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엘라와 일론에게 재단과 사업을 성공적으로 승계시킨 정우현.
해가 바뀌어 2022년이 되면서 그는 정식 10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정우현은, 특별히 올해의 의미를 되새겼다.
전생에 트럭에 치여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해가 바로 2022년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우현이 더 이상 앞날을 알 수 없으며, 살아가는 데 미래 지식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음을 뜻한다.
즉 인생이 처음으로, 어려워졌다.
하지만 두 번째 삶이 시작된 지 30년, 정우현은 그간 놀라운 모습을 보이며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은 물론, 다방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한 가운데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한마디로 힘을 키웠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힘이 미지의 시간인 미래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더욱더 성장을 가능케 하리라 확신했다.
그는 진정 그럴 힘과 자신이 있었다.
실상 두 번째 삶을 돌아봐도, 그가 미래 지식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이점을 누린 건 별로 되지 않는다.
인생의 초기 IMF 때 달러를 보유해 경제적 이득을 본 것과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해외 주식을 싼값에 매수한 것, 그리고 전기차와 비트코인이 히트 칠 것을 알고 해당 분야의 연구에 일찌감치 집중한 것 말고는 거의 없다.
그 외에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과 수학의 난제를 푼 것, 나아가 각종 사업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달리기와 격투에서 세계 제일의 사나이가 된 것은 모두 순전히 정우현이 스스로 노력해 이뤄 낸 결과다.
한편 그는 오히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미래 지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먼저 미국의 9.11 테러를 막은 게 대표적이었다. 나아가 우한시에서 발생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내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되리란 걸 알고 일찌감치 중국에 입국해 질병을 퇴치했다.
이렇듯 정우현은 애초 미래 지식만으로 삶을 살아온 게 아니기에, 그는 앞으로의 삶도 지금껏 해 온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 *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지 첫 달이 지났다.
정우현은 그동안 업무에 관해 파악하며 약 4만 명에 달하는 유엔 산하 기구 직원들을 이끌고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게 됐다.
실상 이토록 많은 직원을 이끄는 건 처음이지만, 예산은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하게 운용할 수 있었다.
정우현이 만든 우 재단이 유엔보다 기금 면에서는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우 재단은 정우현의 개인 자산에서 1% 규모로 기금이 연동된다.
정우현의 자산은 현재 400조 원이 조금 안 된다.
이 얘기는 재단의 기금이 4조 원에 가깝다는 얘기고, 결국 우 재단은 자금 면에서 유엔보다 최소 세 배는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거대한 규모의 기금을 운용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유엔의 재정을 운용하는 것 역시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직원들이 많은 것 또한 일을 하다 보니 금세 적응됐다.
유엔은 국제 기구다. 기업이 아니다. 직원들은 물론 하나같이 공무원이다. 즉 이들 집단은 완벽히 관료 체제다.
이 얘기는 아무리 인원이 많아도 관료 체제 특유의 피라미드형 직급을 따라, 최고위직인 정우현이 몇 명의 고위직 인사들만 잘 다루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들 고위직은 자신의 바로 아래에 있는 직급의 사람들을 관리했고, 아래 직급은 다시 중간 직급의 사람들을 관리하는 식으로 조직이 움직였다.
물론 정우현은 짧은 시간 놀라운 카리스마로 조직의 고위직을 모두 휘어잡았다.
처음엔 나이가 60에 가까운 고위직들이 정우현 앞에서 다소 뻣뻣한 행동을 보였다. 사무총장인 정우현이 무슨 말을 하든 버젓이 딴청을 피우며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때때로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정우현은 즉각 인사 발령을 통해 그들을 어려운 직위로 파견했다.
대표적으로 북유럽 출신의 한 장관급 인사를, 정우현과 연이 있는 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파견하는 명을 내렸다. 담당 업무는 콩고의 치안 및 풍토병 관리의 총책임자였다.
원래 없는 자리지만 정우현이 만들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그럴 권한이 충분히 있으니까.
이에 북유럽 출신의 고위직이 즉각 그를 찾으며 항변했다.
“말이 됩니까? 사무총장님. 저는 더운 건 못 참아요. 콩고 같은 나라는 가본 적도 없고요!”
이에 정우현이 즉각 답했다.
“명색에 직급이 USG나 되는 분이 현장 업무를 마다합니까? 콩고 상황 모르세요? 그곳에서 우리 유엔 직원들이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까?”
“아, 몰라요, 몰라! 제가 거길 왜 갑니까! 말단들이나 가서 일하면 되지!”
“……이보세요.”
정우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이미 발령은 났습니다. 콩고로 가시든가, 고국으로 돌아가시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그 다음 날 북유럽 출신의 고위직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고, 정우현의 말대로 침엽수가 울창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반감을 표하는 몇 명의 고위직들을 모두 길들이거나 쫓아냈다.
극적인 조치였지만, 거대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처사였다.
결정적으로 애초 자신이 연장자임을 내세워 정우현을 무시했던 고위직들은, 젊은 사무총장이 이끌 새로운 유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약 두 달이 흘렀다.
