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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64)화 (164/200)

164화

짝짝짝짝!

정우현을 향한 193개국 대표들의 박수가 그칠 줄 몰랐다.

이에 정우현이 꾸벅 인사를 한 뒤, 마이크 앞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릴 적부터 숱하게 사람들 앞에서 연설한 정우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전 세계 국가 약 240개, 그중 80%인 193개국의 대표들이 눈앞에 있다.

그렇게 각국의 대표들이 정우현의 말을 듣기 위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실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인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오로지 정우현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차분하면서도 긴장된 모습이었다.

실상 총회의 의장이 정우현의 사무총장 취임을 선포한 순간, 정우현은 유엔이라는 거대한 국제 기구의 수장이 되었다.

즉, 앞에 있는 193개국의 대표들은 사무총장인 정우현과 관계없는 독립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는 그의 뜻을 항시 집중하고 존중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자유와 평화.”

정우현이 말했다.

“현시대, 이 이상의 가치는 없을 것입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검지를 펴고 하늘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끄는 유엔은 자유와 평화를 단순히 지키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전파할 것입니다. 지구상 곳곳에 아직도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또한 평화롭지 못합니다.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느끼는 모든 것들이 세계의 어떤 이들에게는 꿈일 뿐입니다.”

그러고서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청중을 둘러봤다.

새 사무총장인 정우현의 말에 제삼 세계 국가들 대표들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워졌다.

정우현이 순간 목소리를 높여 연설을 이었다.

“좋아하는 걸 좋다고 할 수 없는 자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는 자유!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없는 자유!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그런 자유가,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 꿈만 같은 자유입니다. 제가 이끄는 유엔은, 이런 자유를 반드시 쟁취할 것입니다!”

짝짝짝짝!

청중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한, 오늘 잠들면 내일 온전한 모습으로 눈을 뜰 수 있을지,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 위로 포탄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1년 아니 한 달 후 나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변함없이 살아 숨 쉴 수 있을지.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평화를,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끄는 유엔은 이런 평화를 또한 기필코 쟁취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정우현의 말에 청중들이 이제는 아예 환호성을 내지르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미국의 국부(國父) 페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동료들과 함께 자유를 쟁취해 놀랍고도 위대한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그럼 제가, 저 정우현이, 헨리의 그 말에 딱 한 단어만 추가해 보겠습니다.”

하고서 그가 비장한 표정을 하고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화! 자유와 평화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총회의장 내부가 순간 숙연해졌다. 아무도 정우현이 이처럼 열정을 갖고 뜨겁게 연설할 줄 몰랐다.

“이것이 사무총장으로서 제 마음가짐입니다. 이제 남은 건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여러분! 저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시겠습니까?”

정우현의 물음에 각국의 대표들이 잠시 가만히 있더니, 제각기 긍정의 대답을 했다.

“예!”

“그렇습니다!”

“믿습니다!”

이에 정우현이 그들을 살펴보고는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모두.”

하고서 곧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 말을 따라 하십시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자!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자!”

정우현의 말에 청중들이 또 잠시 가만히 있더니, 이내 그의 말을 따라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자!”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자!”

그 모습을 보고 정우현이 강건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좋습니다, 이상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이것으로 정우현의 유엔 사무총장 취임 연설은 끝이 났다.

193개국 대표들은 그칠 줄 모르는 환호성과 함께 계속 손뼉을 쳤다.

* * *

본격적으로 정우현이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기 전에, 몇 가지 작업을 선행(先行)했다.

바로 사업과 재단의 승계다.

정우현은 공식적으로 우후 그룹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즉, 명목상 물러난 것뿐만 아니라 아예 법적으로도 퇴진했다.

이로써 우후 그룹은 2인자였던 일론 마스크 중심 체제로 변환되었다.

다만 정우현은, 우후 주식의 지분을 정리하지는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데 있어, 모든 자산을 정리해야 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괜찮겠어, 보스?”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일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우현에게 말했다.

둘은 센트럴 파크에 있었다.

“하하,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습니까?”

정우현이 쾌활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 모두 보스가 피땀을 흘려 가며 일군 기업인데, 이렇게 한순간 물러나도 괜찮냐는 거지.”

“일론.”

정우현이 일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일론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홀가분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일론이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굵직굵직한 판단이 필요할 때, 보스가 항상 정확한 결정을 하고 지침을 내렸잖아. 그래서 오늘날의 우후가 있을 수 있었던 거고.”

“하하하하.”

정우현이 크게 웃었다.

“일론, 어울리지 않게 왜 그리 약한 소리를 해요? 천하의 일론 마스크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하고서 일론이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햄버거였다. 햄버거 두 개를 꺼내 하나는 정우현에게 건넸다.

“먹어 봐. 여기 센트럴 파크 맛집에서 산 햄버거야. 보스 주려고 가져왔어.”

“와우.”

정우현이 일론을 따라 포장지를 벗기고 얼른 한입 먹었다.

“어때? 맛있지?”

일론이 곧장 물었다.

“아아, 정말 맛있는데요.”

“으음, 보스가 이제 뉴욕에 있으니, 어쨌든 같이 자주 먹을 수 있겠군.”

“저 말고.”

정우현이 햄버거를 계속 먹으며 말했다.

“밑에 직원들한테도 잘해 주세요, 일론.”

