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중국 우한시.
당국의 통제로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물론 외국인인 정우현과 동생, 그리고 우후 제약 회사 일행이 이곳에 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지 않았기에 당국의 허가를 받고 들어올 수 있었다.
들어올 때의 허가 조건은 이랬다. 오직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퇴치 및 연구에 힘을 쓸 것. 바이러스와 관련 없는 정치적 언동은 절대 금할 것.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다운 조건이었다.
어쨌거나 정우현은 그 모든 조건을 승낙하고 우한시에 들어왔다.
실상 그간 우 재단의 활동이 정우현의 우한시 출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 지역이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도 우 재단의 이름으로 각종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재단을 설립했을 시 원칙을 정했었다. 국적, 인종, 종교, 이념 등 모든 프레임을 불문하고 재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그래서 당연히 중국에도 지원했었고, 이로써 공산당은 정우현의 우한시 방문을 허가했다.
실상 중국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서방 국가의 인사들을 보통 경계한다.
물론 정우현은 한국인이지만 제약 회사의 본사가 미국에 있고, 한국 못지않게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많이 했기에 미국 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더군다나 중국은 자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국제적으로 어떻게든 축소시키고 싶어 했다. 이런 상황에 미국에서 제약 회사를 이끄는 정우현의 방문을 허용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정우현의 방문을 허용한 이유는 단 하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우현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우현의 우한시 방문 및 바이러스 연구가 허용될 수 있었다.
* * *
우한시 중국 바이러스 연구소.
연구소장과 지역 공산당 간부가 정우현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하는 그들의 표정은 사뭇 경직되어 있었다.
그들이 원해서 정우현을 만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당의 지시였다.
또한, 그들이 서방에서 온 정우현을 만나는 것은 자신들의 실패를 자인(自認)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탐탁지 않은 면도 있었다.
“반갑습니다.”
정우현 또한 인사를 했지만,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실상 처음 느껴 보는 분위기였다.
어릴 때부터 외국을 숱하게 가 본 정우현이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정우현을 환영하지 않았다.
말로는 환영한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그들의 표정과 어조 등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정우현 또한 이와 같은 느낌을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바이러스 균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얼른 연구소 내부로 들어가며 말을 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물론 중국인 모두가 정우현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대다수 인민, 즉 평범한 사람들은 정우현을 보고 열광했다.
그들 또한 세계 곳곳에 있는 우현스가디언과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순간 조금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일 때가 있었다.
지역 공안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다.
이 모습을 보고 정우현은 일반 인민도 당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한편, 이로써 정우현은 한 가지 사실에 관해 확신하게 됐다.
바로 독재는 잘못됐다는 사실이다.
정우현은 오래전 세계의 역사를 학습하면서 이유 불문하고 독재는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옳아 보일 때도 있었다. 국가가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상황, 예컨대 정치 또는 경제적인 문제로 완전한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다.
하지만 그렇게 독재 정권이 성립하고 당장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한다고 해도, 종국적으로는 견제 세력이 없어 부패하고 마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그들이 만든 조직은 결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의 역사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던 자유가 다수의 사람에게로 확산되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이상이 역사를 학습하며 갖게 된 정우현의 가치관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경험하니 더욱더 확신하게 됐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그저 좋아한다고 표현조차 못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일당 독재 국가의 현실이었다.
“으음….”
그런 생각을 뒤로한 채, 현미경을 통해 바이러스 연구를 하는 정우현.
“어때?”
옆에서 또 한 사람이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정우현에게 말을 붙였다.
동생이었다. 동생 정다현이 정우현을 따라 바이러스 연구소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쉽겠는걸?”
정우현이 답했다.
이미 헤르페스 3형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퇴치한 정우현이다. 그런 그에게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특히 정복하기 어려운 바이러스는 아니다.
“아, 다행이다.”
하고 동생이 계속 바이러스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우현은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그런 동생을 보고 말을 이었다.
“…숙소에 있으라니까.”
“괜찮아.”
“여긴 위험하다고.”
“…괜찮다니까.”
정우현과 동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이러스 방호복을 입은 상태였다.
정우현은, 당연히 이런 위험한 곳에 동생이 오는 걸 원치 않았다.
아니, 애초에 우한시를 방문할 때 따라나서는 걸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기어코 오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연구원인걸.”
“그래, 그렇긴 하지만 모든 연구원이 이렇게 위험을 자초하지는 않아.”
“…그러는 오빠는 왜 직접 간다는 건데?”
“…나야, 바이러스가 더 전파되기 전에 얼른 막고 싶어서 그러지.”
“나도 그래.”
하고 동생이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그런 생각인 만큼 나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렇단 말이야. 오빠, 잊었어?”
