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76)화 (176/200)

176화

2026년.

한국에서는 국민의 오랜 열망이 실현됐다.

20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 마침내 헌법이 개정됐다.

이번 10차 헌법은, 4년 대통령 중임제에 나이 제한을 30세 이상으로 낮춘 게 핵심이었다.

기존의 5년 단임제를 바꾼 이유는 줄곧 비판받았던 그대로였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연임 당선이라는 새 목표가 사라지기에 국민을 향한 책임감이 저하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이 제한이 낮춰진 건, 순전히 정우현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애초 대통령 나이 제한 조항에 관해 국민이 반감을 가졌던 이유가, 정우현이 대통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오랫동안 유교를 신봉했던 땅이 한반도다. 연장자면 일단 공경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파란 청년이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정우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컸기에,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30세 이상 조항이었다. 정우현이 그새 30세가 넘었기 때문이다. 나이 제한을 낮추긴 낮추되 파격적으로 20세까지는 낮출 수 없고, 정우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적당히 낮춘다. 이게 국민의 합의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내 다양한 언론의 차기 대통령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정우현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공식적으로 국내 정치나 대통령 출마에 일언반구도 없는 정우현이지만, 약 60%라는 과반수를 넘는 지지율로 1위가 됐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극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 게 그 같은 지지율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러시아와 관련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 것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최근 아프리카를 빛의 대륙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인기가 더 치솟았다.

사무총장으로서의 정우현과 그의 성과를 보며 온갖 어려움이 가득했던 아프리카가 그토록 발전했으니, 대한민국 하나 발전시키지 못할까 생각하게 됐다. 정우현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이 단순한 선진국을 넘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리라 사람들은 굳게 기대했다.

* * *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사무총장실.

하지만 정우현은 자신의 고국에 관한 정치 상황과 차기 대통령 선거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프리카에서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모처럼 유엔 본부에 있게 됐는데, 또다시 커다란 국제적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중국이었다. 중국이 무려 항공모함을 이끌고 대만 앞바다로 진군했다.

중국은 잘 알려져 있듯 일국양제라는 기치 하,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지방 정부로 인식하고 있기에 오랫동안 이와 같은 일을 노렸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정우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좋지 않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중국 내 정치 세력은 물론, 유엔 주재 중국 대표 또한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으음.”

사실 러시아가 완전한 자유 민주화를 이루고, 안보리 상임 이사국조차 포기한 뒤,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아꼈다.

자국을 지지하던 커다란 우방을 잃었기에, 어떤 주장을 해도 마땅히 들어 줄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국제적 입지가 낮아졌다.

거기에 정우현이 사무총장으로서 최근 수년간 집중한 프로젝트, 아프리카를 빛의 대륙으로 만드는 것 또한 중국을 약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왜냐하면 정우현이 아프리카로 진출하기 전,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은 미국도, 그 어떤 국가도 아닌 바로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아프리카에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팔며 자금을 확충했다. 해당 무기들은 당연히 독재 정권 및 내전을 일으킨 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우현에 의해 끊겼다. 이에 중국은 유엔과 사무총장인 정우현에게 불만이 많았고, 어떻게든 그를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정우현과 그를 지지하는 국가들이 너무 탄탄해, 딱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기회만 보다가 2026년 말 중국이 대만 진군을 결정한다. 중국이 이 시점에 진군을 결정한 이유는 하나였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정우현의 임기가 2026년이면 끝이 나기 때문이다.

물론 5년을 더 연임할 수 있고, 의례상 사무총장은 연임하곤 하지만 중국은 반대할 작정이었다.

여전히 중국은 안정보장이사회의 상임 국가다. 이 얘기는 중국이 반대하면 정우현은 사무총장을 연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정우현의 사무총장 임기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따라서 정우현의 임기 말미, 더 이상 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됐고, 이제 유엔도 예전처럼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일개 국제기구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이 중국의 판단이자 전략이었고, 이에 대만 진군을 감행했다.

“……어떻게 할까요?”

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정우현에게 물었다.

정우현이 천천히 답했다.

“일단 총회를 소집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죠.”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또한 자신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현재로서 대만 침공을 앞둔 중국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이 정우현은 몹시 안타까웠다.

한편, 대한민국은 중국의 진군으로 여론이 몹시 뜨거워졌다.

