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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57)화 (157/200)

157화

엄규환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그는 즉각 격리 병동에 입원했고, 정우현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 및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모두가 에볼라 진단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엄규환을 제외한 모두가 음성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데 열중했지만, 이내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엄규환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음성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가 북키부에 도착한 직후, 정우현을 보호한답시고 몇 번 그를 따라 바이러스 연구소에 들어갔다가 전염된 게 아닐까 추측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멀리 한국에서 온 엄규환이, 에볼라에 걸렸다.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었고, 특히나 정우현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에볼라 격리 병동.

곳곳에서 환자들의 신음과 절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방호복 차림으로 빠르게 그 안으로 들어섰다.

정우현이었다. 정우현이 의료진의 만류를 물리치고 엄규환을 보기 위해, 환자들이 즐비한 병원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내 누워 있는 엄규환을 눈앞에 두게 된 정우현.

“…도련님.”

엄규환이 정우현을 보고 놀라서는 말을 잇는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원래 직접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이 아닌 이상 외부인은 당연히 이곳 격리 병동에 들어설 수 없다. 감염의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우현은 들어왔다.

먼저 그가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퇴치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이기에 그랬다. 더군다나 그런 그가 워낙 영향력이 큰 사람인 데다, 자신의 오랜 경호원을 직접 보고 싶어 하니 말릴 수 있는 사람이 딱히 없었다.

“….”

정우현이 말은 없이 엄규환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했다.

먼저 안색을 살펴본 뒤 차트에 적힌 체온, 맥박과 호흡 및 혈압 등 기본적인 신체 활력 징후를 점검하고서 다시 엄규환의 얼굴을 보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행히 중증의 증상은 보이고 있지 않았다.

에볼라는 처음 독감과 증상이 비슷하다. 오한을 동반한 고열, 전신의 무력감과 통증이 따른다.

한데 여기서 피부 관련 증상 특히 출혈이 생기면 예후가 무척 나쁘다. 즉 치유되기 어렵다.

다행히 엄규환은 아직 피부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몸은 어때요, 실장님?”

엄규환의 몸 상태를 스스로 직접 확인한 뒤에야 정우현이 입을 열었다.

“…춥습니다. 으슬으슬 떨리고, 머리 아프고….”

정우현이 그런 엄규환을 잠자코 잠자코 바라보자, 엄규환이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어떻게든 여기까지 잘 왔는데, 이렇게 병에 걸리네요.”

“실장님은.”

정우현이 곧장 말했다.

“회복하는 데 집중하세요.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질병과 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고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 마시고 스스로에게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하고서 엄규환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이에 정우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로 되물었다.

“뭐가 죄송해요, 실장님.”

“…폐를 끼쳤지 않습니까. 한시라도 빨리 연구소에서 이놈의 바이러스 퇴치에 힘쓰셔야 할 도련님이 지금 이곳에 계시니….”

“그런 소리 마세요!”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도련님께 큰 힘이 되어 드리기는커녕 부담만 줬죠. 아아,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다.

신체의 상태는 정신에 영향을 주고, 정신 또한 신체에 영향을 준다.

몸이 아프면 곧잘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은 몸 상태를 안 좋게 한다.

지금 엄규환이 그랬다. 전신의 아픔에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거의 비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곳에서 중요한 순간에 자신으로 인해, 정우현의 연구가 차질이 빚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더 마음이 괴로웠다.

이에 정우현이 모르는 곳에서 홀로 병상에 누울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규환이 어디 있든 정우현이 기필코 찾아낼 게 분명하니까.

“실장님.”

정우현이 단호한 목소리로 엄규환을 불렀다.

“실장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제 모든 게 좋았다고 저번에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

“그러니까 괜한 생각 마시고 병마와 싸우는 데 집중하세요. 저는 저대로 밖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겠습니다.”

정우현이 말이 없는 엄규환의 모습에 재차 강조했다.

“아시겠습니까, 실장님?”

“…예, 알겠습니다.”

“항상 그래 왔듯 끊임없이 싸우는 겁니다. 실장님 저번에 저에게 그러셨죠. 어렸을 때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과 곧잘 싸웠다고. 그러다가는 군인이 되어 나라를 넘보는 적들과 싸우게 됐다고. 한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꼭 다른 누군가와 싸우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삶과 싸운 것 같다고. 그렇게 항상 싸우고 있다고.”

“….”

“지금도 그렇습니다. 실장님은 질병과 싸워야 해요. 실장님의 삶 전체를 쥐고 흔드는 그 질병과, 끊임 없이 싸워야 해요. 그것이 실장님이 지금으로서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하고선 정우현이 병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러니 저 또한 저대로 계속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엄규환이 그런 정우현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 * *

바이러스 연구가 다시 진행됐다.

정우현은 말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연구에 매진했다.

유엔 소속 소수의 연구원이 그런 그를 말리며 쉬엄쉬엄하라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정우현과 오랫동안 함께한 엄규환이 지금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매 순간 엄규환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우현은 단 1초도 쉴 수 없었다.

밥도 그는 간단한 주먹밥 형태로, 연구소 내에서 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들여다보며 먹었다.

용변을 볼 때도 그는 수첩에 이런저런 필기를 잔뜩 해 가며, 그간 연구한 것들을 빠르게 되새기고 앞으로의 방향을 끊임없이 탐색했다.

