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42)화 (142/200)

142화

정우현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한시의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는 완전히 박멸됐다.

순전히 정우현이 개발 및 공급한 백신과 치료제 덕분이었다.

이에 중국을 중심으로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례적으로 정우현을 칭찬하는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이제껏 정우현에 관해서라면 말을 아껴 왔다.

대중들이 아무리 열광해도, 국가 차원에서 그를 조명한 적은 없었다. 온갖 놀라운 모습을 보이며 성장해 글로벌 기업의 총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우현의 영화 중 검열을 당해 개봉조차 되지 않은 작품이 있을 정도였다.

먼저 <인크레더블 킹 보이>가 그랬다. 하지만 정확히 하면 해당 영화는 정우현이 아닌 브래드 퍼트 때문에 금지를 당했다. 브래드가 과거 <티베트에서의 6년>이라는 영화에서 중국 내 독립을 꾀하고 있는 티베트의 정치 및 종교적 지도자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즉각 브래드의 중국 입국을 금지하고, 그가 출연한 <인크레더블 킹 보이>의 개봉을 금지했다.

이런 식이다. 중국은 각종 이유를 들어 외국 영화의 개봉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관련된 무언가가 부정적으로 비치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들어가 있으면 여지없이 금지다.

사실 이번 정우현의 최신작 <바이 더 베테랑>도 그랬다. 검열 당국에 따르면 미 자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인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을 배경으로 하며, 결정적으로 중국계 소녀 링과 가족의 비참한 현실이 중국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상영 금지되었다.

물론 정우현과 영화 제작사인 우후 엔터테인먼트는 예상한 반응이기도 했기에 딱히 코멘트를 달지 않았다.

그랬던 중국이 이번 일로 정우현을 칭송하고 나섰다.

-一个真正正义的人不会选择他在哪里. (진정한 의인은 자신이 있을 곳을 가리지 않는다.)

공식적인 기관지를 통해 밝힌 성명이다. 중국은 정우현을 진정 의로운 사람으로 추켜세우며,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그가 인건 및 개발비만 받았을 뿐, 백신과 치료제는 무상으로 공급한 것과 관련해 ‘자본에 찌들지 않은 사회 사업가’라는 표현도 덧붙였다.

이와 함께 서방 언론도 당연히 정우현을 조명했다.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외국인임에도 그 어떤 국제기구보다 빠르게 중국에 입국해 말끔히 해결한 것에서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정우현. 이러다 사람 고친다고 아프리카 오지까지 날아갈 듯.

-정우현 님…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본인 몸도 잘 챙기세요….

-맞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어찌 되든 알 바 아니고, 우현이만 지금처럼 잘 지내길.

한편, 중국이 정우현에 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전격 결정했다.

그의 할리우드 신작 <바이 더 베테랑>을 늦게나마 중국 내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물론 검열로 삭제되는 씬이 여럿 있었지만, 어쨌든 상영한다는 게 중요했다.

실로 미국 군인이 전면에 등장하고 극 중 그려지는 중국계 가족의 비참한 모습에도 이례적으로 상영이 허가됐다.

그러면서 검열 당국은 이와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다.

-…찬찬히 <바이 더 베테랑>을 살펴본바, 죽음 가까이 있었던 한 인간의 회생 그리고 약자와 연대 등 삶을 향한 강한 긍정의 메시지에, 인민에게 좋은 영향을 줄 영화라고 판단해 상영을 허가하게 됐다.

실상 정우현이 우한시의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해 줬기에 허가한 게 분명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해당 영화를 그렇게 평하며 상영을 결정했다.

평 자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우현은 스러지는 사람들이 일어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삶의 끄트머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함께하며 끝내는 웃는 모습의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다.

* * *

시간이 조금 지나 정우현은 미 아카데믹 시상식 참석하게 됐다.

영화 <바이 더 베테랑>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등 총 여섯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참석한 시상식장.

<인크레더블 킹 보이> 때 어린 나이에 참석했던 시상식장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때는 호기심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린 나이에 얼떨결에 온 할리우드, 그리고 시상식까지.

옆에는 브래드와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이 있었다. 그들은 정우현에게 있어 일종의 보호자와 다름없었고, 정우현 또한 항상 귀여움을 받는 등 아이다운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성인으로서 온전히,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영화로 레드 카펫을 밟게 됐다.

“정우현 님! 카메라를 한번 봐 주세요!”

기자의 요청에 정우현이 모처럼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꺄아아아아악!”

레드카펫 옆에 서 있던 정우현의 팬들이 마구 소리를 질렀다.

"정우현 님!"

금발의 여기자가 포즈를 취한 정우현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예.”

“이번 영화로 감독 정우현의 커리어가 배우 정우현의 커리어를 넘어섰다는 평이 나왔는데,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하하.”

정우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감사합니다. 그만큼 이번 영화를 좋게 봐 주셔서 그런 거겠죠.”

하고서 정우현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배우든 감독이든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저 지금으로선 무엇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전 세계의 관객들이 이번 영화가 거칠면서도 참 아름답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혹시 창작하시는 데 영감을 받은 작품이나 인물이 있을까요?”

“아… 예, 있습니다.”

그러고선 정우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릴 적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요. 주인공 라스콜리니프와 쏘냐를 떠올리며, 어둠에 잠식된 남자가 한 소녀에 의해 다시 빛을 찾게 된다는 기본 구도를 떠올린 것 같아요.”

