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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24)화 (124/200)

124화

<닥터 스트레이트>의 액션 씬 촬영이 계속됐다.

곡예를 부리는 듯한 정우현의 활약 또한 계속됐다.

정우현이 맡은 배역을 위해, 실상 컴퓨터 그래픽은 물론 스턴트맨까지 거의 쓸 필요가 없었다.

모두 그가 직접 해냈으니까.

또다시 엄청난 점프력으로 세트장의 절벽에 매달린 다음, 단숨에 지상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닥터 스트레이트 정우현.

힘들기는커녕 여유로운 표정이다.

“오케이, 컷!”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들은 모두 신이 났다. 스타 중 스타인 정우현을 이렇게 가까이 눈앞에 두는 것만도 좋은데, 그의 온갖 현란한 동작을 실제 볼 수 있어서.

“정우현 님, 조금 쉬엄쉬엄해도 됩니다!”

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 좀 몸이 풀렸습니다. 얼른.”

하고서 주위 스태프들을 독려하며 말을 이었다.

“얼른 다시 촬영을 시작하죠. 시간은 금입니다!”

* * *

정우현의 완벽한 연기와 액션으로 촬영 속도가 빨라졌다.

예정보다 수개월이나 앞당겨진 촬영 일정.

대머리의 제작 책임자가 기쁨과 걱정이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감독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봐요, 계획보다 빨리 촬영해서 예산이 남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영화의 퀄리티는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

이에 모자를 푹 눌러 쓴 감독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작자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제 생애에, 아니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그게 정말이요?”

“예. 상업성을 목표로 하면서도 이렇게나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영화는 찾기 힘들 겁니다. 특히 최근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선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으음.”

“제작자님께서는 특히 배우가 누군지 잊으신 것 같네요. 정우현입니다. 세계 최고의 천재 정우현!”

“하기야, 그건 그렇지.”

제작자가 반짝거리는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그러고서는 한순간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짧게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기다려 보겠소!”

* * *

이윽고 촬영이 종반에 다다랐다.

각성한 닥터 스트레이트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각종 비의(秘儀)와 고대의 힘까지 깨달아, 이세계의 빌런을 손쉽게 처단한다.

가까스로 이기는 전투 씬이나 적 때문에 힘겨워하는 주인공의 고난 따위는 없었다.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될 히어로물의 주인공이자 첫 작품이니만큼, 그의 탄생 과정과 개성을 강조하는 서사다.

이에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나타내기 위한, 섬세한 내면 연기 또한 돋보여야 한다.

물론 정우현은 그 또한 일찍이 마스터했다. 십수 년 전, <겨울 방학>에서 어린 나이의 그가 열연을 펼쳐 대한민국의 온 국민을 울게 만들었으니까.

심지어 이후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연기력이 더욱 늘었다.

“….”

마침내 히로인을 눈앞에 두게 된 정우현.

감격한 듯 아무 말이 없음에도,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 그 어떤 언어보다 많은 것들이 표현되고 있다. 예컨대 눈가의 떨림이라든가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미간의 움직임으로.

스태프들이 마음속으로 경탄해 마지않는 가운데, 정우현에게서 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드디어 입을 떼는 정우현.

히로인이 너무나 변해 버린 정우현의 모습과, 그럼에도 어쨌든 그가 자신을 구해 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정우현이 히로인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도 쉽사리 안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과거의 그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다정하게 그녀를 안고 달콤한 말을 할 수 없었다.

영웅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불가피한 숙명이자,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적인 씬이었다.

물론 정우현이 공을 들여 직접 쓰고 수정한 씬이기도 했다.

“오케이, 컷!”

감독이 크게 외쳤다.

이로써 영화 <닥터 스트레이트>의 모든 촬영이 끝났다.

* *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전 세계 주요 국가에 이제 또 프로모션을 가야 한다.

마치 지난날 <인크레더블 킹 보이> 때 브래드 퍼트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엔 훨씬 더 즐겁고 수월했다.

