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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36)화 (136/200)

136화

“몸이 왜 그래요?”

결말을 향해 가는 <바이 더 베테랑> 촬영.

링이 피로 얼룩진 브래드의 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묻는다.

“어디 다쳤어요?”

“…아니다.”

브래드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즉, 그의 몸에 묻은 피는 지크를 포함한 사채업자 일당의 피다.

브래드는 저택 안에 있는 악당들을 모조리 남김없이 죽였다.

“….”

가만히 브래드를 바라보는 링.

이러나저러나 브래드가 피 묻은 손으로 운전을 한다.

차량이 움직이며 빠르게 마을 밖으로 벗어난다.

“…어딜 가는 거예요?”

옆에서 짧게 묻는 링.

브래드가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한다.

“살러.”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링을 보고 말을 잇는다.

“살러 가야지.”

극 중 수개월 후. 남미의 연둣빛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집.

마당이 딸린 집 앞에서 링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논다.

그 모습을 뒤편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는 브래드.

미소 짓고 있다.

그들 위로 맑은 햇빛이 비치고, 서서히 원경으로 멀어지는 카메라.

“오케이, 컷!”

촬영장 위로 울려 퍼지는 정우현의 목소리.

이로써 <바이 더 베테랑>의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 * *

영화 후반 작업과 함께 2019년이 되었다.

이번 영화 <바이 더 베테랑>은 정우현이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오래 작업한 영화가 되었다.

2017년에 촬영에 들어갔으니, 햇수로만 거의 3년이 걸린 셈이다.

물론, 아역 배우 링의 컨디션을 위해 작업이 늦어졌다.

하지만 정우현은 남는 시간을, 제약 회사 설립과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쏟아부었기에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나아가 그만큼 찬찬히 촬영을 진행했기에 영화의 완성도는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이 더 베테랑>의 대한민국 시사회.

시사회는 오로지 미국과 한국에서만 진행됐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평론가 및 기자 등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오….”

“아!”

그렇게 두 시간 내내 그들은 영화를 외부에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영화 내부에서 인물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스크린에 몰입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미소를 짓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인물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엔딩 씬이 끝나고 스크린 위로 올라가는 크레딧.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완전히 영화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열화와 같은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감독 정우현이 무대 앞으로 나가고 기자들의 질문과 칭찬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극찬이 쏟아지는 가운데 천천히 손을 드는, 차분한 얼굴의 한 여자.

“감독님.”

“아, 예. 평론가님.”

곽유정 평론가였다.

20여 년 전 <겨울 방학>으로 정우현과 연이 닿은 이래, 우 재단에 합류해 같은 소속이 된 곽유정 평론가 또한 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곽유정이 평소의 차가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 영화는, 명작으로 남을 것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대중은 물론 각국의 모든 비평가를 만족시킬 거예요.”

하고서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바빠지시겠어요, 감독님?”

“왜요?”

“장담하건대, 이 영화로 감독님은 세계의 온갖 영화제란 영화제는 질리도록 다니게 될 겁니다.”

“아아.”

하고서 정우현이 말없이 웃어 보였다.

순간 곽유정이 자신의 무테안경을 고쳐 쓰고는 짐짓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제 직업에 충실히 하기 위해, 영화 내용과 관련해 아쉬운 점을 한 가지 짚어 보겠습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보기엔 완벽했기에, 아쉬운 점 운운하는 곽유정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 영화가 무척 뛰어난 작품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곽유정이 재차 입을 열었다.

“이대로도 딱히 결점이 없어요. 아니, 오히려 온갖 강점과 매력이 넘치는 영화라 할 수 있죠. 하지만.”

하고서 그녀가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르적 욕심을 내보자면, 몇몇 관객들이 조금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 봅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죠?”

정우현이 곧장 되물었다.

“종반 씬이요. 우리의 브래드가 대저택에서 벽을 넘은 뒤, 링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죠.”

“맞습니다.”

