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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37)화 (137/200)

137화

한편 2019년이 되면서 동생 정다현이 24살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대학교 약학과는 원래 6년제다.

하지만 동생은 일찌감치 조기 졸업했다.

시종일관 교내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했던 것은 물론, 결정적으로 학부생임에도 전공에서 큰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우후 제약 회사의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에 그녀의 이름이 올랐다.

즉, 회장 정우현이 헤르페스 3형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 연구원들과 함께 그의 동생을 동참시켰고, 이내 그녀가 적지 않은 성과를 보였다.

실상 정우현과 함께 약에 관해 가장 많이 의견을 주고받은 사람이 동생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더군다나 그녀의 졸업 후 진로는 탄탄대로였다. 오빠 정우현의 회사 우후 제약 회사 연구원으로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우후 제약 회사 소속 수석 연구원들이 그녀에 관한 추천서를 학교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모두 각국 저명한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기도 하는 등 약학계에서 권위가 상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동생은 다양한 요건을 충족시키고서 조기 졸업을 하게 됐다.

“축하한다, 정다현.”

한국대학교 졸업식.

정우현이 참석해 동생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고마워, 오빠.”

동생이 학사모를 쓰고 밝게 웃었다.

짧게 축하의 말을 하고 그저 미소를 짓는 정우현이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감격하고 있었다.

전생에서의 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삶에서 동생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지방 전문대를 나와 어찌어찌 취업해 근근이 살았다.

사실 당시 동생은 오빠를 따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허드렛일로 지탱하는 가정 형편상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기가 역시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우현이 반대해 기어코 작은 대학에라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동생의 등록금은 고스란히 그가 감당할 몫이었다.

한데 이번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우현이 어릴 때부터 그녀를 돌봤다는 것에서는 변함없지만, 모든 면에서 전생과 달랐다.

일찌감치 돌아가신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계시는 가운데 환경이면 환경, 돈이면 돈 뭐 하나 부족함 없이 성장하게 됐으니까.

그 결과 중 하나가 이거였다. 국내 최고 대학 약학과 조기 졸업.

그런 지난 삶을 생각하니 정우현의 마음이 울컥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색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이며 동생의 등을 한 번 토닥이고 말았다.

앞으로가 더 즐겁고 멋진 인생이 될 테니.

* * *

정우현의 영화 <바이 더 베테랑>이 세계적인 대 흥행을 하며 감독판으로 스트리밍의 인기 또한 치솟고 있는 가운데 그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수두 대상 포진 바이러스 치료제가 2상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축하해.”

우후 제약 회사 한국 지사 회장실.

회사 소속 최연소 연구원이 정우현에게 말했다.

“대단해, 오빠.”

동생이었다. 동생이 기쁜 얼굴을 하며 환히 웃고 있었다.

원래 동생은 미국 뉴저지의 본사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출국 전 잠시 한국 지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하하하, 다현아. 너도 많이 신경 썼잖아.”

정우현이 화답했다.

동생은 학부생일 때부터 오빠를 많이 도왔다.

“에이, 나는 오빠가 하라는 대로만 했는걸, 뭐.”

“아니지, 네가 자발적으로 한 것도 많았다고, 그리고.”

하고 정우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라는 대로 했다고 해서,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다현아.”

옳은 말이었다.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동생은 분명히 여타 수석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고 자기만의 영역에서 확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컨대 이번에는 바이러스 유전자에 발광(發光) 단백질 유전자를 끼워 넣는 방법을 그녀가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이로써 연구진들은 바이러스가 변이할 때마다 빛 색깔이 달라져 치료제가 각각의 변이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도, 다 오빠가 신경 써 줘서 한 일이니까….”

“그래, 우현아! 내가 옛날부터 말했지? 너는 꼭 다른 사람한테 공을 돌리려고 하더라.”

순간 한 여자가 옆에서 말했다.

권유라였다. 권유라 또한 올해 미국에서의 모든 학업을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사장으로 부임하고 있는 에이치자동차에 바로 입사했다.

최근 에이치그룹은 후계자 승계 문제로 말이 많았다.

그룹 회장, 즉 권유라의 할아버지가 와병(臥病)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에 권유라는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하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에이치그룹 회장으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 급선무가 됐기 때문이다.

“하하, 유라야. 에이치자동차는 요즘 어때?”

정우현이 권유라를 보고 말했다.

“어떻긴. 뭐, 나쁘지 않지. 물론 우현이 너희 회사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지만.”

현재로서 에이치자동차, 아니, 에이치계열사 모두를 합쳐도 우후의 시총보다 작았다. 그만큼 우후는 그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다.

그럼에도 에이치그룹은 우후 그룹에 없는 게 많이 있었다. 예컨대 호텔이나 건설사라든가, 내연 기관 자동차라든가.

특히 내연 기관 자동차는, 과거 정우현이 발명한 첨단 엔진에 힘입어 세계 일류로 발돋움했다.

즉 에이치자동차의 차량이, 독일이나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등 자동차 강국의 제품과 동일 선상에 올랐다.

“그래도 이번에 신제품 보니까 세계 점유율 1위던데?”

정우현이 곧장 말했다. 며칠 전에 본 에이치자동차의 신차 판매 현황을 언급했다.

“응, 다행이야. 아빠가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잘 나왔지 뭐야. 고객들도 좋아하고.”

“잘됐다, 유라야.”

하고서 그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뭐해, 전기차는 죽을 쓰고 있는데.”

반면 권유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에이치자동차는 과거 우후 전기차가 특허를 무료로 공개한 것을 기반으로 곧장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후발 주자였다. 비록 대기업이지만, 전기차에 관해선 우후를 당해 낼 수 없었고, 판매량도 저조했다.

