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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53)화 (153/200)

153화

사실 콩고에 엄규환 말고도 같이 오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엘라였다. 엘라가 작년 유럽에서처럼 정우현 곁에서 그를 모든 면에서 돕고 싶어 했다.

정우현의 설득으로 엘라가 독일 베를린에서 대한민국으로 온 이래, 둘은 단순히 더 가까워지는 것을 넘어 거의 항상 함께하게 됐다.

엘라에게,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인 엘라는 단순히 대한민국에 지인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고국 독일에서도 말 그대로 가족이 없는 천애의 고아다.

그런 그녀가 한 사람, 즉 정우현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와 대한민국이라는 타국에 오게 됐다.

이에 엘라가 의존할 사람 또한 오로지 정우현밖에 없었고, 정우현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우현은 그녀를 다정하게 대했다. 실상 베를린에서 그녀를 설득해 재단의 관리 일을 맡기기로 했을 때 결심한 일이기도 했다. 자신을 믿고 세상에 나온 만큼, 엘라에 관해 책임감이 생겼다.

엘라는 그런 정우현을 자연스레 따랐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따르게 됐다. 정우현이 모든 면에서 그녀에게 잘해 줬으니까.

하지만 콩고에 같이 갈 수는 없었다. 정우현은 2019년 말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시, 엘라를 중국 우한시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위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바이러스에 관해서라면 엘라가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도착했어?”

“응.”

한편으로는 또 한 명의 여자가 함께 가겠다고 완강히 주장했었다.

바로 우후 제약 회사 소속 연구원 동생 정다현이었다.

정우현이 콩고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나도 가면 좋잖아.”

“어허.”

“지금이라도 갈 수 있어.”

“너 그러면 나한테 진짜 혼난다.”

“….”

정우현이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콩고로 간다고 했을 때, 동생은 즉각 따라가겠다고 했다.

우한시에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힘을 보태기도 했으니, 동생은 더 자신 있어 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우현이 허용하지 않았다.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바이러스에 동생을 결코 노출시킬 수 없었다.

“…알았어.”

동생이 한 풀 꺾인 목소리로 정우현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오빠 정우현의 말을 거의 절대적으로 들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며 성장했고, 실제 마음 속으로도 오빠를 따르고 싶었다. 정우현이 아기 때부터 워낙 다정하게 동생을 돌봤으니.

나아가 오빠의 말을 들어서 모든 것이 이롭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 그녀가 정우현의 말을 거스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꼭 무사히, 잘 다녀와.”

“알았다.”

“….”

핸드폰 너머 수초 간 이어지는 침묵.

동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 난 솔직히.”

“응.”

“바이러스 퇴치 안 해도 좋아.”

“….”

“그런 일보다는 오빠가 더 소중하단 말이야. 내가 지금 이렇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연구하는 것도 다 오빠 덕분이고….”

하고 동생이 천천히 말을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됐다.”

“….”

“무슨 내가 어디 못 갈 곳이라도 가냐. 다현아, 결국 다 사람 사는 곳이야. 그러니까 걱정 마.”

하고서 정우현이 쾌활한 목소리로 몇 마디를 더하고 통화를 마쳤다.

“너나 잘 지내고 있어. 부모님 잘 모시고. 나는 금방 돌아간다!”

* * *

한편 세상은 정우현의 콩고 방문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미 재작년 우한시 방문 및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퇴치에 그에게 찬사를 보냈는데,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대상이 지구상 최악의 바이러스인 에볼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변종 코로나는 전생처럼 세계적 대유행을 하기 전 정우현이 일찌감치 종식시켰기에 해당 바이러스의 실체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무엇이든 알지 못하면, 그만큼 가볍게 여기기 마련이다. 마치 정우현이 오래전 미국의 9.11테러를 사전에 예방했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그 일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듯.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람들은 에볼라가 얼마나 무서운 바이러스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치사율 90%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는 물론, 인터넷을 통해 해당 바이러스에 전염된 환자들의 참혹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당 바이러스에 걸려 병세가 깊어지면, 장기가 거의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의 내출혈과 함께 환자의 거의 온몸에서 피가 흐른다고 한다.

그런 바이러스를 쫓기 위해 정우현이 콩고로 향했다. 이는 마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이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우려와 찬사 그리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나는 정우현이 아프리카에 가지 않았으면 한다. 뜻은 좋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텐가.

-맞습니다. 그분은 그런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기에는, 우리에게 있어 너무나 크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 셧 더 퍽 업. 정우현은 성자다. 일찍이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렸던 슈바이처의 재림이다.

-바이러스 같은 거 아무래도 좋아요…. 그냥 우현이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세요….

-한국에서 정우현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정우현은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 * *

공항 입구.

흑인과 백인, 남미인 등 다국적 인종의 사람들이 군복 차림으로 정우현과 엄규환을 맞이했다.

그들은 유엔평화유지군(UN Peace Keeping Force)이었다.

콩고 정부가 아닌 유엔군이 그들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정우현이 그들 중 가장 높은 계급인 근육질의 흑인 존스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이에 존스가 얼른 대답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광입니다. 저는 사실….”

“예.”

“우현스가디언입니다.”

“오오!”

이에 엄규환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곳 아프리카 땅에 오자마자 정우현의 팬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하.”

