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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50)화 (150/200)

150화

“아아, 정말입니까?”

세계 기업인 모임에 가겠다는 정우현의 말에 엘라가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이에 정우현이 푸근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예. 엘라의 말을 들으니 흥미가 생겼어요. 뭔가 새로울 것 같기도 하고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제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 *

시간이 조금 흘러 독일의 뮌헨 공항.

“아들, 계속 바쁘네.”

어머니가 전용기에서 내리는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하하, 금방 돌아갈게요.”

“엘라야, 우현이를 잘 부탁한다.”

이번엔 아버지가 정우현을 따라 내리는 엘라를 보고 한마디 했다.

“예, 알겠습니다.”

엘라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게 정우현은 부모님 먼저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우현 님과….”

엘라가 괜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제 단둘이네요.”

“하하….”

정우현 또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음, 뭐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엘라? 세계 기업인 모임에 참여하는 데 있어….”

그러자 엘라가 곧장 자신의 가방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준비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하고는 서류를 정우현에게 건넸다.

“그 단체의 회원들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봤어요.”

“오…. 이런 자료가 있나요? 유라는 은밀한 사적 모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온라인상으로 단체를 찾고 회원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그렇군요.”

일찍이 세계 해킹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엘라다.

그녀가 모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느 단체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여요. 회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가운데, 서로 돕기도 하죠. 한데 이 돕는다는 게 자본은 물론, 정치 사회적으로도 각국 주요 정부와 암암리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현대 사회에서 경제계 인물이나 자본의 힘이 정치에 영향을 주거나 또한 받는 건 당연한 일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하고 말하는 엘라의 표정이 다소 진지해졌다.

“예, 엘라?”

“모임 내부 고위층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소수의 사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어요.”

“….”

“온라인상으로 어떤 비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면, 제가 어떻게든 해킹해 밝혀낼 수 있을 텐데, 애초 그런 것 자체가 없어요.”

“신기하군요.”

“예, 제 생각으로는 저 같은 해커의 추적에 대비하기 위해, 온라인상의 활동은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번거로울 텐데요.”

“그러니까요. 평소 그들 사이 의견은 수기로 써서 편지로 주고받거나 한다는 얘기인데, 2020년 현재로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죠.”

엘라의 말에 정우현이 잠시 생각하다가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비밀스럽게 정체를 숨기고 주고받아야 할 정보가 있다는 게 더 이상하군요.”

“맞습니다, 우현 님.”

정우현은 자신이 나서서 그들의 정체를 알아볼까 잠깐 생각했다.

엘라는 비록 엄청난 해커인 데다 비트코인을 만든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이긴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정우현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지난 일들로 확인됐다.

따라서 정우현이 나서서 엘라가 입수할 수 없었던 정보를 미리 알아낼 수도 있었다.

물론 엘라의 말대로 그들이 온라인상으로는 일절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계 최고의 해커인 어나니머스 정우현이라도 방법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우현이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엘라, 고생했어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참 많이 했네요.”

“저는 동행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까요. 오직 정우현 님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하기에, 괜스레 걱정되어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 소수의 고위층이라는 사람들이 궁금하긴 하지만 뭐, 직접 가서 보면 될 일이니까요.”

“….”

“그리고 엘라.”

하고 정우현이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예?”

“아무리 비밀스럽다고는 하지만, 설마 우리보다도 비밀스러울까요?”

정우현과 엘라는 비트코인 프로젝트의 개발자인 어나니머스와 사토시 나카모토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요동치고 있는 시점, 현재로서 자신들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이 있겠냐는 뜻이었다.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 개발자에 관해 몹시 궁금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현과 엘라가 보안상 완벽하게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어릴 적부터 친근한 만능 천재 정우현과 그가 의장으로 있는 재단의 관리자인 엘라가 비트코인을 손에 쥐고 있으리라고는 정말 그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개발자로 우후 그룹의 이인자인 사장 일론 마스크를 추측하기도 했다.

그가 최근 들어 하루가 멀다고 SNS상으로 비트코인에 관해 온갖 말을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러네요, 우현 님.”

엘라가 혹시 누가 듣기라도 할까,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경계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평소 완벽하게 단둘이 대화할 수 있는, 재단의 의장실 같은 공간이 아닌 곳에서는 비트코인에 관한 말을 거의 직접 주고받지 않았다.

“…그래도, 좀 걱정되네요, 우현 님. 그곳에 경호원이신 엄규환 님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 걱정 마세요, 엘라.”

정우현이 웃으며 답했다.

“권 회장님이랑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래도 안전에 문제는 없을까요?”

“하하하, 엘라!”

엘라의 계속되는 걱정에 정우현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이에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정우현을 바라봤다.

“제가 누구입니까?”

“…예?”

“제가 누구냐고요, 엘라.”

“정우현 님이시죠. 우 재단의 의장이자….”

