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정우현은 일찍이 브래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한국에서 <격분> 촬영 시 브래드가 부탁했었다. 자신도 김도진처럼 정우현의 영화에 전면으로 출연하고 싶다고.
그때부터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이번 <닥터 스트레이트> 촬영차 할리우드에 있게 되면서 조금씩 썼고, 마침내 최근 초고를 완성했다.
“정말이냐, 우?”
브래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었다.
정우현이 쉼 없이 영화를 촬영하고 또 출연도 하고 있었기에, 차기작 시나리오를 썼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럼요. 브래드가 저한테 직접 부탁을 했는데, 어떻게 모른 체할 수 있겠어요!”
“아아!”
“하하, 퇴고도 하고 제작 계획까지 얼추 나오면 그때 깜짝 공개하려고 했는데, 브래드가 오늘 이렇게 또 얘기를 꺼내서 그냥 지금 알려 드립니다!”
“오오오!”
브래드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고는 말을 이었다.
“우, 언제 그렇게 또 시나리오를 쓴 거냐?”
“틈틈이 썼죠!”
“아니, 영화 촬영하고 홍보하느라 바빴을 텐데….”
“하하, 브래드. 글쓰기가 얼마나 재밌는데요. 노는 것처럼 쓰니까, 금방 완성하더라고요!”
“하….”
브래드가 탄성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넌 정말… 몬스터야, 몬스터.”
* * *
<닥터 스트레이트>가 각국 흥행 신기록을 모두 갈아 치우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재미있는 여론 조사가 하나 나왔다.
한 여론 기관에서 헌법상 대통령 나이 제한 조항이 삭제된다면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구를 지지하는가 조사했는데, 정우현이 꼽혔다. 그것도 무려 26%라는 놀라운 지지율과 함께.
20대 초중반의 나이인 정우현이 정치적인 활동은 일절 없이, 그저 사업과 재단 그리고 영화에만 힘쓰고 있는데도 이와 같은 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여야 불문 차기 대선 주자 등 유력한 정치인들 모두가 여론 조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헌법상 대통령이 될 수 없는, 40세 미만의 사람들만을 대선 후보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는 92%라는 압도적인 수치가 나왔다. 즉 대한민국 국민은 40세 미만의 사람 중 대통령감으로, 거의 오직 정우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같은 설문 조사 결과가 기사화되자 곧장 댓글이 달렸다.
-한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대한민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 유일한 사람.
-정우현이 대통령되면 ㄷㄷㄷ 광개토와 세종을 잇는 대왕으로 남을 것 ㄷㄷㄷ
-아, 몰러,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좋아질 듯.
“우현 님.”
한편 엘라가 의장실을 찾았다.
“예?”
“기사, 보셨나요?”
엘라는 평소 의장이자 비트코인 프로젝트의 파트너인 정우현에 관한 거의 모든 걸 모니터링하고 때에 따라선 그와 이런저런 사항에 관해 직접 논의까지 했다.
“아, 설문 조사요?”
“네.”
“봤습니다! 하하. 흥미롭네요.”
하고 정우현이 답하자 엘라가 눈빛을 반짝이며 조용한 목소리로 정우현을 다시 불렀다.
“우현 님.”
“예?”
“우현 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하고서 엘라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있는지 묻는 겁니다.”
“하하.”
이에 정우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엘라. 전 아직 24살밖에 안 됐다고요. 그런데 무슨 대통령입니까!”
“헌법이 개정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프랑스처럼요. 그 나라는 18살만 되어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답니다.”
“에이, 엘라. 그건 프랑스고요. 우리나라는 얘기가 또 다릅니다. 유교 문화권 국가라 일단 연장자면 존중하는 분위기도 있고요. 하여간 헌법 개정이 그리 쉬운 게 아니에요.”
하고 정우현이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놀라운 두 번째의 삶을 살고 있는 정우현이었지만, 대통령이라든가 여타 고위직 등 정부 내 높은 자리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어릴 적부터 그저, 그때마다 마음을 이끄는 것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각종 도서를 시작으로 다방면의 분야를 학습했고, 그 후 배우가 되었으며, 학교에 들어가서는 수학에 전념하고, 회사에 들어간 후로는 기술에 전념해 현재로서는 우후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로는 재단을 출범했고, 어쩌다가는 달리기와 격투까지 하면서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와 배우와 감독 생활을 활발히 넘나드는 중이다.
이와 같은 삶의 궤적 중 대통령은커녕 이런저런 공직에 나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었다.
한데 갑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감 설문 조사를 한 데다 결과까지 나쁘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고서 그도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대통령 자리를 떠나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한 선진국이 되면 좋겠다고. 국민이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더한 부를 누리고 행복감을 느끼면 역시 좋겠다고. 또한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힘 있는 국가가 되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인류를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면 참 멋지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영화였다. 오랜 친구 브래드 퍼트가 등장할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료하고 새롭게 제작 및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제껏 그래왔듯 이렇게 하나하나 자신이 집중해야 할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나 조국 대한민국에나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도 훨씬 이롭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영화에 더 집중해야 했다.
* * *
한편 우후에 경사스러운 일이 찾아왔다.
우후의 주가가 무려 1,000불을 돌파했다.
그간 일론과 논의한 신사업과 자신이 독자적으로 진출한 엔터테인먼트 및 포털 사이트 등, IT, 그리고 투자사까지 진출하며 우후 그룹은 덩치가 꽤 커져 있었다.
물론 개중엔 아직 적자이거나 매출이 미미한 사업도 있었지만, 거의 시작과 함께 흑자를 달성하는 사업도 있었다.
