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38)화 (138/200)

138화

정우현의 우후 전기차는 권유라가 속한 에이치자동차와 곧 충전소 사업에 나섰다.

에이치 그룹 측 인사가 정치인들을 만나 충전소 의무화에 관한 법률 및 조례의 변화를 이끌고 그들의 부지에 우후의 충전소가 들어섰다.

충전소의 보급은 더 많은 전기차 판매를 의미했다. 우후 전기차를 중심으로 매출이 증대되는 가운데 충전소 이용이 늘며 시설 요금을 받았다.

이처럼 전기차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갖게 됨으로써 우후는 더욱 탄탄해졌다.

이와 함께 권유라는 에이치자동차에 공식적으로 입사하자마자 혁혁한 성과를 세우게 되어, 회사 내 입지가 커졌다.

그녀의 입지 상승은 곧 그녀 아버지의 입지 상승을 뜻했다.

나아가 정우현이 만든 내연 기관 엔진을 바탕으로 에이치자동차를 세계 일류 회사로 만든 사람이 또 권유라의 아버지이다 보니, 그의 회장 추대는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고마워, 우현아.”

권유라가 정우현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정우현이 곧장 답했다.

“너에게나 사장님에게나, 그리고 우후에나 모두 잘된 일이니, 나도 참 기쁘다.”

“그치? 헤헤. 아, 근데 우현아. 이번에 영화 진짜 좋더라.”

“오, 그래? 봤구나?”

“그럼! 너한테 말은 안 했지만, 개봉하자마자 봤다고! 스트리밍도 물론!”

권유라는 어릴 때부터 영화와 관련된 말은 정우현에게 많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우현과의 관계를 친구 대 친구로 생각했지, 팬과 스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 앞에서는 영화 얘기를 아꼈다.

한데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몰입감도 좋았고, 짠하기도 하고. 진짜 대박이야.”

“하하, 그래?”

“응! 그리고 네가 초반 씬에 나왔잖아. 근데 그렇게 죽어 버릴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어. 처음부터 한 방 먹고 들어갔다니까?”

“하하하, 그랬구나.”

“근데 스트리밍은 내가 보기엔 좀 잔혹하더라.”

“그렇지? 그래서 일부러 감독판으로 따로 뺀 거야.”

“응, 주위 사람들 특히 보통 남자들이 감독판이 훨씬 재밌다는데, 난 본편이 좋았어. 뭐랄까, 훨씬 예쁘고 감동적이었달까.”

“역시 유라. 평론가 다 됐네.”

하고 정우현이 농담까지 했다.

“하하하, 뭐야!”

본편에는 없고 감독판에만 있는 씬은 이렇다.

브래드가 사채업자의 저택 벽을 넘어선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고 어두워서 사채업자 일당이 브래드를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브래드가 몸을 숨기고 살금살금 건물로 향하지도 않는다.

저벅저벅.

발소리를 다 내며 건물로 접근한다.

이내 사람들 눈에 띄는 브래드.

하지만 그들은 브래드가 누구인지 모른다.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가 감히 저택의 벽을 넘어 자신들을 처단하기에 온 사람이라고는 당연히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뀐다.

브래드가 문 맨 앞에 있던 한 놈을 바로 죽여 버린다.

상의 안에 있던 군용 나이프를 꺼내 적을 턱 아래에서부터 위로 수직으로 찔러 버렸다. 중동에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일 때 썼던 나이프다.

이에 사채업자 일당들이 깜짝 놀라지만 때는 늦었다.

브래드가 번개와 같은 속도로 그들을 모두 죽이니까.

한 놈은 목의 정맥을 베어 버리고, 한 놈은 도망가는 뒤통수를 바로 찔렀다.

“크아아아악!”

피가 모두 브래드의 몸에 튄다.

물론 실제와 달리 영화 연출상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샘솟는다. 일부 관객들은 이런 씬에 열광하니까.

그러고서 총을 든 한 놈의 손목을 바로 또 잘랐다.

“흐아아아악!”

적의 손과 함께 떨어진 권총을 집은 브래드가 방아쇠를 당겨 녀석의 이마를 향해 쏜다.

