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크아아아악!”
엄규환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우현은 피를 토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데 엄규환이 보이지 않았다. 의료진들이 누워 있는 그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우현이 즉각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악!”
“…뭐야!”
“어떻게!”
의료진들은 물론 방호복을 입지 않은 정우현이 병실에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랑곳 않고 정우현은 엄규환을 주시했다.
“하아악.”
위독했다, 정말 위독했다.
출혈열이 심각했다. 입은 물론 코, 그리고 눈까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엄규환은 정신의 끈을 붙잡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 희미하게 정우현이 비쳤다.
“…도련님!”
정우현이 상의 안쪽에서 주사기를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검붉게 변한 엄규환의 팔에 순식간에 주사를 놓았다.
엄규환은 바이러스로 인한 전신의 고통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혼란스러움에, 정우현이 자신의 신체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바늘의 따가운 촉감은 그저 바이러스에 따른 아픔인 줄만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병으로 인해 시야가 어두워져 있었다.
“…도련님. 지금 오신 겁니까?”
“예, 실장님. 제가 왔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여기는 무척 위험합니다!”
정작 자신은 죽어 가고 있으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왜 왔냐고 묻는 엄규환이다.
이에 정우현은 울컥한 마음에 피가 잔뜩 묻은 엄규환의 손을 잡았다.
엄규환의 병상 시트는,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안 돼요!”
“…이 사람을 끌어내!”
결국 의료진이 정우현의 옷을 잡고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힘을 썼다. 뿐만 아니라 병원 입구에서부터 정우현을 쫓았던 경비원도 병실에 도착해 힘을 보탰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정우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의 힘을 합쳐도, 정우현을 단 1cm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모든 감각이 저하된 가운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 엄규환.
손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진다.
애써 가늘게 뜬 눈엔 여전히 정우현의 형상이 아른거린다.
“…도련님.”
“예.”
“계속 제 옆에 계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얼른 여기서 나가십시오, 도련님이 위험해집니다.”
“….”
정우현이 엄규환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손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는군요….”
엄규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장갑을 끼지 않으신 겁니까…?”
하고서는 엄규환이 다시 피를 토한다.
“크아아악!”
그러고서 숨을 헐떡이고는 엄규환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 저는 틀렸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니요… 저는 틀렸습니다. 사람이 갈 때가 되면, 제 스스로 알게 된다고 합니다.”
하고선 그가 놀랍게도, 피가 흐르고 있는 얼굴로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고서 말을 이었다.
“저는… 갈 때가 됐습니다. 하지만… 슬프지 않아요. 도련님을, 우리 도련님을 아주 어릴 때부터 모신 저에게는 온통 즐겁고 행복한 기억뿐입니다. 이 기억을 갖고 죽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우현의 눈에서 순간 눈물이 흘렀다.
“…도련님 감사했습니다. 한평생 도련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스럽고 찬란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고서 엄규환은 아예 웃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하, 이곳에 올 때 우스갯소리로 절대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지키지 못한 말이 되었네요.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도련님. 감사하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더 이상 말은 마세요!”
정우현이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호흡을 조절하세요! 실장님은 절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하세요! 그러고서 다시, 병상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엄규환의 호흡은 계속 가빠졌다. 혈압과 맥박도 불규칙적으로 되었다.
이에 의료진은 즉각 산소 호흡기를 씌우고 바이탈 사인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각했다. 엄규환, 이 환자는 곧 죽으리라고.
개중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도 있었다.
실상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미 엄규환에게 다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엄규환의 눈이 아예 감겼다.
정우현은, 쥐고 있던 엄규환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치료제를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인간은커녕 동물에게도 실제 주입 시험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효과는 물론 부작용조차 알 수 없었다.
나아가 엄규환의 병세가 워낙 깊었기에, 시기적으로 늦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규환이 살아날 수 있을지, 살아도 어떤 속도로 회복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이 순간 정우현은 처음으로, 그러니까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자책을 하게 됐다.
여섯 시간이나 잠이 들었던 자신이 몹시도 싫어졌다.
여섯 시간! 여섯 시간만 빨리 엄규환에게 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병세가 깊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치료를 꾀했을 텐데!
이렇게 이번 일로 엄규환을 잃게 된다면, 언젠가 염라대왕을 또 만나 대체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텐가.
아니, 이렇게나 가까운 사람을 잃게 할 거였으면 애초 두 번째 삶도 살지 말았어야 했고, 그 놀라운 능력들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다면, 놀라운 능력 따위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 탓이다, 모두 내 탓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 내 탓인 것을.
그런 생각을 하며 정우현은 만약 이번 일로 엄규환이 결국 일어나지 못한다면, 현재 그가 있는 모든 자리에서 내려와 여생을 조용히 살아가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이깟 능력이고 뭐고 쓸 필요 없이 조용히 한평생 조용히 살아가련다. 이제껏 쌓은 전 재산은 재단을 이끌 엘라와 사업을 이끌 일론, 그리고 가족에게 모두 나눠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서 자신은 세계에서 가장 인적이 없는 곳으로 홀연히 떠나, 영화는커녕 그 어떤 창작이나 학문에도 손을 떼고 정말 말 그대로 조용히 한평생을 반성하며 살다가, 그렇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훗날 염라대왕의 낯을 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띵.
