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수두 바이러스를 영원히 종식 시킨 정우현.
실상 전생에서 코로나19로 명명된 바이러스 또한 종식시켰기에, 정우현이 공식적으로 퇴치한 바이러스는 벌써 두 개나 됐다.
“우현 님.”
엘라가 다시 정우현을 불렀다.
“예.”
“약이 3상을 통과했으니, 이제 곧 판매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그렇죠.”
“신약이니만큼 약 7년간 우후 제약 회사만이 이 약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약은 여타 발명품처럼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오래 보호 받지는 못한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발명품이니 만큼, 약을 개발한 회사가 독점적 판매권을 손에 쥐고 폭리를 취해 오히려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국적 대형 제약 회사가 신약을 개발하고는 폭리를 취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신약을 사 먹으며 생활고에 곧잘 시달린다.
단 독점 기간이 끝나면 다른 제약 회사가 똑같은 성분을 가지고 약을 복제해서 판매할 수 있기에, 그때 즈음 되면 가격이 안정된다.
“그렇다면 이제, 가격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현 님?”
엘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비록 영화제 참석 겸 유럽 여행을 온 정우현이지만, 그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 이런저런 굵직굵직한 결정을 내려야 할 사안들도 계속 있었다.
그때마다 엘라가 사안을 정리해 이런 식으로 정우현의 판단을 물은 후 우후 그룹 및 재단의 인사들에게 결정을 전달했다. 사실 엘라는 이런 이유로 이번 여행에 함께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정우현이 자신의 고향인 독일 베를린을 간다기에 선뜻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에 정우현이 엘라가 대동하고 싶다는 뜻을 가족에게 알렸고, 가족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평소 거의 공적인 업무와 관련해서만 엘라를 봤던 가족들이었지만, 하나같이 모두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 말은 없이 정확하면서도 온화하게, 시종일관 정우현을 보조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
정우현이 엘라의 물음에 잠깐 생각하더니 되물었다.
“그동안 우리가 이 약 개발에 들인 시간과 비용 등을 생각하면, 최소 얼마는 해야 수지타산이 맞죠, 엘라?”
정우현의 물음에 엘라가 즉각 자체 제작한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연산을 수행했다.
해당 디지털 기기는 계산과 인터넷은 물론 각종 멀티미디어 소스를 대용량 소스로 저장할 수 있는, 일종의 휴대용 컴퓨터였다.
즉 스마트 폰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엘라가 오로지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만큼 기존의 스마트 폰에 비할 수 없이 성능이 뛰어났다.
엘라가 기기의 화면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한 정당 달러로 11.3달러는 해야 이익을 봅니다.”
“으음.”
정우현이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11.4달러 아닌가요? 정확히 하면 11.42달러.”
“…아.”
하고서 엘라가 다시 자신만의 디지털 기기로, 재차 취합한 자료를 통해 검증 및 계산을 실행했다.
“…맞아요….”
그러고는 놀란 눈을 하고 말을 이었다.
“…11.42… 거기에 소수점 자릿수를 계속하면 2546….”
“982달러. 11.422546982달러. 맞죠?”
“…예.”
넋을 잃고 정우현을 바라보는 엘라다.
자신이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디지털 기기로 해낸 연산보다, 정우현의 계산이 더 빠르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는 약 개발과 관련된 자료가 정우현의 머릿속에 모두 있다는 뜻이었다.
정우현은 단순히 이 모든 것을 확인차 엘라에게 물었을 뿐이다.
“…우현 님.”
“예.”
“지금 설마… 암산을 하신 겁니까?”
“하하, 맞습니다.”
엘라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게 바로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브레인 정우현과, 2위인 엘라와의 차이였다.
동시에 어나니머스와 사토시 나카모토의 차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정우현이 지그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얼마를 책정해야 알맞은 가격일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저는 지금 오로지 엘라와만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일단.”
하고서 엘라가 다시 디지털 기기를 조작하고서는 말을 이었다.
“우현 님께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저는 우현 님을 따르지만 우후 그룹 소속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 재단 소속입니다. 이 얘기는 금전의 득실을 따지는 데 있어선 조금 부족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하,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사업의 측면에서 얘기해 보자면 50달러… 아니 100달러를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독점 판매 기간에는요.”
“으음.”
엘라의 말에 정우현이 흥미롭다는 듯 소리를 냈다.
“하지만 질병의 퇴치와 인류의 복지 및 공영에 힘쓰고 있는 우 재단 소속인 저의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20달러. 20달러 정도면 딱 적당해 보입니다. 회사에는 작게나마 이익이 남고, 고객들은 좋은 약을 최대한 싼값에 많이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하고서 정우현이 빙긋 웃고서는 말을 이었다.
“12달러.”
“…예?”
“12달러로 가격을 책정해서, 우후 제약 회사 사장에게 통보해 주세요.”
“…12달러요?”
“예. 맞습니다, 12달러.”
“…그러니까 11.4달러는 해야 수지타산이 맞는 약을 12달러에 팔자고요?”
“예. 그럼 한 정당 0.8달러, 한화로 하자면 약 1,000원의 이익이 생기는군요.”
“…우현 님!”
엘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나 재단은 상관없지만, 남다른 꿈과 보상을 위해 불철주야 신약 개발에 매달렸을 우후 제약 회사 직원들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지 않을까요?”
“아, 직원들은 걱정 마세요.”
“….”
엘라가 여전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우현을 바라봤다.