두 달 동안 정우현은 사무총장으로서 조직을 파악하며 끝내 완전히 장악했다.
거대한 조직이 슬슬 그의 손과 발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 24일.
정우현이 드디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첫 시험대에 올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우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돈바스 지역에서 계속 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데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전면 침공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침략국의 명분이야 이것저것 많았지만, 진짜 목적은 결국 자국의 세력 확장이었다.
그리고 사무총장의 권한으로서 즉각 총회를 소집했다
미국 뉴욕 UN 본부.
총회의장이 시끌시끌했다.
전쟁과 관련해 각국의 대표들이 설왕설래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우현이 연단에 서서는 크게 외쳤다.
“자, 모두 조용!”
정우현의 큰 목소리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급박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사무총장의 모두(冒頭) 발언을 듣고 회의를 진행할 때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다들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실 겁니다.”
“…….”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아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침략 전쟁은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며 전 세계적으로 규탄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유엔 차원에서 이번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명백히 규정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러시아 대표 왔습니까?”
아랑곳하지 않고 정우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조용했다. 러시아 측은 이번 총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오지 않았군요.”
정우현이 말했다.
“분명히 전 가입국 모두 의무적으로 총회의에 참석하라고 했는데,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러시아가 불참했습니다. 이에 사무총장으로서 향후 1년간, 러시아 측의 총회 출석 및 발언권을 박탈합니다.”
“……그건 과도한 조치입니다!”
순간 누군가가 말했다.
중국 측 대표였다. 러시아와 함께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자 이번 사건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중국 인사가 손을 들고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친 러시아 사람들의 보호를 위해 진군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러시아의 영토에 편입되기 위해 주민들이 투표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고,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번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
정우현이 분노한 표정으로 중국 측 인사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고는 결국 참다못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놀랐다.
유엔 사무총장이 이렇게 공식 석상에서 가입국의 대표에게 큰소리를 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무총장은, 오래전부터 대중에게 알려지고 친숙한 정우현이다.
항시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모든 프레임을 뒤로하고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준 정우현.
그런 그가 분노한 모습으로 거친 말을 하니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중국 대표님?”
아랑곳하지 않고 정우현은 압박을 계속했다.
그는 사무총장이 되기로 결심하면서 내심 생각했다.
더 이상 이전의, 밝고 곧잘 웃었던 정우현은 있을 수 없다고.
그런 부드러운 모습만으로는 냉혹한 국제 사회를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은 말이 국제 연합이지, 강대국의 틈에 끼어서 항시 눈치를 보는 조직이다.
세계는 약육강식이 통용되는, 어쩔 수 없는 힘의 논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우현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그와 같은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때론 드센 모습을 보이며 누군가에게 악역이 되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니까.
“자, 백번 이해해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정말 친 러시아 성향의 사람들이 있어 그들이 실제로 밟고 있는 땅과 함께 러시아 영토의 러시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
중국 측 인사는 정우현에게 기가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체적으로 분리 병합 투표를 하든, 당국의 주도 아래 그들을 설득해서 통합을 꾀하든 평화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죠. 왜 러시아가 엄연히 타국의 영토인 우크라이나에, 그것도 군대를 이끌고 진입합니까? 이게 침략이에요, 아니에요?”
회의장이 고요한 가운데, 정우현의 또렷한 목소리만이 실내에 울려 퍼졌다.
“다시 묻습니다, 중국 대표님. 침략이에요, 아니에요?”
그럼에도 중국 측 인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이 없자 곳곳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침략입니다!”
“당연히 침략이죠!”
“러시아는 철군하라!”
“철군하라, 철군하라!”
미국 및 유럽 그리고 세계 각국 자유주의 진영 측 인사들의 목소리였다.
“이봐요, 중국 대표님.”
“……예.”
“대표님의 논리대로라면, 또 중국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현재 중국 내에서도 다양한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심지어 분리 독립을 꾀하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인근 국가가 그들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군인을 이끌고 중국으로 진군해도 됩니까?”
정우현의 말에 중국 대표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지금 하는 말이 이와 같다는 거예요!”
정우현이 크게 소리쳤다.
“중국은 심지어 자국의 국민이라는 자들을 심각하게 탄압하고 있죠. 이에 유엔은 물론 타국이 뭐라고 하면 내정 간섭이라느니 주권 침탈이라느니 그딴 말을 곧잘 지껄이지 않습니까!”
“…….”
“그러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향한 내정 간섭과 주권 침탈은 그렇게 옹호합니까? 네, 중국 대표님? 말씀 좀 해 보십시오. 그런 식으로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바로 중국의 정의입니까?”
중국 대표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넘어 씩씩거리더니, 홱 뒤로 돌아 빠르게 걸어 총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사실상 빠져나간다고 하기보다는 도망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정우현이 그 뒷모습을 보고 크게 외쳤다.
“하! 총회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단 퇴장합니까? 사무총장으로서 앞으로 중국의 총회의 출석과 발언권을 반년간 박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