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태권도를 시작으로, 정우현은 온갖 무술을 선보이며 자신이 액션까지 직접 총괄할 수 있음을 몸소 입증했다.
이윽고 그가 김도진은 물론 조연 및 엑스트라에게 일일이 동작을 가르치며 전체적인 동선을 조율했다.
그 뒤 본격적으로 촬영하기에 앞서 배역들이 자신들의 동작을 숙지하고, 합을 맞춰 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정우현이 계속해서 그들과 함께하며 액션을 지도했다.
세트장은 순식간에 흡사 하나의 체육관과 같이 변모했고, 정우현은 그를 관리하는 관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러기를 한참, 정우현이 이쯤이면 괜찮겠다는 판단을 하고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러고서 분장팀에게 배역들의 옷매무새와 얼굴을 정돈하게 한 뒤 드디어 외쳤다.
“레디, 액션!”
드디어 영화 <격분>의 본격적인 액션 씬이 시작됐다.
김도진을 포함한 배역들은 정우현이 가르쳐 준 동작을 무리 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김도진이 건물에 은밀하게 들어서자마자 국제 납치 조직원의 목덜미를 가격해 기절시키고는 다른 조직원에게 날아 차기를 가한다. 그러고는 앉은 채로 뒤로 돌며, 후방으로 다가온 적의 다리를 차 쓰러트리고 그대로 몸을 벌떡 일으켜 쓰러진 이의 얼굴에 강한 펀치를 날린다.
이윽고 2층에서 조직원이 총까지 꺼내 김도진에게 발포하지만, 그가 순식간에 몸을 반쯤 돌려 덤블링을 해 화려하게 총알을 피한다.
“오케이, 컷!”
고난도 액션 씬임에도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잘했어요, 잘했어!”
정우현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배역들이 자신이 가르쳐 준 대로 동작을 잘 해냈다. 즉 첫 액션 씬을 성공적으로 촬영했다.
물론 이에는 주인공인 김도진의 공이 컸다.
“하하, 우현아.”
김도진도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정우현을 보고 환히 웃었다.
“멋졌어요, 삼촌!”
“하하하하, 다 네 덕이지. 네가 애초 동작을 잘 짰으니 말이다. 쉽게 가르쳐 주기도 했고.”
그러면서 그가 자신의 딱딱한 복근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애초 이렇게 날렵하고 정확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네가 트레이닝을 해 준 덕분 아니냐. 너 아니었으면, 몸이 무거워서 이런 고난도 액션 씬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처음부터 대역을 쓰자고 했을 거다.”
하고 그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간 좋다, 좋아! 더 어려운 동작 없니? 뭐든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삼촌! 아직 찍어야 할 액션 씬이 넘친다고요!”
* * *
그러고서 김도진은 이어지는 액션 씬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다.
물론 정우현이 전부 옆에 밀착해 일일이 지도한 결과였다.
“하하하, 우현아.”
촬영이 종반을 향해 가는 시점.
김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예?”
“나, 왠지 느낌이 온다.”
“뭐요?”
“삼촌이 예전부터 흥행하는 작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고 했지?”
“하하, 예.”
“사실 네 시나리오를 보고도 그랬다. 그런데도 내가 안심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하고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주연이 오로지 나였기 때문이야. 즉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하는가에 따라서 영화의 성적이 결정된다는 게 문제였지. 근데 시나리오를 보니, 평소 내 색깔과 다르게 어둡고 진지한 모습이 필요해 보이더라. 거기에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이런저런 액션을 해야 하는 것도 좀 부담이었고.”
그러고서 그가 다시 쾌활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근데 이제는 다 해결했지 않았냐. 연기고 액션이고 모두 다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 영화는, 네가 애초 의도한 대로 대박, 대박일 수밖에 없을 거다!”
“좋아요, 삼촌!”
정우현 또한 웃으며 화답했다.