“다른 자금을 끌어오면 됩니다. 전기차나 엔터테인먼트처럼 이익이 크게 나는 사업에서요.”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엘라. 제약회사의 직원들은 노력에 걸맞은 막대한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중요한 건 우리가 사람들의 질병을 낫게 하는, 약을 판다는 거예요. 사람들의 건강을 볼모로 잡고, 돈 놀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에 엘라는 잠시 가만히 정우현의 뜻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다가는, 한순간 그에 관해 더욱더 존경스러운 마음을 갖게 됐다.
* * *
세상이 뜨거워졌다.
정우현이 고대로부터 존재했던 오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를 종식시킨 것만도 대단한데, 해당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신약을 무려 원가 비용만 받고 판매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열광을 넘어 찬양했다.
-…세상에. 정우현 같은 사람이 세상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 오늘부로 종교 바꾼다. 우현교다.
-연간 1인당 GDP가 1,000달러밖에 안 되는,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면역력이 낮으셔서, 대상포진이 자주 발병하십니다. 그때마다 고통스러워하시고, 마땅히 약도 없어서 자식 된 사람으로 항상 슬프고 괴로웠는데, 이제 해방이네요. 감사합니다, 우현 님. 솔직히 없는 형편이지만, 어떻게든 돈을 모아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약을 사려 했습니다. 1,000달러여도, 1년 치 월급을 모아 사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으니까요. 한데 12달러라니요.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우현 님. 두 달만 월급을 모으면,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온갖 찬사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세상에서 오로지 한 사람, 한 사람만 이에 불만을 제기했다.
심지어 그는 정우현이 현재 독일 베를린에 있음을 알고 순식간에 그의 곁으로 오기까지 했다.
일론이었다.
최근 우후 전기차를 넘어 우후 그룹 전체의 사장 즉 공식적으로 이인자로 승격된 일론이 회장인 정우현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독일로 회사 전용기를 타고 곧장 왔다.
“보오오오오오오오스!”
베를린 시내 고급 호텔의 회의실.
일론이 정우현을 보자마자 그를 크게 불렀다.
정우현의 옆에는 물론 엘라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가요, 일론?”
“제약 회사의 신약을 원가로 후려치고, 직원들의 이익은 전기차의 잉여 자본금으로 충당한다니!”
“아아.”
정우현이 별일 아니라는 듯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일론.”
“그렇게 됐다니? 그럼 전기차 소속 직원들은 뭐가 되는데? 열심히 만들어서 불티나게 차량을 판매한 전기차 직원들은?”
일론은 이제 전기차를 넘어 우후 그룹 전체의 사장이었지만, 아무래도 소속 회사인 전기차 출신이니만큼 자신이 몸담았던 그 조직을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우현이 가만히 있다가는, 슬며시 한마디했다.
“이미 전기차 쪽은, 본봉의 1,000%에 달하는 보너스 파티를 단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
정우현의 말에 일론이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분기별로 한 번씩 매해 총 네 번이요. 뿐만 아니라, 작업에 관여한 특정 차종의 판매량과 연동된 인센티브 제도도 있더군요. 그렇죠, 일론?”
“…그건 그렇지.”
“반면 훨씬 소규모인 제약 회사 직원들에게 지급할 돈은, 그에 비할 수 없는, 훨씬 작은 액수입니다. 그런데도 그 돈이 아깝게 생각되나요?”
“아깝다기보다는… 그 돈은, 약이 아니라 전기차 부문에서 발생한 이익이라는 거지.”
“일론.”
순간 정우현이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후는 하나입니다. 그룹 내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우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식을 애초 사업 별로 쪼개지 않았고요, 또한 그룹 내 업체들끼리 자금을 전용(轉用)할 수 있다는 정관 규정이 있기도 하죠. 그렇죠, 일론?”
“…그건 그렇지만.”
“일론.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합니다. 전기차는 물론 우리 우후 그룹의 시작점이자, 든든한 본진이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제약 회사는 신생 사업이죠. 이미 자리를 잡고 세계를 선도하는 든든한 사업체에서 극히 소량의 자원을 신생 사업체에 끌어 쓰는 것일 뿐입니다. 그룹 내 투자와 다름없죠.”
“….”
이즈음 되자 일론이 정우현의 말을 잠자코 경청하기 시작했다.
“예, 전기차 직원들은 매년 엄청난 실적 호조에, 말 그대로 돈으로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엄연히 우리 전기차 직원들이 힘써 이룬 결과니까요. 한데 그 과실의 작은 부분을 같은 그룹 내 다른 직원들과도 나누자 이겁니다. 그래야 우후는, 중장기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그룹으로서 오래 생존하고 또한 성장할 수 있어요.”
하고는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럼으로써 어떤 이들이 혜택을 받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일론, 세계적으로 질병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그것도 사회 경제적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가장 큰 혜택을 받죠. 워낙 넘치고 넘쳐서, 하룻밤 파티로 날려 버리는 돈을 조금만 떼어 그들을 낫게 하자는 겁니다.”
“…알았어, 보스.”
마침내 일론이 정우현의 말을 조금씩 수긍했다.
“보십시오, 일론. 언젠가는 전기차 쪽도 제약 회사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겁니다. 또한.”
하고서는 정우현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론은 이제, 우후 전기차만의 사장이 아니라 우리 그룹 전체의 사장임을 잊지 마세요. 넓은 시각으로 사업과 효용, 그리고 고객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전기차를 타는 사람과, 약을 먹는 사람들은 별개의 존재가 전혀 아니에요.”
“…그래. 미안하다, 보스.”
그러고서는 일론이 정우현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앞으로는 보스의 말을 무조건 따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