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60)화 (160/200)

160화

“….”

반군의 리더가 정우현의 말에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무장을 해제하라는 말에 당연히 반감이 들었지만, 정우현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없앤 사실을 떠올리면, 최소한 지금만큼은 순응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뒤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자신의 부하 대원들까지 정우현을 깊이 존경하는 게 느껴졌다.

즉, 정우현은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우습게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정우현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리더 본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지역 주민들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총을 버리는 게 옳다. 정우현은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리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소. 하여간 나 또한 이 지역에 거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이오.”

그러고서 그가 뒤편의 헬기에 시선을 옮겼다.

정우현이 반군으로부터 탈취한 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엔군으로부터 수거당하고, 정식 유엔군의 헬기가 연구소에 대기하고 있었다.

“저걸 타고 공항으로 가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콩고에서, 애초 헬기를 타고 이동하려는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육로로 이곳 북키부까지 오는 게 너무 험난하다 보니, 공중으로 다녀야만 했다.

“아쉽소, 내가 편히 모시려 했는데.”

정우현이 리더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곧장 물었다.

“뭐라고요?”

“말 그대로라오.”

하고선 리더가 뒤로 돌아 자신이 타고 온 커다란 군용 트럭에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당신이 곧 떠날 거라는 얘기를 들었소.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서 공항으로 안전하게 바래다주려고 했지.”

그러니까 이곳에 오기까지 반군이 습격한 것과 달리, 돌아갈 때는 육로로 직접 안전하게 태워 준다는 얘기였다.

“….”

의외의 말에 정우현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무려 에볼라를 없앴는데.”

리더가 계속 말했다.

“이 정도 예우는 당연한 것 아니겠소. 정부군과의 전투야, 뭐 나중에 하면 될 일이고.”

“말씀 잘 하셨습니다.”

정우현이 곧장 말을 받았다.

“어쨌든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러고서 정우현이 리더의 뒤편에 있는 마을 주민들과 대원들을 둘러보고 재차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얘기한 대로, 전투는 당장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반해 에볼라는 당장 치료해야 할 질병이죠.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이곳 콩고에서 에볼라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거.”

“….”

정우현의 말에 리더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제가 에볼라를 없앴기에 특별히 친절을 베풀겠다고요. 그 일환으로 어떠한 위협도 없이 육로 상 교통편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죠. 그렇다면 이제 제가 역으로 제안하겠습니다. 전쟁을 멈추십시오. 그럼으로써 당신은 저보다 훨씬 많은 콩고 국민의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정우현의 말에 주위에 있던 마을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질병보다 두려운 것이 전쟁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조국 이곳 콩고에서.”

정우현이 계속 말했다.

“저보다 훨씬 중요한 결정을 하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고서 그가 뒤로 돌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선 전쟁을 멈추고, 제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고서 다시 엄규환 및 유엔군에 둘러싸여 헬기로 돌아갔다.

반군의 리더는 그런 정우현의 뒷모습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기 시작했다.

정우현이 마침내 헬기에 탑승했다. 이번엔 직접 조종하지 않았다. 유엔 소속 전문 헬기 조종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공으로 헬기가 뜨는 가운데 정우현이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마을 주민은 물론, 반군 소속 대원들 심지어 리더까지 그러고 있었다.

그러고는 한순간 크게 외치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그들이 마침내 작은 점처럼 멀어져 보일 때까지, 커다란 함성이 계속해서 정우현의 귀에 들렸다.

“…사랑합니다, 정우현!”

* * *

정우현이 한국에 돌아왔다.

전용기에서 내려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유명 언론이 온통 그에게 달려들었다.

“에볼라를 완벽히 퇴치했다는 게 정말 사실입니까?”

“콩고민주공화국은 내전 중인데, 대체 어떻게 활동하신 건가요?”

“한 소식통에 따르면 반군과 대치까지 하는 등 위험천만한 일을 겪으셨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등등 온갖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우현이 경호 차량에 탑승하기 직전 짧게 말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현재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겁니다. 저와 제 사람들은 모두 안전합니다.”

그러고는 활짝 웃어 보이며 한마디를 덧붙이고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질 겁니다.”

이에 기자들이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정우현 님. 정우현 님!”

* * *

시간이 조금 흘러 정우현이 만든 신약은 곧 아프리카 전역에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에볼라를 앓고 있던 환자들은 모두 건강을 회복했고, 더 이상 바이러스가 퍼지지도 않았다.

즉, 에볼라 바이러스가 완전히 종식됐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정우현을 칭송했다.

-정우현 덕분에 인류는 새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시대로.

-만세! 만세! 정우현 만만세!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보다 정우현이라는 존재 하나가 훨씬 더 강력하다.