“이대로 끝까지, 마무리 잘 합시다!”
그리고 드디어 종반 씬.
김도진이 드디어 범죄 조직의 본부에까지 급습해 적들을 소탕하고 아이들이 있는 방을 발견해낸다.
“예슬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눈 앞에 두게 된 자신의 딸.
“아빠아아아아아!”
눈부시게 예뻤던 딸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있다.
다행히 몸은 성하다.
“...예슬아아아!”
하고 다시 눈물을 흘리는 씬.
김도진의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마구 떨어져 흐른다.
물론 그의 마음으로는, 지금 잃어버린 딸을 되찾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잃어버린 반려견 해피를 찾은 셈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오케이, 컷!”
또 하나 완벽한 씬이 나왔다.
그리고 김도진이 자신의 딸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딸 예슬이가 김도진에게는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냐고 하자, 그가 아빠는 금방 갈 테니 일단 나가 있으라고 한다.
김도진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이렇게나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조직의 보스를 처단할 작정이다.
예전처럼 평범한 중년 아저씨였다면 딸과 함께 당장 살고보자는 마음으로 얼른 밖으로 나갔겠지만, 이제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
수십 대 일의 전투도 무섭지 않은, 히어로로 성장했으니까.
“하하하하하하!”
이 영화 최후의 빌런, 조직의 보스가 사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김도진을 보고 깔깔 웃는다.
김도진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혹시나 부하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고.
하지만 한 명도 없다. 모두 그가 이곳에 오기까지 처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는 구석이 있는지, 보스가 계속해서 웃는다. 심지어 의외로 덩치는 작아, 딱히 싸움을 잘해 보이지도 않는데.
“네 놈이 여기까지 와 놓고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보스가 표독스러운 말투로 지껄인다.
“...”
김도진이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는 곧장 제압하기 위해 발을 내딛는다.
두두두두둥...
한데 순간 보스의 뒤에 있는 커다란 철문이 열린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어마어마한 양의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즉 보스는 김도진을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이처럼 시한폭탄을 작동시켰다.
“하하하하하하!”
보스가 왜 미칠 듯이 웃어 대는지, 이제야 김도진이 이해한다. 그는 어떻게든 김도진을 죽일 셈이었다.
김도진이 분노에 가득 차 그에게 다가가는데, 보스가 순간 품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낸다.
그래 봤자 자세를 봐서는 김도진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다.
슈우우욱.
푸욱!
이윽고 보스가 칼을 휘두르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왼쪽 가슴을 향해 찔러넣었다.
"...낄낄..."
즉 녀석은 자폭 이전에 자살을 했다. 그것도 김도진 보란 듯이 비열하게 웃으며.
김도진이 죽어 버린 보스를 보고 입을 굳게 다문다.
그러고는 폭탄에 가까이 간다.
시간이 48초 남았다. 즉, 48초 후면 폭탄은 터지고 김도진은 이 건물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하아아...”
김도진이 고개를 떨구고 낙담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온갖 훈련을 하며 신체를 극한의 수준까지 끌어올렸지만, 이깟 폭탄 하나를 해체하는 지식 같은 건 습득하지 않았다. 즉 그는 마냥 죽을 운명에 처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초 시계가 15초가 되어 14, 13, 12... 흘러간다.
한데 그때 뒤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김도진이 즉각 뒤로 시선을 돌린다.
놀랍게도 정장 차림의 중년 백인 남성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Wait a minute! (잠깐!)”
김도진이 달려오는 백인을 보고 잠시 경계를 하다가, 이내 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폭탄을 향해 있음을 깨닫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비켜준다.
이러나저러나 초 시계는 계속 흐른다. 6초가 5초가 되고, 이내 4, 3, 2가 되다가는...
투둑.
1초. 정확히 1초에서 폭탄이 멈춘다.
