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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26)화 (126/200)

126화

정우현은 이 말도 안 되는 대결 신청을 당연히 무시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든 걸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다는 등 온갖 비난은 역시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그가 WFC 세계 1위인 스테코비치의 도발에 넘어가 답을 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었다.

정우현은 런던 시내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인종 차별주의자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이에 최선을 다해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그들을 제압했다. 결정적으로 그 장면을 누군가가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것뿐.

어디서 자신이 싸움을 잘한다고 으스댄 적도 없고, 더군다나 WFC 1위와 싸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솔직히 하자면 정우현은 스테코비치라는 사람을, 즉 WFC 1위가 누구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가 괜히 발끈해 정우현에게 도발하고 나섰다.

“가만히 둘 거야, 보스?”

미국에 있는 일론과의 통화.

일론이 노발대발한 목소리로 정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하, 뭐 그러다 말겠죠. 심심한가 보네요.”

“심심해서 그러는 수준이 아니야! 도가 지나치다고! 오늘 또 올린 글 못 봤지?”

“오늘이요?”

“그래!”

하고 일론이 해당 글의 내용을 알렸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우현에게 괜스레 화가 났는지, 겁쟁이에 머저리라는 등 스테코비치는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거기에 우후의 상품은 모두 쓰레기며 우 재단의 활동은 모두 거짓이고, 정우현이 감독하거나 출연한 영화 모두 하나같이 삼류 에로 영화보다도 못하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마구 했다.

심지어 정우현을 따르는 모든 단체의 사람들이 흡사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래도 가만히 둘 거야?”

“….”

“보스! 그냥 나에게 맡겨! 내가 법적으로 아주 조져 놓을게! 우후의 모든 것을 다해, 세계 최고의 법률팀을 꾸려, 녀석을 다시는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어!”

하고 씩씩거리는 일론에게 정우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응?”

“그러지 마시라고요, 일론.”

“아니, 왜! 보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모욕하고 있는데, 녀석이! 가만히 두면 보스가 쌓아 올린 모든 게….”

하는데 정우현이 불쑥 말했다.

“대결 신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그자와 경기에 나서겠다고요. 이종 격투기 경기에.”

“…보스. 미쳤어? 아무리 보스가 신체적 능력이 좋다고 해도 녀석은 세계 1위야. 그것도 통합 챔피언이라고!”

하고서 일론이 다시 흥분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위험해, 무척 위험해!”

“괜찮습니다, 일론.”

그러고서 정우현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설령.”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위험해진다고 하더라도, 참을 수 없습니다.”

“….”

그러고서 정우현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에 관해서는 그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 * *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세기의 깜짝 매치.

정우현이 일론과의 통화 다음 날 곧장 전용기를 타고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갔다.

구차하게 몇 날 며칠 어디서 일정을 잡고 경기를 하느니 마니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당장, 당장 녀석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를 눈앞에 두게 된 정우현과 랭킹 1위.

둘이 지금 링 위에 올라가 있다.

관객은 없었다. 오직 각자의 코치와 심판, 그리고 이 싸움을 촬영하는 WFC 및 미국 스포츠 방송의 관계자들뿐이었다.

둘 다 상의를 탈의한 채 팬츠만 입고 있었는데, 체급 차이가 엄청났다.

정우현은 183cm에 73kg, 랭킹 1위는 202cm에 107kg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실상 실제 프로 경기였다면, 둘의 경기는 애초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둘은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를 눈앞에 두게 됐다.

“…괜찮겠어요, 우현 님?”

정우현의 코치가 옆에서 속삭인다.

바로 엘라였다. 엘라가 정우현을 따라 전용기를 타고 이곳에 와 옆에 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하는 엘라의 얼굴이 어두웠다.

엘라는 물론 일찌감치 이 말도 안 되는 대결에 반대했다.

일론의 말처럼 그저 법률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우현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엘라.”

“…예?”

“그자가 우리 재단을, 그리고 엘라를 모욕했습니다.”

“….”

“저를 모욕하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모욕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겁니다.”

하고 말하는 정우현을 엘라는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성사된 경기.

주위는 고요하다.

정우현이 스테코비치의 대결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관객 없이 싸우겠다고.

마치 프로 격투 경기처럼,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엄청난 영예와 상금을 걸고 싸우는 자리가 아니다.

그저 스테코비치의 모욕을 몸소 설욕하기 위한 자리였다.

즉 정우현은, 개인적인 이유로 대결을 받아들였다.

이런 자리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야유를 하기도 하는 관객들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즉, 이 경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다만, 이들의 싸움을 객관적으로 보증할 필요는 있었다.

만약 그러지 않고 경기가 끝난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스테코비치가 어떤 말을 할지 모르니까.

그래서 심판을 포함한 방송 관계자들만큼은 자리에 있게 했다.

“파이트!”

경기가 시작됐다.

스테코비치가 무지막지한 덩치에도 재빠른 스텝을 밟는다.

역시나 세계 통합 1위의 타이틀이 괜히 주어진 게 아니다.

하지만 정우현은, 놀랍게도 가드를 내리고 있다.

즉, 전혀 싸움하려 하는 사람 같지 않다.

“…아아.”

그 모습을 엘라가 뒤에서 보며 탄식을 내뱉는다.

너무나 걱정이 되니까.

“…이 자식이!”

스테코비치가, 가드를 내린 정우현을 보고 흥분하며 빠른 속도로 공격해 온다.