하고 엘라가 계속 말하려는데 정우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인류사 가장 빠른 인물.”

“…아.”

“나아가 70억 분의 1의 사나이. 정우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성인이 된 정우현은 어릴 때와 달리 한껏 남자다워졌다.

더 이상 귀엽고 똑똑하기만 한 아역 배우이자 수학 천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남자고 그것도 사나이였다.

여차하면 정우현은 맨손으로 모든 위기를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수년 전 런던의 한 허름한 펍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하, 네.”

엘라가 그런 정우현을 살며시 미소 지은 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믿음직스러웠다. 또한 결정적으로, 몹시도 멋져 보였다.

* * *

“으음, 여긴가보다.”

독일 바이에른의 한 조용한 거리.

에이치그룹 회장이 정우현과 함께 고풍스러운 저택을 보고 말을 했다.

세계 기업인 모임의 집회가 있는 장소였다.

“들어가자꾸나.”

“예.”

권 회장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정우현.

입구부터 금속 탐지기와 함께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있다.

사내들이 곧장 권 회장과 정우현의 몸을 수색했다.

“…허허.”

권 회장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는지 조금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사내 중 한 명이 말했다.

“입장하기까지 모든 분에게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우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리고 들어선 널찍한 실내.

“오오!”

사람들이 권 회장과 정우현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정확히 하면 권 회장이 아니라 정우현 때문이었다.

그들 소수의 경영인에게도 정우현은 변함없이 스타였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정 회장님!”

“이번 영화 <바이 더 베테랑>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정우현이 자신을 환영하는 그들을 보며 내심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워낙 비밀스러운 모임이라기에 뭔가 좀 다른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평소 자신을 대할 때의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팬들 같았다.

물론 티브이에서 자주 접하던, 다국적 기업을 이끄는 유명인 사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남다를 것도 없었다. 그들 또한 정우현을 보고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단순히 사업 면에서도 우후 그룹의 회장인 정우현 이상의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우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그룹이자 각종 신기술 사업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일류 중 일류 회사였다.

“하하하, 정 회장.”

에이치그룹 회장이 뒤에서 정우현을 부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도 역시 스타로구먼. 난 자동차 업계 사람들이랑 얘기 좀 할 테니, 정 회장도 여기저기 좋은 얘기들 하고 있어.”

에이치그룹 회장 곁에는 유럽 굴지의 내연 기관 자동차 회사 소유주들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실내는 격식 있는 연회장 같은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이 각종 다과와 가벼운 술을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 사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정 회장님. 원자재에는 관심 없습니까? 이번에 우리 러시아 천연가스 쪽으로 좋은 기회가 있는데.”

“곧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할 텐데, 협업하는 건 어떻습니까? 우후의 IT 기술을 접목하면, 북미 최고의 게임사인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우후 엔터테인먼트 및 스트리밍과 관련된 자체 제작 판권을 남미에 독점적으로 공급해 주십시오. 그럼 남미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콘텐츠들을 역으로 우후에 독점적으로 제공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우현은 가만히 있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사업과 관련된 말들을 늘어놓았다.

정우현은 답할 건 답하고, 정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따로 기억하며 성심성의껏 대화를 했다.

그러다가는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봤는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난간에 서서는 굵은 시가 담배를 피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이곳 1층을 바라보는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다 할 자세의 변화는 없이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그저 이런저런 사람들을 바라보다가는, 한순간 고개를 돌려 정우현을 바라봤다.

정우현 또한 그 사람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

이에 사람들이 정우현의 시선을 따라 2층의 남자를 잠깐 바라보고서 대답을 했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예? 잘 모른다고요?”

정우현은 이번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에 반해 다른 사람들은 여러 번 참석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2층의 남자를 모른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예. 이 모임의 주최자라는 것밖에는….”

“주최자요?”

“예. 정확히 하자면 과거, 이 모임을 만든 사람의 자손이죠. 하여간 저 사람을 중심으로 몇몇 극소수의 사람들이 매년 이 모임을 주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정우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아무도 저 사람과 얘기해 본 적 없나요?”

“….”

사람들이 멀뚱멀뚱 눈만 뜬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가는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얘기는커녕 2층에 올라가 본 사람도 없어요.”

정우현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봤다.

과연 이 저택에 들어올 때 몸을 수색했던 남자들처럼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계단을 막고 있었다.

순간 2층이야말로, 엘라가 얘기했던 이 모임의 고위층들이 있는 장소임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저쪽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우현이 물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답했다.

“저도 처음에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방법이 없어요. 아래층은 아래층이고, 위층은 위층입니다. 같은 저택에는 있지만, 전혀 다른 별개의 모임이 두 개 있는 것과 같죠.”

그 말을 끝으로 사람들이 위층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는, 이내 자신들끼리 하던 얘기를 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정우현은 꼿꼿이 서서, 흥미로운 눈빛을 하고 계속해서 2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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