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엘라의 말에 정우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저는 현행 헌법을 따라 4년 중임을 고수하겠습니다.”
“……왜요?”
엘라가 안타깝다는 듯 곧장 되물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대한민국을 이끌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한국은 강건한 나라입니다. 오랫동안 강대국들 틈 사이에서도, 단순히 생존한 것을 넘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죠. 그리고 이제, 드디어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할 시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한데 이는 저 혼자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창밖 나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유능한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성장하여 오랜 시간 함께 항구적으로 이뤄 내야 할 일들이죠. 그를 위해서라도 저는 마땅한 때, 물러서야 합니다.”
“……아아.”
“물론 지금은 국제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내외로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초석을 잘 다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고는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엘라를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엘라, 한국에는 이런 시가 있어요.”
갑자기 시 얘기를 하는 정우현의 말에 엘라가 눈을 크게 떴다.
정우현은 오히려 눈을 감고 시를 읊조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아.”
엘라가 넋을 잃고 계속 감탄했다.
정우현의 입에서 나온 시구가 가슴에 무척 와 닿은 것도 있지만, 눈을 감고 시를 읊조리는 그가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이 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저는 가야 할 때를 알고 갈 뿐입니다.”
엘라가 결국 참다못해 역시 읊조리듯 말했다.
“……너무 멋지세요, 우현 님.”
* * *
사실 엘라에게 말한 이유 말고도, 정우현이 종신 집권을 꾀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걸 하고 싶었다.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서 조국을 강대하게 이끌고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이는 건 참 뜻깊은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정우현은 다른 걸 하고 싶기도 했다.
바로 이전처럼 자유롭게 영화를 찍고, 수학 문제를 풀며, 이런저런 기술 개발로 사업도 하고, 국적과 인종 불문 좋은 일을 하는 재단 활동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직이라는 건 무척 바빴다.
어쩌다가 휴식을 취하려 하면, 곧장 언론에 보도가 됐는데,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하층민들을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서 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하기 일쑤였다.
“아들, 그러다 코피 나겠어.”
결국은 한겨울, 어머니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정우현을 보고 한마디 했다.
“하하하, 어머니.”
어머니 황희진을 보면 항상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무리 바빠도, 행여 어떤 위기에 빠질수록 더 그랬다.
물론 정우현은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사랑이었다.
어머니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아기 때부터 그가 어머니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동력이었다.
“아들, 몇 년째 휴가 못 가서 어떡해?”
정우현은 원래 아무리 바빠도 해마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다. 여유가 있을 때는 국외로, 그러지 못할 때는 강원도 속초와 강릉을 향해서라도 떠났다. 어릴 때부터 그러다가, 성인이 된 후 엘라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는 가족 여행에 엘라도 함께하게 됐다.
한데 2027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여행을 한 번도 못 갔다. 아니, 정확히 하면 안 갔다. 자신이 좀 더 일하면, 나라가 더 발전하고 한국인들이 더 행복해질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어머니”
“아쉽다.”
“엘라랑 다현이가 잘 모시고 다녀올 겁니다.”
“두 아가씨 모두 항상 아쉬워하고 있어. 아들은 못 가니까.”
“하하, 어쩔 수 없죠.”
엘라도 원래 정우현처럼 휴가를 가지 않으려 했다.
비서실장으로서 그녀 역시 대통령인 정우현을 따라 할 일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우현은 그녀만큼은 365일 내내 일을 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강제로 휴가를 떠나보냈다.
그러면 가족들에게 덜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바빠? 요즘은 뭐 하는데?”
“아, 헌법 개정이랑 재선 준비하고 있어요.”
“……재선? 또 대통령 한다고?”
“예.”
“하지 마.”
“……예, 어머니?”
“하지 말라고, 대통령인지 뭔지.”
“하하하하…….”
정우현은 웃었지만, 어머니는 진심이었다.
아들이 더 이상 가족 여행도 못 갈 정도로 바쁜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우리나라, 이제 잘 살잖아. 통일도 했고. 땅도 넓어졌고.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아들.”
“어머니…….”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무척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국가의 지도자가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앞으로 50년 아니, 100년 이상이 결정된다. 한국이 세계 초강국으로 남느냐, 그저 그런 2류 국가로 남느냐가 결정된다.
그런데도 정우현은 입을 열어 어머니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이 모두 가슴 따뜻한 진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때론 눈앞의 사실보다는 둘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 또한 정우현은 알고 있었다.
정우현은 말없이 어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안은 어머니는 이전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러고서 짧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좀 더, 저는 일을 하겠습니다. 다시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몇 년을, 새하얗게 불태워 보겠습니다.”
“…….”
어머니가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는 천천히 얇은 팔을 들어 역시 정우현을 끌어안았다.
“알았어, 아들. 가족은 걱정하지 마. 엄마가 있으니까.”
* * *
2031년. 정우현의 나이 36세.
통일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 선거가 시행됐다.
현직 대통령인 정우현은 재차 출마했고, 그 외 후보자는 또 아무도 없었다.
남한은 물론 북한 그리고 연변 출신의 사람들까지 모두 하나 되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우현이 또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무척이나 열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엘라의 말대로 헌법 개정을 통해, 초대 통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정우현의 종신 집권을 희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우현이 기존의 대통령제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정우현은 재선에 성공한 뒤,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 되었다. 즉 4년 후에 대통령직에서 자연스레 물러나게 되었다.
