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정우현의 말에 연구소장이 깜짝 놀랐다.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은 말을 계속했다.
“도와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제힘으로 모든 걸 합니다. 무언가에게 의존하지 않아요.”
“…하하하.”
소장이 두꺼운 턱살을 떨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예, 그렇죠. 맞습니다. 정우현 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고 엄청난 삶을 살아왔는지,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고서 그가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이제껏 해 온 그와 같은 방식이 우리나라에선 먹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실상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죠.”
“만약 그렇다면.”
정우현이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제 활동을 펼쳐야 한다면, 그리고 그 다른 방식이란 게 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특정인이나 단체에 잘 보여야 하는 활동이라면 전 굳이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가 한 국가 전체여도 말이죠.”
“…으음.”
“소장님. 제가 이 나라에 입국해 이곳 우한시에 온 이유는, 순전히 인도적 차원에서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함입니다.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온갖 나라를 드나들며 이런저런 활동을 한 정우현이지만, 중국에서는 좀처럼 활동하지 않았다.
한류 열풍이다 뭐다 한국 문화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파되며 인기를 끌었을 때도 정우현은 중국 활동을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자유롭지 못한 중국의 정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 활동은 물론, 사업도 중국에서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치솟는 우후 전기차를 향한 중국 내 수요 때문에, 상하이에 생산 공장 하나를 지은 게 다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타깝군요.”
소장이 말했다.
“저를 통해 당의 도움을 받으시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일 텐데요.”
“괜찮습니다.”
사실 정우현이 백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연구소와 협력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했다.
소장에게 얘기해 중국 현지인들을 뽑아 백신을 테스트하면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당을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으음.”
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아까의 나긋한 어조는 온데간데없이 말을 했다.
“정우현 님. 그러시면 앞으로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뭐가요?”
“아니, 우리의 도움을 거절하시면 바이러스고 뭐고 다….”
“하하, 소장님.”
정우현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예?”
“백신과 치료제는 전부 저희 우후 제약 회사 것입니다.”
“….”
“이제 막 개발에 성공했을 뿐, 이와 관련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제가 틀렸나요?”
“….”
정우현의 말에 소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다.
“이 얘기는, 소장님은 물론 우한시 당국은 바이러스 퇴치와 관련해 아직 아무런 소득도 없다는 겁니다. 성과는, 모두 우리 우후 제약 회사가 이뤘으니까요.”
“…그렇다면.”
소장이 애써 입을 열며 작은 눈을 더 작게 뜨고 말했다.
“우후 제약 회사를 이끄는 세계적 유명 인사인 정우현 님이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우리 우한시에 와 실제 백신과 치료제를 성공적으로 만들고도 당국에 아무런 지원 없이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가지고 회사로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세상에 발표해도 됩니까? 순전히 돈벌이를 위한 약 개발이었나요?”
“아니죠.”
정우현이 얼른 답했다.
“순전히 인도적 차원에서 온 우리 회사가 당국의 고압적인 태도와 당 차원에서의 강제적 정치 개입으로 연구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강제 출국당하다시피 했다.”
하고 그간 보란 듯이 말을 이었다.
“이것이 우리 회사의 공식 입장이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시 당국의 발표와 우리 회사의 입장 중,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믿을까요?”
“…으음.”
소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독재 정권에서의 언론은 자유 세계에서의 언론과 역할이 많이 다르다. 자유 언론은 정확한 사실 보도와 공정함,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목표로 진실을 파헤친다면, 독재 정권에서의 언론은 어디까지나 정권의 홍보 역할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만약 이대로 정우현이 소장과 백신 및 치료제 공급에 관한 논의에 계속 이견을 보인 채 어긋나고서는 제각기 입장을 발표한다면 세계의 여론은 중국을 비난할 게 틀림없었다.
중국에 비해 정우현과 그가 이끄는 우후 그룹은, 국제적 신용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기 때문이다.
“소장님.”
정우현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소장을 불렀다.
“…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
“치료제를 만들었을 때는 물론, 불과 아까 제가 백신의 효과를 입증했을 때도 무척 고맙다며 말씀하신 분이,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제게 함부로 하실 수 있습니까?”
정우현의 직접적인 말에 소장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소장님은, 말 그대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소의 소장님이십니다.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제가, 무려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럼 소장님은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입니까, 손해를 보는 사람입니까?”
이득이었다. 완전한 이득이었다.
아니, 단순히 이득인 걸 넘어서 정우현은 그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바이러스를 잡지 못한다면 그의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한데 정우현이 마치 영화 속 히어로처럼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장은 오히려 거드름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돈 얘기를 하셨나요?”
정우현이 계속 말했다.
“소장님, 한평생 바이러스 연구만 하셨는지 정치만 하셨는지 하여간 그래서 모르는 것 같지만, 사업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망해요. 왜냐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정말 이번 일로 돈을 벌고 싶었으면, 가만히 기다렸을 겁니다. 그렇게 조용히 기다려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그에 맞춰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 높은 가격에 독점했겠죠.”
“….”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바이러스가 출현하자마자 초창기에 여기 와서, 약을 만들었죠.”
그러고서 그는 품에 있던 백신과 치료제를 소장의 눈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보십시오. 이 약들은, 올해를 끝으로 더 이상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소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잠자코 있었다.
