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하지만 정우현은 이내 실망하게 됐다.
푸틴이 러시아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살인 미수 현행범으로 터키 영토 내에서 체포됐던 푸틴은, 러시아 헌법상의 현직 대통령 불소추 및 불체포 특권을 앞세워 구금에서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사실 한 국가의 헌법상 특권은 해당 국가의 법률이 적용되는 영토에서만 유효하다.
즉, 러시아 대통령의 특권은 러시아 영토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터키가 러시아 대통령을 풀어 준 이유는 친러시아 세력이 앞장서, 러시아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국 영토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미수에 그쳤다고는 하지만, 푸틴은 엄연히 한 국가의 원수. 그것도 러시아라는 강대국 원수로서, 자국에서 그를 구금한 뒤 끝내 처벌까지 하는 것은 큰 위험이 있다고 그들 친러시아 세력이 판단했다.
이에 푸틴은 자유의 몸이 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본국에서는 당연히, 헌법상 특권으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 정우현이 독극물이 담긴 술을 마신 지 10시간이 지났다.
역시나 그의 몸은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이에 미국과 터키 측이 무척이나 안심하며 다시 한번 정우현의 천재성에 놀랐다.
그가 10시간 안에 독극물의 해독약을 만들어 스스로 복용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독제 따위 만들지 않았다. 지난번 에볼라 바이러스 때처럼 옆에 있는 사람이 독극물을 먹었으면 모를까, 자신 혼자 먹었기에 해독제는 애초 필요치 않았으니까.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은 푸틴이 러시아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분노했으나 이내 빠르게 생각을 바꿨다.
어쨌든 푸틴은 정치적 암살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다가 발각됐고, 심지어 그 범죄의 모습이 터키, 그리고 미국 측 인사라는 든든한 보증인들에 의해 목격된 데다 결정적으로 영상으로까지 촬영됐다.
정우현은 해당 영상과 푸틴의 암살 시도 사실을 즉각 전 세계에 전격 공개했다.
심지어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완벽하게 편집해 우후 스트리밍에 무료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그것도 유명 배우의 내레이션과 함께.
바로 브래드 퍼트였다. 브래드가 푸틴의 정우현 암살 시도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이에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물론 수십 년간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푸틴이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심지어 여러 차례 독극물 암살을 시도한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한데 다른 누구도 아닌 현직 유엔 사무총장을, 그것도 침략 전쟁 중에, 심지어 공개된 장소에서 버젓이 직접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에서 세상 사람들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경악했다.
-이거 무슨 개막장 3류 스릴러 영화도 아니고, 와, 실화냐. 진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
-감히 정우현을? 하. 푸틴은 곧 대가를 치를 것이며,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장담한다.
-선 넘었네요. 유엔 사무총장은 한 국가의 원수와 격이 같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공식 석상에서, 사무총장을 죽이려 해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
-오랜만이다. 형, 가리봉동 강철 주먹이다. 현 시간부로 형, 모스크바로 출국한다. 목적지는 크렘린궁, 목표는 푸틴 모가지 따기. 아윌비백.
모든 게 정우현이 의도한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실상 러시아의 이번 침략 전쟁 자체가 푸틴의 자충수였다.
70세가 넘어 노쇠해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는 흔들리고, 반체제 인사가 활동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민주화 운동이 연일 일어나고 있다.
즉, 모든 독재의 말로가 그렇듯 비참한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해결책은 역사상 숱한 독재자들의 해결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을 일으켜 국민의 눈을 밖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푸틴에게 있어 유일한 활로로 보였고, 결국 그는 그 계획을 단행했다.
한데 새 유엔 사무총장이 된 정우현의 적극적인 외교 정책과 글로벌 리더십에 전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결과, 그는 놀랍게도 정우현을 직접 죽일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엔 그래서 자신이 있는 크렘린궁으로 그를 데려오려 했다. 그럼 어떤 방식을 쓰든 간에 정우현의 목숨을 빼앗고 돌연사로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정우현이 낌새를 눈치채고 제삼국에서 볼 것을 역으로 제안했고, 결국 만남이 성사됐다. 비록 회담 장소가 바뀌었지만 전직 KGB 요원이었던 푸틴은 대담하게도, 자국에서 개발한 신형 독극물을 술에 넣어 출국했다. 정우현을 죽이기 위한 완전 범죄를 꿈꾸며.
한데 이 모든 계획이 발각되고 폭로되며, 푸틴은 전방위적인 위험에 빠졌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선에 있는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는 문제도 아니었다.
푸틴 그 본인이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민은 즉각 들고 일어섰다. 아무리 오랫동안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국민 위에 군림해 왔던 푸틴이라 해도, 이번 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타국의 국가 원수와 다름없는 유엔 사무총장을 암살하려 했던 사실에 국민이 거리로 쏟아졌다.
“푸틴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더해졌다.
“침략 전쟁을 중단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라!”
“푸틴은 러시아를 이끌 자격이 없다!”
“우리는 살인자를 뽑지 않았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작게 시작된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졌다.
“위대한 도스토예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칸딘스키의 나라인 러시아에 푸틴은 수치다!”
젊은 층이 주도했던 시위에는 급기야 노인과 미성년까지 가세했다.
타당!
