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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66)화 (166/200)

166화

중국 측 대표가 회의장을 빠져나간 유엔 총회.

“….”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정우현 사무총장을 바라봤다.

정우현은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고서는 입을 열었다.

“예정대로 안건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미 밝힌 대로, 유엔은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영토 침공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러시아 측에 즉각 철군할 것을 발표합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모든 해외 자금을 동결하고, 유엔 가입 국가의 대(對) 러시아 수입 수출 또한 모두 중단합니다. 러시아를 완전히 고립시키자는 얘기입니다.”

하고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우현이 각국 대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와 관련해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분?”

정우현의 말에 대표들이 눈치를 보더니, 몇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일곱 명이었다.

인도와 쿠바가 기권했고, 북한, 시리아, 벨라루스, 에라트리아는 반대를 했다.

모두 러시아와 가까운 독재 국가이거나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는 나라였다.

이에 정우현이 그들을 노려봤다.

마음 같아선 호되게 꾸짖고 뜻을 바꾸게 하고 싶었으나, 기권 또는 반대투표는 엄연히 총회에 참석한 대표들의 권리.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정우현이 마음대로 해 버리면, 저들이 옹호하는 침략국 러시아와 별반 다를 게 없게 된다.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처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아가 회의에 불참한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고 191개국 중 7개의 국가가 기권 또는 반대했기에, 안건 가결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도 했다.

“좋습니다.”

이에 정우현이 크게 말했다.

“즉시 러시아 침략 전쟁 규탄과 경제적 제재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유엔 총회가 끝이 났다.

* * *

사실 유엔 총회 결의안은 법적인 구속력과 강제적인 집행력이 없다.

유엔에서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은 딱 하나다. 바로 최강국 모임인 안전 보장 이사회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리 소속인 이상, 러시아 전쟁을 규탄하는 안건을 안보리 차원에서 이끌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구속력이 없는 총회 결의안이라고 해도, 유엔 가입국 모두가 모여 결정한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보니, 각국은 해당 결의안을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국제적 흐름에서 홀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회원국들은 보통 자발적으로 결의안을 지키게 된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를 향한 경제적 제재가 시작됐다.

나아가 침략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향한 각국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굴하지 않고 침략을 이어 나갔다.

이에 정우현은 다시 한번 유엔 총회를 소집해, 미국 등 강대국을 포함한 회원국들의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지치지 않았다.

러시아의 대통령이 무지막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독재자가 그렇듯, 자신의 정권 유지에 거의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다고는 해도, 힘이 받쳐 줘야 할 수 있는 게 또 전쟁이었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 나아가 전 세계가 고통에 빠진다.

왜냐하면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에너지 부문과 식량까지 러시아가 숨통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종식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이와 같은 상황을 떠올리며 정우현이 계속 궁리하다가는 한순간 사무총장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해당 전화기는 각국 최고 지도자와 직통으로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연결되어 있었다.

* * *

그리고 며칠 후 성사된 유엔 사무총장과 인도 총리의 만남.

정우현은 러시아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원인이, 현재 대 러시아 경제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과 인도는 각각 인구가 14억 명에 달하는 대국이다. 현재로서 세계 인구는 80억 명에 가까우니, 중국과 인도 단 두 국가의 인구만 합해도 세계 인구의 반절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

이 얘기는 200개국에 가까운 유엔 회원국이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도, 중국과 인도 두 나라가 해당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에 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러시아가 중국 및 인도와 계속해서 경제적 교류를 함으로써 이번 침략 전쟁을 지속할 여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정우현은 판단했다.

이에 정우현은 두 국가와의 접촉을 떠올렸다.

다만, 이내 중국은 생각을 접었다. 현재로서 세계 제2의 강대국인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두고, 이번 전쟁에서 우방인 러시아를 버리고 미국과 손을 잡는다는 시나리오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인도는 달랐다. 카스트 제도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인도는 어쨌든 헌법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큰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인구가 제일 많은 세계 최대의 나라인 중국이 일당독재 체제이기에, 사실상 인도야말로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다.

나아가 인도는 미국과도 친하다. 정치 체제나 경제는 물론, 심지어 군사 방면으로도 미국과 협력하고 있는 친미 국가가 바로 인도다.

그럼에도 인도가 유엔의 러시아 규탄에 기권표를 던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중국 때문이죠?”

정우현 사무총장이 인도 총리와 독대한 자리에서 즉각 말을 꺼냈다.

“…예, 맞습니다. 굳이 또 꼽자면 파키스탄도 있고요.”

인도 총리가 자신의 흰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러자 정우현이 곧장 말을 받았다.

“국경을 접한 중국과 파키스탄에 맞서, 유혈 분쟁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 인도에 가장 큰 무기 지원을 하는 국가가 바로 러시아죠.”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하고는 총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소련 시절부터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 중국을 견제하고 살아남는 데 있어 러시아보다 좋은 카드는 없는 실정입니다.”