잠은 일절 자지 않았다. 일찍이 우한시에서 급히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 치료약을 만들 때도 잠을 거의 자지 않았던 정우현이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단 1초도 자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씩 피곤해지고 머리가 몽롱해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머리를 흔들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다시 연구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급기야 졸음이 쏟아지자 그는 자신의 몸에 주삿바늘을 찔렀다.

어떤 약물 효과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애초 그는 모든 외부 물질에 면역이 있으니.

다만 따끔따끔한 바늘로 졸음을 쫓기 위해서였다.

그런 식으로 그는 억지로 졸음과 싸우며 연구를 지속했다.

두 번째의 삶이 시작된 이래, 이렇게나 피곤한 적은 없었다. 일찍이 아주 어린 나이에 타지에 가 영화를 촬영하고, 학교에서 수학의 난제에 매달리고, 회사에 들어가 온갖 기계 공학에 집중하고, 비트코인 개발자인 엘라의 보안망을 침투한 뒤 비트코인 자체를 무너트리고, 그리고 최근 재단과 사업, 그리고 영화까지 온갖 부문에 힘쓰고 있음에도 이렇게나 피곤한 적은 없었다.

이에 딱 30분만, 아니 10분만 쉴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그만큼 육체의 피로는 정우현의 정신을 시시때때로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팔자 좋게 잠이나 잘 때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정우현은 스스로를 꾸짖었다.

엄규환이 죽어 가고 있다!

지금 한 사람이, 그것도 오랫동안 나 자신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속절없이 죽어 가고 있는데, 그딴 나약한 생각이나 할 텐가!

어쩌다 염라대왕의 선물을 받아 놀라운 삶을 살게 됐다고 하면서도, 고작 가까운 사람 한 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가!

이럴 바엔 놀라운 능력도, 두 번째 삶도 필요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엄규환을 죽음에 이르게 할 바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연구를 이어 나갔다.

그러고는 마침내 어느 새벽, 치료약을 완성했다.

이에 정우현이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렸는지, 잠시,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 * *

“…정우현 님.”

눈을 뜬 그의 앞에는 유엔 소속 연구원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연구실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누워 있었다.

“아아.”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곧장 크게 말했다.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던 겁니까?”

“….”

연구원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정우현이 언제부터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에 정우현이 즉각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9시 42분.

새벽 서너 시 경에 치료약을 완성했으니 무려 여섯 시간가량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여섯 시간!

이 얘기는 여섯 시간이나 엄규환을 방치해, 죽음에 가까워지게 했다는 뜻이었다.

정우현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연구원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예?”

정우현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연구원을 바라보며 답했다.

실로 거의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는 등 평소 여유로운 정우현에게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정우현 님의 경호원님이….”

“….”

“경호원님이 현재 위독합니다. 그래서 알리려고 급히 연구실을 찾았는데, 정우현 님이 쓰러져 계셔서 놀랐습니다.”

정우현은 최근 바이러스 연구에 집중하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연구실에 오지 못하게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먹을 음식과 물만을 잔뜩 연구실 한 곳에 비치해 놓고 계속해서 홀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아!”

치명적인 실수였다.

약을 완성해 놓고 잠들다니.

그가 즉각 연구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언제나처럼 빠르게 뛰었으나, 어쩐지 제 속도가 나지 않았다.

방호복 때문이었다. 전신을 둘러싸고 있는 방호복 때문에,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한순간 방호복을 모두 벗어 던졌다. 신속히 제대로 벗겨지지 않아, 팔과 다리 부분은 찢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껏 가벼워진 정우현.

믿을 수 없게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 북키부에 오기까지, 헬리콥터 기지에서 반군과 대치했을 때보다도 더 훨씬 빠르다. 누군가가 그런 정우현의 속도를 측정하면 100m에 7초대 기록이 나왔으리라.

즉, 정우현은 자신이 세운 세계 최고의 신기록인 8초 대의 벽을 허물어 7초 대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달려 유엔 관용 차량을 타고 직접 운전대를 잡은 채 풀 액셀을 밟는다.

교통 법규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엄규환의 목숨이다.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북키부의 도로를 시속 220km로 달리는 정우현.

도로 위의 차들은 그런 정우현이 운전하는 차를 보고 넋을 잃지만, 다행히 사고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우현이 또 신들린 솜씨로 차량 사이를 번개처럼 빠르게 빠져나가며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도착한 에볼라 확진자 격리 병원.

원래는 입장 절차가 까다롭다. 신원을 확인한 뒤, 방역에 관한 모든 준비를 까다롭게 완수하고서야 병원에 들어설 수 있다. 사실 그마저도 특별히 허가 받은 사람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거 없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가 닫힌 문 위로 폴짝 하고 뛰어올랐다.

“뭡니까!”

병원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깜짝 놀라서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달린다. 그냥 7초 대로 또 달린다.

결정적으로 그는, 방호복을 입지 않았다.

즉 에볼라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격리 병동에, 방호복은커녕 그 흔한 마스크 하나 없이 맨몸으로 뛰어들었다.

“비상, 비상!”

“꺄아아아아아아!”

“뭐예요!”

주위의 반응은 무시한 채 계속해서 맨몸으로 병원 내부를 질주하는 정우현.

그리고 마침내 엄규환의 병실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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