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30)화 (130/200)

130화

계속되는 <바이 더 베테랑> 촬영.

정우현과 브래드의 위치가 노출되면서 적들의 총격을 받는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는 가운데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그들로부터 빗나간다.

“…상사님!”

그 와중 정우현이 브래드를 크게 부른다.

“…어떻게 할까요?”

“시발 거, 어떡하긴.”

하고서 브래드가 아예 땅에 엎드린 후 사격 자세를 취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뭘 어떡해. 개새끼들 다 죽이고, 일단 살아남아야지.”

브래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군의 이마에 총알이 관통된다.

탕탕!

이윽고 두 명의 적이 더 쓰러진다.

모두 헤드샷이다.

“아아!”

그 모습을 보고 일병 정우현도 자세를 잡는다.

그러고는 반격을 시작한다.

“으음.”

정우현과 브래드를 향해 돌진하던 적들이 잠시 주춤한다.

반격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 미군은 현재 두 명밖에 안 되는 소수지만, 쉽사리 접근할 수 없다.

엄청난 실력자, 즉 브래드가 있기 때문이다.

쉬이이이이익!

그 와중 브래드가 하늘 높이 조명탄을 싸 올린다.

위치가 발각됐음을 후방의 아군에게 알리는, 신호탄이다.

적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쑥덕거린다.

이내 미군이 더 들이닥칠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기 전에 자리를 이탈해야 한다. 단 현재로선 독 안에 든 쥐인 저 미군 놈 두 명은 죽이고.

이에 그들 중 근육질의 간부가 부하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한다.

그러고는 한순간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끌러 손에 든다.

수류탄이다. 리더를 포함해 총 네 명의 대원들이 수류탄을 손에 들고 있다.

이윽고 정우현과 브래드를 향해 공중 위로 날아오는 여러 개의 수류탄.

브래드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는 크게 외친다.

“쳐 내!”

수류탄이 터지기 전에 그것들을 쳐서 다른 곳에서 터지게 하자는 뜻이다.

캉!

이내 브래드가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수류탄을 하나 쳐 낸다.

캉! 카강!

정우현도 그런 브래드를 따라 바로 하나 쳐 낸다.

브래드가 다리 쪽으로 날아온 수류탄 하나는 발로 차 낸다.

그렇다면 수류탄은 이제 나머지 하나가 남았다.

한데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도 없다. 분명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네 개의 수류탄을 봤는데.

“…하하, 상사님.”

순간 정우현이 뒤편에서 브래드를 부른다.

“….”

긴장된 표정으로 브래드가 뒤를 돌아 엎드려 있는 정우현을 본다.

“이제 저도 상사님처럼… 영웅이 될 수 있는 겁니까?”

하고 고개만 들어 지그시 웃는 정우현을 보고 브래드가 괴성을 지른다.

“오우우, 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쿠과과과과과과쾅!

수류탄이 터졌다.

엎드린 일병 정우현의 복부 아래에서.

브래드가 세 번째 수류탄을 발로 찬 뒤, 정우현은 바닥에서 수류탄 하나를 더 발견했다.

한데 자신 쪽이 아닌 브래드의 뒤편에 있었다.

정우현은 그 수류탄이 곧 터지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발로 차 멀리 날려 보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대로 그냥 터져 버린다.

그래서 즉각 그 위로 엎드렸다. 그냥, 엎드렸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정우현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와아아아아아악!”

수류탄이 폭발했음에도, 정우현 덕에 목숨을 부지한 브래드가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른다.

그리고는 즉각 다시 자세를 취해 적군 두 명을 헤드샷으로 날려 버린다.

투두두두두둑!

이에 적들이 숨자, 브래드가 귀신 같은 얼굴로 전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남은 무장 대원 중 한 명이 살짝 머리를 내밀어 반격을 취하려 하자마자, 역시 달려오는 브래드에 의해 사격을 당해 벌집이 되어 쓰러진다.

이제 남은 적군은 한 명. 수류탄 공격을 지시했던 근육질의 간부다.

간부가 침을 꼴깍 삼킨다.

아주 조금 머리를 내밀어 브래드가 달려오던 전방을 보지만 어쩐지 시야엔 아무도 없다.

“끄아아아아아악!”

리더가 순간 왼쪽 다리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브래드였다.

귀신 같은 모습의 브래드가 전방을 향해 달려오다가, 무지막지한 힘과 속도로 협곡에 올라 반대편으로 간부에게 왔다.

리더의 시야에 그가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으아아아악!”

이번엔 오른쪽 다리다.

브래드가 커다란 나이프를 손에 들고 간부의 몸에 난도질하고 있다.

“크흐흑….”

나이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브래드가 이번엔 리더의 왼팔을 찔렀다.

“아아아학.”

이어 옆구리도 찌른다.

“…제발.”

간부가 입을 열고 피를 토하며 말한다.

“بس ما ووژنه! (그냥 죽여다오!)”

물론 브래드는 중동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냥 그대로 계속 리더를 죽이지 않고 찌르며 고통을 준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이윽고 헬기가 떴다.

“와아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미군의 지원군들이 투입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됐다.

정우현의 희생과 브래드의 돌진으로 적을 모두 소탕했으니까.

“아악!”

지원군이 마침내 브래드를 발견했지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이미 시체가 된 적군 간부를 무참히 계속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가 낭자한 시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상(刺傷)이 수십 수백 군데다.

“…그만해, 그만!”

이내 아군이 브래드를 제지하며 소리치지만, 브래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초점을 잃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계속해서 시체를 찌른다.

그러면서 천천히 페이드 아웃.

“오케이, 컷!”

영화의 첫 씬 촬영이 끝났다.