-뭐 하는 겁니까, 모두. UN이든 세계 정부든 가상의 정치 조직이든 뭐든 정우현을 어서 세계의 대통령으로 만들자고요. 그것만이 우리가 영영 번영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서아프리카에서 정우현 님의 치료제를 맞고 건강을 회복한 20대 남자입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손가락마저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는데 이렇게 지금, 멀쩡히 살아서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의사의 말에 따르면 저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야 했거든요. 감사합니다, 정우현 님. 정우현 님께서 주신 새 삶, 눈물겹도록 값지게 살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우현 님이 언제 어디서 무얼 하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모든 것을 다해 정우현 님을 응원하고 따를 것입니다.

한편 이내 콩고에서 놀라운 소식이 또 들려왔다.

북키부를 거점으로 오랫동안 정부군과 대치한 채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했던 반군의 리더가, 휴전을 선언한 뒤 정부와 평화 협상에 나서리라는 뉴스였다.

반군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콩고를 깊은 수렁에 빠트렸던 에볼라가 종식된 만큼 전쟁 또한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

또한, 이 모두 콩고의 성자가 된 정우현의 위대한 가르침 덕분이라고도 밝혔다. 정우현이 북키부를 떠나기 직전, 잠깐이나마 그와 대화를 나눈 반군 리더가 큰 깨달음을 얻어 이처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에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정우현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번엔,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조명이었다.

바이러스의 종식은 물론 엄청난 일이지만, 한 나라가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에 들어서는 건 또 다른 의미로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였다. 정치 사회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바이러스와 달리, 세상 거의 모든 요소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일이기에 훨씬 더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하다.

한데 그런 문제를, 정우현이 해결했다는 것에서, 이제껏 그가 이룬 업적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게 됐다.

즉, 정우현은 한 국가의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의 물꼬를 텄다.

물론 실제 휴전을 넘어 종전에 이르러 내전이 완전히 끝나고, 콩고에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오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화합을 위해 첫발을 떼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대단한데.”

청담동 정우현의 집.

아버지가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이지만, 전쟁을 멈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아, 다행이네요.”

이에 정우현 또한 조금 놀라며 답했다.

바이러스 정도는 시간만 있으면 자신의 힘으로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를 넘어 국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키부를 떠나는 날, 리더에게 전쟁을 멈추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이 괜한 전투로 인해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휴전을 한단다, 그것도 평화 협상을 벌이며.

그제야 정우현은 자신의 힘을, 정확히 하면 국제 사회적 힘과 위상을 뒤늦게 객관적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우현아.”

순간 아버지가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정우현을 보며 말했다.

“예?”

“나, 다 들었다.”

“뭐요?”

“너, 콩고에서, 총을 든 반군과 대치하고, 헬기를 직접 조종하고, 심지어 바이러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마구 뛰어다녔다며.”

“…아.”

“엄 실장한테 다 들었어. 아주 그냥, 무용담처럼 얘기하더라.”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랬었네요.”

“…음, 우현아.”

하고서 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너는 완전한 성인이고, 또 스스로 판단해서 알아서 잘하는 것도 알지만 아빠는 걱정되는구나. 행여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하하하, 걱정 마세요, 아버지. 무슨 일이든 저는, 슬기롭고 용감하게 극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 아빠도 널 믿는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러고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엄마랑 동생한테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마라. 놀라며 걱정할 테니.”

“…하지만 제가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계속 모르실까요? 콩고 쪽에서도 얼마든지 목격담 같은 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이어서.”

“에이, 그럴 땐 아니라고 시치미를 뚝 떼면 되지.”

“음….”

하고서 정우현이 한순간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고는 아버지가 늠름한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하여간 고생했고, 잘했다. 멋지다, 내 아들.”

정우현 또한 아버지를 끌어안으면서도, 이전보다 아버지의 품이 많이 작아진 것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 서글펐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만큼,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더 잘하고, 더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리라 다짐했다.

* * *

어머니와 동생이, 콩고에서의 일을 자세하게 모른다고 해도 이내 그 모든 일을 누구보다 낱낱이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우현 님.”

엘라였다.

엘라 로렌츠가 어느 날 상기된 표정으로 의장실을 찾았다.

“예?”

“이것 좀 보세요.”

놀랍게도 엘라의 디지털 기기 속에는, 콩고의 반군 헬기 기지와 격리 병원에서의 정우현이 마구 활보하며 활약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모두 담겨 있었다.

“…이런.”

정우현이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엘라.”

“예.”

“더 이상 해킹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지만.”

엘라가 정우현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정우현 님이 걱정되는 마음에 그랬습니다….”

엘라는 그러니까, 인공위성을 해킹했다.

미국은 물론 러시아의 모든 인공위성뿐만 아니라 북키부 내 격리 병원의 CCTV까지 해킹해 정우현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정우현이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