존스가 기분이 좋아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는 정우현과 엄균환을 군용 트럭에 태우며 말했다.

“승차감이 형편없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웬만한 총격에도 끄떡없는 제일 튼튼한 차량입니다.”

부르릉.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군용 트럭.

존스는 정우,현 그리고 엄규환과 함께 맨 뒤에 앉았다.

“여기 상황은, 어떤가요?”

정우현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안 좋습니다.”

이에 존스가 곧장 대답했다.

“정우현 님.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나라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네.”

하고서 정우현이 말을 이었다.

“바로 이 나라, 콩고민주공화국이죠. 내전으로 공식적인 사상자만 5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존스가 말했다.

“현재도 반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끝없이 지속 중인, 지구상 가장 위험한 지역이 이곳 콩고죠.”

그러고서는 그가 먼지가 휘날리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평화를 위해 파견된 우리 유엔을 향한 공격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존스의 말은 사실이다. 2017년 유엔조사관이 콩고 민병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2018년에는 유엔군이 작전 수행 중 7명이 전사했다.

심지어 전생의 2022년에는 유엔의 헬기가 추락해 안에 있던 인원 8명이 전원 사망했는데, 이를 두고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지금 가려고 하는 지역은….”

존스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북키부(North Kivu)지역입니다. 북키부는 또한 반군의 거점지이기도 하죠.”

정우현이 알고 있었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콩고 정부가 정우현 일행을 맞이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선 반군의 거점지로 향해야 하는데, 정부군과 함께하면 오히려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존스의 말을 듣고 정우현이 잠자코 있는 것에 비해 엄규환은 조금 놀랐다.

콩고의 치안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엄규환은 과거 극한의 훈련을 견뎌낸 UDT 특수전전단. 이런 환경을 피하고 싶었다면 애초 정우현을 설득해 콩고에 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주 오랜만에 피가 들끓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그는 정우현을 따르며 오랫동안 안락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천만한 곳에 오니, 모처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강렬히 느끼며 자존감이 충만해졌다.

한편 정우현은 최소의 인원으로 콩고 입국을 계획하면서 어떻게 바이러스의 진원지까지 향할까 궁리했다.

처음엔 그냥 무작정 엄규환과 함께 둘이 직접 북키부로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정우현이라도 무척 위험했다. 일단 그로서는 현재 콩고의 내전 상황과 반군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직접 운전을 해야 하는 만큼 지리를 세밀하게 잘 알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유엔이었다.

평소 정우현은 전기차 개발과 함께 지구 온난화 및 온실가스 감축을 테마로 유엔기후 변화 총회에 비정기적으로 참여해 강연을 했었다.

거기에 재단 활동을 하며 때때로 유엔과 협업을 하기도 했기에, 그쪽 방면으로 인맥 또한 갖추게 됐다.

사실 굳이 그런 활동을 하지 않아도 정우현은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인사였기에, 그 혼자 단독으로도 유엔과 접촉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에 힘입어 정우현은,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에 입국할 것을 유엔에 알리면서, 교통수단을 제공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유엔이 곧장 답신했다.

교통은 물론 기본적인 경호, 숙박, 식사 등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유엔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정우현을 지원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의 바이러스 퇴치 실력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벌써 인류의 오랜 숙적인 헤르페스3형과, 전생에서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넣었던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종식시켰다.

즉,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조직된 유엔이 해야 할 임무를 정우현이 앞장서서 이뤄 내고 있었다.

심지어 정우현이 퇴치하러 가겠다는 질병은 무려 인류 최악의 바이러스인 에볼라.

만약 그가 정말 에볼라를 종식시킨다면 현시대의 사람들은 물론, 후세에게까지 길이길이 도움이 될 엄청난 업적을 이루는 셈이었다.

그런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둘째, 정우현은 자체적인 우 재단의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금 지원을 통해 이미 유엔을 여러모로 돕고 있었다.

그런 그의 요청을 모른 척한다면 유엔으로서는 제 살을 깎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부터는 조금 긴장하셔야 합니다. 반군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거든요.”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았던 도로가 더욱 좁아지며 비포장 길로 접어든 가운데 존스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는 이내 소리를 냈다.

“으음, 이런.”

아니나 다를까 전방 멀리서 무장한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이에 존스가 정우현과 엄규환을 보고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우리는 유엔군이니까요. 아무리 반군이고, 무장 세력이라고 해도 국제 사회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눈엣가시 같아도 어떻게 하기는 힘들다는 얘기죠. …보십시오, 만약 저들이 우릴 공격할 작정이었으면, 저렇게 길을 막지도 않고 바로 총격을 가했을 겁니다.”

존스의 말대로 무장한 인원들이 딱히 공격 자세는 취하지 않고 움직임 없이 그저 길만 막고 있었다. 다만 표정이 매우 험상궂었다.

이에 정우현이 탄 차량이 서행하다가는 한순간 멈췄다.

그러자 존스가 조심스레 전방의 무장 대원들을 살피다 차 문을 열기 위해 천천히 손잡이에 손을 댔다.

투둑.

한데 누군가가 갑작스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정우현이었다.

정우현이 차량 밖으로 나가 무장 대원들을 마주 보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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