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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21)화 (121/200)

121화

정우현은 동생의 공부를 지도하며 2013년을 보냈다.

다행히 동생은 정우현의 교육을 잘 따라서, 일찌감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고 계속 그 점수를 유지했다.

그래서 정우현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사업과 재단 모두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에 집에서 보고 싶은 책과 영화를 잔뜩 보고, 이따금 한국 및 미국의 주식을 분석해 저평가 종목을 마트에서 쇼핑하듯 사들였다.

이 와중에도 굵직굵직한 사업은 직접 지휘했다. 정우현이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면, 그 아래 일론을 중심으로 구체화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영화 <격분>을 촬영할 때 대규모 자금으로 마련한 스튜디오를 그대로 사업화했다. 그 결과, 우후는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진출했다.

마음 같아선 극장도 건설 및 인수해 영화관 사업까지 하는 등 영화와 관련된 모든 산업 라인에 손을 뻗을까 했지만, 좀 더 천천히 하기로 했다. 흥행 영화를 몇 편 제작하고, 좋은 배우도 섭외하는 등 좀 더 사업을 탄탄히 한 뒤 진출해도 늦지 않으니까.

한편 우후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과 함께 정우현은 그룹 전체의 회장이 되었다.

일론을 포함한 우후의 이사들이 그렇게 결정했다. 전기차를 넘어서 워낙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된 만큼, 그룹을 총괄하는 공식적인 자리와 직함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축하한다, 우현아!”

강남 우후 엔터테인먼트 본사.

우후 그룹 회장이 된 정우현에게 한 남자가 환히 웃으며 말한다.

그는 우후 엔터테인먼트가 섭외한 첫 번째 배우였다.

그렇다고 1호 배우는 아니었다. 1호는 그룹의 회장이자 데뷔한 지 15년이 넘은 정우현이 있으니까.

“우현아, 너 이러다가 대한민국을 몽땅 손에 쥐는 거 아니냐?”

“하하하, 그럴 리가요, 삼촌!”

김도진이었다. 일찍이 우후의 전기차 광고 모델로 발탁됐던 그가, 엔터테인먼트 설립으로 아예 우후 전속 배우가 되었다.

그렇게 김도진을 시작으로 유명 스타 및 실력파 배우들이 우후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다.

물론 정우현이 그들 모두를 일일이 뽑지는 않았다.

우후 그룹 및 우 재단은 나날이 커져서, 회장이자 의장인 정우현은 이제 실무 차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중요한 사업적 판단만 하고, 나머지는 각 분야 최고의 사람들이 추진했다.

정우현이 그 다음 생각하고 있는 사업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및 글로벌 투자사였다. 급히 나설 필요는 없었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그룹은 더욱 커지고 있었으니까.

이에 그는 집에서, 여유로움을 즐기며 천천히 새 사업을 준비했다.

* * *

“축하해.”

이듬해인 2014년.

동생 정다현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정우현이 참석해 꽃다발을 건넸다.

이미 동생의 학교는 난리가 났다. 세계적 유명 인사인 정우현이 학교에 왔으니까.

물론 대다수 선생 및 학생들은 재학생 정다현이 정우현의 친동생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녀가 워낙 조용하다 보니, 금세 관심이 수그러들었다. 심지어 정다현이 정우현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한데 이렇게 졸업식 날, 정우현이 동생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옴으로써 두 사람이 남매임을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고마워, 오빠.”

동생이 정우현이 준 꽃다발을 받고 웃으며 답했다.

그녀는 올해 입시에 성공했다.

즉, 목표로 했던 한국대학교 약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다 오빠 덕이야.”

하고 말하는 동생에게 정우현이 짧게 한마디 했다.

“대학 가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응….”

하고 그녀가 조금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나, 꼭, 유능한 약사가 될 거야.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는, 약을 만들고 싶어.”

사춘기 때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잠시 방황하던 동생 정다현은, 당시 오빠 정우현과 대화를 한 후 약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데 약국을 차려서 약을 판매하는 약사보다는, 약을 개발하는, 즉 신약을 만드는 약사가 되리라 마음을 먹었다. 아직 정복되지 못한 질병을 극복하거나, 기존의 약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약을 만드는 게 그녀의 목표였다.

