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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63)화 (163/200)

163화

“뭐야.”

술잔을 엎어 놓고 술을 끊겠다고 하는 구태호.

정우현이 그런 친구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술을 끊는 거랑, 내가 사무총장 후보가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상관 있지.”

구태호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보다 우현이 네가 더 잘될 수만 있다면야, 내가 얼마든지 희생을 하겠다 이거지.”

“…참나.”

정우현이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구태호의 이상한 언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테이블 옆으로 나가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야, 뭐하냐.”

“네가 오케이 할 때까지.”

구태호가 말했다.

“나 절대 안 일어난다.”

“구태호!”

정우현이 소리쳤지만, 구태호는 정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론 구태호는 취기에 힘입어 무릎을 꿇었다. 즉 일종의 객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고 있었다.

친구 정우현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행동밖에 없다는 것을.

정우현을 논리적으로 말로써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보다는 행동으로, 오랜 친구의 절박한 부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게 훨씬 낫다.

이것이 구태호의 생각이자 전략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

“야, 일어나라니까!”

“안 돼. 못 일어난다.”

“구태호.”

하고는 정우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한숨을 깊이 쉬더니, 끝내 다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았다.”

“오.”

“일단 알았어, 그러니까 좀, 제대로 앉아라. 다리 잘라 버리기 전에.”

“진짜? 진짜 후보로 나간다는 거지?”

구태호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확인차 물었다.

“알겠다고.”

“좋았어!”

이에 구태호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거의 본능적으로 술을 따라 마시려다가, 정우현의 눈치를 슬쩍 봤다.

아까 전 스스로 자신의 술잔을 엎어 놓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불과 약 5분 전에 정우현이 사무총장이 되면, 자신은 술을 끊겠다고 어쨌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우현이 후보가 되겠다고 한 마당에, 기분이 좋아 당장이지 술을 마시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엎어 놓은 술잔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구태호.

결국, 정우현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먹어라, 먹어, 술.”

“…진짜?”

“그래, 개가 똥을 끊지 네가 술을 어떻게 끊냐. 그러니까 먹어.”

“하하하, 그래! 아, 나 진짜 끊으려고 했는데, 네가 먹으라고 해서 먹는 거다!”

하고 다시 헛소리를 지껄이며 구태호가 크게 웃고는, 자신의 술잔을 손에 쥐고 곧장 술을 따랐다.

“하하하하! 친구가 무려 유엔의 황제가 된다고 하니, 축하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고는 사케를 따른 술잔을 정우현 앞에 내밀었다.

“자, 한잔하십시다, 사무총장님!”

“…아 좀, 오바하지 말고.”

하고 정우현이 구태호와 잔을 부딪치고는 술을 마셨다.

친구 녀석 때문에 얼떨결에 하겠다고 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무총장을 하는 쪽으로 슬며시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구태호의 객기를 받아들인 것 같기도 했다.

“와하하하, 좋다! 기분 좋아!”

어쨌거나 구태호는 마치 자신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양 무척 기뻐했고, 계속해서 술잔을 내밀었다.

정우현은 물론 취하지 않는 술을 연거푸 마시며,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2차 가자 우현아! 내가 쏜다!”

두 시간 후, 구태호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크게 말했다.

“야, 그렇게 취했는데 뭘 또 2차냐. 그리고 쏘긴 또 뭘 쏴. 아직 학생이잖아, 너.”

“어허, 나 돈 많아! 돈 많다고!”

하고서 구태호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한 화면을 보여 줬다.

통장 잔고였다.

놀랍게도 구태호의 통장에는 달랑 15만 원이 있었다.

돈벌이를 하지 않는 구태호가 돈이 많을 리 없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유명 법조인으로서 가정환경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구태호는 용돈을 조금씩 타 썼다. 어릴 때부터 검소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크게 말했다.

“하하하하! 어때, 나 부자지?”

“…취했다, 취했어, 너.”

“하하하하, 우현아! 돈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하더니 그가 자신의 가슴을 오른쪽 주먹으로 쿵쿵 치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신념! 바로 이 가슴속에 있는 신념이지!”

“….”

“그러니까 너는 이대로, 세계를 무대로! 황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황소가 아니라 무소 아니냐.”

“어쨌든, 그대로 가라는 거다!”

하더니 구태호가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하하하,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크게 혼잣말까지 하며.

“….”

정우현이 그런 친구의 뒷모습을 깊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고서 깊은 밤 계속되는 술자리에, 구태호는 결국 또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와 함께 그의 통장 잔고는 0원이 되었다. 그가 고집을 부려 결국 있는 돈을 몽땅 술값으로 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를 안전하게 귀가시키고 청담동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정우현.

스마트폰을 켜고 몇 번 액정을 터치했다.

그러고는 아까 본 구태호의 계좌에 100만 원을 입금했다.

* * *

“찾으셨습니까, 우현 님.”

우 재단의 의장실.

정우현이 엘라를 눈앞에 두고 말했다.

“엘라, 저 결심했습니다.”

“…어떤 결심이요?”

“후보직을 수락하기로 했습니다.”

“…아아.”