“솔직히 전 여기서, 오히려 감독님의 빼어난 감각에 찬탄하게 됐는데요. 해당 씬을 브래드가 아닌 링의 시점으로 촬영해, 소녀의 절박감과 긴장감을 더욱 부각시켰죠. 동시에 브래드의 활약은, 저택 안에서 사람들을 물리치는 각종 효과음과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브래드의 피 칠갑으로만 나타납니다.”

하고서 그녀가 찬찬히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브래드의 압도적인 강력함을 영리하게 한편으로는 품격 있게 드러낸 연출이에요. 다만.”

그러고서 곽유정이 정우현을 잠시 바라보고 말을 멈췄다.

“예, 평론가님.”

“이 브래드가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도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우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감독님께서 영화를 이렇게 만든 것은, 드라마에 충실히 하기 위함이었다고 봐요. 액션은 초반 중동 씬에서만 잠깐 보여 주고, 중후반은 브래드와 소녀 링의 이야기로 탄탄히 서사를 심화시키니까요.”

하고서 곽유정이 자신의 무테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쓰고 말을 이었다.

“한데 종반에 무지막지한 액션이 또 나온다면, 중반까지 쌓아 올린 감정의 동선이 흔들리게 됩니다. 관객의 시선이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는 브래드의 무지막지한 모습에 온통 쏠리게 될 테니까요.”

그러고서 그녀가 몇 마디를 더하고서 말을 마쳤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저처럼 서사의 탄탄함이나 영화의 내적 완성도를 원하기보다는, 브래드의 화려한 액션과 적들을 무지막지하게 무찌르는 통쾌함을 맛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처럼 관객의 취향을 생각하면, 다소 아쉽다는 얘기입니다.”

“하하하,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우현이 얼른 답했다.

“이제 제가 답변해 봐도 될까요?”

하는 정우현의 말에 곽유정 평론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론가님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저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해당 씬을 오래도록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결정했죠, 적들을 처단하는 브래드를 오로지 링의 시점으로만 간접적으로 처리하기로요.”

그러고서 정우현이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이로써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어요. 얻는 건 평론가님의 말씀을 따르자면, 아무래도 작품성이겠죠. 평론가님을 포함한 대다수 전문가 및 일반 관객은, 아마도 지금의 이 영화를 좋아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대중적이며, 그리고 탄탄하니까요.”

하고서 정우현이 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역시 다른 무엇보다 액션과 통쾌한 요소에 초점을 맞춰 감상하는 일부 관객들, 예컨대 <인크레더블 킹 보이>나 <격분>에서의 화려한 액션 씬에 열광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영화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정했습니다.”

순간 그가 옆으로 물러서며 스크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디렉터스 컷, 즉 감독판 <바이 더 베테랑>을 따로 상영하기로요.”

“아아!”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스크린에선, 본편 영화에 나오지 않았던 대저택의 액션 씬이 짧게나마 상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담장을 넘어 저택에 잠입한 브래드가 입구에서부터 마지막 보스인 지크까지 여러 명의 적을 한 명 한 명 죽이는 씬이 나오고 있었다.

“촬영했습니다. 일단 촬영했죠. 이 씬을 넣을지 안 넣을지 뒤에 가서 고민하면 되니까요.”

그러고 있는데 스크린이 다시 어두워졌다.

해당 씬을 예고편처럼 짧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안 넣기로 했습니다, 평론가님의 말씀대로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요. 이 씬이 들어가면, 종반 액션만이 너무 튀어 버리거든요. 브래드와 링이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선은 오히려 비중을 잃고요.”

하고 말하자 스크린이 다시 켜졌다.

스크린 위에는 우후 스트리밍 홈페이지가 띄어져 있었다. 한데 홈페이지에는 영화 <바이 더 베테랑>이 크게 홍보되어 있었다.

심지어 스트리밍 내 공개 날짜까지 쓰여 있었는데, 영화가 전 세계 영화관에서 동시 개봉하는 날짜와 똑같았다.

“대신 이 씬을 넣어 감독판으로 우후 스트리밍에서 공개하기로 했죠.”

“오오!”

사람들이 웅성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영화가 장르적으로 일부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남기리란 것을.

그래서 이렇게 종반 액션 씬을 추가한 감독판을 따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로써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자 했다.