그러고서 동생이 잠시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의 오랜 꿈이야.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꿈꿔 왔는지 몰라. 좋은 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고 눈을 뜨고선 살며시 미소를 짓는 동생이었다.
“그런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는데, 위험하다고 피할 수는 없어.”
정우현이 동생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물론, 원한다면 강제로 동생의 주장을 묵살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정우현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동생이 기뻐하며 말했다.
“허락해 줘서 고마워, 오빠. 이런 일로 위험하다고 주저한다면, 나는 어디서 오빠 동생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었을 거야.”
이렇게 해서 우한시 방문에 함께하게 된 동생이었다.
그럼에도 정우현은 계속해서 그녀가 걱정됐다. 어쩔 수 없는 친오빠의 마음이었다.
다시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바라보며 정우현이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끝내야겠다고.
“다현아.”
“응?”
“그럼, DNA 염기 서열부터 분석하자.”
“아, 응.”
“그건 네가 좀 해 줘. 나는 항체를 연구할게.”
“알았어.”
물론 한편으로는 동생이 든든했다. 역할 분담을 해서 작업 속도가 빨라지기까지 했다.
* * *
그리고 일주일 후, 정우현이 연구소장을 찾았다.
“…무슨 일입니까?”
역시 탐탁지 않은 눈으로 정우현을 보고 입을 여는 소장이다.
“치료제를 만들었습니다.”
“….”
소장은 정우현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뜨고 가만히 있었다.
“치료제를, 만들었습니다. 얼른 효과를 확인해 봐야 해요, 소장님.”
“…그러니까, 일주일 만에, 이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들었다고요?”
“예.”
“허어어….”
결국, 입을 열고 말을 잇지 못하는 소장이다.
정우현은 일주일 동안, 딱 5시간만 잤다.
최대한 빨리 치료제를 만들고 싶었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동생이 전염될까 봐 그랬다.
사실 그 5시간마저 안 자고 연구하려 했으나, 동생이 제발 좀 쉬라고 해서 잠시 눈을 붙인 게 이와 같은 결과였다.
피곤했다. 물론 피곤했지만, 몸이 무너질 정도로 엄청 힘들지는 않았다.
그저 전생에서 하룻밤을 완전히 지새운 정도였다. 즉 몽롱하면서도 머리가 조금 아팠다.
사실 정우현은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믿고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고, 피로감도 느껴 본 적 없다. 거기에 달리기와 격투 능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술은 일절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염라대왕의 선물로 자신이 신체 또한 두뇌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뛰어날 수도 있겠구나 조금씩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잠을 안 자고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 하는.
결과는 나왔다. 일주일 동안 다섯 시간만 자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저 전생의 평범한 신체로 딱 하루날을 새우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피로감.
그게 전부였다.
“얼른, 얼른 이 치료제를 투입해 봐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과거 헤르페스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든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거의 같은 방식으로 치료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으음, 일단 알았습니다.”
이윽고 바이러스 보균자를 눈앞에 두게 된 정우현.
치료제를 주사로 투여했다.
그러고는 경과를 관찰했다.
100%.
단 2시간 만에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100% 몸속에서 사라졌다.
“…아아.”
“믿을 수 없어.”
“…말로만 듣던 정우현의 능력이군….”
이에 연구소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쑥덕대기 시작했다.
“다행이군요.”
이 모습을 확인하고 정우현이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아직 연구가 끝이 아니다.
“그 다음 백신, 백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백신이요?”
“예, 치료제가 있어도 계속해서 확산된다면 큰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백신을 만들어서,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아예 막아야 합니다.”
“하긴, 그렇겠죠.”
정우현이 순간, 한번 하품을 하고는 조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딱 하루, 하루만 쉬고 오겠습니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 모처럼 침대에 푹 누워 잠을 청했다.
* * *
잠을 잤다. 그것도 꿀잠을 잤다.
살아생전 이렇게 깊은 잠을 잔 적 없었다.
하루를 그저 잠만 잤다.
그리고 일어나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오빠?”
한데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더 자지 않고?”
“…왜 여기 있어?”
“아, 오빠 걱정돼서 와 있었지.”
“음.”
하고 정우현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간단히 씻고 끼니를 때운 다음 곧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 가?”
“연구하러 가야지.”
“…더 쉬라니까.”
“아니야,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고 나가는 정우현의 뒷모습을 동생이 걱정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 * *
그리고 일주일 후.
정우현은 또다시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백신을 만들었다.
효과가 확실했다.
전생에서 있었던 1차, 2차, 3차를 맞고도 완전하지 않았던 백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한 방으로 온전히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