“이로써 봉쇄된 우한시 내부에 있는, 이미 전염된 사람들은 곧장 치료되고 일반 사람들은 백신을 맞음으로써 바이러스가 곧 종식될 거니까요.”
그러고서 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장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에 소장도 일어났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다가, 한순간 굳게 다짐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하고 곧장 말을 이었다.
“정우현 님은, 진정 대인배이십니다… 그에 반해 저는, 알량하기 짝이 없군요… 순수한 의도로 이곳에 오신 정우현 님을 곡해하고 사람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제 앞길의 장애 유무로만 판단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우현 님은 저와 달리 진정 깊은 뜻을 가진 큰 인물입니다.”
“괜한 말은 마시고 본연의 일이나 잘 생각해 보세요. 인민을 위하신다는 분들이 어찌 일을 그렇게 합니까?”
그러고서 정우현이 백신과 치료제를 보고 말을 이었다.
“낱낱의 약에 관해서는 따로 값을 받지 않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어차피 이번 국지적인 바이러스 퇴치에 쓰이고 말 약들입니다. 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없어질 거예요. 그와 함께 이 약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용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장이 거의 큰 절을 하다시피 하며 말했다.
“하지만 약 개발비 등 인건비는 두둑이 주십시오. 저를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와 밤낮 잠을 아껴 가며 약 개발에 몰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우현은 동생을 포함한 그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는 응당 그에 대한 대가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런 줄 알고 있을 테니, 이제는 소장님이 알아서 잘해 보십시오.”
하고 정우현이 연구소 소장실에서 밖으로 나갔다.
* * *
그러고서 며칠 후 정우현에게 위안화가 입금됐다.
1,000억 원이었다. 단기간 연구에 매진해 받은 액수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전생을 떠올려보면 무척 적은 금액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수년간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등 전 세계가 몹시도 고통을 받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괜찮게 됐다. 정우현은 세계적 대유행만큼은 어떻게든 막고자 이렇게 일찌감치 우한시에 들어와 바이러스를 종식시켰다.
즉 두 번째 삶에서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그저 중국의 우한시 내에서 조금 퍼지다가 이른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에 의해 사라지고 만 지역 바이러스로 남았다.
“…오빠.”
우한시를 떠나기 전날, 동생이 정우현과 산책을 하며 말했다.
“응?”
“…나한테 이렇게, 많이 줘도 돼?”
“하하하, 다현아, 네가 백신이랑 무려 바이러스까지 직접 맞아 가며 해낸 일인데 당연하지.”
“…아니, 그래도….”
정우현은 입금된 1,000억 원을 동생을 포함한 연구원들에게 사람 수에 맞춰 공평하게 분배했다.
이로써 그들은 인당 수십억 원에 가까운 돈을 벌게 됐다.
반면 정우현은 단 한 푼도, 즉 1원도 취하지 않았다.
“오빠는 하나도 가지지 않고 다 나눠 주는 게 어디 있어.”
“다현아.”
“응?”
“나는.”
“….”
“돈 많아.”
정말이었다. 정우현은 정말 엄청나게 억수로 돈이 많았다.
100억 원, 200억 원은 이제 통장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작은 돈이 되었다.
이번에 그가 제약 회사 연구원들을 이끌고 중국에 입국해 우한시에 들어와 바이러스를 퇴치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우후 그룹의 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우후 주식 내 정우현의 지분은 여전했고, 이는 곧 정우현의 가파른 자산 상승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건 알지만….”
동생이 못 말리겠다는 듯 눈을 찡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우현 또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이번 기회로 돈보다 중요한 걸 얻었잖아.”
“…뭐?”
“원천 기술.”
“아….”
“이번 바이러스 퇴치로 우리 제약 회사의 기술은 한 발 더 앞서 나가게 됐어. 유전자 바이오 회사로는 아마 세계 최고로 발돋움하게 될 거야.”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된 거야. 또 뭐가 필요하겠어? 하하!”
하고서 정우현이 기분이 좋아 크게 웃고는 뒤늦게 무언가 생각난 듯 소리를 냈다.
“아.”
“…응?”
“또 하나 있다. 이번 일로 얻은 거.”
“뭐?”
하는 동생의 물음에 정우현이 다가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바로 우리 정 남매의 콤비 플레이.”
“…아, 뭐야.”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동생이 부정은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하하하, 동생아. 얼른 가자, 집에. 그립구나, 집이!”
“그러게.”
“아아, 먹고 싶다, 어머니의 된장찌개.”
“…오빠는 맨날 엄마 된장찌개만 찾아.”
“어? 그러는 너는 아직도 젤리를 먹냐.”
동생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젤리를 입에서 떼지 못했다. 오죽하면 이번 바이러스 연구소에서도 틈틈이 젤리를 입에 하나씩 넣고 일할 정도였다.
“…젤리는 기호 식품이거든.”
“된장찌개는 필수 식품이다.”
“…치.”
하고 말하는 동생이 멀어지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오빠, 같이 가.”
정우현이 보폭을 빨리해서 걸었다. 이런저런 말대꾸를 하는 동생이 귀여우면서도 조금 귀찮아졌다.
“같이 가자고, 오빠아.”
뒤에서 계속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