엘라가 잠시 놀라더니 금세 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엘라와 일론, 그리고 구태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정우현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는 한편 그는 깨달았다.

그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하고 싶은데 워낙 갑작스럽고,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그저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일론이 이야기한 대로 사무총장이 되면 행동상 제약이 따르지만, 그리 큰 제약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구태호가 객기를 부려 얼떨결에 하겠다고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진정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곧 온 세상이 환영할 것입니다.”

엘라가 계속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정우현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을 추진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정우현 측은 미국에 후보직 수락 의사를 밝혔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곧장 이와 같은 뜻을 반갑게 맞이했다.

정우현은 워낙 어릴 때부터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이름을 알리며 친숙한 모습을 보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남은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였는데, 두 국가 모두 즉각 찬성했다.

일단 중국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불과 2년 전에 작은 연구팀을 이끌고 우한시로 들어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단숨에 종식시킨 사람이 바로 정우현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우현은 당시 얼마든지 비싸게 책정할 수 있는 낱낱의 약값을 일절 받지 않고 중국에 무상 공급했다. 이는 중국 당국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정우현이 중국의 이웃 나라인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거기에 러시아 또한 찬성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19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인질 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이가 또 정우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당시의 대통령이 2021년 현재에도 대통령이었다.

즉,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이래, 중간에 3선 연임이 불가능한 러시아 헌법에 따라 잠시 형식적으로 총리로 물러난 후, 다시 대통령이 되어 현재까지도 역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20년이 넘게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정우현이 유엔 사무총장 후보가 되는 데 있어서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정우현과 연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러시아의 대통령은, 단 한 사람의 사상자도 없이 테러를 해결한 정우현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그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으로 초청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러시아 또한 즉각 찬성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안보리 상임 이사국 다섯 국가가 모두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정우현을 확정한 가운데, 총회에 이와 같은 뜻이 전달됐다.

동시에 드디어 언론에도 발표가 됐다.

정우현이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나선다고.

이에 세상이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올 것이 왔구나, 정우현. 세계 최강 정우현.

-인류가 진보하긴 하나 보다, 정우현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살맛 나는 지구가 되겠습니다, 오예, 기분 좋아요!

-한국인입니다. 우리 정우현. 대한민국 대통령 해야 하는데, 갑자기 웬 유엔인가요. 아쉽네요.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무한 응원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정우현.

한데 세계 일각에서는 정우현 사무총장 후보에게 제동을 거는 목소리도 있었다.

바로, 유엔 사무총장의 대륙별 순환 관례를 어겼다는 얘기다.

이번에 물러나는 유럽 출신의 사무총장 이전에 한국인이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니, 또다시 한국인인 정우현이 사무총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목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자 현시점 세계 최대의 강국인 두 나라가 즉각 나서서 정우현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은 대륙별 순환은 어디까지나 관례일 뿐, 원칙이나 규정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즉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예외가 있을 수 있고, 정우현은 그런 또 하나의 예외일 뿐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좀 더 직설적으로 의사를 표명했다. 관례고 규정이고 다 떠나서 정우현보다 더 나은 적격자가 있으면 한번 추천해 보라는 식이었다.

누가 후보로 나오든, 정우현을 뛰어넘을 사람은 없기에 정우현이 사무총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사무총장을 확정 짓기 위해 열린 유엔 총회.

총회의 의장이 연단에서 새 사무총장 임명 건에 관해 밝히고는 참석자들에게 뜻을 물었다.

즉, 193개국 대표자들에게 정우현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해도 되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이에 맨 앞에 앉아 있던 안보리 상임이사국 다섯 국가의 대표자들이 먼저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이에 뒤에 앉아 있던 각국의 대표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북미와 유럽 및 정우현의 국적인 대한민국이 속한 아시아는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대표들까지 힘차게 손뼉을 쳤다.

안보리 추천 후 사무총장 후보의 총회 인준은 별도의 투표가 없다. 관례상 이처럼 쏟아지는 박수가 회원국들의 인준이다.

즉, 각국의 대표자들이 현재 손뼉을 치며 정우현의 사무총장 취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우현은 애초 글로벌 스타다. 거기에 수학적 업적과 각종 사업 활동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무척 친숙하고 인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런저런 질병을 퇴치하고 약을 싼값에 세계에 공급해 역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특히 빈곤한 국가의 사람들에게 그치지 않는 칭송을 받고 있다.

이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삼 세계 사람들이 정우현을 기쁘게 맞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올해 상반기 정우현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입국해 위험을 무릅쓰고 에볼라를 종식시키고, 내전까지 멈추게 것에 관해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열렬히 그를 환영했다.

“그럼, 이것으로 결정됐군요!”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총회의 의장이 크게 말했다.

“제10대 유엔 사무총장, 한국의 정우현 님을 소개합니다!”

이에 연단 뒤편에 앉아 있던 정우현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의장의 안내를 따라 연단 앞에 섰다.

유엔 가입국인 193개국의 대표들이 하나같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정우현을 바라봤다.

그들 중 일부는, 오래전 티브이로 처음 본 어린아이가 이렇게나 장성해서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했다.

하지만 그만큼 더 기쁘고 즐거웠다.

글로벌 스타가 명실공히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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