엄청난 롱 테이크 씬이었으나 정우현의 연출에 따른 사전 지도와 연습 아래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정우현은 카메라 워킹에 공을 들였다. 넓은 지역 안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과 복잡한 움직임을 한 씬에서 촬영하다 보니 지미집(Jimmy Jib)과 달리(Dolly) 등을 이용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움직이며 촬영했다.

정우현은 연기를 위해 분장한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돌려 보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브래드를 포함한 배우들을 둘러봤다.

짝! 짝! 짝!

그러고는 손뼉을 치고 크게 외쳤다.

“좋아요, 쉽지 않은 씬이었는데, 잘하셨습니다!”

* * *

한편 정우현의 할리우드 첫 연출작 <바이 더 베테랑>에 출연하는 정우현의 모습은 이 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즉 첫 씬이 전부다.

중동의 한 협곡에서 교전 중 상사 브래드의 부하 군인으로 등장해 함께 작전을 수행하다가는 급습을 당하고 브래드를 살리며 장렬히 전사하는 일병 정우현.

“아쉬운데.”

촬영 휴식 시간.

브래드가 그런 정우현을 보고 말했다.

“우, 네가 계속 나오면 얼마나 좋냐. <인크레더블 킹 보이>처럼 말이야.”

브래드의 말에 정우현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뭐, 시나리오는 진작에 완성됐지만, 이렇게 찍고 보니 더 아쉽다는 거지. 그냥 너도 살아남아서, 너와 나의 콤비 영화가 되면 안 되는 거니.”

“안 되죠, 브래드! 극 중 제가 죽어야 브래드가 변화하고 서사가 진행되니까요.”

“그래, 그건 그런데, 내 말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면 안 되냐는 거지.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죽거나. 아니면 내가 붙잡혀 고문을 당한다든가, 하여간,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니.”

“하하하하, 브래드.”

하고서 정우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지금이 딱 좋아요. 제 마음대로 배역을 설정할 수 있는, 제 영화라서 가능한 거기도 하고요.”

“으음.”

“또 이렇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처음부터 확 끌 수 있어요.”

“그래?”

“예, 생각해 보세요. 모두 브래드와 제가 출연했다는 말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영화관을 찾겠죠. 브래드의 말마따나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떠올리며 우리의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을 기대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반전을 주는 거예요.”

브래드가 잠자코 정우현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 이 영화가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고는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거지, 하고 뒷이야기를 더욱 궁금해하겠죠.”

“…음, 그래.”

가만히 있던 브래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현이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대로 진행하면 돼요!”

하고서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자, 자, 촬영 이어 갑시다!”

* * *

중동 주둔 미군 본부 사열대.

브래드가 본부 장교 앞에 서 있다.

“상사, 그대는….”

콧수염이 난 중년의 지휘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우리 부대 최고의 전사였다. 각종 전투에서의 독보적인 활약으로, 적들이 지휘관인 나보다 그대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며 우리 군을 두려워했지. 뿐만 아니라, 묵묵히 아군을 챙기고 구원하는 역할에서도 그대는 발군이었다.”

하고서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타까운 듯 말을 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필시, 그대는 영웅이 되어 귀국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훈장을 받고 영영 칭송받으며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될 수 없게 됐다.”

그러고서 지휘관이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브래드 뒤편에 있는 많은 장병 모두 지휘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상부의 명을 받아 발표한다! 상사 그대는, 최근 계속해서 이어지는 복무 중 폭음과 명령 불복종 등으로 군 기강을 무너트린 데 큰 책임이 있다. 나아가 적군 포로에 대한 가혹 행위가 언론에 드러날 정도로 지나치고 잔혹해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

장내에는, 오로지 지휘관의 말만 울려 퍼지고 있다.

“이에 그대는 군법상 처벌을 면할 수 없으나, 그간의 막대한 공로를 참작해 그 모든 죄를 뒤로하고 그저 불명예 제대로 처리한다. 이 명 이후 즉시, 짐을 싸고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

지휘관의 말이 끝났음에도 브래드가 가만히 서 있다.

무표정하다. 상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

그러고는 경례도 하지 않고 뒤로 돌아 자신의 막사로 간다.

한편 뒤에 있던 장병 중 누군가가 그런 브래드를 향해 비장한 표정으로 경례를 한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장병들도 손을 올리더니, 결국 모든 장병이 브래드에게 경례한다.

심지어 개중에는 말없이 걸어가는 브래드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상사 브래드는 그들에게 이미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목숨을 살린 사람만 해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구하지 못했다. 구하기는커녕, 자신을 위해 한 젊고 유망한 청년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브래드는 아무런 말도, 심지어 지휘관에게 경례조차 할 수 없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술, 오직 술이었다.

그렇게 그는 장병들의 경례는 안중에도 없이 술을 마시러 갔다. 그러고는 다시 만취한 채 고국인 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오케이, 컷!”

정우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브래드가 자신의 서사와 인물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해 주고 있었다.

“하하하, 어떠냐, 우.”

브래드가 카메라가 멈춘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휙 돌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정우현이 즐거워하며 답했다.

“좋아요, 좋아!”

* * *

이윽고 다시 시작된 촬영.

이야기 속 시점은 수개월 후. 무대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턱수염이 수북하게 난 금발의 한 남자가 누군가의 묘지를 보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묘지에는 극 중 정우현의 이름과 그의 전사 당시 계급이 함께 새겨져 있다.

술을 마시며 괴로운 표정으로 묘지를 보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불명예 퇴역한 상사 브래드다.

브래드가 다시 한번 벌컥벌컥 위스키를 마시고서는 일병 정우현의 묘지를 보고 괴로운 듯 한마디 뇌까린다.

“…시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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