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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20)화 (120/200)

120화

백호 영화제 시상식이 진행됐다.

먼저 조연상 등 연기상 수상이 이어지더니, 이내 주연상 차례가 됐다.

남우주연상 후보로 <격분>의 김도진이 스크린에 크게 비쳤다. 이에 객석에 앉아 있는 김도진은 자신이 주연상 후보에 오른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모든 후보 소개를 마치고 드디어 수상자 발표를 하기 직전.

“…남우주연상은.”

김도진은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에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격분>의 김도진!”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가운데 정작 김도진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사회자가 한 번 더 김도진의 이름을 불렀고, 그때야 김도진은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고서 그는, 여전히 객석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해요, 삼촌!”

이내 그의 귀에 정우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촌!”

“…아.”

김도진이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돌려 정우진을 바라봤다.

“삼촌! 주연상이에요! 남우주연상! 얼른 앞으로 나가셔야죠!”

정우현의 말에 김도진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봤다.

스크린에는 멍한 모습의 자신이 여지없이 펼쳐지고 있다.

주연상이다. 데뷔한 지 20여 년. 생각지도 못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됐다.

이는 꿈도 환상도 아닌 현실이었다.

“…삼촌!”

재차 귀에 들리는 정우현의 목소리에, 김도진이 드디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앞으로 천천히 나갔다.

* * *

울었다. 김도진은 울었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아야겠다 생각했는데, 무려 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눈물은 무척 뜨거웠고, 뜨거운 만큼 그의 가슴은 들끓었다.

이내 그는 북받치는 감정 그대로 소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고서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울면서 말을 이었다.

“연기자임에도… 솔직히 연기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언젠가 잊히지 않을까 그런 걱정까지 했죠….”

“….”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 김도진의 소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 제 안의 무언가를 연기로 끄집어내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그런 좋은 기회를 맘껏 누릴 수 있었어요.”

그러고서 그가 숨을 조금 돌리고 말을 이었다.

“…이 모두, 한 사람 덕분입니다. 또한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가장 먼저 떠오른 분도 그 사람입니다.”

하고 그가 양팔을 뻗어 객석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바로 정우현 감독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내 스크린 위로, 앉아 있는 정우현의 얼굴이 크게 잡혔고, 사람들이 무지막지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김도진이, 정우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자 사람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이에 정우현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손뼉을 치지 않았다. 대신 무대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정우현을 바라봤다.

정우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위로 가볍게 올랐다. 그러고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도진을 와락 안았다.

삼촌 김도진. 어릴 적 영화를 한 편 찍기 위해 함께한 이래 항상 좋았던 사람.

또한 언제든 정우현에게 힘을 줬던 사람.

그런 사람을, 끌어안았다. 그것도 김도진 그의 삶 가운데 더할 나위 없이 빛나는 순간에.

* * *

<격분>은 이어지는 음향상, 편집상, 그리고 각본상 등에서 모두 수상했다.

이로써 김도진의 남우주연상과 함께 벌써 5관왕에 올랐다.

한데 가장 큰 상이 두 개 남아 있다.

바로 감독상과 대상이다.

감독상은 영화가 아닌 감독의 관점에서 올 한 해 가장 뛰어난 연출을 한 사람에게, 대상은 영화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다.

즉, 두 부문 모두 최고의 상이다.

이어지는 시상식.

“<격분>의 정우현 감독!”

이내 정우현은 감독상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상도 그의 작품 <격분>이 수상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정우현의 영화가 올 한해 7관왕을 달성했다.

“하하하.”

대상 수상과 함께 정우현이 무대에 나가서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환히 웃었다.

“아까 소감을 말했는데, 또 해야 하네요.”

“하하하하!”

그러고는 여유로운 농담까지 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감독상 수상 때 정우현이 이미 무대에 나와 수상 소감을 말했는데, 대상 수상으로 금방 다시 나왔기 때문이다.

“음….”

정우현이 순간 무슨 말을 할까 고심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여러분.”

“….”

“저의 영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하고서 손에 들고 있는 트로피를 하늘을 향해 들었다.

“그러니 앞으로 30년, 아니, 한 50년은 저와 함께 더 즐겨 보자고요!”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으로 영화제 수상이 끝났다.

사실 정우현의 영화 <격분>의 대상 수상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었다.

국내는 물로 해외에서도 압도적인 흥행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격분>이 아닌 다른 영화에 대상을 안겨 준다면, 영화제는 잘못된 심사로 오히려 권위를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대상을 수상한 것보다는 <격분>이 다른 부문의 상도 휩쓸어 무려 7관왕을 달성했다는 게 훨씬 큰 뉴스였다.

배우가 아닌 감독 정우현의 장편 데뷔작은 이렇게나 히트를 쳤고, 이제는 그를 수식하는 많은 명칭 중에 영화 감독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됐다.

* * *

해가 바뀌어 2013년.

년 초, 정우현은 한껏 여유를 즐겼다.

계획한 영화는 대박이 났고, 사업은 일론의 경영 아래 이윤이 더욱더 늘며 매일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재단도 엘라의 운영으로 더욱더 큰 공익 활동을 벌이며 하루하루 평판을 드높이고 있었다.

그래서 정우현은 좋았다. 뜻한바 모든 것이 잘되고, 심지어 이제는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거의 모든 것들이 알아서 돌아가니까.

그러나 이내, 그는 잠자코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동생 정다현이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 즉 수험생이 됐기 때문이다.

“정다현.”

어느 날 오후.

정우현은 하교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응?”

“너 올해 수능 보잖아.”