이에 어느 날 푸틴이 비밀리에 군경에게 시위대를 향한 발포 명령을 내렸다.
단순 체포로는 걷잡을 수 없게 시위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곧 더 큰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간 푸틴 통치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세력들조차 그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다.
대통령이 자국민에 발포 명령을 내린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스스로 대통령으로서 자격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조직적으로 커졌으나, 진압은 더욱 격화됐다.
이에 정우현을 중심으로 유엔과 국제 사회는 더욱더 비난을 쏟아 냈다.
즉각 자국민 살해를 멈추라고 했다.
러시아로서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은, 고국의 본부로부터 명령을 받지 못한 지 이미 꽤 되었다. 보급은 끊기고, 사기는 저하되다 못해 바닥에 이르러 대치한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거나 총을 버리고 러시아로 돌아가는 사람도 생겼다. 즉 그들은 싸울 의지를 잃었다.
타당!
타다다당!
“으아아아악!”
푸틴의 유혈 진압은 계속됐다. 진압의 규모가 너무 크고 한편으로는 잔혹해, 유엔과 국제 사회는 연합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한데 그즈음, 푸틴이 결국 성명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이름하여 러시아 시민 혁명의 성공이었다.
* * *
푸틴은 끝까지 철저히 진압하려 했다. 하지만 피를 보면 볼수록 러시아 온 전역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이 더 많아졌다.
그런 시민들을 모조리 죽일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그는 항복했다. 그러고는 곧장 중국이나 쿠바에 정치적 망명을 꾀하려 했다. 이후 러시아의 신정부 치하에서는, 자신의 거취가 불안정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시위를 진압한답시고 수많은 국민을 죽였기에, 사형에 이를 수도 있었다.
이에 어느 날 새벽, 푸틴은 자택에서 비밀리에 빠져나와 보디가드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영욕의 세월은 지났다. 이제는 생존, 생존만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한데 그런 그의 앞에 일단의 승용차들이 와 푸틴을 막았다.
이번 혁명을 이끈 세력 중 급진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내전을 일으켜서라도 정부군과 푸틴을 완전히 붕괴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이다.
“…아니, 어떻게!”
푸틴이 방탄 차량 내에서 밖을 바라보며 크게 놀라 말했다.
“얼른 후진해! 후진하라고!”
기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해, 다들! 저들을 다 죽여 버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라!”
그럼에도 역시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푸틴 옆에 있던 보디가드가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아니!”
푸틴이 뒤늦게 상황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영면하십시오.”
탕!
옆에 있던 보디가드의 말과 함께 차 안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것으로 푸틴은 2022년 9월 어느 날 새벽, 모스크바 시내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중, 숨을 거뒀다.
푸틴의 기사 및 보디가드 팀은, 혁명 세력으로부터 사면 및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푸틴을 넘기거나 처단하기로 은밀히 약속했었다.
* * *
“…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군요.”
미국 뉴욕의 유엔 사무총장실.
정우현이 직원으로부터 푸틴 사망 소식을 듣고는 말했다.
푸틴의 자멸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언제 무너질지 시기의 문제였을 뿐.
물론 그는 우크라이나 침략 피해가 최소화된 상황에서 러시아 대통령이 목숨을 잃은 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러시아는 유혈 혁명이라는 뼈아픈 고통을 감수했고, 또 앞으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푸틴이 사라졌지만, 강력한 리더가 부재한 러시아의 상황이 불안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는 군부가 세력을 잡았다. 야욕이 넘치는 일단의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 있던 러시아군을 일부 모스크바로 돌아오게 한 뒤, 사회 안정을 명분으로 크렘린궁을 점거했다.
그러고는 우크라이나전을 가속화 및 전면화한다고 발표했다. 현 상황에서 그들이 세력을 탄탄히 하고 러시아 전역을 온전히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전쟁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인이야말로 전쟁의 주인공이니까.
“최악의 상황입니다.”
한국 서울.
정우현이 오랜만에 우 재단을 찾으며 말했다. 엘라를 만나기 위해서다.
정우현을 눈앞에 두게 된 반가움과 기쁨도 잠시, 엘라는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의 일을 떠올리며 답했다.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상황에서 유엔의 수장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정우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러시아의 군부가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합군이 들어설 수도 있지만, 잘못하다가는 주권을 침탈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군부와 충돌했을 때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고요.”
“…맞습니다.”
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일 두려운 건, 그들이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특히 핵이요.”
사실 정우현이 가장 우려하는 바도 이 점이었다.
러시아의 모든 미사일 버튼이, 군부의 통제 하에 있게 됐다.
그들은 현재 불안정한 집단으로서, 그 버튼을 두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즉, 최악의 경우 핵을 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승리고 뭐고,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기든 지든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세상이 파멸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죠?”
엘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우현을 보고 물었다.
이에 정우현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엘라.”
“예.”
“이번 사태에, 제가 유엔 회원국들을 소집하지도 않고, 하다못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이나 중국을 찾지 않고, 먼저 한국에 와 재단에 들러 엘라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정우현의 물음에도 엘라가 잘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는 한순간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벌리며 탄성을 뱉었다.
“아아.”
“맞습니다.”
정우현이 그런 엘라를 보고 말했다.
“아주 오랜만에, 어나니머스와 사토시 나카모토가 나설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