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
왜냐하면 정우현이 휴일에 학교에서 전속력으로 뛰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업로드되었기 때문이다.
정우현은 물론 구태호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들을 촬영하고 있을지는.
그때 농구를 하던 청소년 중 한 명이었다.
한 학생의 시야에, 운동장에서 20대 초반의 형들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휴일이면 동네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와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 등 이런저런 운동을 했기에 별일은 아니었다.
한데 문제는, 그 형 중 한 명이 말 그대로 번개처럼 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에 학생이 놀라서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보다가, 이내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정우현이었다. 즉 이른 나이에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정우현이 무진장 빠른 속도로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곧장 학생이 핸드폰을 꺼내 그 모습을 촬영했고, 이내 그 영상을 SNS에 올렸다.
해당 영상은 일파만파 한국은 물론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작 아님?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림?
-정우현이라고 함.
-홀리 쉿. 리얼 인크레더블 킹 가이, 슈퍼 영 앤 리치 정우현이야?
-ㅇㅇ. 나도 믿을 수 없음.
-자메이카 국적의 육상 코치입니다. 만약 이 영상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정우현 님은 지금 당장, 롸잇 나우, 선수로 출전하셔야 합니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메달을 독식하게 될 거예요.
“…으음.”
우 재단 의장실.
정우현이 사람들의 SNS를 보고 소리를 냈다.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좀 쉬다가 즐겁게 운동장을 뛰었다.
그러고서 그는 구태호의 뜻을 따라 2차, 그리고 3차에 이르기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구태호를 안전 귀가시킨 뒤, 자신 또한 집에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고 재단에 나왔다.
근데 엘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얼른 한 영상을 보여 줬다.
운동장을 뛰던 자신의 영상이었다.
“조심하셔야 해요, 우현 님.”
“….”
“우현 님은 전 세계적인 유명 인사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아무 데서 자유롭게 활동하시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고서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우현의 경호원인 엄규환을 찾는 몸짓이었다.
정우현이 즉각 그런 그녀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
“실장님은 경호실에 있습니다.”
우후 사업에서 우 재단까지, 정우현이 이끄는 조직이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다. 이와 동시에 경호 및 보안 팀도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단연 엄규환이 팀의 책임자였다.
그래서 예전처럼 항상 정우현 옆에 붙어 있지 않았다. 정우현이 회장이나 의장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때면, 엄규환은 경호실에서 팀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우현은 성인이 되면서, 때때로 자유롭게 있고 싶어 했다.
더군다나 구태호처럼 오랜 친구와 함께하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때는 더 그랬다.
“어제는 저랑 친구 둘이서만 있었고요.”
“…그래선 안 돼요. 항상 경호원분들과 함께 다니세요.”
“하하, 괜찮습니다, 엘라. 저는, 이제 성인입니다. 성인으로서 홀로 모든 걸 할 수 있어요.”
그러자 엘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
“걱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현 님.”
하고서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 * *
해당 영상은 세계적 이슈가 됐다.
원체 워낙 유명 인사인 정우현이었는데, 그의 번개 같은 달리기 실력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이내 이 영상으로 국내에서 일단의 여론이 조성됐다.
또다시 군대였다. 이렇게나 놀라운 신체적 능력을 보여 주는 정우현이, 단순히 서류상의 학력을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처음에 정우현은 그냥 그런 목소리가 있구나 하고 말았다.
한데 이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정우현 측에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에 엘라가 다시 의장실을 찾아, 정우현의 군 입대와 관련해 말을 꺼냈다.
“대한민국 법률상 우현 님은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론이죠. 여론은 때로 법률보다 큰 위력을 발휘해요.”
하고서 그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대로 우리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의장님의 사업은 물론 우리 재단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예요.”
“그렇다면 그냥 입대할까요?”
정우현이 빙긋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자 엘라가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법률상 가지 않는 군대를 왜 굳이 가시려고 합니까? 그리고 의장님이 없다면, 재단과 사업은 어쩌시려고요?”
하고서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비록 대한민국 국민은 아니지만, 우현 님을 곁에서 돕고 아끼는 사람으로서 얘기합니다. 우현 님이 군대에서 보내는 2년보다 밖에서 재단과 사업, 그리고 영화와 이런저런 학문에 힘을 쓰시는 2년이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명백히 훨씬 이로워요. 그런 측면에서 우현 님은 계속 지금처럼 자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으음.”
정우현이 잠자코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엘라가 잠시간 입을 다물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는 한순간 다시 말을 했다.
“우현 님.”
“예?”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뭐요?”
“일단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하나 확인할 게 있습니다.”
그러고서 그녀가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정우현을 보고 질문을 하나 했다.
“우현 님. 최근 100m 달려서 시간을 재 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략 몇 초 정도 자신 있으세요?”
“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는 수준인지 묻는 것입니다. 영상을 본 제가 판단하기에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실제가 중요하겠죠.”
엘라의 말에 정우현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어릴 때 달리면서, 그는 자신이 무진장 빠르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이내 KGI에 입학해 그 점을 객관적으로 입증했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에 취하지 않고 이렇다 할 감기는커녕 피로감조차 느끼지 않는 자신의 신체를 생각했다.
이 모두, 염라대왕의 선물이었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이런 생각에 이른 그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엘라가 곧장 답했다.
“좋습니다. 이 여론을 정면 돌파하는 것을 넘어 우현 님과 우리 조직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줄 방안을, 이제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뭡니까.”