일론은 조금 가혹한 상사였다. 자신의 기준이 워낙 높아서, 아랫사람들을 보면 항상 성이 차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월등한 사람은 세상에서 딱 한 사람, 오직 정우현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우현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하고, 그를 따랐다.

“…알았어, 근데 답답해서 말이지, 참.”

일론 또한 햄버거를 계속 먹으며 답했다.

그러다가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정우현을 불렀다.

“보스.”

“네?”

“돌아올 거지?”

“…네?”

“우리 우후로, 언젠간 돌아올 거지?”

“하하하.”

정우현이 환히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이에 일론이 안도하며 천천히 답했다.

“…그때까지 우후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게.”

정우현은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키는 것뿐입니까? 더욱더 성장시켜야죠, 일론!”

그러자 일론 또한 뒤늦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지. 그래! 화성, 화성으로 가야지, 하하하하하!”

* * *

그리고 한국의 우 재단 의장실.

의장석에는 정우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바로 엘라 로렌츠였다.

엘라가 정우현 대신 우 재단의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렇게 복잡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순간 전방의 커다란 출입문이 열렸다.

“…아아!”

엘라가 깜짝 놀라 탄성을 내뱉었다.

“우현 님!”

“엘라.”

정우현이 웃으며 인사했다.

“어떻게 여기 서울까지 오셨어요? 지금 뉴욕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본격적으로 타지 생활을 하기에 앞서 한국에 들렀습니다. 가족들도 보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하고서 정우현이 다정한 눈빛으로 엘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엘라도 이렇게 만나려고요.”

“…어머.”

엘라가 부끄러워 눈을 들지 못했다.

그녀의 흰 얼굴에 금세 홍조가 퍼졌다.

정우현은 그 모습이 재밌어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놀리지 마세요.”

“으음.”

정우현이 눈을 돌려, 엘라 로렌츠의 이름이 적힌 우 재단의 의장 명패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어때요, 엘라? 재단의 의장이 된 기분이!”

“…모르겠어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엘라는 오랫동안 정우현에게 가장 많은 힘을 실어 줬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정우현이 고민할 때마다 옆에서 한결같이 그에게 힘을 실어 줬고, 한편으로는 그를 이번에 유엔의 수장이 될 수 있게 설득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침내 정우현이 사무총장이 됨으로써 우 재단의 의장직은 공석이 됐다. 그리고 정우현의 뜻에 따라 자신이 의장직을 승계하게 됐는데, 정작 의장이 되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우현 님?”

“당연하죠, 엘라. 엘라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엘라는 어디까지나 사이버 세계에서 홀로 활동하는 해커 및 프로그래머였다. 그것도 익명으로.

그리고 정우현의 눈에 띄어 세상 밖으로 나와 일을 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정우현이라는 완벽한 조력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걱정이 됐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한 조직을, 그것도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엘라.”

정우현이 엘라의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예?”

“잠깐 생각해 봅시다, 이 재단의 시작을. 지금보다 훨씬 작았었던, 미약했던 그 시절을.”

“….”

엘라가 정우현의 말대로 과거를 떠올렸다.

정우현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커지고, 명망 높은 재단이 됐습니다. 그게 모두 누구의 덕분입니까?”

하고 정우현이 엘라의 손을 잡았다.

정우현의 손길에, 엘라가 순간 놀라고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어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엘라 덕분입니다. 엘라가 밤낮으로 실무에 힘을 쓴 덕분이죠. 그러니까 엘라.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해 온 것들을, 재단의 중심에서 컨트롤하기만 하면 돼요. 엘라가 이전에 하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 추이를 지켜보세요. 그러다가는 방향을 수정할 건 수정하고, 완수할 건 완수하는 등 낱낱의 일들을 개별적인 과업으로 인식하세요. 그것이 실무자가 아닌 감독자가 할 일입니다.”

그러면서 정우현이 엘라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엘라는 가슴이 몹시 두근거려서, 정우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솔직히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를 향한 떨리는 마음과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에 오로지 맡은 일을 무조건 잘해야겠다고만 끊임없이 생각하며 되뇌었다. 그녀는 빨라지는 심장 박동과 함께 이러나저러나 우 재단의 의장으로서, 재단을 완벽하게 잘 이끌어야겠다고 굳은 마음을 먹고 있었다.

사실 이는 정우현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똑똑한 엘라는 이성적인 만큼이나 감성적이다. 단순히 말로써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을 넘어, 이렇게 약간의 스킨십과 함께 마음을 흔들면 그녀의 의지가 불타오르리라 확신했다.

정우현을 향한 커다란 마음이, 의장으로서 재단을 잘 이끌고자 하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번지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재단을 잘 이끄는 것이, 정우현의 기대와 믿음에 가장 잘 부응하는 것임을 그녀도 알고 또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베를린의 작은 집에서 저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정우현이 계속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엘라는 마지못해 잡혀 있다는 듯 짐짓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설레는 마음에 상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때도 엘라는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완벽하고 멋지게, 그리고 아름답게 재단을 이렇게나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그런 엘라가 이제 의장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재단이 더욱 탄탄해지지 않겠습니까?”

정우현이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엘라는 현기증을 느끼며 새빨간 얼굴로, 정우현은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그러고는 숨을 거칠게 쉬며 자기 암시를 하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 엘라 로렌츠. 할 수 있습니다. 우현 님의 뜻을 따라… 의장으로서 우 재단을 더욱더 크게 성장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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