이 사실에 정우현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4년, 딱 4년만 미칠 듯이 조국을 위해 힘쓰고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간다.
그러고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며, 예전처럼 놀고 싶을 땐 노는 등 대통령 퇴임 이후의 삶이 벌써 기대가 됐다.
하지만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국가에 집중해야 한다.
정우현 행정부 2기. 그가 목표로 하는 건 무엇보다 과학 기술과 경제였다.
영토를 늘릴 수 없다면, 세계 최강국이 되는 단 하나의 길은 바로 기술 발전에 따른 경제 강국이었다.
그는 우선 그간 미국에 있었던 우후 그룹의 본사와 각종 회사를 모두 한국으로 돌아오게 했다.
우후 그룹의 등기 소재지 본점은 어디까지나 한국에 소재했기에, 한국 회사인 우후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행정 명령을 따라야 한다.
물론 우후 법인이 원치 않을 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지만, 회사가 원치 않을 리가 없었다.
현재 우후를 이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우현의 오랜 측근인 일론 마스크니까.
“헤이, 보오오오오스!”
수개월 후, 대통령 집무실.
일론이 큰 목소리로 정우현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 일론, 오랜만이네요.”
“아니, 프레지던트 됐다고 너무 얼굴을 못 봤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으흠, 보스의 뜻대로 지금 막 우리 그룹의 자산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한국으로 들어오게 했어!”
“잘했습니다, 일론.”
그러고서 정우현이 일론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일론. 이번 일은 회사보다는 한국을 위한 행위입니다.”
“아아, 당연히 알고 있지.”
“물론 회사야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면 되지만, 미국에는 좀 타격이 갈 거예요.”
하고서 정우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일론?”
정우현의 물음에 일론은 오히려 그런 질문을 왜 하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뭐가 괜찮아, 보스?”
“아니, 일론은 미국인이잖아요. 그런데 이번 우후 그룹의 한국 송환으로, 미국에 경제적인 공백이 생길 테니 말입니다.”
“하하하하!”
일론이 크게 웃었다.
“보스, 잊었어? 나 삼중 국적자야!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그리고 원래 남아공! 남아공 사람이라고! 내가 왜 그랬겠어? 모두 일 때문이야. 사업에 올인했으니까 그렇게 마구 국적을 취득한 거라고.”
“하하, 역시 그렇군요.”
정우현은 물론 일론이 이렇게 반응할지 알고 있었다.
그에겐 애국심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 그저 자기 일을, 사업을 하기에 좋은 자본주의 국가가 곧 자신의 나라였다. 그것이 현재까지는 미국이었고, 이제는 막 바뀔 참이었다.
그래서 정우현은 따로 일론의 의견을 묻지 않고 행정 명령을 내린 것이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 우리 그룹의 한국행은 완전한 굿 초이스야. 봐 봐. 중국이 자유 민주화가 됐잖아. 인구 15억의 광활한 땅이 이제 자유로워졌다고!”
하고서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 먹을거리. 온통 먹을거리 천지라는 거지. 그러잖아도 미국은 경쟁이 극도로 심화해 사업하는 데 녹록지 않다는 거, 보스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포화 상태라는 거지. 이에 반해 중국 시장은……. 후…… 생각만 해도 어지럽네. 다 우리 거야, 우리 거. 그러니까 잘된 일이야, 보오스.”
“하하하하!”
일론의 말에 정우현은 기분이 좋아서 그저 웃었다.
“자, 어디, 어디부터 시작할까. 저 황금의 땅인 자유 중국을 공략하는 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하고는 일론이 정우현의 집무실 한쪽에 있는 대한민국 영토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물론 대한민국 영토는 이전과 달리, 연변까지 확대되어 있었다.
일론이 곧장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옳지! 여기다, 여기! 연변! 연변에 현재로서 우리 그룹의 선두인 제약회사 본점을 설립하는 거야! 좋았어, 이거다!”
우후 제약회사의 본점은 원래 미국에 있었다.
한데 이번에 정우현 대통령의 기업 소환으로 본점이 미국에서 철수하게 됐고, 한국 내에서 새로 설립될 지점을 찾고 있었다.
한편 제약 회사는 일찍이 정우현이 예상한 대로, 전기차를 넘어서 우후 그룹 최고의 회사로 발돋움했다.
헤르페스, 코로나, 에볼라, 에이즈, 말라리아 등 인류사를 휩쓸었던 각종 질병을 우후 제약회사가 단독으로 약을 개발해 종식했다.
여러 질병 중 하나만 완벽히 없애도, 글로벌 제약계의 게임 체인저가 되기에 충분한데 그 모든 질병을 없앴고 또한 지금도 새 질병들을 없애고 있는 회사이기에 독보적으로 선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하하, 좋습니다.”
정우현이 말했다.
“그럼 얼른 추진하세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한국 영토 내 우후 그룹의 모든 기업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아아아!”
“그렇게 한국은 세계 제일의 회사인 우후를 따라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일론이 특유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리를 굽히고 팔을 들썩이며 몸을 덩실거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오우 예! 보오오스! 이참에 나 한국 국적도 딸까? 아, 진짜 그래야겠다. 회사가 있는 나라가 나의 나라인 법! 더군다나 보스가 마침 대통령이니, 보스 따라 쉽게, 쉽게 한국인으로 가즈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