탕!

이윽고 총을 들고 다가오는 두 명의 적을, 한 명은 머리를 한 명은 심장을 맞혀 쏜다.

타당!

너무 쉽다.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하며 온갖 잔학무도한 무장 단체들을 상대하고 처치했던 브래드에게 사채업자 일당은 너무 쉬운 적이다.

투둑.

옥상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필시 브래드를 겨냥하는 적의 움직임 소리다.

브래드가 처음으로 잠깐 벽 뒤로 몸을 숨긴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시체를 하나 집어 앞으로 던져 본다.

타다다다다당!

엄청난 총소리.

작심하고 노린 저격이 아니라 마구잡이식 당황한 격발.

브래드가 즉각 적의 수준을 파악한다.

이내 모퉁이에서 나와 정체를 드러내 녀석을 살핀다.

당황하고 있는 검은 피부의 적. 그는 자신이 방금 쏜 사람이 아군의 시체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 제대로 맞지도 않았다.

타당!

헤드샷. 옥상에서 풀썩 쓰러지는 적.

이것으로 실외의 모든 적은 죽였다.

저벅저벅.

이내 저택 거실에 발을 들인 브래드.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하다가는 한 소리를 듣는다.

쿠궁! 

소리가 난 2층을 바라보니, 과연 한 놈이 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덩치다. 한데 무기가 없다. 맨 몸이다.

“우워어어어어!”

갑자기 브래드에게 달려드는 덩치.

녀석은 필시 지크의 보디가드임이 분명했다.

한데 덩치만 좋고 머리는 발달하지 않았다. 무기를 든 브래드에게 맨몸으로 달려올 정도니.

이에 브래드가 헤드샷으로 적을 날리려다가, 총을 버렸다.

이런 무식한 놈을 너무 쉽게 죽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쉬이이익.

덩치의 공격을 피하는 브래드.

“크억!”

이내 발차기로 녀석의 정강이를 부러트린다.

두둑.

연이어 팔을 꺾어 부러트리는 브래드.

“크아아아악!”

덩치가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죄송합니다, 라고 해.”

그런 그에게 말을 거는 브래드.

“죄송하다고 하면, 바로 죽고 안 그러면 고통스럽게 죽는다.”

“흐아아아악!”

몸부림치는 덩치.

그러나 브래드가 그의 몸을 붙잡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브래드가 칼을 들어 녀석의 복부를 한 번 찌른다.

“빨리.”

“크아아아악!”

그럼에도 말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손가락을 자른다.

“으아아아아악!”

“빨리.”

덩치가, 부러진 다리로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연다.

“…죄송… 합니다.”

선택지는 없다.

그저 덜 고통스럽게 죽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덩치.

차아아앗.

왼손으로 녀석의 머리카락을 잡고 바로 목을 자르는 브래드.

목을 바닥에 던진 뒤 2층으로 향한다.

* * *

“…오셨군요.”

브래드가 조금 놀랐다.

지크라는 놈은 80이 넘은 할아버지였다.

즉, 이 할아버지가 링의 어머니를 채무자로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링의 아버지 또한 사람을 시켜 폭행해 죽였다.

“하….”

브래드가 조금 어이가 없어서 한숨까지 쉰다.

그러고서는 생각에 빠진다. 돌이켜 보면 그렇다. 세상은, X신 같다. 자신이 과거 조국을 위한답시고 X신 같은 나라에 가서 X신 같은 짓거리를 하며 X신 같은 사람들을 죽이고, 끝내 아끼는 사람을 잃고선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고국에 돌아오게 된 것 자체가 그렇다.

링 또한 그럴 뿐이다. 이런 X신 같은 할아버지에 의해 부모를 모두 잃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생각은 여기까지다, 얼른 이 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이 세상을 덜 X신처럼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 가지십시오….”

지크의 옆에는 엄청난 양의 돈이 있다.

커다란 방을 반 이상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의 돈.

“모두 다 가지십시오, 대신 저만 살려 준다면야….”

노친네.

자연사하기까지 몇 년이나 남았을까. 길어야 10년? 아니 5년?

