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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33)화 (133/200)

133화

중반 촬영에 접어든 <바이 더 베테랑>.

이야기 속 브래드와 링은 이제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여전히 같은 곳에서 같은 자세로 술을 마시는 건 변함이 없지만, 브래드는 이제 링을 의식하고 있었다.

링도 그 점을 알고 브래드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고, 브래드는 브래드대로 짧게나마 답변을 하는 등 둘은 곧잘 대화했다.

“…아저씨?”

“음?”

“그거, 맛있어요?”

하고 브래드의 술병을 주시하는 링.

브래드가 그 시선을 의식하고 되묻는다.

“술 말이냐?”

“예.”

“맛없다.”

“근데, 왜 그렇게, 맨날 그거만 먹어요?”

“…나는.”

하고서 브래드가 다시 술을 벌컥 마시고는 말을 잇는다.

“맛있는 걸 먹을 자격이 없거든.”

“….”

브래드의 말에 링이 무언가를 생각하며 잠자코 그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연다.

“그런 건.”

“….”

“누가 정해요?”

“…뭐?”

“아저씨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는 건 누가 정하냐고요.”

“…누구긴 누구냐, 내가 정하지.”

그러자 링이 또 잠시 가만히 있더니, 한순간 당찬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에요.”

“…응?”

“아저씨 말고, 제가 정할래요. 아저씨는 맛없는 술 말고, 맛있는 음식을 엄청 엄청 많이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에요!”

소녀의 말에, 조금은 놀란 듯 입을 다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브래드.

그러다가는 한순간 살며시 웃는다.

다음 날. 여전히 같은 곳 같은 자세로 술을 먹는 브래드.

시선으로는 문밖 누군가를 찾는다.

이윽고 미소 짓는 브래드.

울타리 문 앞에 링이 나타났다. 한데 소녀의 품에 커다란 종이봉투가 있다.

의아한 눈빛으로 종이봉투를 보는 브래드에게, 링이 다가와 내용물을 펼쳐 보인다.

사과, 파이, 구운 고기, 치즈 등 온통 먹을 것들이다.

브래드가 이게 뭐냐고 묻자, 링은 다 아저씨를 위해 싸 온 음식이라고 말한다.

이에 파이 하나를 손에 집고는 한입 먹어 보는 브래드. 맛있는지, 이내 동공이 커진다.

그러고는 게걸스럽게 이런저런 음식을 집어 마구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는 링.

“킥킥.”

“…어머니 솜씨가.”

입 안 가득 음식물을 씹으며 브래드가 말한다.

“정말 좋으시구나.”

이에 링이 얼른 대답한다.

“엄마가 만든 거 아니에요.”

“…그럼?”

“아빠랑 제가 만든 거예요. 아저씨 드리려고.”

“….”

“아빠가 저번에 구급 약품 주신 거 참 고맙대요.”

“…그래, 몸은 괜찮으시니?”

“예, 좀 나아지셨어요. 근데도 자주 넘어지시는지 몸이 여기저기 계속 아파요.”

“음.”

브래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예, 그런데 도통 제 말을 안 들으세요.”

“…어머니한테 말해서 같이 꼭 데려가 봐라.”

그러자 브래드 옆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링이 잠시 말을 않더니, 한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브래드의 정면에 선다.

“아저씨.”

“…응?”

“저, 엄마 없어요.”

“….”

“죽었어요.”

그러고서 링이 입을 내밀며 말했다.

“어른들이 그래요.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을 거라고.”

하고서 혼잣말처럼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거 믿지 않아, 엄마는 없는 거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야. 죽어 버렸으니까.”

“….”

그런 소녀를 잠자코 보는 브래드.

“아저씨.”

링이 브래드를 부른다.

“음?”

“제가 왜 맨날 아저씨 집에 오는 줄 알아요?”

“…모르겠구나.”

그러자 링이 어떤 주저함도 없이 답한다.

“아저씨는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그러고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다른 어른들이랑 달리,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오는 거예요.”

아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브래드.

그러다가는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어머니는.”

“….”

“어떻게 돌아가셨니?”

링이 곧장 답한다.

“술이요.”

하고 빠르게 말을 잇는 링.

“아저씨처럼 술만 먹다가 죽었어요.”

* * *

감독 정우현이 이야기 시점상 중간에 삽입할 씬을 만들었다.

또 이를 위해 직접 피아노곡도 작곡했다.

스크린 위로 울려 퍼질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에 맞춰 화면이 바뀌고 브래드와 링이 점차 가까워지는 컷을 여러 형태로 이어 붙인다.

이를 흔히 몽타주 기법이라고 한다.

장소는 오직 브래드의 집 안마당이다.

그곳에서 브래드는 예의 납작한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옆에는 링이 쪼그려 앉은 채로 하염없이 말한다. 그럼 중간중간 브래드도 말을 하다가는 이내 웃음을 터뜨리는 둘. 다만 둘의 소리는 따로 들리지 않는다.

계속해서 흐르는 피아노 선율.

또다시 안마당. 비가 오고 링이 다시 노란 우산을 들어 술을 먹고 있는 브래드를 가려 주고 있다. 한데 비가 워낙 세차 링의 다리가 물에 젖는다. 이에 브래드가 그 모습을 슬쩍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링을 번쩍 들고 자신의 납작 의자에 앉히고는, 우산을 대신 들어 링을 비에 젖지 않게 해준다. 이에 기뻐 미소 짓는 링.