곽유정 평론가 또한 이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조금 당황하더니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정말 대단하군요, 감독님.”

“하하하, 감사합니다.”

“상이면 상, 관객이면 관객, 그리고 우후 스트리밍 구독까지… 이렇게 되면 <바이 더 베테랑>은 모든 이점을 누리는, 그런 영화가 될 거예요.”

정우현이 활짝 웃고서 겸손하게 답했다.

“다 열심히 노력한, 배우 및 스태프들 덕분입니다.”

그러자 곽유정이 목소리를 바꿔 말했다.

“감독님.”

“예?”

“그, 액션 씬도 보여 주시면 안 될까요? 여기 시사회장에서….”

아까 전의 분석적인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거의 간청하는 곽유정이었다.

“맞아요!”

“보고 싶습니다!”

이에 다른 평론가와 기자들도 말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정우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관심을 보여 주시니.”

그러고서는 짐짓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오늘의 시사회는, 장차 세계에서 동시 개봉할 <바이 더 베테랑>의 본편이니까요.”

하고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액션 씬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모두 우후 스트리밍을 구독해 주세요.”

“…아아!”

관객들이 모두 아쉬워했다.

사실 이것은 일론과 논의해 결정한 사항이었다.

스트리밍 사업을 더욱 키우기 위해, 우후 독점 콘텐츠를 어필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는 정우현의 신작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정우현의 신작을 스트리밍으로만 공개하는 건 기대 수익이 작다. 어쨌든 세계 영화관에서 벌어들이는 푯값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영화의 감독판만 따로 스트리밍에 공개해 본편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 * *

그리고 드디어 <바이 더 베테랑>의 전 세계 동시 개봉 및 감독판의 우후 스트리밍 공개일.

난리가 났다.

매진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우후의 스트리밍 사이트는 서버가 다운되기까지 했다.

이에 정우현은 엘라. 그리고 일론과 긴급하게 연락을 취해 밤을 새워 가며 서버를 증설해 사이트를 정상화시켰다.

이내 쏟아지는 관객들의 극찬.

-영화관에서 울고 스트리밍으로 전율했다. <바이 더 베테랑>은 두 번 봐라. 꼭 두 번 봐라.

-아내랑 자식 데리고서는 영화관에서 보고, 혼자 맥주 때리면서 감독판 봤습니다. 죽이네요.

-한 편의 영화가 두 편의 인생작이 되다니. 천재 정우현이라서 가능한 마법.

-나중에 DVD 정식 발매되면, 두 편 다 사서 평생 소장하겠습니다.

영화는 대흥행했고, 스트리밍 구독자는 연일 늘었다.

이내 우후 스트리밍은 세계 최고의 스트리밍 업체였던 넷플렉스(Netflex)를 넘어섰다.

제작한 영화 자체의 흥행 수입, 그리고 우후 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인 브래드 퍼트와 김도진, 그리고 회장이자 감독, 배우인 정우현으로 인해 부수입도 엄청났다. 심지어 마땅한 소속사가 없었던 아역 배우 링도 촬영 전 우후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함으로써, 그야말로 <바이 더 베테랑>은 정우현의 그룹 우후의, 우후를 위한, 우후에 의한 영화가 됐다.

“하하하하! 축제를 즐기자고!”

우후 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지사 회장실.

브래드는 물론 김도진과 엘라, 그리고 일론까지 정우현의 측근이 모두 모였다.

“역시 나를 능가하는 유일한 천재 보스답군!”

일론이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우현아, 장하다!”

김도진이 정우현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정우현 님.”

엘라도 곁에서 작게 속삭였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헤이, 우우우.”

브래드가 한편에서 카메라를 들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은 날이고, 이렇게 다 모였으니! 같이 사진 한번 찍어야지.”

하고서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고, 브래드가 능숙한 발음으로 외쳤다.

“킴취!”

“하하하하!”

브래드의 김치 소리에 정우현은 물론 모든 사람이 크게 웃었다.

행복했다.

정우현은 행복했다. 영화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것에서 너무 행복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으며 그렇게 되리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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