하면서도 인도의 총리는 정우현의 눈치를 봤다.

국제 사회는 철저히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적자생존의 세계다.

명분을 따지면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규탄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세계적 제재에 동참할 수 없는 자국의 처지를 총리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는 정우현이 입을 열었다.

“러시아와 연을 끊으십시오.”

“…예?”

총리가 주름진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말했다.

이제까지 자신이 말한 걸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사무총장 정우현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별의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연을 끊으시고 제재에 동참하세요.”

“…그러면 우리나라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유엔 사무총장은 어디까지나 국제 기구를 이끄는 수장일 뿐이지 각국에 명령 권한이 있는 세계 대통령이 아니다.

즉, 사무총장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입장을 표명하든 어디까지나 주권 국가 입장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안이 될 뿐이다.

그런 그가 대체 무슨 수로 인도를 돕겠다는 건지 총리는 궁금해졌다.

“총리님, 제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십니까?”

“….”

정우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 * *

“보오오오오오오스!”

정우현의 개인 핸드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론 마스크였다.

정우현의 사임 이후, 명목상 우후 그룹의 일인자가 된 일론이었다.

회장은 공석으로 남아 두었기에, 그는 그룹의 사장으로서 우후를 이끌고 있었다.

“일론, 저번에 제가 말해 둔 건 준비 됐나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인도에 무기랑 원유를 싼값에 대량 공급하면 되지?”

“예, 맞습니다. 당장은 우후 입장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지만, 인도는 그야말로 경제적 잠재력이 거의 무한한 국가. 장기적으로는 우후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좋았어, 그럼 곧장 진행할게!”

전 세계 1위인 우후 그룹의 시가총액은 현재 6,000조 원에 이른다.

이에 반해 인도의 GDP는 약 3,000조 원이다.

즉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우후가 인도의 연간 생산보다 두 배는 더 큰 경제 규모를 자랑했다.

거기에 우후는 화성 탐사를 위한 우후-X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방산업체에도 진출했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한 미사일 기술과 무기를 위한 미사일 기술은 근본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에너지 사업에도 손을 뻗쳐 미국의 대형 원유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물론 우후는 전기차를 생산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시작을 했다. 하지만 전기 동력 자체는 완전한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다. 전기 생산 과정상 기존의 화석 에너지가 상당 부분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생 에너지인 수력과 풍력으로도 전기를 생산할 수는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만들 수 있는 전력의 양이 무척 적고 효율도 떨어진다.

나아가 정우현은 오랫동안 사업을 이끌면서 석유라는 전통적인 에너지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모든 산업이 여전히, 석유를 동력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우후의 힘을 키우기 위해, 미국의 오랜 원유 기업을 사들였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마침내 인도는 어느 날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 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이었다.

나아가 러시아로부터 무기 등 모든 물자의 수입 및 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는 곧장 패닉에 빠졌다.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의 절반을 한순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장 인도에 사람을 파견했다. 갑작스러운 제재를 재고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인도는 꿈쩍하지 않았다. 정우현의 힘을 빌려 우후 그룹의 힘을 얻은 이상 명분도 없이 러시아와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크렘린궁에 있는 러시아 대통령은 몹시 당황했다. 당장 인도라는 든든한 지원자를 잃은 것은 둘째 쳐도, 인도가 갑자기 왜 그렇게 태도를 바꿨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보원들을 파견해 끝내 알아냈다.

정우현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이자 전직 우후 그룹의 회장인 정우현이, 약 20년 전 테러 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모스크바 초청을 물리친 정우현이, 손을 써 이와 같은 사달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됐다.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갈다가, 급하게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에 자신의 뜻을 알렸다.

러시아 대사가 곧장 사무총장을 찾았다.

“사무총장님.”

이에 정우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대통령의 뜻을 알리기 위해 왔습니다.”

“하하, 뭐요?”

정우현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전 세계 193개국이 의무적으로 모여야 하는 총회에는 참석을 안 하더니, 자기들이 무언가를 원할 때는 이렇게 제 발로 저를 찾아옵니까?”

“죄송합니다, 그때는 상황이 있어서….”

“상황은 무슨!”

정우현이 소리쳤다.

“타국을 침략하는 게 정당한 상황입니까? 어서 썩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세요!”

“….”

러시아 대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럼에도 그는 이 말만큼은 해야겠다는 듯 천천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실상 사무총장인 정우현에게 이 말을 전하지 못하면,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가 무지막지한 대통령에게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몰랐다.

“…대통령께서 사무총장님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그것도 자신이 계시는 크렘린궁으로 사무총장님이 오시기를, 현재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의 뜻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요?”

이에 정우현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말했다.

“제가 거길 왜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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