엘라는 역시 똑똑했다. 무엇보다 그 좋은 머리를, 오로지 정우현을 위해 쓴다는 게 제일 중요했다. 정우현의 행복이 곧 엘라의 행복이었다.
“작정하고 달려 보세요.”
“…예?”
정우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달리기를 작정하고 해 보시라고요. 그리고 그 장면을 우현 님이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에서 제대로 촬영해 멋진 영상으로 편집하는 겁니다.”
“으흠.”
정우현이 흥미로움을 느끼며 엘라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이제 곧 우후의 포털 사이트와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에 올리는 겁니다.”
“아하.”
정우현이 이제 알겠다는 듯 소리를 내며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제가 달릴 때 마치 실제 육상 경기에서처럼 초시계로 측정을 해야겠군요.”
“맞아요.”
엘라가 곧장 답했다.
“대한민국 법률상 가장 영예로운 입대 면제 사유가 하나 있죠. 바로 올림픽에서, 무슨 색이든 일단 메달을 하나 따는 것입니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무조건 금메달을 따는 것도 있고요. 하여간, 그렇게 되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죠. 메달, 그것만큼 직접적으로 국위 선양을 하는 건 없으니까요.”
그러고서 그녀가 조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저는 이미 우현 님의 삶과 업적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올렸다고 생각하지만, 대중들은 당장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이런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서 그녀가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우현에게 말했다.
“어때요, 우현 님. 바로 추진해 볼까요?”
이에 정우현이 쾌활하게 답했다.
“하하, 예! 해 보세요! 재밌겠네요!”
* * *
그렇게 해서 이뤄진 정우현의 100m 달리기.
우후 엔터테인먼트는 서울시로부터 잠실주경기장을 빌려 촬영 준비를 했다.
정우현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전방에는 커다란 초시계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탕!
화약총의 격발 소리와 함께 정우현이 무진장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다른 육상 선수처럼 스타트가 느리고 뭐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엄청나게 빠르다.
그리고 이내 결승선을 통과하는 정우현.
그와 함께 전광판이 멎고, 초 시계는 놀랍게도 9.57. 정확히 9.57초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 자메이카 국적의 육상 선수가 경신한 세계 신기록보다 0.01초 빠른 기록이다.
즉 정우현은, 이렇다 할 훈련도 없이 비공식적으로 100m 달리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아아아아!”
엔터테인트 및 육상 관계자들이 놀라는 가운데 촬영은 끝이 났다.
그대로 우후는 해당 영상을 멋지게 편집해 그들의 새 포털 사이트에 게시했다.
* * *
세상이 혼돈에 빠졌다.
가장 일차적인 반응은, 당혹스러움이었다. 대부분이 정우현을 좋아하고, 그의 엄청난 신체적 능력 또한 차차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세계 신기록을 넘어섰다는 사실에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심지어 우후가 한국 육상 관계자까지 섭외해, 해당 영상의 진의성을 보증하는 인터뷰까지 첨부해 올렸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정우현의 군 면제에 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의 반응도 갈렸다.
정우현의 기록을 믿으며, 어차피 올림픽에 출전했어도 메달리스트가 될 것이었기에 정우현이 입대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람들이 물론 생겨났다.
이는 엘라가 애초 의도한 바였다. 엘라는 이를 위해 정우현의 100m 달리기라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내 이 일은 다른 국면으로 진입했다.
현시점 100m 달리기 세계 랭킹 1위인 미국 국적의 흑인인 콜러가, 정우현에게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우현의 영상을 믿을 수 없다며 자신의 SNS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말이 되나. 동양인이 9초대를? 그것도 세계 신기록을 넘어서?
하고서는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글을 이었다.
-나도 아직 다다르지 못한 9.5초대의 신기록을 정우현이 넘어섰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영상이 조작됐다는 것에 내 모든 것을 건다. 만약, 조작이 아니라면 정우현에게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나와 달리기 대결을 받아들여라. 나와 직접 달려서, 날 이기면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한편, 그를 달리기의 신으로 추앙하겠다.
이에 한 사람이 즉각 응수했다.
바로 SNS의 제왕이자 최근 사장이 된 일론 마스크였다. 정우현이 우후 그룹의 회장이 됨으로써, 일론은 우후 전기차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것 보시게, 가이. 우리 보스를 그런 식으로 욕보이면 안 되지. 당신이 빠르다고? 그럼 나보다 빠른지부터 입증하고 우리 보스에게 덤비라고. 참고로 나는 뒤로 달려도 당신보다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할 자신이 있다.
이에 곧장 콜러가 답글을 달았다.
-어이, 관종. 너는 기름때 묻혀 가며 자동차나 계속 만들어라. 너 같은 놈이 운동의 신성함을 알 리가 없지.
이에 일론이 또 답글을 달았다.
-가이, 집에서 코딱지나 파라. 우리 마누라가 너보단 빠를 듯.
이런 식으로 일론과 100m 세계 랭킹 1위의 콜러는 며칠간 유치하기 짝이 없는 키보드 배틀을 붙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배틀이 강제 종료됐다.
우 재단의 관리자, 즉 엘라 로렌츠가 일론 및 해당 흑인에게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 재단의 실무를 책임지며 자신의 본명으로 새롭게 SNS 계정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모두 그만하세요.
그러고서 그녀가 놀라운 글을 이었다.
-우현 님이 대결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일시나 장소는 콜러 님이 원하는 대로 정하세요. 우 재단의 의장이자 우후 그룹의 회장인 정우현 님은, 언제 어디서든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