쉬이이이이익.

하지만 정우현이 피해 낸다.

말 그대로, 완벽하게 피해 낸다.

쿠구구구궁!

그러고서 펼쳐진 장면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육중한 덩치의 WFC 통합 타이틀 세계 챔피언이 정신을 잃고 링 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만큼 쓰러지는 소리도 엄청났다. 그가 쓰러지며 울려 퍼진 소리만이 순간 실내를 가득 채웠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고는 엘라와 스테코비치의 코치, 그리고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미국 스포츠 방송 관계자와 심판이 모두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전광판에 멎어 있는 초시계는 8초.

즉 정우현은 8초, 단 8초 만에 WFC 세계 통합 챔피언을 쓰러트렸다.

* * *

정우현은 원래 시작과 함께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관찰하기로 했다.

어쩌다가 런던에서 스킨헤드들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들은 어쨌거나 동네 불량배.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WFC 랭킹 1위는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격투가니까.

즉, 프로 중 프로다.

그런 사람과는 싸워 본 일이 당연히 한 번도 없었기에, 조금은 신중해지기로 했다.

과연 경기 시작과 함께 상대가 스텝을 밟더니 엄청난 속도로 공격을 해 온다.

하지만, 느렸다. 정우현의 눈으로 보기에는 몹시도 느렸다.

물론 이 역시 염라대왕의 선물이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적 능력.

특히 이번 격투 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단순히 달리기가 빠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격투란 인간 신체의 모든 기능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해낼 수 있는 스포츠니까.

그렇게 정우현은 상대를 파악하고서 제 실력을 발휘해 단번에 그를 쓰러트렸다.

인간의 신체는 아무리 단련해도 단련되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프로 격투라 선수라 해도 그렇다.

그런 곳을 보통 급소라 칭한다. 정우현은 스킨헤드들을 상대했을 때처럼, 또다시 상대의 급소를 가격했다.

바로 관자놀이였다. 세상 그 어떤 운동으로도 관자놀이 같은 급소는 강화할 수 없다.

이에 정우현은 비록 글러브를 꼈음에도 강하고 빠르게 상대의 관자놀이를 가격했고,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급소를 맞는다고 해도, 한 번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WFC 랭킹 1위 같은 프로 격투 선수는.

하지만 정우현의 펀치가 워낙 강력하다는 게 주효했다. 실상 그의 주먹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강해서, 스테코비치는 그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결과였다. 염라대왕의 선물로 놀라운 신체를 갖게 된 정우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달린 것처럼 가장 힘이 세고 싸움도 잘했을 뿐이다.

“…우현 님.”

뒤에 있던 엘라가 기뻐하기보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우현 님이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까지는 봤는데, 그 후엔… 그저 엄청난 소리와 함께 상대가 쓰러져 있는 모습뿐이었어요.”

“아, 하하.”

정우현이 그제야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겼습니다. 빠르게 펀치를 날렸죠.”

“아아….”

엘라가 정우현의 공격을 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빨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수들과 함께 숱한 격투 경기에 참여한 스테코비치의 코치와 심판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군….”

스테코비치의 코치가 쓰러진 자신의 선수를 보고 짧게 읊조렸다.

“…종료, 경기 종료!”

심판도 놀란 눈으로 쓰러진 선수를 보다가는, 뒤늦게 외쳤다.

“정우현 승!”

* * *

사흘 후, 이 영상이 드디어 공개됐다.

영상이 공개되기까지 3일이나 걸린 이유는, WFC가 공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정우현에게 참교육을 당한 사람은 WFC 세계 챔피언이다. 그것도 통합 타이틀 챔피언이다.

현시점 WFC가 내세우는 간판 스타이자, 명실공히 인류 최강의 싸움꾼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져 버렸다. 그것도 이렇다 할 싸움다운 싸움도 못 해 보고, 어이없게 져 버렸다.

막말로 그는 정우현 앞에서 세 살배기 아이와 다름 아니었다. 정말 그랬다.

따라서 이 영상을 공개한다면 WFC의 권위가 실추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WFC를 이끄는 회장이, 정우현 측에게 비밀리에 접촉을 해왔다.

해당 경기를 없는 것으로 할 테니, 대신 1,000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뜻이었다.

“말이 돼요?”

엘라였다. 엘라가 WFC의 회장에게 답을 했다.

“WFC는 일을 이런 식으로 합니까? 자기네가 유리하면 떳떳하게 공개하고, 불리하면 그렇게 더러운 돈으로 입막음을 하려 합니까?”

그렇게 일언지하에 회장의 제안을 거절한 뒤 곧장 정우현에게 말했다.

정우현이 엘라의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으며 답했다.

“잘했어요, 엘라.”

그러고서 그가 우 재단 의장실 좌석에서 일어나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 잘했어요. 제가 일찍이 엘라와 함께하게 된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불의를 멀리하며 타협하지 않죠.”

이와 함께 경기장에 있던 미국 스포츠 방송사 또한 WFC를 압박하고 나섰다.

촬영을 했으니 공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실상 어떤 경기였든 스포츠 방송 측에선 공개되는 게 득이기에 당연한 입장이었다. 더군다나 믿을 수 없게도 정우현이 경기 시작과 함께 이겼으니, 영상을 봤을 때의 뜨거운 반응을 생각하면 더욱더 은폐되어선 안 될 일이었다.

이윽고 결국 아주 짧은 경기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전 세계가 이내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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