백인 남성이 5초만에 폭탄을 해체했다.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보고 있는 김도진에게 백인이 고개를 돌려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제 범죄 조직을 추적하는, 인터폴 스페셜 요원, 코드 네임 J입니다.”
“...”
하지만 아쉽게도 극 중 김도진은 영어를 모른다.
그저 백인 남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폭탄을 해체함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살린 것에 무진장 고마울 뿐이다.
“땡큐, 베리베리 땡큐!”
이에 요원이 김도진을 보고 씨익 웃으며 페이드 아웃.
그리고 씬이 바뀌어 김도진이 다시 딸 예슬이와 함께 행복한 모습으로 놀이공원에 있다.
“컷, 오케이!”
이것으로 영화 <격분>의 모든 촬영이 끝이났다.
“하하하하하하!”
짝! 짝! 짝!
김도진이 신나서 웃는 가운데, 정우현의 뒤편에서 이 모두를 보며 손뼉을 치고 축하하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인터폴 스페셜 요원, 코드 네임 J였다.
“헤이, 우우우우우!”
다름 아니라 그는, 브래드였다.
즉 할리우드의 브래드 퍼트가 정우현의 첫 장편 상업 영화에 우정 출연을 했다.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한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우."
브래드가 순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음엔 나도 너의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구나."
“에이, 브래드. 브래드는 꼭 제가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엄청 찾잖아요! 주연으로 출연 좀 해 달라고.”
“몰라.”
그러자 브래드가 곧장 답했다.
“모른다, 난. 다른 영화는. 그저 너의 영화에 나도 출연하고 싶다는 거지. 그것도 주인공으로.”
“하하하하, 기다려보세요! 뭐, 조만간 같이 할 수도 있겠죠.”
이러면서 둘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는 가운데, 김도진이 브래드에게 다가와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에 브래드가 통역도 없이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아넝하새요우!”
그는 한국어를 전공한 제인과 계속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어 인사 정도는, 그도 이제 할 수 있었다.
“오, 잘 하시네요, 한국어. 하하. 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김도진이라고 합니다. 저번 촬영 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하며 김도진의 말이 길어지자, 정우현이 이번에는 얼른 통역을 해줬다.
그러자 브래드도 웃으며 화답했다.
***
사실 김도진은 물론, 정우현을 제외한 그 어떤 스태프들도 브래드 퍼트가 깜짝 출연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시나리오상 백인의 인터폴 요원이 있기에, 그들은 그저 일반 백인 남성을 캐스팅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한데 어쩐지 정우현은 해당 배우에 관해 일절 말을 하지 않았고, 급기야 촬영 당일 날이 되어서야 그가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벌 톱스타 브래드 퍼트였다.
이에 모든 이들이 놀라서 말을 잃었다.
브래드 퍼트라니. 충무로는커녕, 할리우드에서도 섭외하기가 힘든 브래드가 한국 영화에 출연한다니.
물론, 모두 정우현과의 남다른 친분 덕분이었다.
심지어 브래드는, 말 그대로 우정 출연을 했다. 즉 어마어마한 몸값의 그가, 단 한푼도 받지 않고 정우현의 영화에 나왔다.
“하하하, 브래드! 이거 너무 고마워서 어쩌죠!”
“고맙긴.”
정우현의 말에 브래드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아주 잠깐 출연하는 건데, 뭐. 그러잖아도 심심한데 잘 됐다. 엘라랑 좀 일을 하고, 딱히 할 게 없었거든. 나도 다음 작품 일정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마침 브래드는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우 재단 활동을 위해서다. 그는 재단의 대표 홍보 대사로서, 주로 광고 모델로 나서는 등 우 재단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힘쓰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연기를 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됐다, 우. 그보다는, 저번에도 얘기했다시피, 언젠가 나도 너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시켜다오.”
하고서 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응? 꼭이다, 우.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내가 바라는 건 그뿐이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의 톱스타인 브래드가, 오랜 친구인 감독 정우현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