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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78)화 (178/200)

178화

정우현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가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롭게 발표된 설문 조사에서 무려 90%가 넘는 지지율을 얻었다.

상대로 여당이나 야당의 유력한 후보를 놓고 양자 대결로 조사하든 출마가 확정된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다자 대결로 조사하든 마찬가지였다.

항상 90%가 넘었다.

이에 정우현의 선거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엘라는 조금 놀랐다.

출마 발표 전엔, 역시 1위이긴 했지만 지지율이 70%가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적지 않은 국민이 정우현이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한 채 설문 조사에 응답한 사실이 드러났다. 즉 70%가 안 되는 지지율은 정우현의 잠재적 지지자들의 뜻을 반영하지 못했다.

“와, 우현아, 진짜 너 내 상사되는 거냐?”

서초동의 한 고급 아파트.

정우현과 한 남자가 와인을 마시며, 정우현의 지지율을 알리는 티브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아, 그렇게 되는 건가, 하하하.”

정우현이 남자의 농담에 쾌활하게 웃었다.

구태호였다. 검사가 된 구태호가 정우현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긴, 너 아니면 누가 우리나라 대통령 하냐?”

구태호가 닭다리 치킨을 뜯으며 말을 이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그 나물에 그 밥이고. 에효, 어릴 땐 몰랐는데, 이젠 너무 다 눈에 보이는 거야. 지역 감정에나 호소하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남발하고, 참, 나, 솔직히 뽑을 사람 없어서 뽑는 거 아니냐, 요즘 선거. 이러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려는지.”

하고서 쯧쯧 하고 혀를 차는 구태호를 보며 정우현이 크게 웃었다.

“구태호, 하하하하!”

“왜 웃냐, 난 진지한데.”

“너, 나이 좀 먹었다고 꼰대 다 됐다! 하하하!”

“……뭐야, 나 꼰대 아니야.”

“하하, 그래? 진짜야?”

“진짜라니까…….”

“하하, 알았다, 알았어.”

구태호가 괜스레 민망해서 잔에 있던 와인을 마치 생수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는 입술에 묻은 와인을 팔로 스윽 닦고서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와. 근데 이거 진짜 좋다, 우현아.”

“당연하지, 이거 10억 원 짜리야.”

푸부붓!

또 생수처럼 술을 마시려던 구태호가 순간 입속에 있던 와인을 내뿜고 말았다.

“야, 아깝다. 너 지금 수천만 원어치 뱉은 거야.”

“……진짜야?”

구태호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로마네 캉티. 못 들어 봤어? 그것도 1920년 산이다. 100년이 넘었지.”

“…….”

구태호가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와인 병을 바라봤다.

제품명이나 생산 년도 등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갈색 병. 근데 이런 와인이 무려 10억 원이나 한다니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아, 원래 이런 와인은 판매하지 않아. 세상에 얼마 있지도 않아서, 이렇게 증정용으로나 주고 받지. 그래서 상품 라벨이 따로 없는 거야.”

“……아아.”

하고 구태호가 탄성을 내뱉고서는 와인병을 이전과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 자신의 잔에 소량만 천천히 따랐다.

생수와 다를 바 없이 마구 와인을 마셔 댔던 그가 이제는 그것을 성수라도 되는 양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이 모습에 또 정우현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야! 그냥 마셔라! 다 먹으면 그냥 또 구해서 마시면 되지!”

“……이걸 어떻게 구해?”

“이런, 이런.”

정우현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왜 이래, 나 정우현이야. 마음먹은 건 모조리 실현하는 정우현이라고.”

“……음, 하긴.”

구태호가 괜한 걸 물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현은 이래서 좋았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어디서도 할 수 없는 장난스러운 말을 허풍처럼 마구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럼으로써 둘은 함께한 지난 시간을 확인하고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한편 각종 단체뿐만 아니라 유명 인사들 또한 정우현 대통령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는데요.’

선거와 관련된 계속된 뉴스 보도에 정우현과 구태호가 가만히 티브이를 보고 있다가는 구태호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현아.”

“응?”

“미안하다, 나는. 이번에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에이, 아냐, 당연한 거지. 그리고 이렇게 가끔이라도 만나서 술 한잔하는 게 나한테 큰 힘 아니겠냐.”

“……고맙다, 그렇게 말해 줘서.”

구태호는 현직 검사다. 즉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국가공무원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정우현에 관한 지지를 표명할 수 없었다.

“고맙긴, 야. 너 말고 대신 대단한 분이 날 도와주고 계시잖아.”

“아, 그건 그렇지.”

마침 티브이에서 둘이 언급하는 사람이 전면에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한평생 법조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저는, 함께했던 수많은 선후배님과 함께 이번에 공식적으로 정우현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바…….’

전직 검찰총장인 구태호의 아버지였다. 구태호의 아버지가, 정우현의 대통령 선거 출마가 확정되자마자 그간의 모든 인맥을 다해 광범위하게 정우현을 도와주고 있었다.

약 30년 전, 모든 것을 다해 정우현을 돕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일찍이 정우현을 발굴한 아동발달학의 권위자인 김은정 박사가 속한 의학계, 또한 그의 언니로서 정우현의 유일한 학창 시절을 지켜봤던 김민정 교장이 속한 교육계 또한 단체로 정우현의 지지를 선언했다.

