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콩고 내 정우현의 활동이 궁금해 지구 밖 인공위성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디지털 시스템을 해킹한 엘라 로렌츠.
“하하하, 엘라도 참, 대단하네요.”
정우현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이에 엘라가 대답했다.
“콩고 내 반군이 정우현 님의 가르침을 따라 평화 협상을 벌이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고, 정우현 님과 반군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 직감하고 찾아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하고서 엘라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전혀 예상 못 했네요. 우현 님.”
“예.”
“저 다짐했습니다, 이제부터 정우현 님이 세상 어딜 가든 따라다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서는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담합니다, 제가 곁에 있었다면 우현 님은 이런 위기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엘라. 저는 제가 겪은 일을 위기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위기라고 해도 모두 제가 극복할 거니까 상관없고요. 오히려 위기는 기회다! 뭐,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하.”
“….”
엘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우현이 다시는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 *
정우현을 향한 세계인들의 칭송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2021년 말, 일단의 국제적 여론이 형성됐다.
정우현이 국제 사회에 전면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단순히 사업이나 재단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국제 기구였다. 정우현이 국제 기구의 수장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세계 보건 기구, 즉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의 사무총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정우현은 헤르페스 3형과 변종 코로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까지 총 3종의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실상 그중 단 하나의 바이러스만 없애도 길이 남을 업적이었는데, 셋 모두를 없애버렸다.
단 하나의 전염병만 유행해도 질병을 차단하는 데 급급했고, 결정적으로 퇴치까지 효과는 미미했던 기존의 WHO를 보며 세상 사람들은 답답해하고 있었다.
한데 일찍이 유명 인사였던 정우현이 어느 날 제약 회사를 설립해 혜성처럼 각종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었다. 심지어 출시된 약은 원가에 가깝게 저렴하게 보급을 했다.
믿기 어렵게도, 치사율이 90%에 달하는 에볼라를 퇴치하기 위해 바이러스의 진원지까지 찾아가 환자들을 낫게 하고 질병을 연구하는 성자의 모습을 보였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서 정우현에게 아무런 국제적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에 관해 사람들이 정우현의 입장 표명을 바라는 가운데 상황은 색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UN 사무총장의 연임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이유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국가 중 한 국가가 그의 연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추천과 총회의 인준으로 임명된다. 다만 여기서 총회의 인준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안보리의 추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라도 반대한다면 사무총장이 될 수도, 그리고 연임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임 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2차 세계 대전의 승전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현시대 유엔은 2차 대전 직후의 세계 질서를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다섯 국가 중 중국이, 현직 UN 사무총장의 연임을 반대했다.
우한시 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질 때 유엔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현 사무총장은 과거 난민 문제로 중국을 압박한 적 있었다.
그는 사무총장이 되기 전 유엔 난민 기구 최고 대표를 역임할 당시 난민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런 그가 과거 중국이 탈북자들을 북한에 강제 송환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에 중국이 곱게 보지 않았으나, 그가 사무총장으로 선출될 시에는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의 눈치를 보느라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한데 이번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건으로 기회를 잡아 기어코 반대해, 연임을 좌절케 했다.
정우현에 의해 변종 코로나와 에볼라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가운데, 유엔과 세계 보건 기구는 대체 무얼 하고 있었냐는 뜻이었다.
이에 유엔 사무총장은 공석이 됐다. 다가오는 2022년 1월 1일부터 새 임기가 시작되어야 하니, 새 후보자를 찾고 총장으로 임명하기까지 시간이 촉박했다.
그러는 와중 자연스레 한 사람의 이름이 언론을 장식했다.
정우현이었다.
세계 보건 기구 사무총장으로 거론되던 정우현이 아예 모든 국제 기구를 총괄하는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거론됐다.
정우현은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디 공직은 물론 국제 기구의 지도자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직원도 아니고, 약 4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이끄는 유엔의 사무총장을 하기에는 국제 기구에서의 경험이 전무하기에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말았는데, 놀랍게도 안보리 상임 이사국 중 하나인 미국이 정우현을 실제 후보자로 추천했다. 그리고 이내 영국과 프랑스가 동의하고 나섰다.
즉, 정우현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시작됐다.
유엔 사무총장의 자격은 딱히 없다. 그 흔한 나이 제한 같은 자격도 없다. 다만 안보리 상임 이사국 다섯 국가 출신의 인사는 임명될 수 없다는 것, 대륙별로 순환해서 사무총장이 될 수 있다는 것 등 어디까지나 일종의 관례가 있을 뿐이다.