“정우현! 정우현! 정우현!”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 사람들은 열광하며 정우현의 이름을 불렀다. 특히 국적 불문 <닥터 스트레이트>의 포스터에는, 깃을 세운 채 멋진 망토를 입고 포즈를 취한 정우현만이 오직 당당히 서 있었다. 

한편 로마나, 도쿄, 런던 같은 세계 주요 도시엔 모두 우현스가디언이 있었다.

오랜 그의 팬클럽들이 있었기에 더 홍보회가 활기차고, 한편으로는 축제 같았다.

그리고 런던의 홍보회장.

영국의 기자들이 정우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정우현 님!”

“하하,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닥터 스트레이트>로,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세계 팬들에게 돌아오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하하, 그냥, 뭐 즐겁습니다. 재밌기도 하고요. 왜, 영화를 더, 찍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도 하네요.”

“아, 정말요? 그럼 정우현 님께서 이루신 학문적 성과라든가 사업, 그리고 재단의 출범 같은 업적을 모두 후회하신다는 얘기입니까?”

“아뇨! 하하하하! 절대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그만큼 영화를 하는 게 즐겁다, 이런 뜻입니다.”

“음, 그렇군요.”

하고서 기자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나저나 우현 님. 최근 영화에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역시 사업이나 재단이 걱정되지는 않으십니까? 엄청 바쁘신 건 아니에요?”

“전혀, 전혀 안 바쁩니다.”

정우현이 기자를 향해 미소 짓고서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워낙 뛰어난 분들이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이렇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살고 있네요.”

“와, 좋네요.”

“예, 하하. 물론 틈틈이 신경을 쓰고도 있습니다. 우후는 이제 새 모델을 또 출시할 거고요, 재단은 최근 동남아시아의 홍수 피해 복구에 발 벗고 나선 상태입니다.”

“와우, 멋져요!”

그러고서 기자가 다시 영화로 화제 전환을 했다.

“정우현 님! 그럼 다음, 다음 영화 계획은 어떤지 물어봐도 될까요? 배우든 감독이든, 차기작은 어떤 작품을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와우, 기자님. 이번 신작 <닥터 스트레이트>가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너무 앞서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이거, 감독에게 다 일러야겠는데요? 하하!”

“아, 너무 궁금해서요! 하하하!”

정우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서는 곧장 말을 이었다.

“차기작은 직접 연출을 할 계획입니다.”

“오, 감독을 하시는 거군요!”

“예, 일단 그럴 생각이고요. 한국에서 한 편했으니 이번에는 할리우드서 한 편 만들어야죠.”

“아아.”

“출연도 할까 생각 중입니다.”

“아, 배우와 감독을 동시에!”

“예, 그래도 어디까지나 중점은 연출이고요. 출연은 해도 작은 역으로 해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쉬운데요? 정우현 님이 작은 역이라니!”

“하하, 제 영화니까 뭐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죠.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로 출연할 수도 있습니다!”

“아아, 믿을 수 없어요!”

* * *

인터뷰를 진행하고 홍보회를 전부 마치고서, 정우현은 스태프들과 술을 마셨다.

정우현은 엄연히 성인이다. 미성년일 때는 뒤풀이를 가면 항상 밥만 조금 먹고 일찍 귀가했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다.

얼마든지 맘껏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고, 술도 물론 왕창 먹을 수 있었다.

이내 사람들은 정우현의 주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기는커녕 눈 하나 꿈쩍 안 하니까.

“…와우, 정우현 님. 대체 주량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이러다가 세상 모든 술을 혼자 다 마시겠어요!”

홍보회를 지원한 영국의 영화 수입사 사장이 말했다.

“하하하,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군요!”

하고서 정우현이 독한 보드카를 단숨에 마셨다.

그러나 역시 알코올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술자리 특유의 자유롭고 활달한 분위기, 그리고 마음속에 있었던 말을 하는 사람들과 우스꽝스러운 이런저런 사건까지 정우현은 그 모두를 몹시도 즐겼다.