“그래, 그래! 그 마음 변치 말고 너는 열심히 공부만 하렴.”

정우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친오빠의 마음이었다. 그것도 첫 번째 삶에선 힘들게 살았던 동생을 고스란히 기억하기에, 이번 생에서는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싶었다.

* * *

한편 정우현이 스물두 살이 됨으로써 대중들 사이에선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남자 국민으로서 정우현 또한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반대 측 의견이 훨씬 거셌다. 영화, 수학, 사업 등 그가 매진한 모든 부문에서 국위 선양을 하고 있는 정우현에게 군대를 가게 하는 건 불공평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내 그와 같은 논쟁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우현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즉 초졸이었다. 그는 한국 영재 학교 6년 과정만 졸업한 뒤 진학을 하지 않았기에, 서류상 초졸로 남았다.

2014년 당시 법률상,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자는 군대를 가지 않는다.

“헐, 우현! 그럼 면제인 거야?”

일요일, 서초동의 한 치킨집.

구태호가 정우현과 만나 술을 마시며 말했다.

“응. 뭐 어쩌다 그렇게 됐네.”

“흠, 하긴, 네가 군대에 있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게 우리나라에 훨씬 도움 되겠다.”

“하하, 그런가.”

하고서 정우현이 잠깐 생각하고는 되물었다.

“태호, 너도 안 가지 않나? 경찰대 학생은?”

“아, 안 가는 건 아니야. 졸업 후 의경소대장으로 부임해야 하니까. 일종의 장교로 복무하는 거지.”

“그렇구나.”

그러고서 둘은 군대 및 최근 생활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을 계속 마셨다.

약 두 시간 후. 구태호는 또 만취했다. 술을 먹었다 하면 구태호는 빠르게 폭음을 했고, 당연히 여지없이 취했다.

“태호야, 이제 가자.”

정우현이 그런 구태호를 보고 말했다.

물론 정우현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우현, 넌 술이 얼마나 센 거냐.”

“하하, 나도 취했어.”

“거짓말하지 마. 여기 들어올 때랑 거의 같은 모습인데.”

“아니, 진짜라니까.”

하는 정우현의 얼굴은 희고 맑았다. 알코올 따위는 역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이 취한 구태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는 와중 구태호가 테이블을 한번 쓱 보고서는, 차갑게 식은 치킨 한 조각을 확인하더니 곧장 집어 입에 넣었다. 구태호에게 치킨을 남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치킨집에서 나온 정우현과 구태호.

정우현은 구태호가 많이 취해 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구태호는 2차를 가고 싶어 했다.

“그냥 가자니까.”

“아니야, 한 잔만 더 하자!”

하고 고집을 부리는 구태호를, 정우현이 억지로 이끌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2차를 가도 조금 쉬었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태호가 곧장 폭음을 하다가 뻗어 버릴 게 분명하니까.

이에 몇 발자국 걸으며 사방을 둘러봤는데, 한 남자 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정우현은 인근 편의점에 들러 이것저것 좀 산 뒤, 구태호를 데리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구태호는 뭐 이런 데를 가느냐고 한 소리 했지만, 정우현이 얼른 말했다.

“야, 또 술 먹더라도, 좀 깨고 가자.”

그렇게 벤치에 자리 잡은 정우현과 구태호.

농구 골대 앞에서 몇 명의 청소년들이 농구를 하는 것 말고는 운동장에 아무도 없다.

구태호가 전방을 잠깐 보고서, 정우현이 편의점에서 산 헛개수 용액과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하아, 술 다 깼다. 얼른 또 먹으러 가자.”

“하하하하, 뻥치시네. 그러다 몸 상한다, 태호야. 좀만 쉬었다 가자. 물 많이 마시고.”

이번 두 번째 삶에서의 정우현은 물론 스물두 살이지만, 전생에서의 삶까지 하면 무려 쉰 살이 넘었다.

즉 그는 적지 않은 삶의 경험으로, 젊은이들의 객기가 얼마나 순간적이고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지 잘 알고 있었다.

옆에 있는 구태호가 딱 그렇다. 술을 그렇게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만취해 세상을 다 가진 양 만용을 부리고 있다.