“…응.”

“어때, 준비는 잘되고 있어?”

하는 정우현의 말에, 동생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볼멘소리로 작게 말했다.

“…응, 하고 있어.”

“목표가 어디랬지?”

“한국대학교.”

하고 동생이 역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약학과.”

“으음.”

동생은 현재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정우현의 오랜 지도 덕에 공부도 곧잘 해서 입시도 큰 걱정이 없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국내 최고의 대학인 한국대학교, 그것도 인기학과인 약대를 지망한다는 점이었다.

한국 최고의 약학과답게 입시 컷이 어마어마했는데, 같은 학교 의대와 견주어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즉 점수로는 거의 만점을, 석차로는 전국 탑을 찍어야 갈 수 있는 곳이 한국대학교 약학과였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정우현이 동생의 얼굴을 슬며시 보며 물었다.

“….”

그럼에도 동생이 말이 없자 정우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응? 다현아.”

“…조금.”

하고서 동생이 천천히 말했다.

“힘들어.”

“힘들다고?”

“응. 모의고사 보면 항상 조금 부족해. 밑에 다른 학교라든가 다른 과는 무리 없이 갈 수 있지만, 한국대학교 약학과만큼은 항상 몇 문제가 부족해.”

“아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입시가 힘들 수도 있다니.

물론 대한민국에는 한국대학교를 제외하고도 좋은 대학교가 많다.

하지만 동생이 한국대학교를 목표로 했다는 게 중요했다. 또한, 명실공히 해당 학교는 국내 최고이기에 동생의 소망대로 그녀를 그곳에 진학시키고픈 마음도 있었다.

정우현은, 동생 정다현의 친오빠니까.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정우현이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해 볼 때까지 해 봐야지. 그리고 수능 보고, 원하는 점수 나오면 목표한 대로 진학하고, 아니면….”

하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별일 아닌 듯 말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꽤 신경 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다른 학교 약학과로 진학하든가, 재수를… 하든가 해야지.”

재수라니, 말도 안 된다.

정우현이 생각했다. 내 동생이 재수라니.

물론 원하는 대학을 위해서라면 재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한데 이번 삶은, 정우현이 선물로 받은 소중한 두 번째의 인생이라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새 삶을 다시 살게 된 이래 정우현 본인은 물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잘되고 있었다.

근데 동생이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하게 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재수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뭔가 울적하고 힘에 부칠 것만 같았다.

이는 정우현의 두 번째 삶에 적합하지 않았다.

“안 돼.”

잠시 잠자코 있던 정우현이 순간 입을 열었다.

“…응?”

“재수는 안 된다고.”

“아….”

“더군다나 네가 목표로 하는 학교 말고 다른 학교로 하향 지원하는 것도 안 돼.”

“….”

“정다현, 너는 무조건.”

하고 그가 동생을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 말을 이었다.

“한국대학교. 한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한다.”

이에 동생이 조금은 부담이 되는 듯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짓다가는 오빠 정우현의 눈치를 보고 슬쩍 물었다.

“…못하면 어떡해?”

“뭐?”

“아니, 그러니까. 내가 수능을 잘못 보기라도 하면….”

하는데 정우현이 단호한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그런 일은 없다.”

“….”

“내 동생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러고서 마치 자신이 수능을 보는 듯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현아.”

“…응?”

“너 지금 학원 다니고 과외도 하지?”

“응.”

“그거 다 끊어.”

오빠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동생이 화들짝 놀라서는 되물었다.

“뭐?”

“다 끊으라고. 학원이고 과외고.”

“…그럼, 혼자 자습하라고?”

“아니.”

하고서 정우현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말했다.

“내가, 가르친다. 내가 네 옆에 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

“그리고 너는 한국대학교 약학과에 당당히 입학한다.”

* * *

이것으로 동생의 입시 교육이 결정됐다.

동생에게는 하고 말고 선택권이 없었다. 이제껏 살아온 그녀의 삶이 그랬으니까.

그녀는 아기 때부터 오빠의 말이라면 거의 절대적으로 들었다.

정우현이 물론 성심성의껏 동생을 돌보기도 했지만, 동생 입장에서도 오빠의 말을 듣는 게 거의 모든 면에서 이롭다는 걸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갑자기 오빠가 나서서 자신을 가르친다기에 조금 걱정이 됐지만, 오빠가 이러는 건 언제나처럼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오빠의 계획대로 자신이 정말 가르침을 잘 받고 목표로 했던 한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 가장 좋은 사람은 오빠도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그래서 굳이 그의 뜻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 *

그렇게 교육이 시작됐다.

동생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다른 어디에 가지 않고 집에 와 오빠의 개인 강의를 들었다.

“오비탈의 총 전자수, 이건 기본 중 기본이야.”

하고 물리 과목을 가르치는 정우현 입장에서는 어쩐지 교육이 수월함을 느꼈다.

이미 구태호와 권유라의 입시 공부를 가르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과 달리 동생을 교육할 때는, 자신이 연장자이기에 훨씬 주도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나아가 동생과 한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크게 한몫했다. 언제든 공부를 가르치고 테스트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3개월을 동생의 입시에 집중한 뒤 어느 날.

동생이 평소와 달리 무척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심지어 정우현을 마구 찾는다.

“…오빠! 오빠아아아!”

“음?”

정우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 동생이 자신을 이토록 크게 부르며 찾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

하고 그녀가 볼까지 빨개져서는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점 받았어! 이번 모의고사 만점 받았다구!”

그제야 정우현은 동생이 왜 이리 들떴는지 이해가 됐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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