고작 그 짧은 여명을 위해 이 엄청난 돈을 갖다 바치려 한다니.

브래드는 기가 찼다.

브래드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난로를 켜고 남은 기름통을 발견한다.

천천히 그리로 가 기름통을 들고 돈 위로 기름을 뿌리며 말한다.

“…네가 평생 긁어모은 돈.”

그러고는 지크의 몸 위에도 뿌린다.

“사람들의 고통으로 쌓아 올린 돈.”

“히이이이이익!”

“그 돈과 함께, 모두 사라져라.”

품에서 라이타를 꺼낸 브래드.

지크의 몸에 불을 붙인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절규 소리.

불길이 지크의 몸 위 기름을 타고 삽시간에 돈 위로 퍼진다.

활활 타오르는 돈.

수초 간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보다가 밖으로 나오는 브래드.

짧게 뇌까린다.

“…시발 거.”

시체가 즐비한 저택. 돈과 함께 잿더미가 되고 있는 저택.

그를 뒤로하고서 브래드가 피 칠갑이 된 몸으로 다시 벽을 폴짝 넘어 링에게로 간다.

이것이 삭제된 씬이었다.

물론 정우현의 동생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차마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반면 취향이 다른 사람들은, 이 씬을 <바이 더 베테랑> 최고의 씬으로 꼽기도 했다.

* * *

시간이 조금 지나 2019년 11월.

뉴스에선 이상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중국 우한에서 인간에게 감염되는 신생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엔 거의 모두 별거 아닌 줄 알았다.

그대로 중국 내에서 사라질 작은 전염병인 줄만 알았다.

기껏해야 과거 유행했던 독감의 일종이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뉴스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주의 깊게 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정우현이었다.

전생의 경험이 있는 정우현만이 오직 해당 소식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가 곰곰이 생각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가 창궐해 세계 증시가 폭락한다.

그러고는 곧 다시 회복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즉, 또다시 큰돈을 벌 기회였다.

하지만 이내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리란 것을 알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자산을 불리고 싶지는 않았다. 마치 그들의 절망을 기쁘게 기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생각을 하다가 그가 직접 중국 우한에 가기로 결정했다.

“정우현 님.”

“예.”

엘라가 재단의 의장실에 들어와 말을 했다.

“굳이 왜 거기에 가시려고 하세요?”

“아, 직접 가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미 재단에서 우한에 물자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근데 우현 님이 가실 필요가 있을까요?”

“음, 가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엘라가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걱정이 됩니다, 저는.”

“하하, 괜찮아요, 엘라.”

정우현이 말했다.

“저는 괜찮을 겁니다. 항상 그래 왔듯이요. 엘라를 만나기 위해 과거 독일 베를린으로 갔을 때나, 지금 중국 우한에 가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보세요, 제가 그때 베를린에 가서 얼마나 많은 것이 좋아졌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하고 엘라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만, 걱정 마세요.”

그러고서 정우현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엘라가 뒤에서 정우현을 불렀다.

“우현 님.”

“예?”

“…저도 따라갈까요?”

정우현이 잠깐 생각하다가는 답했다.

“아니요, 엘라는 이곳 한국에서 재단을 관리해 주세요.”

엘라는 비트코인을 만든 희대의 천재지만, 바이러스에 관한 지식은 평범하거나 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함께해도 그리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결정적으로, 전염병의 온상인 그곳에 그녀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엘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존경해 마지않는 정우현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에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고서는,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우현 님.”

“하하, 당연하죠. 제가 세상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는 건 엘라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선 정우현이 짐짓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바이러스 따위는 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고서 밖으로 나가는 정우현이다.

마지막 말은 물론 농담이었지만, 실제로도 맞는 말이었다.

* * *

며칠 후 전용기를 타고 중국 우한으로 향하는 정우현.

그의 바로 옆에는 경호원 엄규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괜찮겠어?”

정우현이 걱정된다는 말투로 그 사람을 보고 물었다.

“응.”

동생 정다현이었다.

우후 제약 회사의 연구원인 동생이 정우현을 따라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된 우한으로 가기로 했다.

“오빠가 옆에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