그래서 권유라는 최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은 말이야, 우현아.”

“응?”

“오늘 내가 너한테 부탁을 할 게 있어서 온 건데.”

“뭐?”

“전기차 충전소 말이야.”

“아.”

전기차가 널리 보급되기 위해선 전기차 충전소라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전기차 회사를 이끄는 정우현은 당연히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충전소 부지를 확보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었으나 쉽지 않았다.

우후가 어쨌든 신생 회사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소 의무화 등 법률 개정을 추진하려면 정치인과의 연도 있어야 하고, 부지 확보를 위해 전국적으로 좋은 땅을 우후 법인의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모자랐다.

즉 우후는 쌓아 놓은 돈은 많았지만, 국내에서만큼은 연줄과 부동산이 부족했다.

그래서 충전소 사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의 사업은 순조로웠다.

미국에서는 주별로 전기차 인프라를 지원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세금 혜택은 물론 충전소까지 의무화하니 해당 지역을 거점으로 사업을 공략하기 쉬웠다.

물론 일론이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하고 있는 덕이기도 했다.

“우리랑 같이해 보지 않을래?”

권유라가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우리 에이치그룹은 전국적으로 괜찮은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고,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해서 국회 의원들과의 친분도 꽤 탄탄하거든.”

“그렇겠지.”

에이치그룹은 대한민국의 해방 이래 국가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한, 역사가 오랜 기업이다.

즉, 산업화된 대한민국은 에이치그룹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 그러니까 우후가 충전소 사업에 진출하는 데 우리랑 함께하면 훨씬 수월할 거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정우현의 눈앞에 있는 오랜 친구 권유라는 재벌 가문의 외동딸이다. 그런 그녀가 정우현과 함께 사업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음, 좋아.”

정우현이 답했다. 딱히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이를 기반으로 우후 또한 충전소 인프라를 갖게 될 테니.

그리고 과거 정우현이 에이치자동차에서 독립할 때, 그는 에이치자동차 사장, 즉 권유라의 아버지와 약속을 했었다.

훗날 전기차 회사를 설립해도 에이치자동차와는 협업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그때가 지금이었다. 우후와 에이치 그룹이 함께하기 딱 좋은 시점.

“좋았어!”

권유라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것으로 회사 내 입지가 올라가겠어!”

“잘됐다, 언니.”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언니도 이제 회사 다니니까, 에이치자동차도 더 잘됐음 좋겠어.”

동생에게는 권유라의 소속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부터 가까웠던 언니 권유라가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하하하, 고마워, 다현아.”

하고서 권유라가 말을 이었다.

“실은 이번 일로 시작해서.”

“응.”

정우현이 말을 받았다.

“에이치자동차 성과를 기반으로 우리 아빠를 회장으로 만들 거거든.”

“아하.”

당연한 말이었다. 굳이 권유라가 밝히지 않아도, 정우현은 그녀가 그렇게 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회장 후보의 딸이니까.

“응, 그렇게 우리 아빠를 꼭 너처럼 회장님으로 만들 거야!”

“하하하, 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정우현이 말했다.

“그치, 우현아?”

“응, 사장님 말고 딱히 적격자가 없잖아.”

정우현은 권유라의 아버지를 여전히 사장님으로 지칭하고 있었다.

“헤헤, 우리 아빠가 회장 되면, 우현이 너한테도 훨씬 좋을 거야.”

“음….”

하고 정우현이 곰곰이 생각했다.

정우현은 그동안 워낙 성장해 딱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 재벌 그룹의 회장이 자신의 편이라면, 조금 다른 얘기였다. 어쨌든 국내에서만큼은 에이치그룹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하여튼 우현아! 그럼 그렇게 알고 일 추진한다?”

“그래, 그렇게 해.”

정우현이 웃으며 답했다.

“좋았어!”

하고는 그녀가 정우현을 슬쩍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또. 오늘 뭐 할 일 있어?”

“할 일? 글쎄, 아니?”

그룹의 회장이자 재단의 의장 그리고 영화감독인 정우현에게 할 일이라면, 생각하기에 따라서 엄청 많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했다.

시간을 내서 언제든 사업이나 재단을 돌아볼 수 있었다. 혹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없다고 했다.

“그럼, 우리.”

하고 권유라가 살짝 웃었다.

“오랜만에 나가서 놀자! 다현이도 같이!”

그러자 동생이 정우현의 눈치를 봤다.

정우현이야 회사의 회장이지만, 동생은 어디까지나 일반 연구원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회사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응? 우현아!”

권유라가 곧장 그 점을 눈치채고 정우현에게 말했다.

“다현이랑 같이해서 놀자. 엄청 오랜만이잖아.”

“…음.”

하고서 정우현이 답했다.

“알았어.”

“오예!”

“대신 다현아.”

그러고서 정우현이 동생을 보고 말했다.

“무노동 무임금이다. 동생이라고 예외는 없어.”

“…알았어.”

동생이 잠자코 대답했다.

그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오빠의 말이라면 다 들었다.

“와, 너희 오빠 무섭다.”

그 모습을 보고 권유라가 말했다.

“됐어, 다현아! 오늘 언니가 맛있는 거 사 주고, 선물도 다 사 줄게! 백화점 가자, 백화점!”

“하하, 괜찮아.”

하고 살며시 동생이 웃었다.

동생은 물론 좋았다. 오빠는 물론 어릴 적부터 함께한 언니 권유라와 모처럼 셋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자, 그럼 가자고.”

정우현도 모처럼 기분이 가벼워져서는 앞장서며 말했다.

“두 숙녀분을 데리고 어디를 가야 좋을까.”

정우현의 말에 권유라가 신나서는 크게 외쳤다.

“어디든지, 레츠 고!”

마치 어릴 적 즐거운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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