침내 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무제한으로 협정을 맺고 싶소.”

“하!”

정우현이 어이가 없어서 탄식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무제한이요?”

“……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무제한으로 통화 협정을 맺게 되면, 미국의 모든 경제적 부담이 한국에 전가되거나 최소한 함께 연대해서 그 모든 적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신뢰가 하락한 만큼 달러의 가치도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무제한으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게 되면, 그 하락한 가치만큼 미국이 얼마든지 원화로 교환해 빚을 갚을 수 있기에, 원화 가치 또한 달러와 함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대한민국은 원화를, 마치 위기에 빠진 미국처럼 거의 무한하게 발행해야 하는 통화 문제가 생겨나고, 결정적으로 이제 막 세계 1위로 자리매김할 통화인 원화의 대외 신뢰도가 떨어진다.

즉 애써 장악하게 될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한순간 잃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점을 정우현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건 안 됩니다, 대통령 님.”

“…….”

미국 대통령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정우현 대통령 님. 한국과 미국은 오랜 혈맹으로, 그간 미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홀히 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은데……. 그러니 이번 위기에 부디 도움을…….”

미국 대통령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미국은 한국을 오랫동안 꾸준히 도왔다.

전시에 크나큰 버팀목이 된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여러 번 도운 적이 많았다.

누군가는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은, 특히 최소한 남한은 지구상에서 일찌감치 사라졌을 거라는 얘기도 할 정도다. 6·25 때 북한과 중공군에 의해 적화통일이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 모든 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의도야 어쨌든 미국이 파병한 자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국을 도운 건 확실했다.

그리고 정우현은 과거 역사를 공부하면서, 역사상 세계적으로 어떤 최강 국가가 미국처럼 덜 폭력적이고 건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동서고금 미국 이전 모든 패권 국가는 항상 영토 확장과 정복의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국제 사회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1등 국가가 다른 국가를, 마치 고귀한 자국민을 대하듯 배려해야 한다는 법이나 심지어 도덕적 의무 따위는 없었다.

이에 따라 보통 최강 국가들은 타국을 무력으로 침략하는 것은 기본이요 한 국가를 없애고 민족을 말살하거나 노예화하고 문화를 침탈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그 반대의 예를 찾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

한데 미국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의도했든 아니든 경제적으로 타국을 예속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과거 다른 패권 국가에 비하면 그야말로 신사 중 신사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고 여겼다.

그런 정우현으로서는 미국의 제안을 아예 물리치고 싶지는 않았다.

“2000억 달러.”

정우현이 말했다.

“2000억 달러 한도로 추진할 용의는 있습니다. 이 이상은 안 됩니다, 대통령 님.”

그러고서 정우현이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우리나라 경제가 활황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하지만, 아시다시피, 통일되고 영토가 늘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불안정한 요소가 있어요. 그래서 무리하게 통화 협정을 체결해, 환율이 심하게 변동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불거질 수도 있고요. 이는 곧 정치 사회적인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딱 2000억 달러, 2000억 달러로 체결할 용의가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20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면, 과거 한미 통화 스와프의 배를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우현의 물음에 잠자코 있던 미 대통령이 결국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우현 대통령 님. 위대한 나라로 발돋움한 한국과, 우리 미국은 모든 면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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