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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51)화 (151/200)

151화

정우현은 먼저 2층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를 쳐 볼까 생각했었다.

내지는 세계 최강의 힘과 속도를 살려 계단을 막고 있는 남자들을 밀쳐내고 단숨에 2층으로 올라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모임을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해 봤자 위층의 사람들이 정우현을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떻게든 그들을 대면한다 해도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말을 하게 할 수는 없는 법.

여러모로 실익이 없었다.

그러는 한편 자신이 굳이 이 모임의 주최자라는 2층의 사람들과 억지로라도 친분을 가져야 할까 뒤늦게 회의가 들었다.

사업이면 사업, 영화면 영화 등 모든 면에서 현재 부족함이 없는 세계적 인사가 바로 정우현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호기심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존재가 베일에 싸인 만큼 그들은 누구고, 왜 이런 모임을 만들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 * *

모임이 끝나고 바이에른의 한 호텔로 향하는 정우현과 에이치그룹 회장.

정우현이 직접 운전을 하는 가운데 말을 했다.

“어떠셨어요, 회장님?”

“재밌더구나, 파티 같고. 도움 되는 얘기도 잔뜩 하고.”

“으음.”

하고서 정우현이 재차 물었다.

“혹시 2층도 보셨어요? 한 남자가 서 있던데.”

“아아, 봤지. 주최자?”

“예.”

“생각보다 젊더군. 네 또래는 될 거 같던데.”

“어떠세요?”

하고 묻는 정우현의 말에 권 회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가?”

“2층이요. 아래층이랑은 엄격히 분리되어 있던데.”

“아아.”

하고서 권 회장이 말을 이었다.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처음엔 좀 궁금했지만 뭐 별거 있겠니.”

“….”

“너도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알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중요한 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그런 실제적인 것들이다. 뭐 궁금하긴 하다만, 어쨌든 그들이 이런 모임을 만들었고, 우리는 우리대로 잘 활용해서 인맥을 늘리고 사업에 도움만 되면 되니까, 이래저래 좋은 일 아니겠냐. 의문을 해소하고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 그건 우리가 아니라, 학자들이나 일부 탐험가들이 하는 일이지. 우리 같은 경영인들에게는 해답을 찾는 것보다는 무엇이 내게 도움이 되는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우현은 권 회장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2층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모임을 주최하든, 참가한 사람들은 서로 실제적인 도움만 주고받으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우현이 단순히 사업가일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호기심이 넘치고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의 면모 또한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궁금했다.

* * *

호텔에 도착한 정우현과 권 회장.

“우현아!”

권유라가 멀리서 정우현이 오는 것을 보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아니, 쟤는.”

권 회장이 그런 자신의 딸을 보고 한마디 했다.

“어떻게 아빠한테는 한마디 말도 없고 우현이 너한테만 아는 체를 하냐.”

“…하하하.”

정우현이 멋쩍어서 그저 웃었다.

“도련님!”

기다리고 있던 엄규환도 얼른 정우현을 맞이했다.

“제가 데리러 간다니까 굳이 또 운전을 직접 하시고!”

“하하, 재밌잖아요, 운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제가 직접 해 보겠습니까.”

“으음, 어때요, 분위기는? 괜찮습니까?”

“재밌더군요. 파티장 같고.”

순간 정우현이 아니라 권 회장이 답했다.

그러고는 몇 마디를 더 하고서 하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나이가 드니 좀만 뭘 해도 피곤하네요. 하하, 전 이만 올라가서 쉬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유라야, 너도 얼른 쉬어라. 내일 아빠랑 이탈리아로 가 봐야 하지 않니.”

이에 권유라가 곧장 답했다.

“알았어.”

엄규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권 회장에게 고개를 한 번 숙여 인사를 한 뒤, 정우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파티장 같다고요? 아니, 그럴 거면 그렇게 보안을 철저히 할 건 뭡니까. 누가 보면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줄 알겠네요.”