당연히 침략 전쟁에 맞서 자유 진영인 대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측과, 초강대국이자 인접국인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측으로 국론이 분열됐다.

한쪽이 어느 한쪽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과 대만의 전쟁으로 한반도도 위기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형성됐다. 이와 함께 대통령 선거도 맞물려, 한국의 분위기는 나날이 어수선해졌다.

이 와중에 더욱 거세진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정우현을 향한 대통령 선거 출마 요청이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앞두고 국론이 분열됐음에도, 그들 모두 정우현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는 의견이 같았다.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 유엔을 사상 가장 강력하게 만들었듯이, 대한민국 초강대국으로 만들어 주기를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 * *

한편 예상됐듯, 정우현이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보리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역시 중국이었다.

그리고 2026년 12월 31일 목요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는 제10대 사무총장인 정우현의 이임식이 열렸다.

유엔의 핵심 인사들이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자리에 있는 가운데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가 말을 했다.

“정우현 사무총장님과 함께했던 5년은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기적의 나날이었습니다. 제 생에 이토록 유엔에서 일한 게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습니다. 러시아를 정상화하고 아프리카를 빛의 대륙으로 만든 이 5년은, 유엔의 역사는 물론 인류의 역사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짝짝짝짝!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도 침울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정우현이 연임하지 못한 사실이, 무척 비통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대하신 사무총장님이, 이 자리에서 벌써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저희 직원들은 물론, 많은 유엔 회원국 대표들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완벽하신 분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니요?”

그러고서 유엔 직원은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5년간 정우현의 강력한 리더십과 한편으로는 직원들에게 헌신적이고 다정다감했던 그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국제 사회의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태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고, 사람들이 여전히 서로 싸우며, 불행한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능한 지도자가 더 이상 지도자가 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현실을 비난하고, 불행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우현 님! 누가 뭐라고 해도 정우현 님은 영원한 우리들의 사무총장님입니다. 그간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임식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더 이상 이곳 유엔 본부에서 정우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직원들은 믿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

가라앉은 분위기 속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나아갔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하고서 뜻깊은 눈으로 직원들을 둘러봤다.

5년간 자신만 바라보고 따랐던 직원들.

그중에는 직접 아프리카까지 따라와 온갖 고생을 함께한 직원들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더군다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얼굴이기에 정우현의 가슴도 울컥해졌다.

그들이 왜 울어야 하는가?

아프리카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갖 험난한 일로 온몸에 땀이 흘러도, 얼굴만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직원들 아닌가?

그런데 왜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정우현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슬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 또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이 순간이, 자신을 줄곧 따랐던 직원들에게 영영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은 제게 지난 5년이 기적의 나날이라고 하셨습니다.”

“….”

사람들이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정우현의 말을 숨죽여 경청했다.

“하지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적도 무엇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합심해 이뤄 낸 우리의 모든 것, 그러니까 함께 땀을 흘리고, 웃고, 그리고 때론 힘겨워도 서로 의지하며 앞을 보고 나아간 그 모든 시간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어떤 마법도 부리지 않아요. 그저 정직하게 우리가 함께 걸어온 발자취가 쌓이고 쌓여, 한순간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눈앞에 보일 뿐입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울지 마십시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 우리가 함께 이뤄 낸 일들을 보십시오. 떠올리고 바라보십시오. 어때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장소가, 그렇게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우릴 향해 환히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울지 말고 웃으십시오!”

정우현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소리 없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도, 입가엔 그 어느 때보다도 미소가 활짝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앞으로도, 멋지게 해내는 겁니다. 여러분과 함께한 그 시간을, 저 또한 영원토록 영광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그간 저 또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러고서 정우현이 연단 앞으로 나가 허리를 숙여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에 직원들이 하염없이 웃고 울었다.

* * *

그리고 2027년.

정우현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즉, 5년 간의 사무총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임기가 역시 얼마 남지 않은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정우현을 맞이했다.

이에 정우현이 대통령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는 작별하고 어딘가로 향했다.

“우현아!”

집이었다.

집에서 가족과 엘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어!”

그들은 정우현을 환영하기 위해 집을 한껏 꾸몄다. 풍선과 반짝거리는 조명을 달고 케이크까지 준비하며 그가 집에 오기만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집이 있다는 것은 좋았다. 그리고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더 좋았다.

정우현이 모처럼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