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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77)화 (177/200)

177화

사실 정우현이 오랜만에 한국에 온다기에, 가족은 항상 그래 왔듯 공항까지 나가 그를 마중하려 했다.

하지만 정우현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이제는 사무총장도 아니고, 그 어떤 소속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최대한 조용히 입국하고 싶었다.

“아들, 이번엔 한국에 오래 있는 거지?”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예, 어머니.”

딱히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우현은 조금 쉬고 싶었다.

유엔 사무총장이 된 이래,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피곤하다거나 지친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생각도 해 보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었다.

* * *

저녁 식사 후 정우현의 방 안.

엘라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다.

정우현은 지난 경험을 떠올리며, 엘라를 침대에 앉히지 않았다.

그녀가 또 당황하며 갑자기 방 밖으로 나갈까 봐 그랬다.

“엘라, 음식 맛있었습니다.”

정우현이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저번보다 더 맛있어진 것 같아요. 된장찌개는 그야말로 어머니 손맛이랑 똑같고요, 하하.”

“아아, 다행이네요.”

그렇게 정우현은 엘라의 긴장을 풀어 주고서, 슬쩍 말을 이었다.

“엘라.”

“예.”

“앞으로 뭘 하며 지낼까요?”

“…….”

“욕심은 없었지만, 당연히 연임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사무총장의 자리에서 갑자기 내려오니, 당장 어떻게 지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으음.”

하고서 엘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의견을 얘기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엘라! 엘라의 의견이 궁금해서 이렇게 묻는 거잖아요.”

그러자 엘라가 가만히 정우현을 바라보다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길은 많습니다. 먼저 이제 사무총장이 아니신 만큼, 더 이상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우현 님이 있었던 자리에 모두 복귀하는 방법이 있죠. 바로 우 재단의 의장과 우후 그룹의 회장 자리요. 재단과 그룹은, 정우현 님의 복귀를 애타게 바라고 있어요. 사실 이번 사무총장 임기가 5년 만에 끝난 걸 오히려 반기고 있죠.”

“……하하하, 그렇습니까?”

하고 정우현이 웃으며 말했지만, 내심 그러리라 예상은 했었다.

물론, 우후 그룹과 우 재단은 정우현이 이끌지 않아도 잘 성장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확실히 정우현이 있을 때와는 비교가 됐다. 사업에 있어선 혁신적인 면모가 예전보다 부족했고, 재단에 있어선 추진력이 부족했다.

오히려 지난 5년간 그룹과 재단의 가장 큰 성과는 유엔과 함께한 아프리카 협업 사업이었다.

우후 그룹은 우후 일렉트로닉스가 생산한 로봇을 아프리카 해방군으로서 세상에 처음 선보이며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리고 우 재단은 아프리카의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 곳곳에서 지역민의 삶에 녹아들어, 보건 및 복지와 교육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이 모두 실상 정우현이 유엔을 이끌며 아프리카에서 빛의 대륙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사업과 재단의 성과였다.

그럼에도 정우현이 자신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자, 엘라가 눈치를 살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다른 길도 있어요. 사실 세계의 많은 팬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스크린 속 감독과 배우로서 정우현 님의 영화를, 그들이 몹시 기다리고 있어요. 오랜만에 차기 영화를 만들어도 되고요.”

“으음.”

“그것도 아니라면, 오래전 우현 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풀리지 않은 수학이나 물리학의 난제 등 세상의 미스터리를 해결하셔도 됩니다.”

정우현이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무엇 하나 이거다 하고 느낌이 오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과 재단, 그리고 영화와 학문은 정우현이 평생을 걸쳐 집중할 영역이다.

하지만 어쩐지 현재로서는 그것들이 마음에 당기지 않았다.

엘라가 그런 정우현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정우현 또한 자신이 왜 그런 것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엘라.”

“예?”

“중국과 대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아.”

정우현의 질문이 의외라는 듯 엘라가 잠깐 소리를 내고서는 곧장 말을 이었다.

“여전히 대치 상태입니다. 중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만에 그저 항복할 것을 강요하고 있고. 대만은 대만대로, 미국 등 다른 국가의 비호 아래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있죠. 우현 님도 아시다시피 당장 끝날 것 같지 않아요.”

“역시 그렇군요.”

정우현이 현재로서 다른 것들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

바로 이 때문이었다.

중국과 대만이 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당 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든 간에,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이번 일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만약 진정 전쟁이 벌어날 시, 한국은 미국 등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대만을 위해 군대를 파병해야 할 수도 있었다. 물론 반대 여론 또한 만만치 않겠지만, 애초 한국은 중국과 전시에 맞붙은 적 있기에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바로 1950년 6.25 전쟁 때 그랬다.