정우현은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안보리 상임 이사국 출신이 아니다. 문제는 대륙별 순환 관례인데, 물러나게 된 포르투갈 출신 사무총장 이전의 사무총장이 역시 또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만 엄연히, 새 후보자가 될 정우현 이전의 사무총장이 유럽 출신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심지어 역대 사무총장을 보면 1대와 2대 총장이 각기 노르웨이와 스웨덴 국적으로 같은 유럽인임에도 반복해서 역임했고, 6대와 7대는 또 각기 이집트와 가나 국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이 반복해서 역임했다. 즉 대륙별 순환 관례가 엄밀히 지켜진 것도 아니었다.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먼저 정우현을 지지했다. 그들이 정우현을 꼽은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정우현을 지지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신적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그를 통해 별다른 이익을 취하지 않는 것에 진정 인류의 복지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확신했다. 나아가 결정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내전을 중단시키고 평화 협상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강력한 리더십과 소통 능력을 높이 샀다.
실로 콩고의 내전 종식은, 그간 유엔을 포함한 그 어떤 국제 기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평소 괜한 갈등을 일으킬 만한 별다른 정치적 언행도 없고, 완벽에 가까운 깨끗한 사생활을 유지하며 나아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세평(世評)도 한몫했다.
이에 진정한 후보자가 되기까지 중국과 러시아의 찬성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정작 정우현 본인이 유엔 사무총장의 후보자로 나서는 것을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 그를 전면에 내세워 봤자, 정우현 본인이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나가셔야 합니다, 우현 님.”
우 재단 의장실.
엘라가 눈을 반짝이며 정우현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무조건 나가셔야 해요. 유엔입니다. 전 세계 193개국이 가입된 세계 연합의 수장이에요. 그런 자리를 마다하시면 안 돼요.”
“…하지만 엘라.”
정우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딱히 그런 자리를 생각한 적 없습니다. 보세요, 사업과 재단, 그리고 영화 등 저는 이제껏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는 와중 국제 기구를 이끌겠다든가,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든가 하는 바람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유엔이라뇨.”
“음, 우현 님이 하신 것들을 보세요.”
그러고서 엘라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줬죠. 또 각종 신기술 사업으로 세상을 훨씬 발전시켰어요.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재단은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인류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유엔과 다를 바 없는 뜻을 펼쳐 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죠. 그런데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멀게 느껴지십니까? 제가 보기엔 우 재단의 의장이라는 자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요?”
“아닙니다, 많이 다릅니다.”
정우현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 재단은 말 그대로 제가 자금을 출연해 만든, 저의 재단입니다. 즉 제 뜻대로 저만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그 거대한 국제 기구는 어떻습니까? 세계 193개국의 연합이라고는 하지만, 몇몇 강대국들의 틈에 끼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죠.”
“예, 그래서 더 하셔야 합니다. 아니, 그래서 오직 우현 님께서 사무총장이 되셔야 합니다.”
엘라가 열망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말했다.
“왜냐하면 오직 우현 님께서, 그런 강대국들 틈에서 약소국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균형적인 세계 발전을 꾀해 영구적인 평화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우현 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역사는 강자를 견제할 장치가 마땅하지 않을 때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보여줍 니다. 그래서 애초 안보리 상임 이사국 출신의 사람은 사무총장이 될 수 없다는 관례가 생긴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우현 님.”
하고 엘라가 이번에는 간곡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디, 부디 후보자가 되어 주세요. 그래야만 세상이 더욱 살기 좋아지고, 인류는 한층 더 도약하게 됩니다.”
“…으음.”
엘라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려 유엔의 사무총장이다.
유엔 헌장 97조 및 100조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어떠한 정부 또는 당국으로부터도 지시를 받지 않는 수석 국제 공무원이다.
심지어 한번 임명되면 최소 5년 동안 임기를 지내야 한다.
즉,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하고 말 자리가 아니다.
한데 그런 일을 제안받았다.
“일단은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우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엘라에게 말했다.
그러자 엘라가 다시 한번 강조하며 답했다.
“예,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주세요. 그것이 정우현 님을 더 영예롭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며칠 후, 미국에 있는 일론에게 전화가 왔다.
“보오오오오스!”
“예, 일론. 무슨 일 있나요?”
“당연히 있지. 무조건 있어!”
“…뭐요?”
“그거, 하지 마. 절대 하지 마!”
갑작스러운 일론의 말에 정우현이 일단 잠자코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인가 뭔가 그 이상한 거, 절대 하지 마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