엄규환의 바이탈 사인을 나타내는 의료 기기가 소리를 내며 멎었다.
“아아.”
의료진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엄규환의 호흡과 맥박이 멈췄다.
그가 결국 죽었다.
정우현은 믿을 수 없어, 축 늘어진 엄규환의 손을 잡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엄규환의 피가, 그런 정우현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정우현 님!”
의료진들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에볼라 바이러스 농도가 짙은 엄규환의 혈액이 정우현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에볼라의 전염력은 초기보다는 중기, 중기보다는 말기에 강하다. 즉 잠복기는 물론 독감 증상을 지나, 온몸에 출혈열이 발생할 때 전염력이 가장 세다.
그래서 환자가 죽기 직전이나 죽은 뒤 사후 처리 과정에서 가장 쉽게 전염이 된다.
“…이미 틀렸어.”
“그래도 끌어내!”
경비원과 모든 의료진이 다시 한번 정우현의 몸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여전히 1cm도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엄규환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손을 잡은 채 주저앉아 울고 있을 뿐이다.
한데 한순간 이상한 움직임을 느꼈다.
엄규환의 손에서 희미하게나마 힘이 느껴졌다.
정우현은, 자신이 순간 착각을 한 것인가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분명 아까 그의 호흡과 맥박이 멎었기 때문이다. 즉 엄규환은 죽었다. 의학적으로 사망했다.
그런 그가 다시 움직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정우현이 순간 소리를 냈다.
다시 엄규환의 손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에 그가 벌떡 일어나 병상 위의 엄규환을 바라봤다.
언뜻 보기에 변함은 없었다. 즉 눈을 감고 죽은 모습 그대로였다.
“….”
이에 정우현은 자신의 간절한 소망이, 엄규환이 살아나길 바라는 깊은 바람이 스스로 착각을 일으킨 것인가 회의를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물론 기적적으로 그가 다시 눈을 뜨길 바랐다.
“…뭐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엄규환의 맥박을 나타내는 심장 박동 장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즉, 엄규환의 심장이 다시 뛰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그러더니 엄규환이 눈을 활짝 뜨고 한순간 피를 토했다.
“도련님!”
그러고서 눈앞에 있는 정우현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는 크게 말했다.
“어찌 이런 모습으로 계시는 겁니까!”
아까 전 질병으로 인해 엄규환의 시야는 흐릿해져 정우현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잘 보였다. 세상이 더없이 환하게 보였다. 피가 흘러 눈이 따갑기는 했지만, 시력에 지장은 전혀 없었다.
그런 엄규환이 보기에 정우현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방호복은커녕 마스크도 걸치지 않은 채, 자신의 피가 잔뜩 묻어 붉어진 얼굴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왜 울고 계시는 겁니까! 누가 도련님을 그리 슬프게 했어요!”
그러고서 엄규환이 더 놀랍게도 벌떡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섰다.
“아아아아아!”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경악스러워했다.
분명, 불과 수십 초 전 죽어 있었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나 서 있으니까.
“일단 얼른 여기서 나가세요! 어찌 맨몸으로 여길 오신 겁니까! 위험다고요, 위험해! 제가 몇 번이나 얘기합니까, 도련님은 워낙 겁이 없어서….”
하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정우현을 밀치려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그를 제지했다.
여전히 피가 묻어 있는 엄규환의 손으로 정우현을 만지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엄규환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서 그저 크게 외쳤다.
“얼른, 얼른 나가십시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사장님, 사모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지, 아주 그냥 상상도 안 됩니다!”
“…하하.”
그런 엄규환 모습을 보며, 정우현이 드디어 웃었다.
자신이 만든 치료제는,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또한 틀리지 않았다.
살아난 엄규환의 모습에 진실로 기쁘고 행복해서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정우현이 계속 웃었다.
* * *
정우현에 관한 검사가 곧장 이뤄졌다.
다행히, 물론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우현은 에볼라에 전염되지 않았다.
즉 바이러스가 잔뜩 있는 혈액이 그의 안구와 입, 그리고 코 등에 튀어 몸에 들어갔는데도 그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외부 물질에 면역이기에 필연적인 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네요.”
“그러게요, 말이 안 됩니다.”
정우현의 검사 결과를 두고 의료진들이 비밀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격리된 숙소에서 3주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에볼라의 최대 잠복기인 21일 후에 다시 한번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올 때까지 격리되어야 한다는 유엔 보건 당국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지침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물론 완벽히 음성이지만, 국제적 지침이 있으면 그를 따라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이해할 리 없으니까.
그러고서 그는 격리실에서 엄규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완벽하게, 정우현이 치료제를 넣은 지 하루 만에 완벽하게 건강해졌으나 그 또한 당분간 격리실에 있어야 한다.
그렇게 정우현은 엄규환의 소식을 듣고 다시 홀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