여전히 아름답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

비가 그치고 맑은 날. 링이 가져온 음식을 또 게걸스럽게 먹는 브래드. 음식에 한눈을 판 브래드의 시선을 피해, 링이 몰래 브래드의 술병 안에 있는 술을 전부 땅에 흘려 버린다. 그러고는 슬며시, 그 안에 음료수를 채워 놓는다. 음식을 잔뜩 먹은 뒤, 시선을 돌려 다시 술병을 손에 들고 벌컥벌컥 마시는 브래드. 한데 동공이 커지고 깜짝 놀란다. 이에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는 링. 브래드가 어이없어하다가는, 이내 소녀를 따라 웃는다.

계속 흐르는 피아노 선율.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하이라이트 부분.

브래드의 집 안마당. 한데 브래드가 납작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지 않다. 여기저기 마구 뛰어놀고 있는 링과 놀아 주는 브래드. 링, 입을 활짝 벌리고 웃고, 브래드도 미소 짓는다.

화면 바뀌면 저녁노을이 펼쳐지는 하늘. 브래드와 링의 뒷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꼿꼿이 서 있는 브래드의 어깨 위로 목말을 탄 채, 울긋불긋한 아이스크림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링. 작은 양손으로는 브래드의 커다란 손을 꼭 잡고 있다. 흡사 아버지와 딸 같은 모습.

이내 음악 소리가 작아지고 화면이 페이드 아웃된다.

* * *

그렇게 2017년 하반기가 되었다.

영화는 종반 촬영만이 남았다.

평소 정우현이 작업한 영화와 달리 속도가 더뎠는데, 모두 아역 배우 링을 중심으로 촬영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링은 의지가 넘치고 실제로 카메라 앞에만 서면 정우현의 지도 아래 여지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촬영 강행군을 여섯 살짜리 아이가 온전히 감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계획된 촬영이 조금씩 미뤄졌고, 정우현은 생각지 않은 여유 시간을 갖게 됐다.

이로써 그는 새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바로 수두 바이러스 퇴치.

우후 제약 회사를 설립하고 연구팀을 발족했지만, 정작 자신은 영화에 집중하느라 일에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촬영이 미뤄지는 틈틈이 따로 집중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우후 제약 회사 본사.

정우현은 우후 그룹 내 다른 회사와 달리 제약 회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에 먼저 설립했다. 국제적 연구원들과 일하며 협력하기 훨씬 더 수월해서다.

회장 정우현의 말에 그간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연구원들.

정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굳은 표정을 짓는다. 역시나 일이 생각보다 진척되지 않았다.

이에 곧장 정우현 또한 연구에 나섰다.

자동차 공학을 실제 처음 접할 때랑 비슷했다.

그간 책으로만 공부한 내용을 실제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원들에게 확인 및 지도받으며 빠르게 학습하고 실력을 쌓는다.

그러기를 수개월 이내 세계 그 누구 못지않은 바이러스 전문가가 된 정우현이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고 새로운 약물까지 만들며 실제 효과를 입증하기 시작했다.

“…대, 대단하군요.”

“아니,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겁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우현에게 바이러스와 항바이러스제에 관한 지식을 전수했던 연구원들이 정우현이 만든 새로운 약물을 보며 깜짝 놀라고서는 말했다.

“하하하, 어느 날 눈 뜨고 일어났더니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하고 농담을 하는 회장 정우현의 말에 사람들이 잠자코 있었다.

그러더니 서로 눈치를 보다가 수석 연구원이 끝내 입을 열었다.

“…말씀도 참… 회장님, 작용 원리라도,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예, 물론.”

하고 정우현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만든 물질은 유전자 치료제입니다. 이 치료제를 세포 내 침투시키면 바이러스의 핵산에 특이적으로 결합된 뒤 물과 함께 분해됩니다. 즉 가수(加水)분해로써 바이러스가 사멸되는 것이지요. 또한 이 물질을 잘만 활용하면, 바이러스의 유전형과 무관하게 작용해 DNA든 RNA든 상관없이 모두 작동할 것 같아요.”

“…오오오오!”

연구원들이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또한, 이 물질은 세포막 침투 능력과 조직 투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약물 전달 기술을 접목하지 않아도 감염 세포 내부로 쉽게 들어갈 수 있어 변형에 유리합니다. 이 물질을 기반으로 다른 약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에요. 따라서 수두 및 대상 포진뿐만 아니라, 헤르페스 바이러스 전체 나아가 혈청형이 다양한 여타 바이러스에도 범용적으로 효과가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

이 시점, 연구원들이 말을 잃었다.

정우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만든 물질은 그야말로 꿈의 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 모든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라는 뜻이었다.

“…이름.”

한 연구원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 신물질의.”

“음.”

정우현이 짧게 소리 내고는 답을 했다.

“그냥 뭐, WH001이라고 하죠. 우후의 이니셜을 딴, 물질 1번이라는 뜻입니다.”

하고서 자신의 치료제를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잘만 되면 우리 회사는, WH002, 003 이런 식으로 다양한 바이러스 치료제를 생산하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수석 연구원이 자신의 흰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했다.

“임상이라는 벽이 남아 있습니다, 회장님.”

제약 업계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수석 연구원은, 각종 신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위 꿈의 약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지는지 숱하게 봐 왔다. 이런저런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때론 약효마저 제대로 듣지 않는 등 임상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연구원에 비해 조금이나마 침착할 수 있었다.

“맞습니다.”

정우현이 답했다.

“이미 개별적으로 실행한 동물 실험은 성공적으로 패스했어요.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어디까지나 인간을 대상으로 테스트해야 하니까요.”

그러고서 연구원들을 둘러보고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얼른, 얼른 임상에 돌입합시다. 우리의 손에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의 앞날이 걸려 있음을 잊지 마시고요!”

* * *

해가 바뀌어 2018년.

정우현이 만든 우후 제약 회사의 WH001은 임상 1상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수두 대상 포진 바이러스 보균자 성인 70명을 대상으로 WH001을 투여한 결과, 70명 전원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부작용 또한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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