거기에 김도진과 장필도를 선두로 충무로의 영화인들이, 에이치그룹을 중심으로 기업계가, 수학자와 기계공학자들을 중심으로 각종 학계가, 우 재단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동계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전부 정우현을 지지했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에, 한국인 이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오랫동안 정우현의 주 무대였던 미국 및 유럽은 물론 정우현의 유엔 사무총장 시절 연이 깊은 러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하나같이 정우현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아가 정우현의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세계의 팬들, 우후 그룹의 소액 주주 및 각종 상품과 치료제를 이용한 사람들, 우 재단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사람들까지 하면 국적 불문 전 세계의 사람들이 정우현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하하,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

그런 어느 날 한국의 선거 유세 방송에 익숙한 외국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브래드였다. 톱스타이자 우후 엔터테인먼트 소속 간판 스타 브래드 퍼트가 정우현의 선거 캠프에 합류해 선거 유세 방송까지 촬영했다.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브래드가 예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이며 강건하게 말을 이었다.

“여러분의 손으로 제 오랜 친구인 정우현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럽습니다! 제가 사는 미국엔, 아니, 세상 그 어떤 나라도 정우현처럼 완벽한 지도자는 없으니까요!”

하고서 그가 전방을 향해 열 손가락을 다 펴 보이고 말했다.

“그러니까 기호 10번, 10번 정우현을 뽑으세요!”

정우현의 이번 후보 번호는 10번이었다.

어떤 당에도 의지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단독 출마해서 그렇다.

일찍이 그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기 전부터 여당과 제1야당으로부터 러브 콜이 왔지만, 정우현은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여당과 야당은 난리가 났고, 정우현의 90%가 넘는 지지율을 보자마자 비밀리에 모이기까지 했다.

즉, 여당과 제1야당 대선 후보 캠프의 참모진들이 모였다.

처음 그들은 정우현에 맞서 단일화를 할까 의논했다.

하지만 그렇게 둘이 합쳐 봤자 10%가 안 되는 지지율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 두 당은 오랫동안 정치적 갈등이 깊고 이념적으로도 매우 상반된 당이었다.

그럼에도 단순히 무소속인 정우현을 위해 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에 그들 두 당의 참모들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서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한 가지 합의점에 이르렀다.

정우현을 낙마시키기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 온갖 정보력을 다해 정우현의 뒤를 캐내어, 그를 떨어트리기로 결심했다.

심지어 여당은 국정원까지 동원할 것을 마음먹었다.

* * *

그리고 1개월 후, 다시 만난 두 당의 참모진.

둘 모두 어딘가 기운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좀처럼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어찌 되셨습니까?”

결국 서로 눈치만 보다가, 여당 선거캠프 참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야당 참모가 무기력하게 답했다.

“정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실제 그래 왔던 정치판인데, 어떻게 정우현은…… 정말 한 톨의 먼지도 없군요…….”

그는 놀랐다. 그의 모든 이력이 경이로워 혹시나 단 하나라도 허점을 발견할까 샅샅이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정우현에게는 단 일말의 오점도 없었다.

살아생전 길 바닥에 쓰레기 한 번 버린 적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그렇군요.”

여당 참모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이에 야당 참모가 얼른 말을 이었다.

“그쪽도 뭐, 아무런 소득이 없나요?”

“……예, 그렇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국정원까지 힘을 썼는데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요?”

“예.”

“하! 저번에 우리 당 지자체 후보 잡을 때는 기를 쓰고 다 찾아내더만, 이번엔 왜 못 그러는 겁니까?”

“……이보세요, 우리가 다 찾았기보다는, 그쪽 사람이 하자가 많다고는 생각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낙선하지, 참.”

“뭐라고요? 지금 당신 뭐라고 그랬어!”

이렇게 다시 으르렁거리는 사이로 되돌아온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싸움만 하다가 캠프로 돌아갔다.

그러고서 며칠 후, 두 당은 다시 사이좋게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후보 사퇴였다. 정우현의 압도적인 지지율에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가 사퇴하는, 대한민국 광복 이래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고는 이어 군소정당 및 기타 후보자들 모두 사퇴를 결심했다.

그들 모두의 뜻은 같았다.

정우현이 당연히 대통형이 되어야 하기에, 자신들 또한 국민의 열망을 따라 사퇴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뭘 해도, 막말로 정우현을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단일화를 해도 정우현을 이길 수 없고, 그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떨어트릴 만한 아주 작은 결점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니, 차기 혹은 차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라도 국민을 의식하며 좋은 말로 사퇴할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

사상 처음으로 후보는 한 명이었다.

바로, 기호 10번 정우현.

선거일 며칠 전부터, 실상 국민은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정우현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공직선거법상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인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총수의 3분의 1 이상에 달하여야 당선인으로 결정된다.

즉, 약 4천만 명이 넘는 유권자 가운데 3분의 1이 정우현 후보자에게 대통령 당선 찬성표를 던져야 했다.

정우현은 물론 걱정 없었다.

선거 전 마지막 설문 조사에서 정확히 93.5%의 지지율을 기록했었으니까.

실상 독재 국가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와 같은 지지율이 나오는 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저녁 결과가 나왔다.

98%라는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높은 투표율에 96% 찬성이라는 경이로운 결과가 나왔다.

‘정우현 후보자가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온갖 방송사에서 정우현의 당선 소식을 크게 알리는 가운데, 대한민국 거리는 개표 결과가 나오는 늦은 밤 들뜬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나 모든 사람이 합심하며 기뻐한 날은, 일제로부터 독립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때보다도 사람들은 훨씬 기뻐하며, 새 대통령 당선인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정우현! 정우현! 정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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