“오, 그렇군요!”

기자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들었다는 듯 자신의 수첩에 빠르게 필기를 하며 질문을 이었다.

“아, 그리고 또 음악! 이번에 또 영화 음악이 화제인데요. 알고 보니 감독님께서 직접 작곡 및 연주하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하하, 맞습니다.”

“아아… 대단하네요.”

순간 기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정우현의 이번 영화도 잘 봤지만, 무엇보다 음악에 무척 빠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혼자 있을 때는 거의 항상 <바이 더 베테랑>의 OST를 들었고, 잠이 들 때도 OST 속 정우현의 피아노곡을 들었다.

“…감독님.”

“네?”

여기자가 넋을 잃고 말을 이었다.

“이탈리아의 엔니오 모리꼬뉴 아시죠?”

“그럼요. 아름다운, 영화 음악의 대가잖아요.”

“더 좋아요.”

“…예?”

“더 좋다고요, 감독님이 만드신 음악이!”

“아….”

그 정도라고는 생각 안 했다.

영화의 서사에 맞춰 심혈을 기울여 작곡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도,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다.

그저 자신의 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곡을 쓰고 피아노를 연주했을 뿐이다.

한데 사람들이 이렇게나 좋아할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감독님의 음악을 들으면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에요….”

하고 기자가 계속해서 정우현의 음악에 관해 극찬하는데, 시상식장 안쪽에서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어서 들어오세요, 이제 곧 시작합니다!”

“…아.”

기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뒤늦게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죄송해요, 감독님. 제가 너무 잡아 놨네요. 어서 가서, 상을 받으세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러고서 정우현이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데 여기자가 뒤에서 크게 소리쳤다.

“특히 음악상이요!”

* * *

시상식이 시작됐다.

아직 아무런 수상도 하고 있지 않은데, 스크린에 정우현의 얼굴이 비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만큼 정우현은 스타 중 스타였다.

뿐만 아니라 이번 시상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이미 모두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정우현이었다. 단순 흥행 성적과 비평가들의 평에서도, 정우현의 <바이 더 베테랑>은 압도적이었다.

이내 수상이 시작됐고, 순서대로 여러 수상자가 앞으로 나가는 가운데, 드디어 정우현의 이름이 불렸다.

음악상이었다. 음악상으로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불렸다.

실상 음악상으로 감독이 나가서 상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 음악은 당연히, 전문 음악가가 만들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영화에서는 정우현이 음악도 담당했다. 그래서 감독인 그가 나가 상을 받았다.

짝! 짝! 짝!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고, 정우현이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가 뜨거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음악으로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디까지나 영화를 더 완성도 있게 하도록, 곡을 직접 한번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한 것입니다만, 음,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정우현!”

순간 객석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지어 한국어였다.

“사랑해요! 정우현!”

우현스가디언이었다. 정우현의 국제 팬클럽이 한국어로, 정우현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우현스가디언 등 팬들은 정우현의 음악 실력을 이미 얼추 알고 있었다.

정우현이 어렸을 때 팬들과의 만남을 가진 이래, 가끔 선물처럼 팬들을 위한 짧은 곡들을 직접 만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나 같이 듣기 좋았는데, 이번에는 정우현이 자신의 영화를 위해 작정하고 만든 음악이기에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감독 말고도 음악가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붙여야 하나요?”

시상식의 진행자가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정우현은 그저 환히 웃다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하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야 했다.

감독상과 각본상 또한 정우현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바이 더 베테랑>은 정우현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기에, 각본상 역시 그가 수상했다.

이윽고 영화제는 가장 중요한 상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바로 주연상과 작품상이었다.

사실 정우현 또한 이 순간을 가장 기다렸다.

작품상 때문이 아니다.

바로, 남우주연상 때문이다.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인 브래드 퍼트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우.”

스크린 위로 소개되는 후보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브래드가 긴장한 표정으로 정우현을 보고 말을 했다.

“좀 떨리는구나… 나답지 않게, 하하….”

“괜찮아요, 브래드.”

하고서 정우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조건, 무조건 브래드가 받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우현은 긴장됐다. 

실상 자신이 참석한 그 어떤 시상식보다도 긴장됐다.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친구 브래드였기 때문이다.

브래드는 연기상과 큰 연이 없다. 전생의 2022년을 기준으로 해도 그는 오랜 연기 인생 중 미국 내에서 주연상을 받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만큼 연기파보다는 인기 스타라는 인식이 강한 배우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주연상 후보에 오른 만큼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브래드는 물론 정우현 또한 그랬다.

웬만해서는 긴장을 하지 않는 정우현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상은 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던 정우현이었다. 그에게는 상보다는, 사람들이 실제 자신의 영화를 얼마나 많이 찾고 또 좋아하는지가 훨씬 중요했으니까.

한데 이번엔 달랐다.

브래드다, 오랜 친구 브래드.

그가 연기상을 받기를 얼마나 오래 고대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이왕이면 자신의 영화로 브래드가 연기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거의 꿈처럼 소망했었다.

한데 그런 순간이 왔다. 자신이 메가폰을 잡은 <바이 더 베테랑>의 주인공 브래드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무조건 그가 상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우주연상은.”

이윽고 객석 위로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목소리.

“<바이 더 베테랑>의 브래드 퍼트!”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브래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무지막지한 목소리로 괴성을 질렀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한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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