이윽고 정우현은 스태프들과 3차를 갔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만취해 숙소로 돌아가는 등 자리에서 사라졌다.

테이블에 남은 사람은 정우현을 포함해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시각은 새벽 두 시.

반짝거렸던 런던 시내도 사람들이 많이 줄어 어두워졌다.

정우현과 일행은 술을 마시기 위해 골목의 허름한 펍을 찾았다.

그럴듯한 커다란 술집은 이미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아아, 여긴 좀 삭막한데요?”

홍보회를 책임지고 이끌었던 여자 팀장이 펍 내부 여기저기를 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갱스터 영화에 나오는 술집 같아.”

이내 남자인 영화사 사장이 말을 받았다.

정우현 또한 그들을 따라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허름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먼지가 켜켜이 쌓인 테이블과 바닥. 문신을 한, 험상궂은 사람들이 힐끔힐끔 정우현과 일행을 본다.

물론, 정우현은 브래드 퍼트의 모자를 푹 눌러 써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뭐, 어쨌든 술집이잖아요! 얼른 한잔합시다!”

정우현이 쾌활하게 말했다.

이에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안주는 런던의 명물 음식인 피쉬앤칩스였다.

이윽고 잔을 마주치고 술을 마시는데, 순간 술집의 문이 큰 소리로 열린다.

역시 또 험상궂은 사람들이다. 한데 이번엔, 어쩐지 술을 마시려고 온 사람들 같지가 않다.

빡빡 민 머리, 즉 스킨헤드를 하고서 술집에 들어오자마자 여사장에게 씩씩거리며 험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준비됐겠지? 아줌마!”

이에 사장이 눈치를 보며 답한다.

“…죄송해요.”

“뭐? 또 없어?”

“…예!”

우당탕탕!

스킨헤드 중 한 녀석이 여사장이 따르고 있던 맥주잔을 바닥에 떨어트린다.

“꺄아아악!”

이내 정우현의 테이블에 있던 여자 팀장이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힐끔힐끔 스킨헤드를 쳐다보기만 할 뿐 가만히 있는다. 마치 항상 있었던 일인 것처럼.

“이년이 말귀를 못 알아먹나!”

스킨헤드가 계속 험한 말을 지껄인다.

정우현이 가만히 있다가, 앉은 채 뒤를 돌아 그들을 본다.

여섯 명. 정확히 여섯 명의 백인들이다. 보아하니, 이 동네를 손에 쥐고 있는 건달인데, 전부 다 스킨헤드인 것으로 봐서는 단순 건달 이상으로 고약한 놈들일 수 있다.

“뭘 봐? 넌!”

그들 중 한 명이 몸을 돌리며 정우현을 보고 크게 소리친다.

정우현의 모자 덕에, 그가 정우현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실은 안다. 바로 그가 동양인이라는 것.

“얼레? 동양인이네?”

이윽고 다른 스킨헤드들이, 동양인이라는 말에 정우현에게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그러고는 맨 앞에 있던, 여사장의 맥주잔을 바닥에 던져 깨부순 사람이 크게 말한다.

“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동양인이 기어들어 와?”

하고 저벅저벅 정우현에게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한 손에 맥주병을 든다.

“어이, 동양인?”

“….”

정우현은 가만히 있다.

“대답 안 해?”

여전히 가만히 있다.

“…대답 안 하면 넌 이대로 뒤진다.”

하고서 그가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셋, 둘, 하나….”

“꺄아아아악!”

여자 스태프가 크게 소리를 지른다.

투둥! 촤아아악! 탁! 쉬이이이이익!

“크아아아아악!”

“으악!”

“…으….”

그리고 펼쳐지는 장면에 정우현의 일행은 물론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확히 12초.

12초 만에 정우현이 여섯 명의 스킨헤드를 단숨에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와중 정우현의 모자는 벗겨져,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술집 구석의 한 테이블에서는 한 손님이 그 모습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모두 촬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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