그렇지만 또 그런 점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객기야말로 또한 젊은이들의 특권이기도 하니까.

실상 그런 구태호를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보호하고픈 정우현이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뜻을 따라 2차를 가되, 좀 쉬었다가 술이 깨고 몸이 회복되면 가자고 했다.

항상 그랬다. 정우현은 아주 어릴 때부터 구태호 그리고 권유라와 함께하며, 그들과 동갑내기 친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30년이나 되는 전생의 경험을 가진 채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 정우현에게 친구들이 그렇게 비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마치 여동생 정다현이 때로 그에게 딸처럼 느껴지듯.

“…하아.”

구태호가 벤치에 앉아 넓은 운동장을 보며 호흡을 깊이 내쉰다.

그도 결국 정우현의 뜻을 따라 조금 쉬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벤치에 앉아 탁 트인 전방을 보니, 기분이 좋기도 했다.

술도 취했겠다, 이 순간 나름의 흥취가 있었다.

“우현아.”

“응?”

“그때 생각난다.”

“언제?”

하고 묻는 정우현에게 구태호가 얼른 답했다.

“우리 어렸을 때. 이런 운동장에서 맨날 뛰어놀았잖아.”

“하하, 그랬지.”

그러고서 둘은 말없이 운동장을 바라봤다.

각자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었다. 뭐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즐겁고 웃음이 나오던 어린 시절.

그러기를 한참 구태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뛰어 볼까?”

“응?”

“너랑 나. 오랜만에 어릴 때처럼, 운동장에서 한번 뛰어 보자는 거지.”

“하하, 뭘 뛰냐. 그냥 여기서 좀 있다 가자.”

“아니야.”

하고 구태호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몇 발자국 걸어 운동장에 서서는 뒤로 돌아 정우현에게 손짓했다.

“와 봐! 뛰어 보자!”

하더니 구태호가 실제로 뛰기 시작했다.

취해서 혹시나 넘어지지는 않을지 정우현이 걱정되어 곧장 일어났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구태호는, 조금 비틀거리면서도 천천히 뜀박질했다. 물론 직선 코스라 덜 위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 뛰고 다시 정우현 앞쪽으로 오고서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한번 뛰자니까! 재밌어!”

그냥 뛰는 게, 뭐가 재미있을까.

하지만 구태호에게는 재밌었다. 취했으니까.

취하면 의미 없는, 세상 모든 행위가 재미있어질 수 있다.

물론 정우현 또한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서 저벅저벅 걸어 구태호에게로 갔다.

“좋아, 자, 뛰자!”

하는 말에 구태호가 다시 달렸고, 정우현은 그런 친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가볍게 뛰었다.

한데 정우현 또한 모처럼 운동장을 달리니, 조금 신이 났다.

생각해 보니 영화를 한다, 사업을 한다, 공부를 한다는 등 바빠서 이렇게 마음 편히 운동장을 뛴 지 무척 오래되었다.

그래서 더 신이 났다. 뛰다 보니 정말 구태호의 말대로 재밌었고, 더군다나 어쨌든 친구와 함께 뛰니 더 좋았다.

“하하하하!”

구태호는 친구가 자신의 말대로 운동장을 뛰니 또 좋아서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는 그가 잠깐 생각하고서 다시 크게 말했다.

“우현아!”

“응?”

“우리 전속력, 전속력으로 뛰어 보자!”

“…전속력?”

“응! 너, 엄청 빨랐잖아! KGI 다닐 때! 특히 고학년 때는 웬만한 성인만큼 빨랐잖아!”

실제 그랬다. 정우현은 5학년 때 즈음 벌써 평범한 남자 성인과 가까운 속도로 달렸다.

“그러니까 한번 작정하고 달려 봐! 얼마나 빠른지 보자!”

“으음….”

하고 정우현이 달리다가는 한순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못 할 건 없었다. 이왕 뛰게 된 거, 제대로 달리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그 또한 좀 궁금하기도 했다. 자신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쉬이이익.

이내 정우현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구태호는 제자리에 멈춰 서, 놀란 눈으로 그런 친구를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엄청 빨랐기 때문이다.

그가 제대로 봤다면, 티브이에 나오는 웬만한 육상 선수보다도 훨씬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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