“으음.”

정우현은 그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일단 말을 아꼈다.

“우현 님.”

순간 위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정우현을 부르며 다가왔다.

엘라였다. 엘라가 숙소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가 엄규환으로부터 정우현이 도착했음을 연락받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아니!”

이에 권유라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가 여기 왜 있는 거지?”

“….”

엘라는 일단 잠자코 있었다.

“우리 재단 관리자잖아, 유라야.”

정우현이 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재단 관리자가 왜 여기 있냐고.”

권유라와 엘라는 실상 약 20년 전 베를린의 세계 해킹 대회에서 만난 이래 처음으로 직접 보게 됐다.

당시 엘라는 권유라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 줬다.

권유라의 삶 가운데 그보다 더 참혹한 패배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엘라가 권유라를 보고 입을 열었다.

“권유라 씨 맞죠? 오랜만이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권유라가 일단 인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경계 섞인 눈으로 엘라를 바라보는 그녀다.

그와 같은 눈초리에 답변이라도 하듯 엘라가 말을 이었다.

“이번 정우현 님의 유럽 방문과 관련해 각종 사항을 보조하기 위해 함께 오게 됐습니다.”

“흠!”

권유라는 엘라의 말이 못마땅한지 한 번 소리를 내고 말았다.

권유라는 어렸을 때 엘라에게 패배한 경험으로 인해 이렇게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었다.

질 수도 있다. 심지어 당시 그녀가 고집을 부려 이미 챔피언을 차지한 엘라를 상대로 성사된 경기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고 엘라가 자신과 같은 여자이며, 그것도 정우현과 가까운 여자라는 데 있었다.

즉. 권유라는 질투가 났다.

그러잖아도 그녀의 존재 자체가 신경이 좀 쓰였는데, 엘라가 단순히 공적인 업무와 관해서 정우현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적인 유럽 여행에까지 동행했다는 게 마음에 거슬렸다.

그래서 마냥 곱게 엘라를 대할 수 없었다.

“원래 이렇게.”

권유라가 팔짱을 끼고 엘라에게 말했다.

“우현이와 거의 모든 걸 함께하나요?”

“…예?”

엘라는 권유라가 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우리 우현이랑 이렇게 자주 붙어 있냐고요.”

“아….”

하고 엘라가 당황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유라야.”

“…응?”

“무슨 질문이 그래. 나 일 도와주러 함께 온 건데.”

“….”

“만나서 반갑다고 하잖아, 엘라가.”

정우현의 말에 권유라가 잠시 입을 다물더니,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뭐, 나도 반갑지. 반갑긴 한데.”

“그럼,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얘기하자.”

정우현이 엘리베이트 버튼을 누르며 불쑥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무엇보다, 오늘 있었던 모임이 계속 떠올랐다.

“푹 쉬어, 유라야.”

그러고는 엄규환 그리고 엘라와 함께 엘리베이트에 탑승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층에 룸을 잡았다.

“….”

그 모습을 가만히 보는 권유라.

화가 나지만, 현재로서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 *

그리고 둘이 있게 된 정우현과 엘라.

엘라가 정우현의 눈치를 살피고는 살짝 물었다.

“어떻던가요?”

아까 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보였던 짐짓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정우현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라.”

“예.”

“혹시.”

하고선 수초 간 또 말을 않는 정우현.

이내 다시 말을 잇는다.

“일루미나티라고 들어 봤나요?”

“…당연하죠.”

하고선 엘라가 빠르게 말했다.

“18세기 후반 프로이센에서 결성됐던 계몽주의 단체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약 10년 만에 해체됐지만요.”

“역시 엘라도 알고 있군요. 해당 단체를 다른 말로는 바이에른 광명회라고도 합니다. 이곳 바이에른에서 결성되고 활동했던 계몽 단체니까요.”