먼저 엔터테인먼트다. 오랜 경력의 영화인답게 정우현은 사업 시작과 함께 빠르게 인재들을 포섭하고 다양한 영화를 제작했다. 자신이 글을 쓰거나 연출을 하거나 출연하는 영화는 국내의 <격분>이후로 아직 없었지만, 여러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들과 접촉을 하며 작품 제작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 개봉도 했다.
최근엔 <겨울 방학>의 장필도 감독이 우후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을 달고 로맨스 영화를 찍어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후의 간판 배우가 된 김도진이 코미디 영화로 차기작을 준비 중이었다.
나아가 정우현의 신작을 시작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여러 작품이 계획되어 있었다.
IT 사업도 좋았다.
한국 및 미국의 거대 포털 사이트 등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진출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됐지만, 정우현은 곧 고품질 서비스로써 점유율을 늘려 갔다.
먼저 정우현이 발견한 소수의 법칙을 기반으로 만든 AI를 포털 사이트에 탑재했다. 즉 검색이나 연관어 등 사이트와 관련된 모든 기능이 세계 최고의 AI를 기반으로 작동됐다.
이는 곧 한국은 물론, 미국의 포털 사이트보다도 훨씬 더 성능이 좋은 것으로 드러나, 사람들이 대거 우후 포털 사이트에 몰려들었다.
거기에 동영상 사이트도 있었다. 엘라의 계획대로 정우현의 달리기 영상과 격투 영상이 인터넷상으로는 오직 우후의 동영상 사이트에만 업로드됐고, 이는 곧 해당 사이트의 방문 및 이용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실상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인 어나니머스와 사토시 나카모토가 합작으로 운영하고 있는 IT 사업이니만큼 잘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에 일론도 가세했다. 즉 SNS를 사랑하는 일론이 회장 정우현에게 우후만의 SNS 사이트를 만들 것을 제안했고, 이에 곧장 사업이 시작됐다.
일론이 평소 SNS를 애용하며 깨달은 노하우와 우후의 자체적인 기술력이 함께하니 우후 SNS 또한 금세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됐다.
이렇게 해서 우후의 주가는 1,000불을 돌파했다.
우후 그룹 산하 모든 기업의 주식을 분할해서 상장하지 않고, 그냥 그룹을 통틀어 주식을 발행했기에 1,000불 돌파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로써 우후의 시가 총액은 약 500조 원, 정우현의 개인 자산은 330조 원, 우 재단의 기금 규모는 3조 원에 달하게 됐다.
즉, 정우현은 2016년 공식적인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 그것도 200조 원대의 부자인 2위와 격차가 꽤 있었다.
이에 다시 한번 세계 주요 언론이 정우현과 그의 재산을 주목했다.
짧은 시간 엄청난 부를 쌓은 정우현. 그의 삶을 간략하게 다루며 여기저기서 그를 조명했다.
그럼에도 우후의 시총을 두고 아직 지나치게 적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들 애널리스트들은 각종 신기술 사업은 물론, IT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는 우후 그룹의 주가 상승 여력은 거의 무한하다고 했다.
이로써 세계 최고의 부자인 정우현은 앞으로 더욱 부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정우현은 우후 주식의 10:1 액면 분할을 단행했다.
1주가 1,000불이나 되면 일반 개인투자자로서는 접근이 쉽지 않기에 더 많은 투자 및 주가 상승을 위해 분할을 했다.
“…오오!”
액면 분할 당일 나스닥 거래소.
분할 후 우후의 주가는 다시 100불로 시작했지만, 놀랍게도 그 상태에서 또 30%가 상승했다.
즉, 130불이 되었다.
주가 상승에 따른 액면 분할은 투자를 촉진할 수 있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큰 호재다.
이로써 우후는 또 하루 만에 시가 총액이 150조 원, 정우현의 개인 자산은 100조 원이 늘었다.
* * *
우후 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지사.
정우현은 브래드와 영화를 찍기 위해, 아예 할리우드에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를 진출시켰다.
진출하자마자 거대한 자금력으로 유명 배우들을 섭외하고 스튜디오까지 마련했다.
그러고는 캐스팅한 배우들을 전부 만나기 전에 먼저 한 사람과 따로 시간을 가졌다.
브래드였다. 브래드가 미국 현지 법인인 우후 엔터테인먼트에 찾아왔다.
“…와우, 우.”
브래드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뻔쩍뻔쩍한 건물 여기저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언제 또 빌딩을 이렇게 올린 거냐.”
“하하하, 이번에 새로 지었죠. 우후 엔터테인먼트의 첫 할리우드 진출인데, 낡은 건물을 써서는 되겠습니까?”
“역시 대단하군, 대단해!”
하고 브래드가 껄껄 웃으며 정우현을 따라 회장실에 들어갔다.
과거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찍을 때만 해도 정우현의 재산은 브래드와 비할 수 없이 적었다.
특히 정우현은 전용기가 따로 없어서 브래드의 전용기를 많이 얻어 타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우현이 기업의 총수가 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대단한 총수가.
일단 전용기만 해도 정우현 개인 및 우후 법인과 우 재단의 전용기까지 하면 열 대가 넘었다.
“어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기분이?”
브래드가 씨익 웃으며 정우현에게 물었다.
“뭐, 나쁘지 않은데요.”
이에 정우현이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돈이란 적은 것보다는, 그래도 많은 게 좋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하고 답하는 브래드에게 정우현이 종이 수십 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브래드.”
“…응?”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이거예요.”
"이게 뭔데?"
하고 브래드가 정우현이 내민 종이 뭉치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