반면 눈치를 보며 수수방관하고 있다가, 중국이 대만을 집어삼키는 걸 잠자코 바라봐야 할 수도 있었다. 한데 문제는 이후의 얘기다. 중국이 대만을 정복하며, 패권국가로서의 야욕을 전 세계에 드러낸 이상, 북한을 등에 업은 그들이 한국을 가만히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정우현은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의 운명과 함께 이번 일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정우현은 지난 5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5년간 크고 작은 국제적 사건을 모두 해결하고,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그런 그가 이번 일 또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강구할 만했다.

그래서 정우현은 다른 것들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에 빠진 정우현을 보고, 엘라가 조심스레 다시 말을 붙였다.

“……우현 님.”

“예?”

“그래서 말입니다만…….”

하고 그녀가 다시 정우현의 눈치를 보더니, 한순간 작정하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시면 어떻습니까?”

“……선거요?”

“예, 대통령 선거요. 뉴스에서 매일 정우현 님을 얘기하고 있는데.”

“아아.”

정우현 또한 알고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서 내려온 후, 정우현의 향후 거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연일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거기에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을 포함한 지지율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우현의 공적인 연락망으로,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전화가 오기도 했다. 그것도 여야불문하고 모두 그랬다.

입당 제의였다. 자신의 당에 입당해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우현은 그 모든 제의를 단번에 물리쳤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이제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엘라가 자신에게 대통령이 될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사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자리가 절대 쉬우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국론이 곧잘 분열되고 강대국 틈에 있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더요. 그래서 딱히 말씀드리지 않은 것입니다만…….”

하고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계속해서 정우현의 눈치를 보다가는 말을 이었다.

“우현 님께서 현재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으시고, 다만 중국과 대만의 대치 상태만 궁금해하시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현 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하셨던 분. 러시아의 독재 정권을 무너트리고 정상화한 뒤, 세계에서 가장 빈곤했던 아프리카 대륙을 밝게 빛나게 하신 분. 그런 분이 이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되면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

“그러니까 이번 선거에 출마하시길 바랍니다.”

정우현이 생각했다.

어쩌다가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고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만, 대통령 선거 출마라니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만났다. 그가 성장하는 이래 여러 차례 대통령이 바뀌었고, 어떤 정권에서든 대통령과 함께하는 자리가 몇 번 있었다.

또 세계적 유명 인사로서 해외에서도 다른 국가의 대통령을 만난 일도 있었다.

한데 그들이 딱히 친숙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대통령이라는 권위와 직위에, 어렵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언젠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도무지 현실감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 시점, 이번 중국과 대만의 대치 사태로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지 못할 건 없었다. 아니, 이제는 여러 가지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볼수록,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심화된 지금, 눈앞에 들이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지금보다 훨씬 앞선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강대국들 틈에서 항상 눈치만 봐야 했던 대한민국을, 그 어떤 나라도 아쉽지 않은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자신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기필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고서는, 정우현이 엘라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엘라.”

“…….”

엘라의 눈에 빛이 감돌았다.

“출마, 해 보겠습니다. 아니, 대통령이 되어서 반드시 대한민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세계를 선도하겠습니다.”

“……아아!”

엘라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참 좋아요, 우현 님!”

* * *

정우현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도 흥분했다.

놀라움과 축하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가장 흔한 반응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하, 부럽다. 정우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니. 정우현 보유국. 이것 하나만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로 발돋움하기에 충분하다.

-와우, 정우현이 대통령이 된다고요? 그럼 저 미국인인데, 귀화 신청해도 되나요? 정우현이 또 어떤 기적의 행보를 보여, 대한민국을 놀라운 모습으로 이끌지 기대되네요. 솔직히 조만간, 미국이 1위를 빼앗길까 봐 걱정됩니다.

-대만 사람입니다. 정우현 님. 어서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 중국을 쫓아내 주세요. 솔직히 우리 총통보다는 한국의 대통령이 될 정우현에게 더 믿음이 갑니다. 얼른 도와주세요.

-나이스 후보 등록만 해라! 몰표, 몰표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지역 불문, 세대 불문, 성별 불문 어디서나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정우현 대통령 후보! 제 모든 것을 다해 지지합니다! 정우현은 선거 운동 따로 할 필요 없어요! 저희 우현수호단이 알아서 할게요!

그러고서 정우현은 며칠 후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마치고 공식적으로 한국의 21대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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