하고 정우현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다시 말을 않았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엘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늘 방문하셨던 모임이 일루미나티라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현대에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혹은 계승됐거나.”

“예컨대.”

하고선 엘라가 곧장 말을 이었다.

“프리 메이슨처럼요?”

“맞습니다.”

“하지만 우현 님.”

그러고서 그녀가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입을 열었다.

“프리 메이슨은 현재에도 실재하는 단체가 맞지만, 음모론의 단골 소재가 되듯 그리 비밀스럽고 허무맹랑한 집단이 아니에요. 몇 가지 요건만 충족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요, 그저 세계주의적 박애 정신을 모토로 하는 사적 단체일 뿐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서양의 전통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이신론(理神論)을 바탕으로 하지만, 무신론과 불가지론 등 현대인들의 다양한 종교관에 비추어 봤을 때, 오히려 보수적인 색채를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본 것들을 표현하기에는 언급했던 그런 단체들의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무엇을 보셨는데 그러세요?”

정우현은 저택 내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설명했다. 일반 경영인들이 모여 있는 1층과 달리 주최자들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2층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으음.”

정우현의 설명을 다 들은 엘라가 잠시 소리를 내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렸던, 모임의 고위층인 것 같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의문스러워요. 소개는커녕 사람들에게 짧게라도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은 일절 없이 그저 1층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같았어요. 그것도 어쩐지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우현 님이 일루미나티를 떠올릴 만하네요.”

그러고서 둘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시간 조용히 있었다.

“하하.”

한데 한순간 정우현이 웃기 시작했다.

“…왜 웃으세요? 우현 님?”

이에 정우현이 사뭇 가벼워진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생각해 보니 일루미나티든, 프리 메이슨이든 뭐든, 제가 지나치게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설령 그들이 음모론에 곧잘 등장하는 어두운 단체라 한들, 지금 당장 제가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었다. 물론 모임에서 인사조차 하지 않는 다소 불손한 주최 측이긴 했지만, 그로써 정우현을 상대로 딱히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애초 정우현을 향한 초대도 그들이 한 게 아니라, 에이치그룹의 회장이 된 권유라의 아버지가 했다. 즉 그들로서나 정우현으로서나 오늘 서로를 보게 된 건 일종의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정우현이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가 논의했던 그런 야욕 있는 음모론의 주체라면, 앞으로 어떻게든 또 보게 될 것입니다. 제 계획대로라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며 국제적으로 더욱 입지를 탄탄히 할 테니, 그들로서는 그런 제가 눈에 띌 수밖에 없겠죠.”

“….”

엘라가 잠자코 정우현의 말을 경청했다.

“즉 언젠가 또 맞닥뜨리게 될 테니, 때가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하고 대응하면 될 일입니다.”

하고는 정우현이 표정을 더 풀고 말을 이었다.

“반면 그들이 그저 돈 많고 남다른 취미가 있는 오만불손한 권력 계층의 사람들이라면, 그냥 앞으로도 그러라고 내버려 둬야겠습니다. 놀이터에서 패거리를 지어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굳이 뭐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하하하.”

정우현의 말에 모처럼 엘라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아, 우리가 너무 심각했네요. 하하, 네, 이래야 우현 님답죠. 우현 님은,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시잖아요. 그렇죠?”

“아닙니다, 엘라. 두려워하는 게 있어요.”

의외의 대답에 엘라가 놀라서는 곧장 되물었다.

“…뭐요?”

“제가 이제까지 지켜 온,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아.”

“그것만이 저의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물론 엘라 또한, 저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

정우현의 말에 엘라가 부끄러워하며 말을 잃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맥주 한잔하죠. 바이에른 하면 또 맥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하고서 크게 웃는 정우현을 보고, 엘라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작게 말했다.

“멋져요.”

그러고는 정우현은 들을 수 없게 속삭이듯 혼잣말을 했다.

“…역시 정우현 님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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